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남편의 고모 딸인 영산포에 사는 시외사촌 형님을 만났다. “자네 다섯째 시동생이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것 아는가?” “네? 지금 사법연수원에 들어갔어요? 몰랐어요.” 했더니 그분은 사람들 많은 곳에서 큰 소리로 “흐응? 아니, 다른 사람도 다 아는데, 한 식구 돼서 큰형수가 얼마나 무심하면 그것도 몰라?” 하고 나에게 면박을 주며 질책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나는 몹시 민망하여 속으로 ‘삼촌이 우리에게도 연락 좀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죽음을 불사하고 가르친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소식을 듣게 되다니….’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러나 바로 ‘그래, 바빠서 그랬겠지. 우리에게도 연락해 준 셈 치자.’ 하고 진정으로 봉헌하면서 시외사촌 형님께도 사랑의 말을 들은 셈 쳤다.
다섯째 시동생이 말해주지 않아서 몰랐던 것이어도, 내 탓으로 생각하며 “아, 죄송해요. 더 신경 쓸게요.” 하고 시외사촌 형님께 사과했다. 얼마 후인 1월 1일 신정, 형제들이 시댁에 모두 모여 아침에 떡국을 끓여 먹었다. 직장에 다니는 모든 시동생들과 서울에 있는 다섯째 시동생도 내려왔다.
나는 오랜만에 만나는 시댁 식구들을 위해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를 바치며 정성껏 음식을 준비했다. 영적, 육적인 양식이 되어 시댁 식구들이 새로운 한 해는 더더욱 하느님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만드니 내 영혼도 충만해지는 듯했다. 온 가족이 모인 밥상 앞에, 나는 그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안 먹어도 배부를 정도로 기쁘기만 했다.
다섯째 시동생이 일찍 서울로 가야 했다. 그때는 전화도 없었고, 따로 불러 말하기가 어려워, 나는 상을 치우며 최대한 친절하게 말했다. “삼촌, 어떤 일 있으면 우리에게도 말해주면 좋겠어요. 우리 집엔 전화도 없어서 나에게는 말 못 해도 형님 사무실엔 전화가 있으니 형님한테라도 해주셔요. 네?
삼촌이 연수원에 있을 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다른 사람이 나한테 ‘가족이 그것도 모르냐?’고 면박을 주니까 좀 민망했어요. 이제 우리 물질을 떠나서 마음으로 서로 위하고 사랑하며 일치해서 살도록 해요. 알았죠?” 했다. 그러나 다섯째는 나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대답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 시어머니께서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내가 치우고 있던 밥상을 사정없이 엎어버렸다. “와장창창!~”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음식과 반찬 그릇과 수저 등이 바닥으로 떨어져 난장판이 되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시어머니의 행동에 나는 심장이 터질 듯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격분하신 시어머니는 내 남편을 보며 소리치셨다
“저년 봐라! 저년 봐! 만복아, 저년 봐라! 저년이 이제 네 아버지 안 계시니 우리를 저렇게 무시하고 함부로 대한다!!! 나 분해서 못 살겄다! 아이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꺼나이?” 시어머니는 아들을 보며 큰소리로 야단을 치시더니 방바닥을 꽝꽝! 쳐대며 “저래서 혼자 옹호받고 큰 애들하고는 결혼을 안 시켜야 하는데! 아이고 분해.” 하시는 것이었다.
분을 삭이지 못해 우시며 하신 시어머니의 말씀은 내 심장을 예리한 송곳으로 ‘푹~’ 찌르는 극도의 아픔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어머니를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하여 얼마나 부단히도 노력해 왔던 나였던가! 나는 생각하지도 못한 갑작스러운 상황에 너무 놀라 가슴을 부여안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 순간, 큰 이모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났다. 전에 우리 큰이모님이 시어머니께 농사지어서 갚으시라고 직접 돈도 빌려주셨었다. 그 돈을 안 갚으셨어도 그 뒤로도 돈을 몇 번이나 빌리셨지만 단 한 번도 갚지 않으셨다. 그리고도 나를 통해 이모님께 다음에 갚을 테니 또 빌려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하고도 계속 부탁하셨다.
결국, 그런 빚들 모두 다 이자는 물론 원금까지 내가 다 갚아야 했다. 그걸 아시는 큰이모님은 나를 많이 안타까워하셨다. 이모님이 “얘야, 너도 시어머니에게 꼭 할 말은 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계속 당한다.” 하셨던 것이 불현듯 기억난 것이다. 나는 모든 시댁 식구들 앞에서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너무나 깜짝 놀랐다.
나는 후들후들 떨려 울면서도, 시어머니께서 오해하시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한 말씀 드려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큰 이모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그래, 시어머님이 상황을 잘 모르셔서 그랬을 수도 있으니 곡해하시지 않도록 오늘은 말씀을 드려야겠다.’ 하고 처음으로 입을 뗐다. 나는 최대한 눈물을 절제하고 아주 조심스럽고 공손한 자세로 말씀드렸다.
“어머니! 진정하셔요. 제가 어떻게 감히 어머님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하겠어요. 그런 것이 전혀 아니에요. 저는 그저 돈을 떠나서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서로 일치해서 우애하고 잘살아보자고 한 것이에요.” 그러나 시어머니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한번 큰소리를 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오랜만에 만나는 시댁 식구들을 위해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를 바치며
정성껏 음식을 준비했다. 영적, 육적인 양식이 되어 시댁 식구들이 새로운 한 해는
더더욱 하느님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만드니 내 영혼도 충만해지는 듯했다.
온 가족이 모인 밥상 앞에, 나는 그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안 먹어도 배부를 정도로 기쁘기만 했다.
