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영상내 삶을 바꿔놓은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프로젝트!

운영진
2023-11-29
조회수 1050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미국에서 온 신 모니카입니다. 저는 모태에서부터 집안이 열심한 개신교였어요. 그런데 가톨릭으로 시집을 왔으나 배울 게 전혀 없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우리 시집은 열심히 하지 않았고요. 또 남편은 냉담 중이었기 때문에 저는 7년 동안을 주일이면은 고통의 주일을 보내곤 했어요.

 

천주교는 전혀 낯선 곳이고 관면혼배만 했기 때문에 개신교에 나가기도 했었죠. 그런데 남편이 냉담을 풀고 성당에 가니까 제가 따라갔죠. 그랬는데 성인 성녀 책을 빌려주시는 곳이 있더라고요. 그때 성인 성녀 책을 읽고 결심을 하죠.

 

‘개신교하고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구나!’ 그러면서 천주교로 왔는데 그때 신부님께서 저보고 유아 세례증만 가져오래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냥 입교식을 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교리가 없이 천주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깐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라고는 배우질 못했어요. 성당에 가면 성모상이 있잖아요. 거기 앞에 가서 속으로 “성모님, 성모님이 이 자리에 안 계시면 개신교도들이 참 많이 올 텐데요.” 항상 그랬어요.

 

지금 그게 얼마나 얼마나 큰 죄인지 지붕 위에서 “저는 모든 천주교인들에게, 성모님의 자녀들에게 저는 이런 큰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고백성사도 보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성모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요.

 

이렇게 함부로 생각했고 말했던 저를 바라보시면서 성모님은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셨겠습니까? 피눈물 흘리셨다는 증거가 저를 나주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2004년도에) 첫 나주 순례를 오는데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가는데요. 진짜 진한 향기, 전혀 흩어지지 않은 향기. 천사가 뿌리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때 그게 성모님께서 “얘야, 내가 너를 사랑해.”라는 거라고 전혀 생각 못 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2007년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건너가서 제 삶을 바꿔놓은 결정적인 계기는 작년 사순절부터 시작한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프로젝트입니다. 사순시기부터 아주 열심히 했습니다. 그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매일매일 감동이었고 보내오면 즉시 정말 열심히 하면서 제가 가진 감정, 용서 못 함, 또 서러움, 부당함, 내가 옳았다는 거, 다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진행 중이고요.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은 저를 바꾸기 시작합니다. 율리아 엄마를 통한 참 놀라운 이야기! 터무니없이 돈을 요구하는 시어머니에게 ‘왜 저러지?’ 한번 안 하시고 그냥 순응하시는, 정말 하느님 뜻에 순응하시는 그 모습은 너무 감동이다 못해 “이거는 사람이 아니야, 하느님께서 천사를 점지하셔서 우리한테 보내주신 분이야.” 나보다 두 살 위세요.

 

‘동시대의 사람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매일 예비하신 삶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죄인으로 내려가고 내려가고 엄마 어렸을 때 또 감동적인 거는 6살 때 외숙이 생니를 뽑는데 불평 하나 안 하고 ‘어떻게 그러셨을까?’ 그리고 그 외숙을 대세로 용서하시는 그 모습,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결론은 ‘하느님이 천사를 보내셨구나’ 그런 생각까지도 했어요.

 

또한 남편을 용서하시는 그 순간, 그 모든 것을 품고 “수고하셨어요.” 그 모습은 정말 너무나도 감동적이었는데, 남편을 용서하는 그 모습을 보고 저는 어마어마하게 긴 세월을 남편을 용서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그 모습에서 제 마음도 녹아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남편을 용서하게 되고요.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님 향한 사랑의 길』을 읽었을 때 율리아 엄마를 성인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은 매일매일 프로젝트고 자세하게 나오기 때문에 제가 따라가면서, 배우면서, 녹게 되더라고요. 속으로 ‘아우~ 이게 진작 나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다가 ‘아니야’ 남편분과 시어머니에 대해 숨기고 싶은 율리아 엄마의 그 고운 마음씨, 착한 마음씨가 우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이렇게 오픈하시는 거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를 드린지 몰라요.

 

그리고 정말 남편이 용서 안 돼서 몸부림치던 제가 남편을 용서하게 됐어요. ‘나는 사랑으로 십자가를 진 게 아니라 의무로 지었구나.’ 그래서 저를 구레네 시몬이라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것마저도 버리게 됐어요. 그리고 모든 시누이, 언니, 오빠, 시동생, 모두에게 미안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사랑으로 하지 않았으니까요. 하느님 앞에 설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미국에서 와 경기도 쪽에 머무르면서 시누이하고 만났어요. 그 시누이는 90년도 초반에 우리 남편이 마이너스 통장으로 천만 원을 해 줬어요. 그런데 그 시누이가 좀 잘 살게 됐는데도 전혀 돈을 안 갚아요. 그런데 이번에 용서가 되니까 시누이한테 “고모, 미안해요. 고모한테 제가 잘못한 거, 고모가 느낀 불편함, 속상했던 것 용서해 줘요.” 그랬더니 이 시누이가 너무 놀라는 거예요. “언니, 그럼 나는 어떡하라고요?” 처음으로 그런 반응이 나온 거죠.

 

또 시누이한테, 언니들한테 저는 부끄럽기만 한 삶이 되었어요. 죄인으로 내려가게 되고요. 또 엄마는 한없이 옳으신 분인데 그 옮음이 악에 의해서 짓밟히잖아요.

 

엄마의 삶을 보면서 제가 주장할 게 하나도 없고, 로렌죠 회장님하고 그 관계. 엄마가 옳게 하셨는데 로렌죠 회장님이 화내셨을 때 엄마의 노력, 요 며칠간의 프로젝트도 너무 감동적인 거예요. “그래, 내가 옳았을 때 얼마나 나는 ‘내가 옳은데!’ 하고 그를 놓아주지 않았던가? 얼마나 나를 버텼던가?”

