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첫 토요일은 오늘이 마지막이네요. 이제 대림절 맞이했죠? 예수님을 기다리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5대 영성 실천!) 예,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다 비우고 우리가 5대 영성을 실천해야 되겠죠? 5대 영성을 실천하면 저희들 마음이 다 비워지겠죠? 그리고 우리가 회개하도록 합시다. 다른 때도 회개해야 되지만 대림절에 더욱더 예수님을 우리 마음 안에 모실 수 있도록 회개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려면 어떻게 해야 오시겠어요? 내 마음 안에 나쁜 친구가 많이 있으면 못 들어오셔요. 그래서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나쁜 친구를 다 내보내자고요. 제일 나쁜 친구가 뭐예요? (교만, 시기 질투, 자아 등) 잘 아십니다, 말씀은 안 하셔도 다 알고 계시죠?
우리 마음 안에 교만이 있으면 안 됩니다. 교만은 온 세상을 무너뜨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교만이 있으면 안 되죠. 그런데 사람은 나약하기 때문에 한번씩 교만해질 수 있어요. 그런데 그 교만을 없애려고 노력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죠?
여러분, 제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오늘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맨날 제가 힘들었다고 하니까 말하기도 참 미안한데 제가 고통을 많이 받을수록 여러분께서 많이 치유가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제가 고통받은 것을 말씀드립니다. 오늘 자궁 아프신 분들도 많이 치유될 것 같아요.
여자들 자궁이 깨끗하신 분들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목욕을 하는데요. 자궁이 너무너무 송곳으로 쑤시는 것같이 아픈 거예요. ‘아, 오늘 자궁 치유 많이 되겠다. 또 음란죄 많이 빠져나가겠다.’ 음란죄 무섭죠? 음란죄, 오늘 다 물리칩시다.
제가 여러분을 위해서 고통을 받을 때, 그때 고통만 딱 받고 고통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질병으로도 옵니다. 어느 날, 어떤 할머니가 아들네 집에 무엇을 해다 주려고 밤중에 ‘밤에 차가 없을 거다.’ 하고 횡단보도를 걸어가는데 그냥 봉고차가 그 할머니를 받아버린 거예요. 그런데 보니까 안 죽은 거예요. 그래서 다시 가서 쳐버렸어요.
그리고 그 할머니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갔죠. 이제 남광주 병원에 그 할머니가 입원해서 봉사해 준 분 어머니여서 제가 갔어요. 갔는데 (뼈가) 다 부러져 버려 심장도 폐도 다 뚫려서 침대에 못 올리고 바닥에 눕혀놨어요. 바닥에 눕힌 건 처음 봤어요. 그랬는데 그전에 제가 그 할머니에게 분도 패를 하나 줬어요. 신자 아니에요. 그랬는데 그분이 지갑에다 넣고 다녔대요.
그분에게 기적수를 먹였어요. 그런데 3일 만에 딸이 엄마한테 갔는데 벌써 나아서 병실에 병자 방문 갔대요. 그리고 또 한 분, 그때는 경당에서 기도회 할 때예요. 만남을 하는데 지금은 막 일찍 가려고 그냥 막 하시잖아요. 4시 좀만 넘어도 그냥 막 투정하시고. 그런데 그전에는 제가 만남 다 하고 10시 본당 미사 갔어요.
그때 어떤 자매님이 너무 서럽게 우니까 제가 “어떤 일 있으세요?” 그랬더니 “아이고!” 동생이 병원에서 허리를 못 나아서 다리를 여기다 묶어놨대요. 그랬는데 이제 여기 이야기 듣고 그 동생이 그걸 풀고 기도회를 와버린 거예요. 그래서 뒤에 앉아있었는데 그 동생이 나아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이 언니가 이제 죽을 줄만 알았던 동생이 그렇게 치유돼 너무너무 감사해서 운다고 그래요.
