말기암에서 살아나 나주 본당에 나가면서부터, 나는 김 K자매를 알게 되었다. 미혼인 그 자매는 너무 가난했다. 게다가 병들고, 잘 못 먹어 비쩍 마른 그가 나는 가엾게만 느껴졌다. 한평생 수도 없이 굶어 온 나였기에, 굶주리는 이의 배고픔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나는 그 자매가 너무너무 불쌍했다.
그래서 6.25로 인해 가엾게 죽어 간 친동생 순덕이인 셈치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그는 자주 미용실에 와서 나와 많은 대화를 했는데 친정어머니도 미용사들도 “뭔 여자가 말이 그렇게도 많대요?” 하면서 그녀가 오는 것을 극히 싫어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와 미용사들 모르게 이것저것 챙겨주면서 동생 순덕이에게 사랑을 베푼 셈치고 사랑을 실천했다.
본당에서 피정이 있으면 비용도 다 내가 내주고, 데리고 다니면서 늘 돌봐주며 결혼 후에도 많이 도와주었다. K 자매 결혼식 날은 미용실에서 일을 한 셈치고 완전히 K자매를 위해 그날 하루를 온전히 봉헌했다. 그리고 돈도 받지 않고 신부화장을 다 해주고 드레스까지 공것으로 입혀서 결혼식을 잘 치를 수 있도록 전반적으로 도와주었다. 그런데 그의 한쪽 얼굴에 파란 반점이 있는 것을 전혀 생각 못 한 내가 크게 번진 그 파란 점을 화장품으로 가려야 하는데 준비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흉을 감추기 위해 본인 쓰던 화장품을 그쪽만 조금 썼는데 자기 것을 가져다 썼다며 그 가족들과 그녀도 불만과 불평을 쏟아냈다.
그러나 “손님도 받지 않고 우리를 위해 하루종일 이렇게 온전히 봉헌해 주고 돈도 받지 않고 다해줘서 고마워.”하는 사랑의 말을 들은 셈치고 봉헌했다. 그녀는 나를 너무 좋아해서 성령 운동, 레지오, 프란치스코회 등 내가 하는 활동은 다 같이 했다. 그래서 K자매의 결혼식 때는 나를 통해서 광주에서 성령 봉사자들과 프란치스코 회원들도 많이 와서 K는 체면치레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분들을 그 누구도 신경을 안 썼고 K자매 조차 신경을 못 썼다. 나는 예수님, 성모님 대접하는 셈치고 그분들을 다 우리 집에 모셔다 저녁까지 대접해서 보냈다. K자매는 결혼하고서도 힘들었다. 경제적인 문제와 그 남편이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잦아, 임신한 K자매는 정 미용실 인근의 술집 거리 앞에서 서성거리곤 했다.
손님이 워낙 많았기에 밤 12시 넘도록 미용실을 운영하던 나는 밤거리를 헤매는 K자매를 보며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에게 ‘혹시 무슨 사고라도 나지 않았을까?’ 하여, 아기를 업고서 얼마나 안절부절했던가! 그 슬픔을 아는 나는 K자매가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미용실로 들어오게 하여 따뜻하게 품어주고 먹을 것도 먹이며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자신의 남편이 술집에 다닌다고 말은 안 했지만, 술집 앞에서 서성거리는 K자매의 마음을 알아채고 위안이 되도록 “그런 것은 아닐 것이야.” 하며 위로해줬다.
그러던 어느 날, 머리를 하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사정없이 뛰어들어 와 “나 좀 숨겨주세요.” 했다. 놀라서 보니 K자매의 남편이어서 ‘K가 얼마나 마음 아플까?’ 생각하며 그를 보지 못하도록 재빠르게 거울 밑 공간에 숨겨놓고 내가 가리고 있었다. 그 뒤로 술집 여자들이 뛰어 들어와 “언니, 조금 전에 뛰어 들어온 남자 어디 있어?” 했다.
나는 미용사들에게 눈짓하며 “아무도 안 왔는데?” 했더니 “분명히 들어왔는데? 이상하다.” “그럼 안에 들어가서 찾아봐.” 했더니 “이상하다. 이리 들어 온 것 같았는데...” 하더니 그들은 뒤돌아갔다. K남편의 그런 모습에 마치 내 일처럼 마음이 아려왔지만, 가정에 충실하도록 그가 변화되어 K자매와 성가정을 이루도록 간절히 기도하며 봉헌했다.
