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구지부 김미옥 오틸리아입니다. 여름 6, 7, 8월은 저에게 너무너무 고통스러운 달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땀 많이 흘리는 사람 있잖아요. 제가 그 사람 중의 하나인데 성전 복도에 나가면 집에 가고 싶어 했어요. 정말 기회만 되면 집에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너무 스트레스 많이 받고 고통스럽고 그렇게 있었는데 그 고통은 땀 많이 흘린 사람들은 아실 거예요.
그런데 코로나가 3년 지나고 난 뒤에 순례하게 됐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작년 여름이었죠. 내가 성모님 메시지를 그냥 겉으로 읽고 지나갔는데 그날따라 서서 이렇게 또렷이 내가 천천히 읽고 있더라고요. “먹고 마시고 씻어라.” 하시는 그 말씀, 두 번을 제가 이렇게 또박또박 읽고 있더라고요.
그리고는 내가 (기적수 샤워장으로) 걸어 들어가더라고요. 그 글씨를 읽고는 뭔지 모르게 들어가고 싶었죠. 정말 미지근한 물로도 저는 불가능한데 그 물(기적수)이 냉장고 물을 넘어서 김치냉장고에 들어앉아 있던 물이에요. 그 물을요, 제가 너무 덥다 보니까 막 샤워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얼마나 센지요. 피부가 따가워요. 그런데 제 입에서 어떤 말이 나왔나 하면 “성모님, 성모님 고맙습니다. 성모님 감사합니다. 성모님 고맙습니다.” 하고 마냥 나왔어요.
왜 제가 미지근한 물도 못 끼얹는가 하면, 여름에. 감기로 인해서 그 공포증으로 수십 년을 살았어요. 알아보니까 갓난 아기들 면역력 하나 없는 그런 상태였거든요. 제가요. 그러니까 여름에 더우면 자연 바람, 그 시원한 바람만 불어도 저는 감기로 병원에 가서 살다시피 했어요. 그런데 저 은총물을 제가 마시는 것도 힘들지만은 샤워한다는 게 불가능하고, 공포고, 무서움이었죠. 기적수라는 거는 믿었지만 나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들어가서 그 물을 막 마시고 먹었는데, 나왔잖아요? 아우~ 순례할 맛이 나요. 막 내가 휘파람을 불었어요. 내가 전에는 막 집에 가고 싶었고 달아나고 싶었고 ‘어떻게 하면 집에 갈 수 있을까?’ 틈만 나면 “나는 갈 거다. 갈 거다.” 이렇게 여름을 보냈는데 내가 막 자랑을 했어요. “나 살 것 같다. 살 것 같다.” 하고 또 들어갔지요. 6월인가 두 번 들어갔죠.
그 안에서 나 혼자서 막 그냥 황홀해서 성모님을 그렇게 부르면서 감사, 감사 그렇게 감사를 드렸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감기 한번 한 적 없어요. 작년 여름 6, 7, 8월에 그렇게 샤워했어요.
저는 누가 뭐 이렇게 주면 거절하기가 미안했었어요. 저는 집을 떠나면은, 또 누가 집에서 손님이 오거나 이러면 예민한 걸 초과해서 왜 물만 마셔도 가스 차는 거 있잖아요. 그러니까 여기서 순례하기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가스 찬다고 하는 거 이해하실 분은 하실 거예요. 앉아 있기가 괴로워요. 뭐 먹는 것도 무섭고.
그런데 기적수 샤워하고, 막 마시고 성모님한테 막 그냥 감사드리며 성모님 애정을 표현한 거였어요. 그런데 그때였나 봐요. 컵라면 얼마나 커요. 그렇죠? 그거 조금 얻어먹을 때도 사실 공포였거든요. 아주 예민한 대장 증후군이었어요. 아주 과민한 거는 진짜 괴로워요. 앉아 있기도 괴롭고, 드러눕지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그것도 제 십자가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죠.
그런데 이 증세가 있잖아요. 제 장이 새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어요. 그 심한 증세가 없어졌어요. 제가 처음에는 의심했죠. 수십 년 앓았던 건데 의심을 한다는 게 이상하죠. 수십 년 앓았던 건데 그 증세가 어떤가 하면 화장실을 못 가고, 가스 차고, 잠도 못 자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컵라면을 조금 누구한테서 나눠 먹었는지 뭘 먹었는지 모르겠는데 앉아서 기도를 하는데 나도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이 증세가 하나도 없지?’ 너무너무 편한 거예요.
그런데 여기 외국 순례자 400명 오셨던 그때인가 봐요. 컵라면 큰 거를 다 먹고 국물까지 다 마셨어요. 기적수 먹어도 앉아 있는 게 괴로웠는데 그 국물 큰 거 다 마시고 여기 앉아서요. 너무너무 행복하게 기도했어요. 정말로 행복했어요.
