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나주 오기 전에 남편이 98년도에 뇌출혈로 쓰러졌어요. 남편 형님이 “이 땅 다 너 줄 테니까 엄마 모시고 여기서 살아라.” 그래서 이 사람이 저 말 100% 믿지 말라고 해 저도 거기에 연연하지 않았는데 막상 집이 길이 나게 돼 이제 도시계획이 생겼는데 형님이 준다 안 준다 말도 안 하는 거예요.
이제 어머니 모시고 이사는 가야 되는데 형은 묵묵부답인 거예요. 막상 형님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다 준다고 하는 거 믿지 말라 했지만 그래도 어머니 모시고 살려면 땅이 있고 집이 있어야 되는데 배신감이 너무 커서 일주일간을 늦게 들어오는 거예요.
일주일 정도 되는 날은 아침에 출근하면서 “아~ 오늘은 진짜 힘들다.” 그러고 나가더니 저녁에 친구들 모임이 있었는데 소주 한 잔 마셨는데 토하고 쓰러졌다 하더라고요. 그게 이제 뇌출혈로 된 거예요.
이제 세월이 많이 지나서 형님들은 다 돌아가시고 밑에 시동생하고 저 사람하고 둘만 남았는데 시동생은 배신하고 그런 바람에 내 형이 저렇게 됐다고 지금도 형을 용서 못 해서 그러고 있지만 저 사람(남편)은 나주 오면서 형을 미워하지도 않고 용서했어요.
그때(뇌출혈 왔을 당시) 나이가 46살인데 뇌 수술하고 나니까 생활 못 하죠. 그래서 제가 3년 동안을 계속 붙들면서 같이 운동 다니고 매일 미사 다녔죠. 몇 개월 지나 성당에 장례 미사가 나 연도 바치러 장례식장에 갔어요. 처음에 시작할 때 주모송을 바치고 끝날 때 주모송을 바쳤는데 “은총이~” 할 때는 향기가 확 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을 한 번씩 쳐다봤죠. 그런데 아무도 뭐 내색이 없어.
그래서 ‘나만 맡았나?’ 겨울이었는데 ‘무슨 겨울에 이런 향기가 날까?’ 그때 국화꽃만 있었어요. 국화꽃에다가 코를 가까이 대야만이 향기를 맡을 수 있는데 향기가 나는 거예요. 어느 날 코로 아주 짙은 향기를 솜에다가 향기를 찍어서 콧구멍에 넣어주는 것 같았어요. 그런 향기를 한 20일 정도 됐을까?
그러던 중 나주를 알게 돼서 오게 됐어요. 여기 올라오다 보면 좁은 다리가 있는데 그 다리로 이제 건너와야 되는데 가다가 남편 몸이 아래로 뚝! 떨어지는데 제가 놓아버렸어요. 놀라서 뛰어 내려갔는데 남편은 머리가 콕 박혀 데리고 나왔는데 다친 데가 하나도 없이, 하나도 안 아프고 풀에 살짝 벤 거, 그거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면서 계속 나주를 왔어요.
한번은 남편이 성모님동산에서 화장실 갔다 오는데 얼굴을 팍 이렇게 바람으로 치는 것 같은 향기가 막 나더라고. 그래서 “어? 얘네 아빠 들어오는데 향기가 이렇게 많이 나지?” 그러니까 “아, 화장실에서 너무 많이 나 놀라서 주저앉았다.” 그래요. 남편이 향기를 많이 맡으니까 그 뒤로부터 나주에 대해 달리 생각했죠.
제가 이제 먹고 살아야 되니까 출근을 하는데 거기는 토요일, 일요일도 잘 쉬지를 않아요. 그래서 거의 7년간 나주를 못 오게 됐어요. 못 오는 동안에 나주 다니는 자매님이 미사 끝나면 “형님, 율리아 엄마가 어쨌는데 어쨌는데...” 그러면 나는 마음속에 항상 걸려서 “그러게, 가긴 가야 되는데...” 그때 남편 건강이 조금 좋아져서 공공근로를 하는데 페인트칠을 해줬는지 신나 냄새를 많이 맡아서. 저 사람은 그런 거 맡으면 안 되는 사람인데 그때 뇌경색이 왔어요.
