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8.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사랑
부산으로 수술하러 가기로 결정된 당시는 1989년도 사순 시기였다. 재의 수요일부터 더욱 극심해진 고통에 나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 나왔다. 나의 상태는 너무나 심각하여 종부성사를 받고도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그 고통들을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셈치고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해 기쁘게 봉헌하고 있었다.
부산으로 출발하기 하루 전날, 서울에 사는 자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율리아 씨, 요즘 건강 좀 어떠세요?” 나는 너무나 극심한 고통 중에 기진맥진했지만, 예수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요즘 사순절이어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했다. 고통이 극심하면 극심할수록 예수님의 큰 사랑을 받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녀는 “어머, 율리아 씨는 참 좋으시겠어요! 율리아 씨가 받는 사랑 저도 좀 받게 해 주세요. 율리아 씨가 받는 사랑 좀 받아봤으면 원이 없겠어요.” 했다. “제가 어떤 사랑을 얼마만큼 받는 줄 아세요?” “그거야 당연히 예수님과 성모님의 특별한 사랑이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아주 특별한 사랑이지요.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움직이기도 힘이 들고 눈을 뜰 수도 없는 그런 고통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랑을 죄인들의 회개와 성직자들의 영적 성화와 병든 모든 가정의 치유를 위한 희생과 보속으로 받으며 하루하루를 봉헌하고 있답니다.” 했다.
그러자 그 자매님은 즉시 “아이고! 싫어요, 싫어요! 나는 그런 사랑 받지 않을래요. 지금 제가 받고 있는 고통만으로도 너무 무거워 죽지 못해 살고 있다고요.” 하면서 내 대답을 더 듣지도 않고,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 그렇다. 누가 그런 사랑을 받기를 원할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희망 있는 고통인 것을! 예수님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동참하여 많은 영혼들이 회개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고통인가? 그 당시 나는 식사도 전혀 하지 못하고 너무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내 안에 주님이 계시기에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운 기쁨으로 가득 차 배고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힘이 없어도 성모님 집에 와 간절히 나를 찾는 이들을 맞아 주며 친절하고 인자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기도해 주었다. 그럴 때마다 주님, 성모님께서 함께 해주시어 평화를 얻어 기쁘게 돌아가는 그들을 볼 때,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고통 중에도 참 기쁨이 나를 감싸지 않았던가! ‘오 주 내 천주여!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세세에 영원히 받으소서!’
불현듯 고통을 처음 봉헌할 때가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나는 주님께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서 받으시는 내적인 고통을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가시관 쓰시고, 못 박히시고, 창에 늑방이 뚫리시는 그런 고통만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주님께서 겪으신 내적인 고통까지 이 죄녀가 겪도록 허락해주셨다.
수 많은 배반, 모함, 판단 등을 당하며 속으로 남모르게 흘려야만 했던 피눈물은 외적인 고통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했다. 시기 질투로 인해 나의 사랑을 독차지하려 하고, 내 사랑이 자신의 성에 차지 않으면 그때부터 나를 모함하던 그들! 결국 나주성모님을 배반하고 떠나 가예언까지 하는 등….
그들이 엄청난 죄를 짓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피눈물로 봉헌하면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나의 가슴은 얼마나 찢어지는 아픔이었던가?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겪으셨을 극심한 성심의 고통이 아니던가! 주님, 성모님의 내적 고통에 동참하게 해주심에 무한히 감사드리며, 죽음을 통해서만이 부활의 영광에 다다를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금 내 마음속에 아로새겼다.
그래서 나는 주님께 부르짖었다. “주님, 나의 님이시여! 세상 모든 이들이 쓴 것을 마다하고 달콤한 것만을 추구하기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까지 피 흘려 구원해 주신 주님의 사랑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십니까? 적어도 사순절만이라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주님의 고통을 묵상하면서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 고통을 통해서만이 영광에 다다를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바라나이다.”
“오 귀여운 내 딸, 내 작은영혼아! 극심한 고통들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며 매일 매 순간 전심전력을 다하여 성심껏 바치는 생활의 기도는 바로 모든 것을 초월하는 능력의 기도가 된단다.”
“오 나의 사랑, 나의 구원자시여! 부족하기만 한 이 죄녀! 당신의 포근한 사랑의 품에 안겨 아브라함의 믿음과 다윗의 용기를 본받아 솔로몬의 슬기로 더욱 순박하게 당신께 다가가 영원한 내 사랑이신 당신과 함께 영원무궁토록 살으오리이다.”
“그래그래, 사랑하는 내 귀여운 작은 아기야! 단순하고 순수한 사랑과 희생으로 불타올라 모든 것을 온전히 봉헌하는 너를 볼 때면 나는 잠시라도 고통을 잊고 기쁨에 차오른단다.”
“오 내 주님, 나의 전부이시여! 당신께 드릴 것이라고는 부끄러움밖에 없나이다. 그러나 부족한 이 죄녀를 통해서 계속 위로받으시고 기쁨이 되길 바라오니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고 성모님 찬미와 위로를 받으소서. 아멘.”