그 두 분 고통을 제가 받았거든요. 그러고 나서 제 허리가 전방전위증, 신경공 협착증이 와버렸어요. 그런데 저는 고통을 받으면서 “행복한 고통”이라고 “희망 있는 고통”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그때 그렇게 그분들 기도해 주면서 제가 허리 고통을 받았는데 그 뒤로 지금까지 허리가 안 아파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결혼하자마자 저는 신혼여행 안 가고 광주가 시댁인데 광주로 갔어요. 그랬는데 거기 시댁 식구들도 많고 시어머니 친척들이 엄청 많아요. 그런데 사돈네 팔촌까지 다 절을 시켜 절을 한나절을 했어요. 그랬는데 제가 약혼하고 미용실을 하면서 율리오 씨와 같이 살았어요. 왜냐하면 의형 맺은 형님 집에서 율리오 씨가 있었는데 거기 형수님이 여자들이 율리오 씨를 너무 따르니까 도저히 안 되겠다고 결혼을 하래요.
그래서 “저는 결혼 지금 할 수가 없어요.” 그랬더니 그러면 약혼했으니까 나주에서 미용실이라도 하면서 밥을 해 주래요. 그래서 제가 “나는 결혼해서 살 거지. 난 절대 그럴 수 없다.” 했더니 좀 화를 내시더라고요. “그러면 알아서 하소! 여자들한테 남자 뺏기든지 말든지 나는 모르겠네!” 저녁 12시가 넘어도 아가씨들이 찾아와서 안 간대요.
율리오 씨한테도 “아이, 약혼자가 있다고 하세요.” 그러니까 약혼자가 있다고 해도 그렇게 여자들이 온대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미용실을 하면서 같이 살았어요. 그런데 첫날부터 집에는 안 들어왔지만 어떻게 임신이 됐어요. 그랬는데 임신 8개월에 결혼을 했거든요?
그런데 세상에 배 이렇게 불러서 반듯한 마당도 아니고 울뚝불뚝한 마당에다 (멍석) 펴놓고 한나절 내 절을 했으니 저는 아기가 어떻게 될까 봐서 ‘아가야, 미안해. 아가야, 미안해. 제발 잘 견디어 (주렴.)’ 하면서 그냥 배에 손 얹은 것처럼 하면서 속으로 교감을 했어요. 계속 절을 하고 나니까 완전히 제 몸 다 붓고 다리도 퉁퉁 부었는데 시댁에서 계속 일을 시켰어요. 그래서 그 뒤치다꺼리를 다 했어요.
그런데 세상에 이틀 간을 잔치를 했거든요. 밖에서 하루 식당에서 크게 잔치했어요. 그리고 또 집에서 잔치를 또 했어요. 그런데 잔치하고 남은 해삼이 큰 다라이로 거의 반이 남아서 다 물러져 가요. 해삼 많이 해보신 분만 아실 거예요. 많이 있으면 막 이렇게 물러져 가요. 해삼이 옛날에 얼마나 비싸요. 그런데 해삼이 그렇게 있어요. 그런데 그거 버리니까 얼마나 아까워요. 그런데 먹으라고 안 하니까 못 먹죠. 우리 친정이 아니니까.
그런데 사흘 동안 결혼 뒤처리를 다 하고 미용실로 내려오기 전에 시어머니께서 빚을 갚아달라고 그래요. “무슨 빚이요?” 그랬더니 결혼했으니까 결혼 빚을 갚으래요. 너무나 황당하잖아요. 그래서 “아니, 어떤 결혼 빚이요?” 느그들 결혼했으니까 결혼 빚 갚으라고 그래서 “우리 어머니도 빚내서 하셨는데요.” 그랬더니 “느그 빚은 내가 알 바 없고!” 너희들 결혼했으니까 우리가 진 빚 7만 원 갚으라는 거예요.