그 뒤, 나는 단 한 번도 그 얘기를 하지 않고 K에게 남편 칭찬만 해줬다. 그 대신 남편과 많은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K자매에게, 남편을 좋게 생각할 수 있게 이야기해주고, 내가 사랑받은 셈치고 지내온 일들을 이야기해주었다.
“힘들겠지만 설사 외박을 하고 왔어도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 말대로 해봐. 그리고 남편 사랑받은 셈치고 다리 주물러 주면서 ‘사랑해. 사랑합니다.’ 하면서 잘 해줘봐. 사랑의 메아리는 반드시 돌아올 거야.” 하고 알려주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게 도와주니 그녀는 “언니, 언니도 셈치고 참아냈는데 저도 참을래요.” 하며 울곤 했다. 나는 친엄마와 친언니의 마음으로 K자매를 품어주고 안아주며 주님, 성모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고 격려해 주었다.
힘들겠지만 설사 외박을 하고 왔어도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 말대로 해봐. 그리고 남편 사랑받은 셈치고
다리 주물러 주면서 ‘사랑해. 사랑합니다.’ 하면서 잘 해줘봐.
사랑의 메아리는 반드시 돌아올 거야.” 하고 알려주었다.
아멘!!!아멘!!!아멘!!! 감사합니다 !!!
어느 날, 머리를 하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사정없이 뛰어들어 와 “나 좀 숨겨주세요.” 했다.
놀라서 보니 K자매의 남편이어서 ‘K가 얼마나 마음 아플까?’ 생각하며 그를 보지 못하도록
재빠르게 거울 밑 공간에 숨겨놓고 내가 가리고 있었다.
그 뒤로 술집 여자들이 뛰어 들어와 “언니, 조금 전에 뛰어 들어온 남자 어디 있어?” 했다.
나는 미용사들에게 눈짓하며 “아무도 안 왔는데?” 했더니 “분명히 들어왔는데? 이상하다.”
“그럼 안에 들어가서 찾아봐.” 했더니 “이상하다. 이리 들어 온 것 같았는데...” 하더니 그들은 뒤돌아갔다.
K남편의 그런 모습에 마치 내 일처럼 마음이 아려왔지만, 가정에 충실하도록 그가 변화되어
K자매와 성가정을 이루도록 간절히 기도하며 봉헌했다.
그 뒤, 나는 단 한 번도 그 얘기를 하지 않고 K에게 남편 칭찬만 해줬다.
그 대신 남편과 많은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K자매에게, 남편을 좋게 생각할 수 있게 이야기해주고,
내가 사랑받은 셈치고 지내온 일들을 이야기해주었다.
“힘들겠지만 설사 외박을 하고 왔어도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 말대로 해봐.
그리고 남편 사랑받은 셈치고 다리 주물러 주면서 ‘사랑해. 사랑합니다.’ 하면서 잘 해줘봐.
사랑의 메아리는 반드시 돌아올 거야.” 하고 알려주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게 도와주니 그녀는 “언니, 언니도 셈치고 참아냈는데 저도 참을래요.”
하며 울곤 했다. 나는 친엄마와 친언니의 마음으로 K자매를 품어주고 안아주며
주님, 성모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고 격려해 주었다.
친동생 순덕이라 생각하고 친언니의 마음으로
말기암에서 살아나 나주 본당에 나가면서부터, 나는 김 K자매를 알게 되었다. 미혼인 그 자매는 너무 가난했다. 게다가 병들고, 잘 못 먹어 비쩍 마른 그가 나는 가엾게만 느껴졌다. 한평생 수도 없이 굶어 온 나였기에, 굶주리는 이의 배고픔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나는 그 자매가 너무너무 불쌍했다.
그래서 6.25로 인해 가엾게 죽어 간 친동생 순덕이인 셈치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그는 자주 미용실에 와서 나와 많은 대화를 했는데 친정어머니도 미용사들도 “뭔 여자가 말이 그렇게도 많대요?” 하면서 그녀가 오는 것을 극히 싫어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와 미용사들 모르게 이것저것 챙겨주면서 동생 순덕이에게 사랑을 베푼 셈치고 사랑을 실천했다.