병원에 가서 치료 도중에 침대에 잠깐 세웠는데 침대가 삐거덕해 넘어져서 머리가 사물함에 꽝! 부딪히면서 이제 왼쪽은 하나도 못 쓰는 거예요. 그냥 늘어져 버렸어. 그때 제가 직장 그만두고 10개월을 대소변 받아냈어요. 그런데 직장에서 저를 다시 오라 해서 갔는데 나를 다시 불렀으니까 “첫 토요일 날 저를 쉬게 해 주세요. 그러면 제가 다시 일하겠습니다.” 제가 기술자였거든요.
그러니까 “아, 그러면 그렇게 합시다.” 약속이 돼서 그때부터 첫 토요일 거의 안 빠지고 계속 오는 거예요. 그때 남편은 뉘어 놓고 혼자 나주를 다니다가 남편이 좋아지면서 계속 나주를 다니는데 나주를 다니면서 저 사람이 욱하던 성격도 많이 가라앉고 자랄 때 부모님 사랑을 많이 못 받았어요.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하고 살다 보니까 어머니가 아들 기르느라고 얼마나 애를 쓰셨겠어요. 그러다 보니까 별로 웃는 것을 못 봤어요. 집에 와도 다정하게 얘기하는 걸 못 보고 말없이 과묵한 사람, 잔소리 안 하는 사람, 제가 음식 해 주면 다 받아먹고. 그거 하나는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런데 웃음이 없던 사람이 지금은 감성이 생겨서 둘이서 엄마 말씀 듣기도 하고 사랑의 메시지, 5대 영성, 님 향한 사랑의 길을 늘 아침마다 제가 읽거든요. 그러면 눈물도 흘리고, 전에는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안 울더라고. 그런데 지금은 나주 가는 날 내가 “가자.” 그러면 너무 좋아하고, 사람 성격이 변해서 나도 좋고, 몸은 저렇지만 저런 몸으로도 이만큼이라도 걸을 수 있어서 나주 오는 게 너무 좋아요!
그리고 팬데믹 때 제가 갑상선암 4기 진단을 받아 7시간 수술받고 양쪽 다 떼냈어요. 팬데믹 끝나고 와서 엄마한테 “저 사실은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아이고, 남편도 저렇게 아픈데 너까지 그러면 어떡하냐?” 그러면서 왼쪽 가슴을 이렇게 만져주더라고요. 폐 쪽으로. 그런데 저는 어느 쪽 폐에 전이됐는지도 모르는데 엄마가 이쪽으로 이렇게 만져주셨어요. 그런데 병원에 가서 보니 왼쪽 폐에 있는 암이 그냥 가만히 잠잔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나주 오는 게 좋고 이대로 살게만 해 주시고 나주만 계속 끝까지, 죽기까지 걸어서 다닐 수만 있으면 그걸로 만족하거든요. 엄마,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주님, 찬미 받으시고 영광 받으소서!
웃음이 없던 사람이 지금은 감성이 생겨서 둘이서 엄마 말씀
듣기도 하고 사랑의 메시지, 5대 영성, 님 향한 사랑의 길을 늘
아침마다 제가 읽거든요. 그러면 눈물도 흘리고, 전에는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안 울더라고. 그런데 지금은 나주 가는 날
내가 “가자.” 그러면 너무 좋아하고, 사람 성격이 변해서 나도
좋고, 몸은 저렇지만 저런 몸으로도 이만큼이라도 걸을 수 있어서
나주 오는 게 너무 좋아요!아멘!!!아멘!!!아멘!!!