70년도에 결혼 했는데요. 아니, 7만 원이 어디 있어요? 미용실을 팔지 않으면 돈을 갚을 수가 없잖아요.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프로젝트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그렇게 많은 일을 했어도 월급도 못 받고 그렇게 우리 어머니도 결혼시키면서 빚을 얻어서 하셨거든요. 그때 당시로는 우리 시골에서 우리 어머니가 제일 잘해주셨어요. 부잣집보다 더 해 줬어요.
그랬는데 결혼 빚을 갚으라고 하니까 돈이 있어야죠. 그래서 미용실을 내놨죠. 그런데 미용실을 제가 12만 원에 인수를 했었어요. 그랬는데 모든 것이 다 허술하니까 저희들이 가서 전부 인테리어도 다 하고 다 다시 꾸미고 모든 집기들도 다 들여 놔서 상당히 좋아졌어요. 그리고 처음에 손님도 없었는데 손님이 엄청 많아졌어요. 제가 워낙 꼼꼼하게 잘하니까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랬는데 갑자기 그렇게 결혼 빚을 갚으라고 하시니까 어떡해요. 나주로 내려와서 15만 원에 미용실을 내놨는데 세상에 사흘 만에 나주로 또 오셨어요. 결혼 빚을 빨리 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바로 급매로 12만 원에 내놨어요, 너무 잘해놨기 때문에 20만 원 받을 수 있다 했는데 급매로 12만 원에 내놨어요. 급매로 내놨는데도 얼른 안 나가요.
그런데 3일 만에 또 오셔서 빨리 돈 달라고 하셔서 “어머니 지금 미용실을 내놨어요.”그랬는데 또 오셔서 급급매로 10만 원에 내놨더니 바로 그 미용실이 팔렸어요. 그래서 시어머니께 7만 원을 드렸더니 시어머니가 “왜 이것만 주냐? 얼마에 팔았냐?” 그래서 10만 원 팔았다고 “더 받을 수 있었지만 어머니가 급하게 달라고 하시니까 급급매로 10만 원을 받아서 7만 원 어머니 드리고, 3만 원으로 우리 전셋집을 얻어야 돼요.” 그랬더니 그냥 돈을 확 채서 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오, 그래. 아가 너무 수고했다. 고맙다.” 하고 그렇게 저를 쓰다듬어주신 셈 치고,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을 했어요. 그런데 그것이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이었다니까요. 그런데 그 뒤로 이제 집을 얻으려니까 어떻게 3만 원으로 전세를 어떻게 얻겠어요? 그렇게 혼자 돌아다니다가 나주 시내에 3만 원짜리 전세가 없어요. 그래서 1.7평짜리 단칸방, 그리고 부엌 하나 있는 문간채를 얻었어요. ‘그래도 그거라도 어디냐? 얻을 수 있었으니까.’ 하고 살았어요.
옛날부터 제가 부부끼리 싸운 거 많이 보고 부부끼리 싸우면 애들 때리는 것을 많이 봤어요. 그래서 ‘나는 절대 저렇게 안 해야지.’ 그러면서 월산동 이모님 댁에서 살 때 뒷집 아줌마가 그렇게 막 아저씨하고 싸우고 물건이 날아가고 막 양판이 날아가고 그랬는데 아기를 때리더라고요. 다 보여요. 그래서 아기를 위해서, 그 사람들을 위해서도 생활의 기도를 했어요.
그 부부가 좀 잘 살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아, 나는 절대로 저렇게 안 살아야지.’ 그랬습니다. 제가 결혼 빚 갚고 미용실을 팔았으니 미용실을 그만두고 혼자 이사 했어요. 그리고 우리 어머니한테 말할 수도 없잖아요. 또 우리 어머니는 빚을 내서 결혼을 시키셨기 때문에 또 남의 밭도 매시고 뭐 일을 이것저것 하셨어요.
