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영상“졸음운전, 큰 사고에서 구해주신 나주 성모님!”

운영진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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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먼저 제가 이렇게 은총 증언을 할 수 있도록 항상 함께해 주시는 주님, 성모님께 찬미 영광 드립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을 알고 순례를 시작하게 된 것은 2004년경입니다. 당시 저는 참 몹시 부끄러운 얘기지만 아내 모르게 주식에 투자하다가 큰 손실을 보고 매우 괴로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철석같이 믿고 있던 아내에게 실망감을 줬다는 사실과 죄책감으로 하루하루를 몹시 힘들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중압감에서 벗어나고자 성당에도 열심히 다녀보고 또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영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에서 우연히 나주 성모님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호기심으로 글을 읽다가 가슴에서 기쁨과 희망이 솟는 듯했습니다. 글을 더 찾아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아 나주에 한번 내려가야겠구나.’ 결심하고 바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때는 내비게이션이 많이 보급되지 않은 시기라서 지도를 보고 물어물어 나주라는 곳에 처음 오게 되었습니다. 경당 마당에 들어서니 정면에 성모님께서 모셔져 있었습니다.

 

성모님을 바라본 순간 마치 성모님께서 “잘 왔다.” 하시는 것처럼 저를 반겨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경당 안을 보니 가운데에 눈물 흘리신 성모님이 모셔져 있었고 눈물 흘리신 성모님상 바로 왼편에 피눈물 흘리신 성모님 사진이 크게 걸려 있었는데 그 성모님상을 바라보는 순간에 갑자기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제 마음속에 성모님이란 정결하시고 밝고 화사하고 이런 긍정적인 모습으로만 각인이 되어 있었는데 성모님의 그 피눈물을 흘리시는 그 사진은 저에게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현재는 성모님의 피눈물 흘리시는 사진을 보면서 ‘아, 저 붉디붉은 피눈물은 다 나의 죄 때문에 흘리시는 피눈물이구나.’ 하고 마음 아파하며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기도를 하게 됐지만 그때 당시에는 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는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나주에 내려오기 전에는 굉장히 희망에 들떠서 내려왔는데 올라가는 발걸음은 굉장히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또 성모님의 눈물 흘리시는 그 사진 또한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 왜 눈물을 흘리시고 피눈물을 이렇게 흘리시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저를 또 나주로 발길 돌리게 했습니다. 성모님께서 나주로 저를 인도하시려는 이끄심이 아니셨나 생각이 됩니다. 처음 기도회에 참석했을 때 경당 안에는 순례자들로 빽빽이 들어차 있었고 마당에조차 수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기도회는 율리아 엄마께서 주축이 된 것이 아니고 순례자들로 주축이 돼서 기도회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기도회가 끝나고 나면 2층 다락방 문을 열고 귀가하는 순례자들을 향해서 이렇게 손을 흔들어주시는 율리아 엄마를 잠시 뵐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주 순례를 계속했습니다. 저에게는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몇 번 지나지 않아 광주대교구 명에 의해 (순명하기 위해서) 나서지 않았던 엄마께서 갑자기 기도회 나오신 겁니다. 그래서 그 기도회 장소가 순례자들로 가득 차 발을 뻗을 수도 없고 발 한번 펼 수도 없고

 

얼마나 더운지 온몸에 땀이 흠뻑 적셔도 엄마의 말씀을 듣는 것이 그렇게 행복했습니다. 그런 행복한 마음 때문에 매달 기도회에 계속해서 나주로 향했습니다. 2005년으로 기억합니다. 그날도 전처럼 기도회에 참석을 하고 혼자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귀가하고 있었습니다.

 

새벽이고 출발지인 목포가 가까워서 고속도로에는 차가 한 대도 없었습니다. 또 고속도로에는 가로등마저 없어서 아주 껌껌했습니다. 저는 오로지 제 차의 전조등에 의해서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제 차가 무슨 작은 물웅덩이를 연속해서 지나가는 것처럼 통통 튀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눈을 떴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라고 하죠. 예, 제가 깜빡 졸았던 겁니다.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려보니까 제 차가 중앙분리대에 닿을락 말락 하면서 달리고 있었던 겁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보면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왕복 4차선, 그러니까 편도 2차선이 되겠죠.

 

저는 분명히 2차선에서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조는 사이에 2차선에서 1차선으로 그리고 1차선에서 다시 중앙분리대에 아주 아슬아슬할 정도로 가까이 붙어 운행을 하고 있었어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유심히 보면 고속도로 교양 부분에는 빗물이 잘 빠지도록 사이즈가 각각 다르겠지만 배수 홀이 연속해서 설치돼있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차량 운행에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중앙분리대 콘크리트 바로 밑에 그게 설치가 돼 있습니다. 제가 졸고 있는 사이에 그 배수구 홀을 제 차량 바퀴가 연달아 넘어가다 보니까 차가 충격이 와서 통통 튀었던 것입니다.