제 장을 예수님이 다시 새롭게, 완벽하게 만들어 놓으신 것 같았어요.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두 번째는 먹어봤잖아요. 그다음 달도 제가 혼자 한 통 또 다 먹었어요. 이런 사람은 그 라면 국물이 독이에요, 독. 죽어요. 그거 마시면. 그런데 그거를 다. 맛있으니까, 먹고 싶었으니까, 배고프니까 다 먹고. 그래서 오늘 감사드리러 나왔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 스카풀라”라는 게 있잖아요. 그걸 제가 두 달 전엔가 장만했어요. 율리아 어머니가 이렇게 뽀뽀하고 아침에 눈 뜨면 뽀뽀하고, 기도하고 기도 다 하면 또 뽀뽀하라 하셨더라고요. 그 기도를 제가 아침에 눈 뜨면 했어요.
율리아 어머니 십자가 고통(오상 고통 상본) 있죠. 그거를 제 머리에 이렇게 대고 머리 맑게 해달라고. 그리고 가슴에 대면서 나쁜 거 다 없애달라 하고. 제 허리 있잖아요. 앉아 있지를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묵주기도 5단도 앉아서 못 해요.
허리 대면서 어떻게 기도했나 하면 주님 영광 드러내 달라고만 기도했어요. 그런데 그 기도를 매일 했잖아요. 그런데 제가 집에서 묵주기도 앉아서 5분도 못 해 쓰러져요. 허리가 아픈 사람은 아실 거예요. 그런데 제가요. 세상에 지금까지 15단 거뜬하게 앉아서 해요. 15단을.
제가 여기 처음에 제일 짜증 나고 힘든 게 미사 때였어요. 일어나지를 못해서. 이 다리도 혈액순환 안 되지, 허리도 안 좋지 미사 때 너무너무 짜증이 나더라고 미사를 좋아하는 난데, 일어나고 앉기가 너무너무 짜증 나고 뒤에 눈이 달려서 뒷사람들한테 부끄러울 정도로 70도 안 됐는데. 그런데요, 제가 어떻게 일어나는가 하면요. 웃으면서 일어나게 됐어요.
허리, 다리에 별 무리 없이 웃으면서 일어나고 웃으면서 앉는 사람이 됐어요. 그리고 우리 율리아 어머니께 항상 감사드리고 저는 잘 몰랐어요. 대신 고통받는다는 분이라는 거 몰랐는데 이제 알았어요. 항상 미안하고 고맙고 그리고 사랑합니다. 고백하고 싶어요. 예수님, 성모님께 감사드리고 주님 성모님도 사랑합니다.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저는 대구지부 김미옥 오틸리아입니다. 여름 6, 7, 8월은 저에게 너무너무 고통스러운 달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땀 많이 흘리는 사람 있잖아요. 제가 그 사람 중의 하나인데 성전 복도에 나가면 집에 가고 싶어 했어요. 정말 기회만 되면 집에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너무 스트레스 많이 받고 고통스럽고 그렇게 있었는데 그 고통은 땀 많이 흘린 사람들은 아실 거예요.
그런데 코로나가 3년 지나고 난 뒤에 순례하게 됐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작년 여름이었죠. 내가 성모님 메시지를 그냥 겉으로 읽고 지나갔는데 그날따라 서서 이렇게 또렷이 내가 천천히 읽고 있더라고요. “먹고 마시고 씻어라.” 하시는 그 말씀, 두 번을 제가 이렇게 또박또박 읽고 있더라고요.
그리고는 내가 (기적수 샤워장으로) 걸어 들어가더라고요. 그 글씨를 읽고는 뭔지 모르게 들어가고 싶었죠. 정말 미지근한 물로도 저는 불가능한데 그 물(기적수)이 냉장고 물을 넘어서 김치냉장고에 들어앉아 있던 물이에요. 그 물을요, 제가 너무 덥다 보니까 막 샤워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얼마나 센지요. 피부가 따가워요. 그런데 제 입에서 어떤 말이 나왔나 하면 “성모님, 성모님 고맙습니다. 성모님 감사합니다. 성모님 고맙습니다.” 하고 마냥 나왔어요.
왜 제가 미지근한 물도 못 끼얹는가 하면, 여름에. 감기로 인해서 그 공포증으로 수십 년을 살았어요. 알아보니까 갓난 아기들 면역력 하나 없는 그런 상태였거든요. 제가요. 그러니까 여름에 더우면 자연 바람, 그 시원한 바람만 불어도 저는 감기로 병원에 가서 살다시피 했어요. 그런데 저 은총물을 제가 마시는 것도 힘들지만은 샤워한다는 게 불가능하고, 공포고, 무서움이었죠. 기적수라는 거는 믿었지만 나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들어가서 그 물을 막 마시고 먹었는데, 나왔잖아요? 아우~ 순례할 맛이 나요. 막 내가 휘파람을 불었어요. 내가 전에는 막 집에 가고 싶었고 달아나고 싶었고 ‘어떻게 하면 집에 갈 수 있을까?’ 틈만 나면 “나는 갈 거다. 갈 거다.” 이렇게 여름을 보냈는데 내가 막 자랑을 했어요. “나 살 것 같다. 살 것 같다.” 하고 또 들어갔지요. 6월인가 두 번 들어갔죠.
