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영상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성모님 대회

운영진
202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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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에서 온 전 세라피나입니다. 제가 그동안 율리아 씨를 뵈면서 보고 느꼈던 것을 그대로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율리아 씨를 처음 뵌 것은 1990년도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서입니다. 피츠버그는 아주 큰 도시인데 거기에 있는 듀케인 유니버시티(대학교)에서 성모님 대회를 열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때 율리아 씨가 오시는 걸 잘 모르고 성모님 대회를 연다고 그래서 저희 아빠(남편)랑, 가족 이렇게 몇 사람이 갔었어요. 저희가 미국 가서 생활한 지 꽤 오래됐는데도 한국 사람인 거에 대해서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미국 사람보다 우리 한국 사람이 역시 못생겼죠. 미국 사람들은 얼굴 하얗고 눈은 파랗고 참 예뻐요.

 

그런데 거기 가서 느낀 게 한국 사람들은 얼굴이 커요. 그렇게 비교해 보면은 모든 면에서 월등하지만 외모적으로는 월등하지가 못했는데, 그 자리에서 율리아 씨가 단 위에 딱 서서 천주경부터 주 기도문, 성모송 그리고 15단을 한국말로 다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미국 사람들은 응송을 영어로 했죠.

 

그때 그 자랑스러움! 아! 성모님이 이렇게 한국을 사랑하셔서 율리아 씨를 통해서 우리가 이렇게 한국을 자랑스럽게 느낄 수 있게끔 해준 그 기회를 갖고 ‘주님 감사합니다!’ 했어요. 그런데 그때 밖에서는 태양의 기적을 보여주셨어요. 각 방송국에서 그 태양의 기적을 찍느라고 난리였었죠.

 

텔레비전 방송 있는데도 신문, 라디오에 전부 율리아 씨 스토리가 계속 나니까 백악관에서 굉장히 관심을 갖죠. 그래서 율리아 씨가 워싱턴으로 오시게 됐어요. 그때 율리아 씨가 처음 저희 집에 오시게 되어 모시게 됐죠. 우리 집에 와 계시다는 걸 아니까 교회 교회마다 다 연락이 와서 제발 좀 우리 교회에 와서 피정을 좀 해달라고 여러 군데 가서 피정도 하면서 백악관에 가서 면담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백악관에서 상원 의원하고 하원 의원들을 모셔놓고 피정까지 하셨죠. 그때 통역은 한국 사람이 했고요.

 

그때 굉장히 아주 많은 사람들이 감사하고 그랬는데요. 그 후에 율리아 씨가 이제 떠나려고 공항에 계실 때 주최 측에 있는 임원들이 공항으로 나왔거든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피츠버그에서 그 행사하고부터 그 자리에 참석했던 미국 사람들이 하루에 50통 넘게 주님께 감사한다는 편지가 매일 오고 있다는 그런 소식을 듣고 참 기뻤어요.

 

그리고 이제 워싱턴에 계실 동안에 볼티모어 성당에서 피정을 가졌는데, 볼티모어 성당은 어떤 성당이었는가 하면은, 그 당시에 성당이 없었고 미국 성당이었어요. 그런데 한국 신부님이 한 분 오시고는 “우리 한국 본당을 하나 만들자!” 그래서 한국 본당을 만드는데, 그 위치가 (흑인들이) 많이 사는 자리에 본당으로 가게 됐습니다.

 

그러니 많은 신자들이 “야, 미국 성당에 있으니까 헌금 조금 내도 되고 뭐 제약받는 거 없는데, 왜 우리가 구태여 다른 성당 가서 헌금도 많이 내야 하고 그 (흑인) 동네에서 미사를 해야 되니?” 막 싫다고 이러면서 의견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있을 찰나에 율리아 씨가 그 성당에 가서 피정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율리아 씨는 무척 편찮으셔서(고통) 움직이시질 못하고 저는 불안해서 앉아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나더니 제 백을 가지고 도망가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도둑이야!” 그렇게 말을 했지만 ‘아, 저 사람이 얼마나 필요했으면 저랬을까? 주님, 저 사람이 필요한 거 다 가져가시고 이게 천 배, 만 배 밀알이 돼서 그 사람이 은총받는 생활을 할 수 있게끔 해 주십시오. 이걸 그대로 봉헌드립니다.’ 그 기도가 딱 떨어지고 나서 불안한 게 싹 가시더라고요.

 

그런데 일은 여기서 터졌어요. 거기에 사실 율리아 씨 비행기 표가 있었거든요. 참 난감하더라고요. 이 비행기 표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주님께서 찾아주심) 그러고는 그 피정이 끝났어요. 그 본당의 신부님이 허리가 무척 아프셔서 미사를 겨우겨우 드리는 상태였는데, 오늘 (율리아님께서) 사랑의 말씀을 전하시듯이 거기서도 전했어요. 그런데 그 신부님이 그 자리에 3시간을 그대로 앉아 계셨고 또 마지막에 1시간을 앉았어요.

 

그 신부님이 뭐라 그러셨는가 하면 “내가 이렇게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많은 신자들 앞에서 이야기하면서 지금까지도 허리 안 아프시고요. 그 자리에서 많은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현재 그 교회가 그게 밀알이 돼서 지금은 얼마나 많이 부흥했고, 동부에서 이름난 교회가 됐습니다.

 

또 워싱턴 본당에서 피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갑자기 오시는 바람에 우리가 공고를 못 했거든요. 그러니 사람들이 ‘아, 누구도 데려오고 싶고, 누구도 데려오고 싶고...’ 그런 사람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중에 어떤 한 사람이 제가 알기로는 5형제 중에 하나의 며느리인데 제일 미움받는 며느리였어요. 그런데 그 며느리가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면서 “아우, 나 우리 시어머니 모시고 왔으면 좋겠는데... 아, 우리 시어머니 모시고 왔으면 좋겠는데...” 그 소리를 하더라고요.