뭐가 못마땅해서 새해 첫날부터 상을 뒤엎고 땅가지 치셨을까요?ㅜㅡ
이제는 시어머니와 언니 동생처럼 잘 지낼 수 있어 보였는데요..
급박해진 상황에서 과연 다음 일화가 어떻게 전개가 될 지 궁긍해 집니다.
좋은 의도로 말을 건넸지만 마음이 잘 전달이 안 되었네요~!
사랑받은 셈치고 봉헌하신 것처럼 늘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새해 첫날부터 상을 뒤엎으신 시어머니
어느 날, 남편의 고모 딸인 영산포에 사는 시외사촌 형님을 만났다. “자네 다섯째 시동생이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것 아는가?” “네? 지금 사법연수원에 들어갔어요? 몰랐어요.” 했더니 그분은 사람들 많은 곳에서 큰 소리로 “흐응? 아니, 다른 사람도 다 아는데, 한 식구 돼서 큰형수가 얼마나 무심하면 그것도 몰라?” 하고 나에게 면박을 주며 질책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나는 몹시 민망하여 속으로 ‘삼촌이 우리에게도 연락 좀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죽음을 불사하고 가르친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소식을 듣게 되다니….’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러나 바로 ‘그래, 바빠서 그랬겠지. 우리에게도 연락해 준 셈 치자.’ 하고 진정으로 봉헌하면서 시외사촌 형님께도 사랑의 말을 들은 셈 쳤다.
다섯째 시동생이 말해주지 않아서 몰랐던 것이어도, 내 탓으로 생각하며 “아, 죄송해요. 더 신경 쓸게요.” 하고 시외사촌 형님께 사과했다. 얼마 후인 1월 1일 신정, 형제들이 시댁에 모두 모여 아침에 떡국을 끓여 먹었다. 직장에 다니는 모든 시동생들과 서울에 있는 다섯째 시동생도 내려왔다.
나는 오랜만에 만나는 시댁 식구들을 위해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를 바치며 정성껏 음식을 준비했다. 영적, 육적인 양식이 되어 시댁 식구들이 새로운 한 해는 더더욱 하느님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만드니 내 영혼도 충만해지는 듯했다. 온 가족이 모인 밥상 앞에, 나는 그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안 먹어도 배부를 정도로 기쁘기만 했다.
다섯째 시동생이 일찍 서울로 가야 했다. 그때는 전화도 없었고, 따로 불러 말하기가 어려워, 나는 상을 치우며 최대한 친절하게 말했다. “삼촌, 어떤 일 있으면 우리에게도 말해주면 좋겠어요. 우리 집엔 전화도 없어서 나에게는 말 못 해도 형님 사무실엔 전화가 있으니 형님한테라도 해주셔요. 네?
삼촌이 연수원에 있을 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다른 사람이 나한테 ‘가족이 그것도 모르냐?’고 면박을 주니까 좀 민망했어요. 이제 우리 물질을 떠나서 마음으로 서로 위하고 사랑하며 일치해서 살도록 해요. 알았죠?” 했다. 그러나 다섯째는 나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대답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 시어머니께서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내가 치우고 있던 밥상을 사정없이 엎어버렸다. “와장창창!~”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음식과 반찬 그릇과 수저 등이 바닥으로 떨어져 난장판이 되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시어머니의 행동에 나는 심장이 터질 듯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격분하신 시어머니는 내 남편을 보며 소리치셨다
“저년 봐라! 저년 봐! 만복아, 저년 봐라! 저년이 이제 네 아버지 안 계시니 우리를 저렇게 무시하고 함부로 대한다!!! 나 분해서 못 살겄다! 아이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꺼나이?” 시어머니는 아들을 보며 큰소리로 야단을 치시더니 방바닥을 꽝꽝! 쳐대며 “저래서 혼자 옹호받고 큰 애들하고는 결혼을 안 시켜야 하는데! 아이고 분해.” 하시는 것이었다.
분을 삭이지 못해 우시며 하신 시어머니의 말씀은 내 심장을 예리한 송곳으로 ‘푹~’ 찌르는 극도의 아픔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어머니를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하여 얼마나 부단히도 노력해 왔던 나였던가! 나는 생각하지도 못한 갑작스러운 상황에 너무 놀라 가슴을 부여안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 순간, 큰 이모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났다. 전에 우리 큰이모님이 시어머니께 농사지어서 갚으시라고 직접 돈도 빌려주셨었다. 그 돈을 안 갚으셨어도 그 뒤로도 돈을 몇 번이나 빌리셨지만 단 한 번도 갚지 않으셨다. 그리고도 나를 통해 이모님께 다음에 갚을 테니 또 빌려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하고도 계속 부탁하셨다.
결국, 그런 빚들 모두 다 이자는 물론 원금까지 내가 다 갚아야 했다. 그걸 아시는 큰이모님은 나를 많이 안타까워하셨다. 이모님이 “얘야, 너도 시어머니에게 꼭 할 말은 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계속 당한다.” 하셨던 것이 불현듯 기억난 것이다. 나는 모든 시댁 식구들 앞에서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너무나 깜짝 놀랐다.
나는 후들후들 떨려 울면서도, 시어머니께서 오해하시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한 말씀 드려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큰 이모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그래, 시어머님이 상황을 잘 모르셔서 그랬을 수도 있으니 곡해하시지 않도록 오늘은 말씀을 드려야겠다.’ 하고 처음으로 입을 뗐다. 나는 최대한 눈물을 절제하고 아주 조심스럽고 공손한 자세로 말씀드렸다.
“어머니! 진정하셔요. 제가 어떻게 감히 어머님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하겠어요. 그런 것이 전혀 아니에요. 저는 그저 돈을 떠나서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서로 일치해서 우애하고 잘살아보자고 한 것이에요.” 그러나 시어머니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한번 큰소리를 치시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