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0. 시어머니께 큰절을 올리며 용서를 청하다
예수님께서 시어머니가 바로 나의 영적 은인이심을 깨우쳐주시자, 터져 나오는 울음을 절제할 수 없어 얼른 성당 밖으로 나왔다. 나는 결국 온종일 헤매며 성사를 보지 못했으나, 주님의 크나큰 경륜과 사랑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장부에게 그동안에 있었던 모든 일은 바로 하느님께서 나를 도구로 사용하시고자 역사하심이었음을 이야기했다. “율리오씨, 우리 함께 어머니께 가서 잘못을 용서 청해요.” 하니 남편은 “당신이 뭘 잘못했다고 용서를 청해?” 하며 이해를 잘 못했다. 그래도 그다음 날 나와 함께 해주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바로 광주로 올라가 시어머님을 찾아가서 큰절을 올리며 용서를 청했다. 시어머니는 나를 깨우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신 것이기에 도리어 나 때문에 피해를 보신 것이라 생각하니 너무나 죄송했다. “어머니, 그동안에 제가 잘못했습니다. 어머니는 제 은인이십니다. 제가 어머니를 평생 잘 모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시어머님께서는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 모르시겠다는 표정을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워메 아야, 느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그러냐? 세상천지에 느그들만큼 잘하는 자식들이 또 어디 있다더냐?” 하시는 것이 아닌가! 까마득히 아무것도 모르시는 시어머니를 보며 너무나 놀라웠다. 주님께서 시어머니를 도구로 삼아 나에게 크나큰 깨달음을 주시는 사랑의 기적을 행하심이 틀림없었다.
친정어머니를 다치게 하신 시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더라면 어찌 내가 주님의 놀라운 사랑의 경륜을 깨달을 수 있었겠는가! 나는 시어머니와 함께 부둥켜안고 깊은 사랑을 나누었다. ‘오, 나의 사랑 나의 주님! 당신의 높으신 그 경륜을 감히 우리가 어찌 다 헤아릴 수가 있겠습니까?
고해성사를 보고자 새벽부터 서둘러 여러 성당을 헤매었으나 주님께서 계획하지 않으신 일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도 철저하리만큼 신부님들을 만나지 못할 수가 있었겠으며, 또한 오는 도중에 시간이 지체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강론을 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 모든 일은 참으로 주님의 뜻이자 예비하심이었다. 주님께서는 얼마나 자비하신가? 내가 만약 나주 본당이나 다른 성당에 갔을 때 신부님이 계셔서 성사를 보고 미사를 드렸더라면 이토록 놀라운 주님 사랑의 경륜을 결코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를 돌고 돌게 하시며 당신을 찾도록 시험을 하신 것이었다. 그날 만난 할아버지는 두 분 다 예수님이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광주 터미널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죽어있던 할아버지가 타고 간다던 33번 버스는 존재하지도 않는 버스 번호였다.
또한 북동 성당으로 가기 직전, 버스에서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안내양이 밀치지 않았더라면 성당에 일찍 도착해서 신부님이 나가기 전에 만나 성사를 볼 수도 있었다. 그러니 안내양이 할아버지를 밀어버렸던 것 또한 시간을 지체시켜 내가 ‘모세와 지팡이’라는 강론을 듣게 하기 위한 주님의 계획이셨다.
그 강론을 통해 주님께서 나를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친히 그 고통을 허락하셨음을 깨우쳐주시고, 나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더 깊이 느끼는 큰 회개의 은총을 주신 것이다. 주님의 위대하신 사랑은 강한 전율이 되어 내 마음을 한순간에 눈 녹듯 녹여주셨다. 지고하신 그 사랑을 느끼는 내 심장은 주님과 하나 되어 뛰었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에는 주님의 오묘하신 뜻과 깊은 사랑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시어머님께 용서를 청하고 돌아와 참된 고해성사를 보았다. 성체를 모시지 못한 암흑과도 같았던 이틀간의 냉담에서 해방되어 진정으로 주님을 모시게 되었다.
나는 주님의 깊은 사랑을 느끼며, 주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할 때 더욱 풍성한 하느님의 사랑을 내려주신다는 사실을 이날 깨닫게 되었다. 그 후 애타게 갈망하며 모셨던 그 성체의 맛은 이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높고 깊고 넓은 사랑이며 크나큰 보배였다.