 

그 시어머니가 허리가 굉장히 아프시다는 거를 제가 알긴 알지만 ‘저 사람이 시어머니하고 관계가 참 나쁜데 어떻게 저런 소리를 할까?’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그 며느리가 용기를 내 시어머니한테 전화 걸어서 “어머니, 율리아 씨라는 분이 한국에서 오셨는데...” 그러니까 “율리아 씨가 누구냐?” 그러니까 “나주에 눈물 흘리는 성모님을 모시고 있는 분이 오셨는데 어머니 좀 오시겠어요?” 그랬더니 그 어머님이 오셨어요.

 

그런데 그날 그 자리에서 시어머니가 치유가 돼서 그 후부터는 그 시어머니가 “나는 다른 사람 말 안 들어. 이 며느리 말만 들어!” 그래서 그 가정이 굉장히 화목한 가정이 됐습니다.

 

그리고 1992년도에 율리아 씨하고 이스라엘과 로마도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로마에 가서 교황님을 알현하기로 했는데, 3일 동안 기다려야 되는 위치였었거든요. 그래서 기적의 성당을 가기 원했습니다. 그 기적의 성당은 란치아노 성당입니다. 1300년 전, 그때 본당 신부님이 신심이 그렇게 두텁지 못하신 분이었던 것 같은데, 그 신부님이 그날 미사를 드리면서 ‘에이, 이게 형식이지. 이게 진짜일까?’ 이런 마음을 조금 의아하게 가지셨대요.

 

그런데 그 성체가 피와 살이 됐대요. 우리가 그 성당을 찾아갔습니다. 필리핀에 제리 신부님을 모시고 필리핀 사람 한 40명, 한국 사람이 8명 그렇게 갔습니다. 거기서 미사를 드리고 성체를 모시는 순간 저는 제일 뒤에 앉았고, 율리아 씨는 제일 앞에 앉았는데, 율리아 씨가 흐느끼시면서 입을 벌리시더라고요. 저는 그때 ‘아, 무슨 일이 벌어졌구나!’ 이런 생각이 나서 카메라를 들고 앞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때 파더 제리(제리 신부님)가 성체를 성혈에 담가 주셨거든요. 그 성체를 율리아 씨가 모셨는데, 처음에 이렇게 가장자리만 빨개지더라고요.

 

저는 그걸 보는 순간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묵상을 하려고 했는데, 다시 눈을 떠 보니까 그 피가 더 많아져요. 또 1장 찍었죠. 또 무슨 변화가 있을 것 같아서 잘 보니까 성체가 두꺼워지더라고요. 또 가만히 보니까 그다음에는 가운데가 살색이 돼요. 우리가 영하는 성체는 대게 하얀색이나 약간 밀보리로 하면 브라운이 되지, 살색은 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사진을 계속 찍어서 아는 사람들한테 전부 보냈어요. 그런데 제가 직접 봤고, 직접 찍고, 그리고 나눠주니까 사람들이 그 후부터 미사에 참석할 때마다 그때 그게 생각이 나서 그냥 소홀히 미사를 할 수가 없다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더군요. 2000년 전에만 예수님이 오신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매 미사 때마다 예수님이 함께하신다는 거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어요.

 

그때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 정말로 감사드리고 그 성당에 수사 신부님이 한 분 계셨어요. 그런데 거기에 지도 신부님을 모셔왔습니다. 지도 신부님한테 “보십시오.” 그랬더니 그 지도 신부님이 그걸 보시면서 “내 생전에 이런 성체기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기도하고는 우리가 그 성당에서 떠날 때까지 그 묵상에서 깨어나지 않는 걸 보고 그 성당을 떠났습니다.

 

또 한 가지, 이스라엘에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예수님이 골고타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셨죠. 그런데 골고타 그 길이, 옛날보다 지금은 더 높게 돼 있대요. 그런데 그날도 율리아 씨가 많은 고통이 왔었어요. 걷지를 못하는 고통이기 때문에 율리아 씨 옆에서 떠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십자가의 길 가면서 (3처 되니까) 정말로 거동도 못 하시는 분이 십자가 내가 지게 해달라고 그러셔요. 그래서 율리아 씨가 혼자 그 십자가를 졌는데 그 이스라엘에 있는 십자가는 굉장히 커요. 혼자 질 수가 없고 더군다나 고통이 매우 심하신 분이 지니까 ‘저걸 못 들 텐데...’ 하면서 제가 바로 옆에 있었거든요.

 

그런데 율리아 씨가 땀은 비 오듯 흘리는데 십자가를 혼자 지고 가셔요. 5처, 6처, 땀을 너무 흘리시길래 바로 옆에 필리핀 여자한테 수건 가진 거 있으면 달라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자가 주더군요. 그거를 전해드렸는데, 여기서는 분명히 땀인데 묻어 나오는 것은 빨간 피였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예수님의 가슴(성심)을 찢는 거라고 아까 (율리아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지금 이 순간에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걸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런지 몰라도 6처 베로니카가 손수건을 닦아드릴 때 그 일이 일어난 걸 보고 ‘야, 우리가 그냥 믿음 생활해서는 안 되겠다. 베로니카처럼 행함이 있는 믿음 생활을 해야 되겠다. 교회 다녀서 나는 신자다 하지 말고 행함을 갖는 신자가 되자.’ 그 자리에서 저 혼자 약속했습니다. 이상입니다.


1995년 2월 4일 미국 전 세라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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