“우리 시어머니가 빚 갚아주라고 해서 미용실 팔았어요.” 할 수 없잖아요. 우리 어머니가 다 차려주셨는데. 여러분, 우리가 남편 흉보고 시어머니 흉보면 나한테 침 뱉기에요. 나쁘게 말할 필요 없어요. 어떤 사람에게 “우리 시어머니 이래. 우리 남편은 이래.” 그러면 그 사람이 도와줍니까? 여러분, 도와줍니까? (아니요!) 안 도와주죠? (네!) 그러니까 그런 말, 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왜 미용실 그만두냐?” 그러면 “아, 우리 남편이 배불러 가니까 몸 무겁다고 당신 고생한다고 미용실 그만하라고 해서 그만둔다.”고 남편을 이렇게 좋게 해 줘야죠.
그래서 저는 그 무거운 몸을 가지고 혼자 이사 다 하고 그다음 날 급급매로 판 서울 미용실을 갔어요. 왜냐하면 이제 걱정되는 거예요. ‘내가 없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돼서 가봤더니 손님이 없어요. 내가 가니까 “어머, 웬일이세요?” 그래서 “아니, 내가 혹시 가르쳐줄 거 있으면 가르쳐 주려고 왔어요. 그래도 되겠어요?” “아! 그러면 너무 좋죠. 여기는 아주 잘한다고 소문이 나고 유명했잖아요.”
그래서 있는데 나한테 그 단골손님이 지나가다 들어와 어머, 왔냐고! “아까 보니까 없어서 그냥 갔는데 왔다.”고 그러면서 “나 파마도 하고 싶은데.” 그래서 제가 거기서 파마도 다 말아주고 이제 그걸 가르쳤어요. 처음으로 제가 했던 미용실 그렇게 돈을 잘 벌었는데 이제 다른 사람 줬잖아요. 그렇더라도 그렇게 제가 공들여서 세운 미용실이고 살림을 했기 때문에 우리가 가서 부엌도 다 만들었거든요. 그전에 살림집이 아니었기 때문에 부엌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도 다 만들었어요.
옛날 분들 여기 계시잖아요. 옛날 파마하면 머릿속이 막 헐고 곰발(부스럼) 나고 그래서 파마 못 한 사람들도 있고 그랬어요. 우리 이모님 시누이가 아무리 잘한 데서 파마 해도 막 곰발 나서 파마 안 한다고 하니까 우리 이모님이 우리 홍선이한테 한 번만 해보라고. “아니, 그래도 소용없다.”고 “나는 했다 하면 아무리 좋은 약으로 해도, 비싼 머리를 해도 곰발 난다.” “그러면 한 번만 해보고 곰발 나면 내가 돈 줄게.” 할 정도로 그렇게 하라 했는데 나한테 해서 곰발이 하나 안 났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그 뒤로부터 계속 파마하셨어요.
이제 저는 곰발 안 나게 파마하는 방법을 터득을 했어요. 저는 창작을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 주님을 알고 보니까 주님께서 모든 것을 해 주신 거예요. 여기 미용사들 계실 거예요. 파마를 말면 이렇게 이렇게 머릿속을 막 잡아당겨서 말면 안 되고 이렇게 딱 잡아서 끝으로 끝까지 다 잘 들어가게 해서 이렇게 머릿속은 안 아프게 잡아당기면서 방법을 제가 터득해서 그렇게 하니까 곰발이 안 생겨요.
그리고 사람들은 다 말아놓고 파마약을 이렇게 발라요. 그렇게 다 발라버리면 머릿속으로 약이 다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머리가 상할 수밖에 없어요. 머리가 아파요. 그런데 그렇게 안 하고 저는 일일이 뒤로 떠들어서 그걸 꼼꼼히 발라요. 그러면 머리에 안 가 두피가 하나도 안 상해요. 그렇게 하니까 약도 많이 안 들어요.
그런데 잘 못한 사람은 약을 적게 쓰면 머리가 완전히 파슬파슬한데 저는 주님께서 다 가르쳐준 거예요. 그런데 이제까지 제 미용 기술을 가르쳐주려고 했는데 제대로 배운 사람이 없어요. 못 배우더라고요. 제대로 가르쳐 줄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해서 제가 며칠간을 그렇게 해 주고 나 파마 좀 해 주라고 막 거기 와서 그러면 거기 오는 손님들 하나도 뺏기지 않고 거기서 할 수 있도록 나는 이제 안 한다고. 그렇게 하면서 그 사람들 그 미용실에서 하도록 했어요.