 

그런데 율리아 엄마께서는 로렌죠 회장님께 온갖 노력을 다 하셨죠. 그리고 그 노력이 어디까지 차니까 예수님께서 개입을 하시죠. 그 회장님의 그 올바르지 않은 것에 맞추시느라고 그 노력하는 걸 보면서 ‘야, 앞으로 내가 이렇게 살아가야 되는구나! 내 일생을 이렇게 살아가야 되는구나!’라는 큰 교훈을 또 받고 내일 프로젝트에 또 가는 거죠.

 

제가 미국을 나올 계획이 전혀 없었습니다. 제 사전에는 없어서 이 모자를 2주일 전에 주문해서 이제 쓰고 있었어요. 이 모자를 쓰면서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주시라고 했고, 또 이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이 모자의 은총인지 갑자기 ‘한국에 나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참 소심하고 용감하지 못해요. 그런데 이번만큼은 이 영감을 실천하고 싶어서 그날 비행기표를 사고, 표를 기다리는 사이에 깜짝 놀랐어요. ‘나주의 부르심이네.’ 표를 살 때는 나주의 부르심, 성모님의 부르심인지 몰랐어요. 왜냐하면 한국 나온다는 계획은 아예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에 나주 소식을 보면 은총이 너무 쏟아져요. 참젖이 쏟아지고 또 10월 말에 메시지 주시고 막 은총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래서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그렇게 제가 오게 되었습니다. 이게 은총입니다. 그리고 경당에서 영가를 부르면서 울음이 막 나왔어요. 제가 눈물을 흘림으로써 성모님이 “너 왔니?” 하고 저를 받아주시는 참 어머니로 만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생을 찾아 헤맨 개신교였는데 일생을 찾아 헤맨 바로 그것은 성모님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성모님이 너무 어마어마함을 알고, 성모님 빽이 너무너무 기가 막힌 걸 알기 때문에 ‘성모님만 안 계셨으면...’ 하던 그게 바뀌어서 이제 저는 “성모님” 하면은 예수님은 따라오는, 그렇게 바뀐 겁니다.

 

이제 저는 시댁이 어떤 고통을 줘도 남편과 시댁은 성모님을 알게 해 준 정말 고마운 은인이 되었습니다. 남편도요. 개신교에서는 성모님이 안 계시니까 참 겸손을 모르잖아요. 또 5대 영성이 없기 때문에요.

 

율리아 엄마는 이 시대에 하느님께서 성경의 그 어려운 사랑을 5대 영성의 삶으로 풀어내려고 하늘에서 점지해서 딱 보낸 천사시라고, 또 별이시라고. 그래서 저는 감히 그 샛별 같은 율리아 엄마의 삶을 이렇게 말해요. ‘지구상의 어떤 사람도 율리아 엄마의 그 많은 억울함에 해당 안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라는 생각을 해요. ‘누구든지 이 예비하신 삶을 보면 그 마음은 녹아날 수밖에 없고, 그 마음은 변할 수밖에 없고 참 하느님 사랑이 무엇인지,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율리아 엄마는 이 시대에 성모님의 삶을 살아내기 때문에 이렇게 정말 많은 고통을 순간 봉헌하시고 참 놀랍죠. 한 번의 미움도 없이 어떻게 순간 봉헌을 하는지 저하고는 너무 차이가 나요. 완전히 천사를 이 시대에 보내신 하느님의 뜻에 감사드립니다. 또 엄마의 삶에서 감동이었던 것이 외국에 가셔서 발을 밟히셨는데 “죄송합니다.” 먼저 하는 거예요. 그게 저에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여기 와서도 잠깐 어디 식당에 가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삶의 모범이신 우리 율리아 엄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고요.

끝도 없는 배신을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엄마, 저도 이제 봉헌할 수 있게 되고, 견딜 수 있게 되고 매일매일 예비하신 삶을,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회개하는 겁니다.

 

그리고 전통 성당은 입으로 영성체를 합니다. 그런데 11월 18일, 2년 전에 제가 다니던 라틴 성당에 몬시뇰하고 신부하고 두 분이 계셨습니다. 라틴 전통 미사였는데 몬시뇰께서 코비드로 돌아가셨습니다. 60대 초반에. 그러고 나니까 매일 미사가 없어졌어요. 고백성사를 굉장히 오래 주시고, 매일 주시고 그러던 몬시뇰이셨는데 돌아가시니까 이 성당이 매일 미사를 닫게 됩니다. 이 성당에서는 신부님이 안 계시니까 수도원에서 초빙을 주일만 해요.

 

율리아 엄마가 말씀하시는 건 사랑인데 균이 옮아서 이렇게 그럴 수 있어서 이렇게 했다라고 그 말을 들으니까 ‘그래, 맞아, 얼마나 우리가 지켜내야 할 사제분이신가, 내가 나의 옳음, 나의 것만 고집해서 내가 혀로 성체를 영한다면 그 균이 갈 수 있지 않는가.’ 이래서 저는 이제 ‘이것이 사랑이구나! 그리고 사제에 대한 사랑이구나!’ 그래서 율리아 엄마 말씀에 따랐습니다. 사제들을 우리가 보호해야 되겠다는 그런 경험을 먼저 체험하고 와서 이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나주 성모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 때문에 흘리신 피, 앞으로 닦아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율리아 엄마, 너무 감사합니다. 숨기고 싶은 것까지도 다 오픈하셔서 저에게 이렇게 회개의 길을 마련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2023년 11월 25일 미국 신효심 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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