그 안에서 나 혼자서 막 그냥 황홀해서 성모님을 그렇게 부르면서 감사, 감사 그렇게 감사를 드렸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감기 한번 한 적 없어요. 작년 여름 6, 7, 8월에 그렇게 샤워했어요.
저는 누가 뭐 이렇게 주면 거절하기가 미안했었어요. 저는 집을 떠나면은, 또 누가 집에서 손님이 오거나 이러면 예민한 걸 초과해서 왜 물만 마셔도 가스 차는 거 있잖아요. 그러니까 여기서 순례하기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가스 찬다고 하는 거 이해하실 분은 하실 거예요. 앉아 있기가 괴로워요. 뭐 먹는 것도 무섭고.
그런데 기적수 샤워하고, 막 마시고 성모님한테 막 그냥 감사드리며 성모님 애정을 표현한 거였어요. 그런데 그때였나 봐요. 컵라면 얼마나 커요. 그렇죠? 그거 조금 얻어먹을 때도 사실 공포였거든요. 아주 예민한 대장 증후군이었어요. 아주 과민한 거는 진짜 괴로워요. 앉아 있기도 괴롭고, 드러눕지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그것도 제 십자가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죠.
그런데 이 증세가 있잖아요. 제 장이 새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어요. 그 심한 증세가 없어졌어요. 제가 처음에는 의심했죠. 수십 년 앓았던 건데 의심을 한다는 게 이상하죠. 수십 년 앓았던 건데 그 증세가 어떤가 하면 화장실을 못 가고, 가스 차고, 잠도 못 자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컵라면을 조금 누구한테서 나눠 먹었는지 뭘 먹었는지 모르겠는데 앉아서 기도를 하는데 나도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이 증세가 하나도 없지?’ 너무너무 편한 거예요.
그런데 여기 외국 순례자 400명 오셨던 그때인가 봐요. 컵라면 큰 거를 다 먹고 국물까지 다 마셨어요. 기적수 먹어도 앉아 있는 게 괴로웠는데 그 국물 큰 거 다 마시고 여기 앉아서요. 너무너무 행복하게 기도했어요. 정말로 행복했어요.
제 장을 예수님이 다시 새롭게, 완벽하게 만들어 놓으신 것 같았어요.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두 번째는 먹어봤잖아요. 그다음 달도 제가 혼자 한 통 또 다 먹었어요. 이런 사람은 그 라면 국물이 독이에요, 독. 죽어요. 그거 마시면. 그런데 그거를 다. 맛있으니까, 먹고 싶었으니까, 배고프니까 다 먹고. 그래서 오늘 감사드리러 나왔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 스카풀라”라는 게 있잖아요. 그걸 제가 두 달 전엔가 장만했어요. 율리아 어머니가 이렇게 뽀뽀하고 아침에 눈 뜨면 뽀뽀하고, 기도하고 기도 다 하면 또 뽀뽀하라 하셨더라고요. 그 기도를 제가 아침에 눈 뜨면 했어요.
율리아 어머니 십자가 고통(오상 고통 상본) 있죠. 그거를 제 머리에 이렇게 대고 머리 맑게 해달라고. 그리고 가슴에 대면서 나쁜 거 다 없애달라 하고. 제 허리 있잖아요. 앉아 있지를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묵주기도 5단도 앉아서 못 해요.
허리 대면서 어떻게 기도했나 하면 주님 영광 드러내 달라고만 기도했어요. 그런데 그 기도를 매일 했잖아요. 그런데 제가 집에서 묵주기도 앉아서 5분도 못 해 쓰러져요. 허리가 아픈 사람은 아실 거예요. 그런데 제가요. 세상에 지금까지 15단 거뜬하게 앉아서 해요. 15단을.
제가 여기 처음에 제일 짜증 나고 힘든 게 미사 때였어요. 일어나지를 못해서. 이 다리도 혈액순환 안 되지, 허리도 안 좋지 미사 때 너무너무 짜증이 나더라고 미사를 좋아하는 난데, 일어나고 앉기가 너무너무 짜증 나고 뒤에 눈이 달려서 뒷사람들한테 부끄러울 정도로 70도 안 됐는데. 그런데요, 제가 어떻게 일어나는가 하면요. 웃으면서 일어나게 됐어요.
허리, 다리에 별 무리 없이 웃으면서 일어나고 웃으면서 앉는 사람이 됐어요. 그리고 우리 율리아 어머니께 항상 감사드리고 저는 잘 몰랐어요. 대신 고통받는다는 분이라는 거 몰랐는데 이제 알았어요. 항상 미안하고 고맙고 그리고 사랑합니다. 고백하고 싶어요. 예수님, 성모님께 감사드리고 주님 성모님도 사랑합니다.
2023년 10월 7일 김미옥 오틸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