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95년, 이곳(나주)에 왔었습니다. 그전에 오클랜드에서 성체 대회에 참석했었습니다. 그곳에는 호놀룰루에서 온 연사가 있었는데, 나주 성모님상을 모시고 왔었고, 그로 인해 우리가 있던 강당 전체가 아름다운 장미향기로 가득 찼습니다. 저는 이에 매우 놀라 ‘나주에 가야겠다.’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을 방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나주에 도착해 예전 경당에 갔었고, 나이 든 한국인 부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영어를 아주 조금 할 줄 알았는데, 저를 경당 안으로 초대했습니다.
경당 바닥에 앉아 성모님상을 멀리서 올려다 보았는데, 그 부부는 저에게 어떤 향기가 나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장미향기가 난다고 했습니다. 형제님은 좋다며 그 향기는 성모님의 현존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회의적이었는데 그 향기가 성모님상을 둘러싸고 있던 꽃에서 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노부부가 떠난 후 제대에 올라가 꽃향기를 맡아보았지만 향기는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경당 바닥에 앉아 기도했는데 강렬한 장미향기를 맡고 ‘이곳에 무언가 있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철야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기억으로 새벽 2시가 되자 그 전날 밤, 오클랜드에서 날아왔기에 저는 매우 피곤했었고, 잠자리에 들고 싶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경당으로 내려갔는데 율리아님은 여전히 기도 중이셨습니다. 밤새 철야 기도하고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셨습니다. 다음 날 우리는 성모님동산에 갔는데 그 당시엔 지금 같지 않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기적수 샘터까지 올라갔는데 모두가 기적수 한 컵씩 마시길 원해 물을 받았습니다.
장 신부님께서 삼위일체를 묵상하며 기적수에 3번 강복을 하셨고 율리아님은 기적수를 들고 영가-“예수님의 성혈로~”-를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즉시 기적수에서 아름다운 장미향기가 났습니다.
율리아님은 그 기적수로 머리를 감겨주셨는데 마치 세례 같았습니다. 저는 의심하는 토마스 사도가 되어 기적수를 또 한 컵 청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기적수에서 장미향기가 났습니다. 다음날 저는 본당에서 미사를 드렸고 율리아님도 그곳에 계셨습니다.
미사가 끝난 후 신발을 신는 중에 한국 형제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율리아님께 성모님께서 발현하셨는데 성모님께서 저와 어떤 한국인이 사제가 되기를 바라신다는 메시지를 전해왔습니다.
저는 매우 회의적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기도를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46개의 체인점을 운영하는 사업가이자 양로원과 재산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그 당시 꽤 잘 나가는 백만장자였는데 율리아 자매님께서 제게 하신 말씀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성공”의 정의에 대해 질문받은 한 형제님과의 인터뷰를 기억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임종의 순간에 자신 있게 자신의 미래를 마주할 수 있는 것”이라고요.
그래서 그것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내 삶의 마지막에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을 때 숨을 거두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자신이 있을까? 아니면 불안해 하고 있을까?’ 그리고 결정했습니다. 사제가 되기로, 그 길을 선택하겠다고요. 그리고 저는 -사제가 되기 위한- 학업을 위해 로마로 갔습니다.
안젤리쿰 대학교에 간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철학 고급반 수업에 등록했는데 ‘이곳에서 대체 뭐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성모님께서 정말 저를 부르셨다면 모든 것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두 학기 모두 최우수 성적을 받았고 이것은 저에게 계속해서 이어나갈 동기가 되었습니다. 사제가 되기 위한 그 길에는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로마에는 여러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고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모님께서 저를 나주로 부르셨다면 제가 그 모든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돌봐주실 것이라 항상 믿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옳았습니다. 저는 사제 서품을 받았고, 아일랜드에서 현재까지 22년간 사제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결정에 대해 후회하지 않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사실 그 당시 꽤 잘 나가는 백만장자였는데
율리아 자매님께서 제게 하신 말씀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성모님께서 정말 저를 부르셨다면 모든 것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두 학기 모두 최우수 성적을 받았고 이것은 저에게 계속해서 이어나갈 동기가 되었습니다.
사제가 되기 위한 그 길에는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성모님께서 저를 나주로 부르셨다면 제가 그 모든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돌봐주실 것이라 항상 믿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옳았습니다. 저는 사제 서품을 받았고,
아일랜드에서 현재까지 22년간 사제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결정에 대해
후회하지 않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성모님께서 저를 나주로 부르셨다면 제가 그 모든
어려움들을극복할 수 있도록 돌봐주실 것이라 항상
믿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옳았습니다. 저는 사제
서품을 받았고, 아일랜드에서 현재까지 22년간 사제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결정에 대해 후회하지
않습니다 아멘!!!아멘!!!아멘!!!신부님의 소중한 은총증언
감사합니다!!!결정했습니다. 사제가 되기로아~~~멘!!!