제가 암까지 걸려서 도저히 어떤 병원에서도 저를 낫게 할 수가 없었잖아요. 그래서 제가 마지막 죽으려고 죽음을 준비하고 유서 7통을 다 써놓고 나가려고 했을 때 율리오 씨가 들어와서 “여보, 여보! 오늘 성당을 좀 가자.”고 그래서 성당을 가게 된 거예요.
그전에 광주 한의원에 한번 갔는데요. 거기서도 도저히 안 된다고 해서 버스를 타고 나주로 내려오는데 어떤 아저씨가 제 옆에 앉아서 “아, 암이 걸리셨네요.” 전부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어디 가면 병을 나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그러니까 저는 이제 나아야 되잖아요. 도저히 어디서도 못 나으니까. 그래서 그 아저씨를 따라갔어요. 그때 여기 목도 암으로 다 막혀 물도 못 들어가요. 항문도 다 막혀서 대변을 못 본 지가 7개월 됐어요.
그랬는데 세상에, 그곳에서 밥을 먹으라는 거예요. 그래서 “아 저 밥 못 먹어요. 물도 못 먹어요.” 그랬더니 “잡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막 먹으래요. 김에다 밥을 싸줘요. 그래서 먹었는데 아니, 딱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 아니, 내가 밥이 들어가네!’ 그리고 계속 먹어봤는데요. 밥 한 그릇을 다 먹었어요, 김에다. 또 한 그릇을 줘요. 먹을 수 있으니까 또 먹었어요. 밥 두 그릇을 먹었어요. 제가 이제 살길 났잖아요.
7개월간은 물도 못 먹었는데 살 수 있게 됐잖아요. 정말 잘 들어보세요. 제가 집에 가서 율리오 씨한테 그 이야기를 하고 “이제 난 살 수 있게 됐다.”고 하니까 율리오 씨가 거기도 사이비라고 절대 가면 안 된대요. 그래서 “당신이 못 가게 해도 나는 우리 어머니, 우리 아이들 때문에 살아야 된다.” 그런데 율리오 씨가 안 된다는 거예요. “아, 그래도 난 간다.”고 짐을 챙겼어요. 율리오 씨는 제가 여지껏 못 먹은 줄도 잘 모르죠. 내가 먹은 척하고 그랬으니까. 다 숨겼으니까 끝까지 몰랐어요.
한번 어떤 할머니가 암 걸려서 말 안 해서 막 울었어요. 제가 “말하지. 말하지.” 그러니까 율리오 씨는 “당신도 말 안 했잖아.” 그러고 울고 그랬는데. 그러니까 이제 율리오 씨는 더 말 못 하고 TV를 딱 틀었어요. 그런데 세상에, 내가 갈려고 했던, 그 종교 교주가 잡혀가는 거예요. 그래서 마귀가 그렇게 할 수가 있어요. 보세요. 제가 7개월간 물도 못 먹은 사람이 밥을 두 그릇을 먹었잖아요. 그리고 나서 하나도 못 먹었어요. 그런데 거기가 길이 아니라는 것을 주님께서 보여주신 거예요. 마귀가 이렇게도 다 할 수 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 죽으려고 할 때, 율리오 씨가 “여보, 여보, 오늘 성당을 좀 가자.”고 그래서 유서 7통, 남편 다음 부인 될 사람한테까지 다 썼거든요. 남편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해 줘야 되고. 혼자 뭘 잘 못하니까. 그래서 그걸 이제 얼른 숨겨놓고 성당에 갔는데. 성당에 가서 아멘으로 제가 살아난 뒤로 예비자 때 성령 세미나를 받는데 저보고 무슨 은사를 받고 싶냐고 그래요.