650. 시어머니께 큰절을 올리며 용서를 청하다
예수님께서 시어머니가 바로 나의 영적 은인이심을 깨우쳐주시자, 터져 나오는 울음을 절제할 수 없어 얼른 성당 밖으로 나왔다. 나는 결국 온종일 헤매며 성사를 보지 못했으나, 주님의 크나큰 경륜과 사랑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장부에게 그동안에 있었던 모든 일은 바로 하느님께서 나를 도구로 사용하시고자 역사하심이었음을 이야기했다. “율리오씨, 우리 함께 어머니께 가서 잘못을 용서 청해요.” 하니 남편은 “당신이 뭘 잘못했다고 용서를 청해?” 하며 이해를 잘 못했다. 그래도 그다음 날 나와 함께 해주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바로 광주로 올라가 시어머님을 찾아가서 큰절을 올리며 용서를 청했다. 시어머니는 나를 깨우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신 것이기에 도리어 나 때문에 피해를 보신 것이라 생각하니 너무나 죄송했다. “어머니, 그동안에 제가 잘못했습니다. 어머니는 제 은인이십니다. 제가 어머니를 평생 잘 모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시어머님께서는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 모르시겠다는 표정을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워메 아야, 느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그러냐? 세상천지에 느그들만큼 잘하는 자식들이 또 어디 있다더냐?” 하시는 것이 아닌가! 까마득히 아무것도 모르시는 시어머니를 보며 너무나 놀라웠다. 주님께서 시어머니를 도구로 삼아 나에게 크나큰 깨달음을 주시는 사랑의 기적을 행하심이 틀림없었다.
친정어머니를 다치게 하신 시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더라면 어찌 내가 주님의 놀라운 사랑의 경륜을 깨달을 수 있었겠는가! 나는 시어머니와 함께 부둥켜안고 깊은 사랑을 나누었다. ‘오, 나의 사랑 나의 주님! 당신의 높으신 그 경륜을 감히 우리가 어찌 다 헤아릴 수가 있겠습니까?
고해성사를 보고자 새벽부터 서둘러 여러 성당을 헤매었으나 주님께서 계획하지 않으신 일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도 철저하리만큼 신부님들을 만나지 못할 수가 있었겠으며, 또한 오는 도중에 시간이 지체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강론을 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 모든 일은 참으로 주님의 뜻이자 예비하심이었다. 주님께서는 얼마나 자비하신가? 내가 만약 나주 본당이나 다른 성당에 갔을 때 신부님이 계셔서 성사를 보고 미사를 드렸더라면 이토록 놀라운 주님 사랑의 경륜을 결코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를 돌고 돌게 하시며 당신을 찾도록 시험을 하신 것이었다. 그날 만난 할아버지는 두 분 다 예수님이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광주 터미널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죽어있던 할아버지가 타고 간다던 33번 버스는 존재하지도 않는 버스 번호였다.
또한 북동 성당으로 가기 직전, 버스에서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안내양이 밀치지 않았더라면 성당에 일찍 도착해서 신부님이 나가기 전에 만나 성사를 볼 수도 있었다. 그러니 안내양이 할아버지를 밀어버렸던 것 또한 시간을 지체시켜 내가 ‘모세와 지팡이’라는 강론을 듣게 하기 위한 주님의 계획이셨다.
그 강론을 통해 주님께서 나를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친히 그 고통을 허락하셨음을 깨우쳐주시고, 나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더 깊이 느끼는 큰 회개의 은총을 주신 것이다. 주님의 위대하신 사랑은 강한 전율이 되어 내 마음을 한순간에 눈 녹듯 녹여주셨다. 지고하신 그 사랑을 느끼는 내 심장은 주님과 하나 되어 뛰었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에는 주님의 오묘하신 뜻과 깊은 사랑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시어머님께 용서를 청하고 돌아와 참된 고해성사를 보았다. 성체를 모시지 못한 암흑과도 같았던 이틀간의 냉담에서 해방되어 진정으로 주님을 모시게 되었다.
나는 주님의 깊은 사랑을 느끼며, 주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할 때 더욱 풍성한 하느님의 사랑을 내려주신다는 사실을 이날 깨닫게 되었다. 그 후 애타게 갈망하며 모셨던 그 성체의 맛은 이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높고 깊고 넓은 사랑이며 크나큰 보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