그런데 웃음이 없던 사람이 지금은 감성이 생겨서 둘이서 엄마 말씀 듣기도 하고 사랑의 메시지, 5대 영성, 님 향한 사랑의 길을 늘 아침마다 제가 읽거든요. 그러면 눈물도 흘리고, 전에는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안 울더라고. 그런데 지금은 나주 가는 날 내가 “가자.” 그러면 너무 좋아하고, 사람 성격이 변해서 나도 좋고, 몸은 저렇지만 저런 몸으로도 이만큼이라도 걸을 수 있어서 나주 오는 게 너무 좋아요!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제가 나주 오기 전에 남편이 98년도에 뇌출혈로 쓰러졌어요. 남편 형님이 “이 땅 다 너 줄 테니까 엄마 모시고 여기서 살아라.” 그래서 이 사람이 저 말 100% 믿지 말라고 해 저도 거기에 연연하지 않았는데 막상 집이 길이 나게 돼 이제 도시계획이 생겼는데 형님이 준다 안 준다 말도 안 하는 거예요.
이제 어머니 모시고 이사는 가야 되는데 형은 묵묵부답인 거예요. 막상 형님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다 준다고 하는 거 믿지 말라 했지만 그래도 어머니 모시고 살려면 땅이 있고 집이 있어야 되는데 배신감이 너무 커서 일주일간을 늦게 들어오는 거예요.
일주일 정도 되는 날은 아침에 출근하면서 “아~ 오늘은 진짜 힘들다.” 그러고 나가더니 저녁에 친구들 모임이 있었는데 소주 한 잔 마셨는데 토하고 쓰러졌다 하더라고요. 그게 이제 뇌출혈로 된 거예요.
이제 세월이 많이 지나서 형님들은 다 돌아가시고 밑에 시동생하고 저 사람하고 둘만 남았는데 시동생은 배신하고 그런 바람에 내 형이 저렇게 됐다고 지금도 형을 용서 못 해서 그러고 있지만 저 사람(남편)은 나주 오면서 형을 미워하지도 않고 용서했어요.
그때(뇌출혈 왔을 당시) 나이가 46살인데 뇌 수술하고 나니까 생활 못 하죠. 그래서 제가 3년 동안을 계속 붙들면서 같이 운동 다니고 매일 미사 다녔죠. 몇 개월 지나 성당에 장례 미사가 나 연도 바치러 장례식장에 갔어요. 처음에 시작할 때 주모송을 바치고 끝날 때 주모송을 바쳤는데 “은총이~” 할 때는 향기가 확 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을 한 번씩 쳐다봤죠. 그런데 아무도 뭐 내색이 없어.
그래서 ‘나만 맡았나?’ 겨울이었는데 ‘무슨 겨울에 이런 향기가 날까?’ 그때 국화꽃만 있었어요. 국화꽃에다가 코를 가까이 대야만이 향기를 맡을 수 있는데 향기가 나는 거예요. 어느 날 코로 아주 짙은 향기를 솜에다가 향기를 찍어서 콧구멍에 넣어주는 것 같았어요. 그런 향기를 한 20일 정도 됐을까?
그러던 중 나주를 알게 돼서 오게 됐어요. 여기 올라오다 보면 좁은 다리가 있는데 그 다리로 이제 건너와야 되는데 가다가 남편 몸이 아래로 뚝! 떨어지는데 제가 놓아버렸어요. 놀라서 뛰어 내려갔는데 남편은 머리가 콕 박혀 데리고 나왔는데 다친 데가 하나도 없이, 하나도 안 아프고 풀에 살짝 벤 거, 그거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면서 계속 나주를 왔어요.
한번은 남편이 성모님동산에서 화장실 갔다 오는데 얼굴을 팍 이렇게 바람으로 치는 것 같은 향기가 막 나더라고. 그래서 “어? 얘네 아빠 들어오는데 향기가 이렇게 많이 나지?” 그러니까 “아, 화장실에서 너무 많이 나 놀라서 주저앉았다.” 그래요. 남편이 향기를 많이 맡으니까 그 뒤로부터 나주에 대해 달리 생각했죠.