저는 급히 차를 2차선 옆 갓길로 뺐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차량을 세워놓고 놀란 가슴 쓸어낸 다음 내려서 제 차량을 전부 다 훑어봤습니다. 졸음운전을 해서 2차선에서 1차선으로 가고 또 중앙분리대로 가까이 붙었다 그러면 차가 약간 어슷하게 갔을 텐데 그런데 제 차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겁니다.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죠. 제가 얼마나 졸았는지 또 조는 동안에 제 차가 얼마나 갔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제가 졸고 있는 사이에 주님과 성모님께서 친히 제 차의 핸들을 잡아주셔서 저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셨다는 사실을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 “분도야, 철야 기도하느라고 힘들었지? 그렇다고 졸면 되겠니? 조심해야지.”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은총 증언입니다. 이 내용은 제 아내에게 내려주신 은총인데 남편인 제가 옆에서 지켜보고 같이 겪었던 내용이라서 대신 증언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처가는 오래된 구교 집안입니다. 제 처의 오빠 되는 사람하고 저하고는 오래된 친구고요. 그래서 저도 고등학교 2학년 때 영세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쁜 제 처하고 결혼을 해서 이렇게 살고 있고요.

 

제가 이렇게 제 아내와 부부가 돼서 살고 있는 것 그리고 오늘날 나주 성모님을 알게 되고 또 아내와 함께 나주 순례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저한테는 가장 큰 축복이 아니었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제가 1990년도에 결혼을 하고 이듬해에 첫째 아이를 얻었습니다. 출산 직후 아내 얼굴을 보니까 실핏줄이 다 터져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납니다. 병원에서 3일 만에 퇴원해서 이제 본가로 왔습니다.

 

저희 어머니와 여동생이 아내의 산후조리를 도와줬죠. 그런데 퇴원한 지 며칠 만에 아내의 몸에 이상이 왔습니다. 아무 이상 없던 아내가 갑자기 아내가 하반신을 못 쓰는 거였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서 급히 대학병원으로 아내를 옮겨 여러 가지 조사를 다 해봤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일주일 되니까 대학병원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퇴원해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몸을 못 쓰는 아내를 데리고 퇴원할 때 제 마음은 정말 참담했습니다. 아내의 차도 상황을 알고 계셨던 저희 부친께서 가까운 한약방에서 한약을 지어오신 게 있어서 그 약을 먹고 아내가 조금씩 조금씩 좋아져서 나중에는 하반신을 제대로 쓰고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유증이었는지 한 2~3년마다 한 번씩 하반신이 몹시 저리는 현상이 반복됐습니다. 그때마다 급히 한약을 지어서 복용하게 되면 또 그런 저리는 증상이 사라지고 반복됐습니다. 2005년도에 저는 제 아내와 아이들 가족 전체가 나주에 순례를 왔습니다. 그때 나주 성지는 지금처럼 비닐 성전도 없었습니다.

 

십자가의 길 입구 쪽에 기도회 단상이 세워지고 성혈조배실 앞 잔디밭에 지부별로 자리가 배정이 돼서 각자 돗자리를 깔고 기도회에 참석하게 되었죠. 저희 가족도 맨 뒷자리에다가 자리를 펴고 앉아서 기도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갑자기 아내가 다리가 저리다고 하는 겁니다.

 

저는 급히 아내를 누우라고 하고 저리다고 하는 부위를 계속 주물렀습니다.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열심히 주무르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새벽 기도회가 끝나고 운전을 하다가 아내한테 물었습니다.

 

“아녜스! 아까 기도회 때 다리가 몹시 저렸잖아! 지금은 좀 어때?” 하고 물으니 아내는 무심히 “괜찮아,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였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저도 그런가 보다 했죠.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비로소 깨닫게 됐습니다.

 

“나주 성지는 어떤 목적을 갖고 오더라도, 그 어떤 사람이 오더라도 결코 주님과 성모님께서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제 아내는 오늘날까지 단 한 번도 저리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큰 은총을 받고도 믿음이 많이 부족했던 저는 나주 순례를 선택적으로 하다 말다 했습니다.

 

작년 5월서부터 아내인 아녜스와 함께 꾸준히 지금 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 12월 첫 토 기도회 때 율리아 엄마께서 극심한 고통 중에 나오셔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게 생각이 납니다. “나주 성지는 주님께서 친히 세우신 거룩한 도성입니다. 굳은 믿음으로 꾸준히 순례하는 것이 더욱 필요합니다.” 말씀하시며,

 

순례를 통해 엄청난 은총을 받고도 뒤돌아섰던 많은 자녀들이 개인적으로 또는 그 집안 내에 비참한 상황에 놓이게 된 여러 사례를 말씀하시며 꾸준히 순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몇 번 강조하신 것이 생각이 납니다. 저는 지금 은총 증언한 이 두 가지 사례 이외에도 굉장히 많은 은총을 주님 성모님께서 저와 저희 가족에게 내려주시고 계셨다는 사실을 언젠가부터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리아 엄마 말씀처럼 유혹에 빠져서 순례를 중단하는 일 없이 제 아내인 아녜스와 함께 앞으로도 계속 꾸준히 순례할 수 있기를 바라고 나아가서 저희 가족들 그리고 수많은 순례자들이 나주 성지를 찾아올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성모님께서 친히 활동하고 계시는 율리아 엄마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엄마를 직접 뵐 수도 있고 또 엄마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도 있고,

 

또 극심한 고통 중에도 그 일일이 안아주시고 기도해 주시려고 애쓰시며 “지금부터 새로 시작하면 됩니다. 새로 시작합시다!” 하고 늘 격려해 주시는 율리아 엄마 말씀 따라 생활의 기도조차 변변히 못 하는 죄인이지만 이제 새로 깨어나 5대 영성을 실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족하기만 한 이 죄인 은총 증언을 들어주신 순례자님과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과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하며 이 모든 영광 주님, 성모님께 돌려드립니다. 그리고 극심한 고통 중에 항상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봉헌하고 계신 율리아 엄마께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2023년 1월 6일 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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