688.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사랑
부산으로 수술하러 가기로 결정된 당시는 1989년도 사순 시기였다. 재의 수요일부터 더욱 극심해진 고통에 나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 나왔다. 나의 상태는 너무나 심각하여 종부성사를 받고도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그 고통들을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셈치고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해 기쁘게 봉헌하고 있었다.
부산으로 출발하기 하루 전날, 서울에 사는 자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율리아 씨, 요즘 건강 좀 어떠세요?” 나는 너무나 극심한 고통 중에 기진맥진했지만, 예수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요즘 사순절이어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했다. 고통이 극심하면 극심할수록 예수님의 큰 사랑을 받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녀는 “어머, 율리아 씨는 참 좋으시겠어요! 율리아 씨가 받는 사랑 저도 좀 받게 해 주세요. 율리아 씨가 받는 사랑 좀 받아봤으면 원이 없겠어요.” 했다. “제가 어떤 사랑을 얼마만큼 받는 줄 아세요?” “그거야 당연히 예수님과 성모님의 특별한 사랑이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아주 특별한 사랑이지요.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움직이기도 힘이 들고 눈을 뜰 수도 없는 그런 고통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랑을 죄인들의 회개와 성직자들의 영적 성화와 병든 모든 가정의 치유를 위한 희생과 보속으로 받으며 하루하루를 봉헌하고 있답니다.” 했다.
그러자 그 자매님은 즉시 “아이고! 싫어요, 싫어요! 나는 그런 사랑 받지 않을래요. 지금 제가 받고 있는 고통만으로도 너무 무거워 죽지 못해 살고 있다고요.” 하면서 내 대답을 더 듣지도 않고,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 그렇다. 누가 그런 사랑을 받기를 원할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희망 있는 고통인 것을! 예수님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동참하여 많은 영혼들이 회개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고통인가? 그 당시 나는 식사도 전혀 하지 못하고 너무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내 안에 주님이 계시기에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운 기쁨으로 가득 차 배고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힘이 없어도 성모님 집에 와 간절히 나를 찾는 이들을 맞아 주며 친절하고 인자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기도해 주었다. 그럴 때마다 주님, 성모님께서 함께 해주시어 평화를 얻어 기쁘게 돌아가는 그들을 볼 때,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고통 중에도 참 기쁨이 나를 감싸지 않았던가! ‘오 주 내 천주여!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세세에 영원히 받으소서!’
불현듯 고통을 처음 봉헌할 때가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나는 주님께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서 받으시는 내적인 고통을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가시관 쓰시고, 못 박히시고, 창에 늑방이 뚫리시는 그런 고통만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주님께서 겪으신 내적인 고통까지 이 죄녀가 겪도록 허락해주셨다.
수 많은 배반, 모함, 판단 등을 당하며 속으로 남모르게 흘려야만 했던 피눈물은 외적인 고통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했다. 시기 질투로 인해 나의 사랑을 독차지하려 하고, 내 사랑이 자신의 성에 차지 않으면 그때부터 나를 모함하던 그들! 결국 나주성모님을 배반하고 떠나 가예언까지 하는 등….
그들이 엄청난 죄를 짓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피눈물로 봉헌하면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나의 가슴은 얼마나 찢어지는 아픔이었던가?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겪으셨을 극심한 성심의 고통이 아니던가! 주님, 성모님의 내적 고통에 동참하게 해주심에 무한히 감사드리며, 죽음을 통해서만이 부활의 영광에 다다를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금 내 마음속에 아로새겼다.
그래서 나는 주님께 부르짖었다. “주님, 나의 님이시여! 세상 모든 이들이 쓴 것을 마다하고 달콤한 것만을 추구하기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까지 피 흘려 구원해 주신 주님의 사랑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십니까? 적어도 사순절만이라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주님의 고통을 묵상하면서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 고통을 통해서만이 영광에 다다를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바라나이다.”
“오 귀여운 내 딸, 내 작은영혼아! 극심한 고통들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며 매일 매 순간 전심전력을 다하여 성심껏 바치는 생활의 기도는 바로 모든 것을 초월하는 능력의 기도가 된단다.”
“오 나의 사랑, 나의 구원자시여! 부족하기만 한 이 죄녀! 당신의 포근한 사랑의 품에 안겨 아브라함의 믿음과 다윗의 용기를 본받아 솔로몬의 슬기로 더욱 순박하게 당신께 다가가 영원한 내 사랑이신 당신과 함께 영원무궁토록 살으오리이다.”
“그래그래, 사랑하는 내 귀여운 작은 아기야! 단순하고 순수한 사랑과 희생으로 불타올라 모든 것을 온전히 봉헌하는 너를 볼 때면 나는 잠시라도 고통을 잊고 기쁨에 차오른단다.”
“오 내 주님, 나의 전부이시여! 당신께 드릴 것이라고는 부끄러움밖에 없나이다. 그러나 부족한 이 죄녀를 통해서 계속 위로받으시고 기쁨이 되길 바라오니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고 성모님 찬미와 위로를 받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