제가 이제 먹고 살아야 되니까 출근을 하는데 거기는 토요일, 일요일도 잘 쉬지를 않아요. 그래서 거의 7년간 나주를 못 오게 됐어요. 못 오는 동안에 나주 다니는 자매님이 미사 끝나면 “형님, 율리아 엄마가 어쨌는데 어쨌는데...” 그러면 나는 마음속에 항상 걸려서 “그러게, 가긴 가야 되는데...” 그때 남편 건강이 조금 좋아져서 공공근로를 하는데 페인트칠을 해줬는지 신나 냄새를 많이 맡아서. 저 사람은 그런 거 맡으면 안 되는 사람인데 그때 뇌경색이 왔어요.
병원에 가서 치료 도중에 침대에 잠깐 세웠는데 침대가 삐거덕해 넘어져서 머리가 사물함에 꽝! 부딪히면서 이제 왼쪽은 하나도 못 쓰는 거예요. 그냥 늘어져 버렸어. 그때 제가 직장 그만두고 10개월을 대소변 받아냈어요. 그런데 직장에서 저를 다시 오라 해서 갔는데 나를 다시 불렀으니까 “첫 토요일 날 저를 쉬게 해 주세요. 그러면 제가 다시 일하겠습니다.” 제가 기술자였거든요.
그러니까 “아, 그러면 그렇게 합시다.” 약속이 돼서 그때부터 첫 토요일 거의 안 빠지고 계속 오는 거예요. 그때 남편은 뉘어 놓고 혼자 나주를 다니다가 남편이 좋아지면서 계속 나주를 다니는데 나주를 다니면서 저 사람이 욱하던 성격도 많이 가라앉고 자랄 때 부모님 사랑을 많이 못 받았어요.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하고 살다 보니까 어머니가 아들 기르느라고 얼마나 애를 쓰셨겠어요. 그러다 보니까 별로 웃는 것을 못 봤어요. 집에 와도 다정하게 얘기하는 걸 못 보고 말없이 과묵한 사람, 잔소리 안 하는 사람, 제가 음식 해 주면 다 받아먹고. 그거 하나는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런데 웃음이 없던 사람이 지금은 감성이 생겨서 둘이서 엄마 말씀 듣기도 하고 사랑의 메시지, 5대 영성, 님 향한 사랑의 길을 늘 아침마다 제가 읽거든요. 그러면 눈물도 흘리고, 전에는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안 울더라고. 그런데 지금은 나주 가는 날 내가 “가자.” 그러면 너무 좋아하고, 사람 성격이 변해서 나도 좋고, 몸은 저렇지만 저런 몸으로도 이만큼이라도 걸을 수 있어서 나주 오는 게 너무 좋아요!
그리고 팬데믹 때 제가 갑상선암 4기 진단을 받아 7시간 수술받고 양쪽 다 떼냈어요. 팬데믹 끝나고 와서 엄마한테 “저 사실은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아이고, 남편도 저렇게 아픈데 너까지 그러면 어떡하냐?” 그러면서 왼쪽 가슴을 이렇게 만져주더라고요. 폐 쪽으로. 그런데 저는 어느 쪽 폐에 전이됐는지도 모르는데 엄마가 이쪽으로 이렇게 만져주셨어요. 그런데 병원에 가서 보니 왼쪽 폐에 있는 암이 그냥 가만히 잠잔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나주 오는 게 좋고 이대로 살게만 해 주시고 나주만 계속 끝까지, 죽기까지 걸어서 다닐 수만 있으면 그걸로 만족하거든요. 엄마,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주님, 찬미 받으시고 영광 받으소서!
2025년 12월 31일 이 가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