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8. 서둘러 길을 가는데 또다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고
원래 가려고 한 대로 광주 터미널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목적지인 북동 성당 앞에 도착하여 내리려 했다. 그런데 안내양이 느닷없이 몸을 잘 못쓰시는 할아버지가 빨리 내리지 않는다고 사정없이 밀쳐버렸다. 그 바람에 할아버지는 “에구구!” 하며 땅으로 고꾸라지듯 떨어졌다.
나는 깜짝 놀라 안내양에게 “어머 아가씨, 노인을 그렇게 밀쳐버리면 어떻게 해요.” 했더니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당신이나 노인 공경 잘 하쇼!” 하면서 면박을 주었다.나는 안내양이 화난 것을 내 탓으로 받아들이며 “미안합니다.”하고 얼른 사과했다.
그리고 안내양이 내 말을 잘 받아들여 준 셈치고 아가씨가 더 친절하기를 바라며 생활의 기도를 바쳤다. 나는 버스에서 얼른 뛰어내려 곧바로 그 할아버지를 일으켜드렸다. “할아버지 힘드시지요?” “아휴...” 아무리 바쁠지라도 나는 불쌍한 할아버지가 마음이 쓰여 그대로 보낼 수가 없었다.
‘나이 드셔서 힘드신 것도 아픔일 텐데, 힘없고 늙었다는 이유로 이런 취급을 받으시니 그 상처가 얼마나 클까?’ 하는 생각에 기도해 드리며 가시는 목적지까지 모셔다드렸다. 그러고서야 서둘러 북동 성당으로 갔더니 어떤 남자분이 성당에서 나오셨다. 사복 차림이었기에 나는 그분이 ‘신자려니’ 생각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누구에게나 인사를 잘했는데, 그분께도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니 그분도 “안녕하세요.” 하고 내 인사를 받아주었다. 곧바로 성당에 들어가서 사무실 직원에게 신부님이 계시는지를 물었더니 “어머, 신부님 금방 나가셨는데 못 보셨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아, 내가 들어올 때 나가시던 그분이 신부님이셨구나...’
이곳에서 마저 성사를 못 보게 되자 나는 정말 안타까웠다. 그러나 얼른 셈치고 봉헌했다. ‘주님께서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 보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주님의 인도하심에 맡겨 드리기로 했다. 그러나 ‘미사에는 참석했지만 이틀간이나 성체를 못 모셨으니 그것이 바로 냉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고 생각하니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다.
하느님을 알고 난 이후로는 어둠이 없을 줄 알았는데, 잃어버린 빛을 찾기 위한 열망으로 새벽부터 일어나 목욕하고, 준비기도 하고 집을 나와서 석양이 다 된 지금까지도 이렇게 헤매고 있다니... 고해성사를 보고 저녁미사에 참례한 뒤 나주에 내려가려면 아주 바쁘게 서둘러야만 했는데 광주 지리도 잘 모르는 데다가 아는 성당도 별로 없었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어 성령봉사회 이 바오로 회장님께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회장님, 지금 고해성사를 보고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성당이 혹시 광주 어디에 있을까요?” 했더니 “응, 호남동 성당에 가봐.” “확실히 성사도 볼 수 있고 미사도 할 수 있어요? 제가 미사참례는 했지만 이틀간이나 성체를 못 모셔서 영적으로 배고파 죽을 지경이에요.” 했다.
회장님은 “응, 그래? 그 마음 정말 좋은 마음이야. 나 이제까지 그런 말 누구한테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정말 좋은 마음가짐이야. 그곳에서는 확실히 주님을 모실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봐.” 하셨다. 그 당시 나는 희생을 치러 절약한 돈을 애긍함에 모아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때였다.
일류 미용실을 하며 돈을 잘 벌어도 목욕탕 가는 대신 석유곤로에 물 데워 부엌에서 목욕하고, 택시 대신 버스를 타거나 걸어 다녔다. 그런데 그때는 너무 늦어 시간이 촉박하여 버스 타고 갈 여유가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이 택시를 탔다. 호남동 성당에 도착해 부랴부랴 저녁 8시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성당 안으로 들어갔더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미사는 없고 ‘모세와 지팡이’라는 제목으로 어느 수녀님이 사순 특별 강론을 하고 계셨다. ‘지팡이? 아까 쓰러져있던 할아버지도 지팡이를 가지고 계셨는데. 그럼 그분이 모세였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그러나 곧 ‘아이고, 하루 종일 헤매었는데 결국 고해성사도 못 보고 성체도 못 모시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실망감이 들었다.
이제는 늦어서 더 이상 다른 곳으로는 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무슨 계획이 있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래, 주님의 부르심인가 보다. 기왕에 왔으니 강론이라도 듣고 가자.’ 하고 고해성사 보고 미사에 참례한 셈치고 실망감을 봉헌하며 강론을 듣기 위해 성당으로 들어섰다.