그런데 제가 예비자 때, 성당만 다니니까 뭔가 너무 아쉬워요. 너무 (영적으로) 배고파서 그래서 “신부님, 더 배울 것 없어요?” 그랬더니 “뭘 더 배우고 싶으세요?” “뭔가 더 배우고 싶어요. (영적으로) 너무 목말라요.” 그랬더니 어느 날, “아주머니, 아주머니 뭐 배울 거 있어요!” 그래서 “뭡니까?” 그랬더니 세미나를 한 대요. 저는 세미나가 뭔지도 몰라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한다고 그래서 제가 갔는데 그 팀에서 무슨 은사를 원하냐고 그래서 “나는 치유의 은사를 원한다.”고. 왜 그러냐고 그래서 “우리 큰아들을 의학박사 만들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나같이 돈 없어서 병원도 못 가보고. 저 병원도 못 갔잖아요. 우리 시어머니 돈 대느라고. 저는 맹물로 많이 살았어요.
우리 아들 의학박사 만들어서 돈 벌려고가 아니라 나같이 돈 없어서 병원에 못 간 사람들 좀 나아 줄 수 있도록 그런 의학박사 만들라고 했다고 그러면서 이제 이렇게 좋은 은사가 있으니 의학박사 아니더라도 괜찮다고 그랬어요. 제가 받은 은총을 이야기했더니 거기서 엄청 좋아했어요.
그 뒤로 주님께서 또 부르셔서 여러 가지 보여주시고. 저에게는 예수님께서 예수 성심의 그 모습을 많이 보여주셨고. 자비의 예수님도 여러 번 보여주셨고. 그렇게 예수님 성심에 미친 여자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그래, 나는 예수 성심에 미친 여자 맞다.” 정말 성모님은 잘 몰라도 “예수 성심에 미친 여자는 맞다.”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애들 다 키우고 나서 율리오 씨하고 차 하나 사서 개조해서 (가난한) 외지에 돈 안 받고 성령 봉사자로 다니고 싶었습니다. 제가 예비자 때부터 성령 봉사자였어요. 그래서 초청받아서 다니는데 돈이 없으면 초청을 못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봉고차라도 사서 개조해서 둘이 거기서 잠자고, 밥 해 먹고, 낮에는 외지 돌아다니면서 돈 안 받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생각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부부끼리 그렇게 사는 게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한번은 연탄 장사가 있었는데. 이렇게 남자는 (리어카) 끌고, 뒤에서 여자는 밀고 가요. 너무 부럽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같이 밀어줬어요, 언덕 올라갈 때. 그 둘이 얼마나 사이가 좋은지, 그거는 잘 모르겠지만. 둘이 그렇게 하는 것이 저는 너무 좋았어요. 그때도 연탄의 원리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나도 저렇게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서 많은 사람들을 사랑으로 불태워주는 사람이 돼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또 겨울이었는데 율리오 씨하고 어디 두붓집을 갔어요. 그런데 율리오 씨가 “콩물 좀 먹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예~ 얼마든지요.” 그러면서 “몇 그릇 줄까요?” “두 그릇만 주세요.” 그런데 아저씨가 “여보, 좀 많이 줘.” 그래요. 안 그래도 나도 아가씨가 너무나 예쁘고 선하고 좋아서 나도 많이 주려고 했더니 양푼에다 하나씩 주라고. 그래서 둘이 하나씩 가지고 와서 남자는 율리오 씨한테 주고, 여자는 나한테 주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보면서 너무 부러운 거예요. ‘와~ 저렇게 부부끼리 함께 일하니까 얼마나 좋은가!’ 두 분을 보면서 너무나 사랑스럽게 보였어요. 정말 꽃같이 보였어요. ‘그런 식으로 나도 결혼해서 그렇게 알콩달콩 살아야지. 1등 부부가 돼야지. 잉꼬 부부가 돼야지.’ 그래서 제가 1등 부부가 되려고 1등 여관에서 약혼식도 했거든요.