본당에서 피정이 있으면 비용도 다 내가 내주고, 데리고 다니면서 늘 돌봐주며 결혼 후에도 많이 도와주었다. K 자매 결혼식 날은 미용실에서 일을 한 셈치고 완전히 K자매를 위해 그날 하루를 온전히 봉헌했다. 그리고 돈도 받지 않고 신부화장을 다 해주고 드레스까지 공것으로 입혀서 결혼식을 잘 치를 수 있도록 전반적으로 도와주었다. 그런데 그의 한쪽 얼굴에 파란 반점이 있는 것을 전혀 생각 못 한 내가 크게 번진 그 파란 점을 화장품으로 가려야 하는데 준비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흉을 감추기 위해 본인 쓰던 화장품을 그쪽만 조금 썼는데 자기 것을 가져다 썼다며 그 가족들과 그녀도 불만과 불평을 쏟아냈다.
그러나 “손님도 받지 않고 우리를 위해 하루종일 이렇게 온전히 봉헌해 주고 돈도 받지 않고 다해줘서 고마워.”하는 사랑의 말을 들은 셈치고 봉헌했다. 그녀는 나를 너무 좋아해서 성령 운동, 레지오, 프란치스코회 등 내가 하는 활동은 다 같이 했다. 그래서 K자매의 결혼식 때는 나를 통해서 광주에서 성령 봉사자들과 프란치스코 회원들도 많이 와서 K는 체면치레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분들을 그 누구도 신경을 안 썼고 K자매 조차 신경을 못 썼다. 나는 예수님, 성모님 대접하는 셈치고 그분들을 다 우리 집에 모셔다 저녁까지 대접해서 보냈다. K자매는 결혼하고서도 힘들었다. 경제적인 문제와 그 남편이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잦아, 임신한 K자매는 정 미용실 인근의 술집 거리 앞에서 서성거리곤 했다.
손님이 워낙 많았기에 밤 12시 넘도록 미용실을 운영하던 나는 밤거리를 헤매는 K자매를 보며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에게 ‘혹시 무슨 사고라도 나지 않았을까?’ 하여, 아기를 업고서 얼마나 안절부절했던가! 그 슬픔을 아는 나는 K자매가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미용실로 들어오게 하여 따뜻하게 품어주고 먹을 것도 먹이며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자신의 남편이 술집에 다닌다고 말은 안 했지만, 술집 앞에서 서성거리는 K자매의 마음을 알아채고 위안이 되도록 “그런 것은 아닐 것이야.” 하며 위로해줬다.
그러던 어느 날, 머리를 하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사정없이 뛰어들어 와 “나 좀 숨겨주세요.” 했다. 놀라서 보니 K자매의 남편이어서 ‘K가 얼마나 마음 아플까?’ 생각하며 그를 보지 못하도록 재빠르게 거울 밑 공간에 숨겨놓고 내가 가리고 있었다. 그 뒤로 술집 여자들이 뛰어 들어와 “언니, 조금 전에 뛰어 들어온 남자 어디 있어?” 했다.
나는 미용사들에게 눈짓하며 “아무도 안 왔는데?” 했더니 “분명히 들어왔는데? 이상하다.” “그럼 안에 들어가서 찾아봐.” 했더니 “이상하다. 이리 들어 온 것 같았는데...” 하더니 그들은 뒤돌아갔다. K남편의 그런 모습에 마치 내 일처럼 마음이 아려왔지만, 가정에 충실하도록 그가 변화되어 K자매와 성가정을 이루도록 간절히 기도하며 봉헌했다.
그 뒤, 나는 단 한 번도 그 얘기를 하지 않고 K에게 남편 칭찬만 해줬다. 그 대신 남편과 많은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K자매에게, 남편을 좋게 생각할 수 있게 이야기해주고, 내가 사랑받은 셈치고 지내온 일들을 이야기해주었다.
“힘들겠지만 설사 외박을 하고 왔어도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 말대로 해봐. 그리고 남편 사랑받은 셈치고 다리 주물러 주면서 ‘사랑해. 사랑합니다.’ 하면서 잘 해줘봐. 사랑의 메아리는 반드시 돌아올 거야.” 하고 알려주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게 도와주니 그녀는 “언니, 언니도 셈치고 참아냈는데 저도 참을래요.” 하며 울곤 했다. 나는 친엄마와 친언니의 마음으로 K자매를 품어주고 안아주며 주님, 성모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고 격려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