648. 서둘러 길을 가는데 또다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고
원래 가려고 한 대로 광주 터미널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목적지인 북동 성당 앞에 도착하여 내리려 했다. 그런데 안내양이 느닷없이 몸을 잘 못쓰시는 할아버지가 빨리 내리지 않는다고 사정없이 밀쳐버렸다. 그 바람에 할아버지는 “에구구!” 하며 땅으로 고꾸라지듯 떨어졌다.
나는 깜짝 놀라 안내양에게 “어머 아가씨, 노인을 그렇게 밀쳐버리면 어떻게 해요.” 했더니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당신이나 노인 공경 잘 하쇼!” 하면서 면박을 주었다.나는 안내양이 화난 것을 내 탓으로 받아들이며 “미안합니다.”하고 얼른 사과했다.
그리고 안내양이 내 말을 잘 받아들여 준 셈치고 아가씨가 더 친절하기를 바라며 생활의 기도를 바쳤다. 나는 버스에서 얼른 뛰어내려 곧바로 그 할아버지를 일으켜드렸다. “할아버지 힘드시지요?” “아휴...” 아무리 바쁠지라도 나는 불쌍한 할아버지가 마음이 쓰여 그대로 보낼 수가 없었다.
‘나이 드셔서 힘드신 것도 아픔일 텐데, 힘없고 늙었다는 이유로 이런 취급을 받으시니 그 상처가 얼마나 클까?’ 하는 생각에 기도해 드리며 가시는 목적지까지 모셔다드렸다. 그러고서야 서둘러 북동 성당으로 갔더니 어떤 남자분이 성당에서 나오셨다. 사복 차림이었기에 나는 그분이 ‘신자려니’ 생각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누구에게나 인사를 잘했는데, 그분께도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니 그분도 “안녕하세요.” 하고 내 인사를 받아주었다. 곧바로 성당에 들어가서 사무실 직원에게 신부님이 계시는지를 물었더니 “어머, 신부님 금방 나가셨는데 못 보셨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아, 내가 들어올 때 나가시던 그분이 신부님이셨구나...’
이곳에서 마저 성사를 못 보게 되자 나는 정말 안타까웠다. 그러나 얼른 셈치고 봉헌했다. ‘주님께서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 보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주님의 인도하심에 맡겨 드리기로 했다. 그러나 ‘미사에는 참석했지만 이틀간이나 성체를 못 모셨으니 그것이 바로 냉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고 생각하니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다.
하느님을 알고 난 이후로는 어둠이 없을 줄 알았는데, 잃어버린 빛을 찾기 위한 열망으로 새벽부터 일어나 목욕하고, 준비기도 하고 집을 나와서 석양이 다 된 지금까지도 이렇게 헤매고 있다니... 고해성사를 보고 저녁미사에 참례한 뒤 나주에 내려가려면 아주 바쁘게 서둘러야만 했는데 광주 지리도 잘 모르는 데다가 아는 성당도 별로 없었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어 성령봉사회 이 바오로 회장님께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회장님, 지금 고해성사를 보고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성당이 혹시 광주 어디에 있을까요?” 했더니 “응, 호남동 성당에 가봐.” “확실히 성사도 볼 수 있고 미사도 할 수 있어요? 제가 미사참례는 했지만 이틀간이나 성체를 못 모셔서 영적으로 배고파 죽을 지경이에요.” 했다.
회장님은 “응, 그래? 그 마음 정말 좋은 마음이야. 나 이제까지 그런 말 누구한테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정말 좋은 마음가짐이야. 그곳에서는 확실히 주님을 모실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봐.” 하셨다. 그 당시 나는 희생을 치러 절약한 돈을 애긍함에 모아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때였다.
일류 미용실을 하며 돈을 잘 벌어도 목욕탕 가는 대신 석유곤로에 물 데워 부엌에서 목욕하고, 택시 대신 버스를 타거나 걸어 다녔다. 그런데 그때는 너무 늦어 시간이 촉박하여 버스 타고 갈 여유가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이 택시를 탔다. 호남동 성당에 도착해 부랴부랴 저녁 8시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성당 안으로 들어갔더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미사는 없고 ‘모세와 지팡이’라는 제목으로 어느 수녀님이 사순 특별 강론을 하고 계셨다. ‘지팡이? 아까 쓰러져있던 할아버지도 지팡이를 가지고 계셨는데. 그럼 그분이 모세였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그러나 곧 ‘아이고, 하루 종일 헤매었는데 결국 고해성사도 못 보고 성체도 못 모시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실망감이 들었다.
이제는 늦어서 더 이상 다른 곳으로는 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무슨 계획이 있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래, 주님의 부르심인가 보다. 기왕에 왔으니 강론이라도 듣고 가자.’ 하고 고해성사 보고 미사에 참례한 셈치고 실망감을 봉헌하며 강론을 듣기 위해 성당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