그랬는데 제가 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가 몰라요. 신부님한테도 아무 이야기도 못 하겠어요. 나 지금 완전히 여기 머리가 하얘진 것이 아니라 까매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알아서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셨어요.
그런데 여러분, 어때요? 우리가 하고 싶은 일 다 마음대로 안 되죠? 저도 누구하고 살든지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율리오 씨가 나하고 같이 그렇게 살고 싶어서 안 산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옛날에 나를 그렇게 좋아했고, 뭐 돈방석에 앉힌다고 하고, 별별 사람 다 나타났어도 아직까지 제가 단 한 번도 지금까지도 ‘아, 그 사람 만났으면 어땠을까? 내가 더 잘 살았을까?’ 해본 적 없어요. 하느님 모를 때도 그런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저는 일편단심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물건을 사도 맨날 한 군데만 가요.
그런데 우리 율리오 씨가 나 아프다고 부엌에서 뭐 하나 해준 거, 기억이 안 나요. 기억이 안 나도 괜찮아. 해 준 셈 치면 되니까. 내가 몇 번 말했는데. 옛날 나 좋아했던 그 사람들 안 만난 것이 내 일생일대에 (천운이다!) 그 정도 생각했어요. 그래서 율리오 씨 안 만났으면 하느님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예비하셨기 때문에, 율리오 씨를 만나게 해주셨어요. 그래서 여러분들 혹시라도 ‘율리오 씨, 왜 그랬을까?’ 그러지 마세요. 율리오 씨 만나서 지금 제가 여러분 앞에 있는 것입니다.
율리오 씨랑 헤어지려고 했던 것은 시댁 식구들이 그렇게 계속하니까 ‘그래. 나 같은 것이 없어져 주는 것이 낫겠다.’ 그랬고. 또 의형이 “저런 아픈 마누라 내보내 버려! 내가 처녀장가 보내줄게.” 그랬는데 율리오 씨가 아무 말도 않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이제 헤어지려고 그랬어요. 그리고 상당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어떤 사람이 나았겠다, 약사가 나았겠다, 의사가 나았겠다, 판사가 나았겠다.’ 그때 당시에 집이 3채가 있는 그 사람 만났으면 어땠을까?’ 거기는 시댁 식구들도 없고 아주 딱 둘이만 아주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자고 했는데 ‘그렇게 하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자, 여러분, 주님과 성모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내가 우리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지. 예수님께서 보내주셨나? 하느님께서 보내주셨나?’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래서 우리는 그 운명으로 태어났으니까 운명으로 받아들이면 돼요. 내가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안 되는 거는 ‘그래, 나한테 하느님께서 시련을 허락하시는구나!’ 시련을 허락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 이제까지 많은 고생해 오셨을 것입니다.
저는 자율신경 실조증이 몇십 년 전에 왔는데 여러분들 위해서 제가 고통 받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자율신경 실조증 계신 분들도 다 치유받으세요. 진심으로 아멘 잘하면 치유받아요. 부신피질 호르몬이 15까지가 정상인데 제가 3.3 정도가 나왔대요. 그러니까 스테로이드 그걸 계속 맞았어요. 서울대병원까지 갔어요. 서울대병원에서 “아니, 나한테 무엇을 도움받으렵니까? 저도 그 약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왔어요. ‘아, 여기서 예수님께서 보지 말란 소리구나.’ 그래서 제가 ‘병원에서 볼 일은 아니다.’ 하고 나왔어요.
그래서 이제 주님께 맡기고 의탁하고 이제 응답을 구해서 제가 또 이렇게 기도하면서 정상이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스테로이드 계속 맞거나 하면 안 됩니다. 내가 뭐 의사도 아닌데 이렇게 계속 다른 이야기 하고 있네. 죄송합니다.