저는 사실 그 당시 꽤 잘 나가는 백만장자였는데 율리아 자매님께서 제게 하신 말씀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성공”의 정의에 대해 질문받은 한 형제님과의 인터뷰를 기억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임종의 순간에 자신 있게 자신의 미래를 마주할 수 있는 것”이라고요.
+ + + + + + +
‘내 삶의 마지막에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을 때 숨을 거두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자신이 있을까? 아니면 불안해 하고 있을까?’ 그리고 결정했습니다. 사제가 되기로,
그 길을 선택하겠다고요. 그리고 저는 -사제가 되기 위한- 학업을 위해 로마로 갔습니다.
+ + + + + + +
아멘~! 아멘~!! 아멘~!!!
옳은 길을 선택하시고 걸어가고 계시는 신부님의 삶이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나주 성모님의 부르심에 아멘으로 응답하는 사제님들이 많아지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글과 댓글의 글자 수만큼 죄인들이 회개하고, 나/주/인/준/성/모/성/심/승/리/하/소/서. 아멘~!!!
저는 1995년, 이곳(나주)에 왔었습니다. 그전에 오클랜드에서 성체 대회에 참석했었습니다. 그곳에는 호놀룰루에서 온 연사가 있었는데, 나주 성모님상을 모시고 왔었고, 그로 인해 우리가 있던 강당 전체가 아름다운 장미향기로 가득 찼습니다. 저는 이에 매우 놀라 ‘나주에 가야겠다.’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을 방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나주에 도착해 예전 경당에 갔었고, 나이 든 한국인 부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영어를 아주 조금 할 줄 알았는데, 저를 경당 안으로 초대했습니다.
경당 바닥에 앉아 성모님상을 멀리서 올려다 보았는데, 그 부부는 저에게 어떤 향기가 나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장미향기가 난다고 했습니다. 형제님은 좋다며 그 향기는 성모님의 현존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회의적이었는데 그 향기가 성모님상을 둘러싸고 있던 꽃에서 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노부부가 떠난 후 제대에 올라가 꽃향기를 맡아보았지만 향기는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경당 바닥에 앉아 기도했는데 강렬한 장미향기를 맡고 ‘이곳에 무언가 있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철야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기억으로 새벽 2시가 되자 그 전날 밤, 오클랜드에서 날아왔기에 저는 매우 피곤했었고, 잠자리에 들고 싶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경당으로 내려갔는데 율리아님은 여전히 기도 중이셨습니다. 밤새 철야 기도하고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셨습니다. 다음 날 우리는 성모님동산에 갔는데 그 당시엔 지금 같지 않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기적수 샘터까지 올라갔는데 모두가 기적수 한 컵씩 마시길 원해 물을 받았습니다.
장 신부님께서 삼위일체를 묵상하며 기적수에 3번 강복을 하셨고 율리아님은 기적수를 들고 영가-“예수님의 성혈로~”-를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즉시 기적수에서 아름다운 장미향기가 났습니다.
율리아님은 그 기적수로 머리를 감겨주셨는데 마치 세례 같았습니다. 저는 의심하는 토마스 사도가 되어 기적수를 또 한 컵 청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기적수에서 장미향기가 났습니다. 다음날 저는 본당에서 미사를 드렸고 율리아님도 그곳에 계셨습니다.
미사가 끝난 후 신발을 신는 중에 한국 형제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율리아님께 성모님께서 발현하셨는데 성모님께서 저와 어떤 한국인이 사제가 되기를 바라신다는 메시지를 전해왔습니다.
저는 매우 회의적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기도를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46개의 체인점을 운영하는 사업가이자 양로원과 재산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그 당시 꽤 잘 나가는 백만장자였는데 율리아 자매님께서 제게 하신 말씀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성공”의 정의에 대해 질문받은 한 형제님과의 인터뷰를 기억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임종의 순간에 자신 있게 자신의 미래를 마주할 수 있는 것”이라고요.
그래서 그것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내 삶의 마지막에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을 때 숨을 거두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자신이 있을까? 아니면 불안해 하고 있을까?’ 그리고 결정했습니다. 사제가 되기로, 그 길을 선택하겠다고요. 그리고 저는 -사제가 되기 위한- 학업을 위해 로마로 갔습니다.
안젤리쿰 대학교에 간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철학 고급반 수업에 등록했는데 ‘이곳에서 대체 뭐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성모님께서 정말 저를 부르셨다면 모든 것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두 학기 모두 최우수 성적을 받았고 이것은 저에게 계속해서 이어나갈 동기가 되었습니다. 사제가 되기 위한 그 길에는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로마에는 여러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고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모님께서 저를 나주로 부르셨다면 제가 그 모든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돌봐주실 것이라 항상 믿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옳았습니다. 저는 사제 서품을 받았고, 아일랜드에서 현재까지 22년간 사제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결정에 대해 후회하지 않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2023년 10월 21일 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