주님과 성모님께서 다 치유해 주실 수 있지만 아까 여러분 다 들으셨잖아요. 우리 이경희 마리아 자매님 왔는데 이경희 마리아 몇 년 됐지? (만 33년!) 만 33년~ 나와봐. 나면서 심장에 구멍이 뚫리고 또 여기 뭐. 네가 이야기해 봐.
이경희 마리아 자매님 : 저는 부산 사람입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탁구공만한 구멍이 나서 “소리도 못 내고 죽는다.” 했는데 그 병원이 메리놀 병원이었습니다. 그리고 3년 동안 치료해 나아서 왔는데 저는 결혼하면 안 되는 것도 모르고 지금 제 남편을 만나서 결혼하고 살면서 심장이 터져버렸습니다.
“심장에 구멍이 나서 이제 수술 안 하면 죽는다.” 했습니다. 그때 제가 27살 때였는데 “서른도 못 살고 죽는다.” 했는데 제가 심장 수술을 9시간 반. 전부 다 갈라서 했는데 그러고 저는 심장 수술하면 나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러고 난 뒤 계속 가슴뼈가 여기가 나중에 이제 보니까 골수암이라 하더라고요. 메리놀 병원에서 제가 대수술을 4번을 했습니다. 갈빗대 5대 잘라냈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쇠 박고 있습니다.
나주에 죽으러 왔습니다. 내 생애 마지막이라고. 그때 길어야 6개월이고 2~3개월도 못 살고 죽는다 메리놀에서 저 나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하느님 ‘하’자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 병실에 들렀던 뚱 마리아라는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그 뚱 마리아 자매님은 신장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 뚱 마리아 자매님 신장이 없는 상태에서 나주 와서 정말 기적과 같이 살아났습니다.
그 형님이 버스 차량을 하면서 제가 처음 이제 여길 왔는데 저는 이래 살 줄은 몰랐습니다. 저한테는 원수가 있었습니다. 그 원수가 제 남편이었습니다.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진짜로요. 제가 죽이고 싶었습니다, 정말. 목에 칼도 대봤습니다. 그 미움이 암까지 오는 줄 몰랐습니다. 그러니 나주에 와서 맨날 울었습니다. 처음에 왔다 갔는데 그다음 날에 나주가 또 오고 싶은 거예요.
그리고 처음 왔을 때에 엄마가 너무 고통받아서 못 나온다고 하더라고. 그때는 내 생애 마지막으로 제가 이 성모님집을 왔습니다. 같이 다니는 자매 하나가 눈물, 피눈물 비디오테이프를 부산에 있을 때 보여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 눈물 피눈물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저 피눈물은 내 죄 때문에 흘린다. 저 눈물은 내 죄 때문에 흘린다.’ 얼마나 우리 골방에서 회개했는지. 가다가 죽어도 좋으니까 저기 한 번 꼭 갔다가 내가 죽게 해달라고 제가 그렇게 부산에서 여길 왔는데 엄마가 못 나오신다 하시더라고.
저는 너무나 간절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또 올 수 있지만 저는 생애 마지막으로 왔던 곳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엄마가 이렇게 들것에 거의 실리다시피 하셔서 배가. 저는 저 뒤에 앉아 있었고 그래 이제 엄마 처음 대면을 했는데 봉사자들이 있어서 엄마 손도 못 대게 하더라고. 나는 내 생애 마지막인데. 나는 저분 꼭 손 한번 잡고 갈 기다. 나는 죽어도 저분을 한번 만지고 갈 거다.
그런데 진짜 거짓말 안 하고 저 뒤에 있었는데 메뚜기 뛰는 것처럼 툭 뛰어서 내가 엄마 손을 딱 잡았대. 그러니까 옆에 막 저보고 뭐라 하는 거라. 큰일 난다고. 내가 “어머니~” 했어요. 엄마가 손 딱 잡더니 “놔둬라.” 하면서 제 손을 못 떼게 하는데 엄마가 손을 잡았는데 제 오른쪽 어깨가 온몸에서 딱 끊어질 정도로 영이 내리더라고요.
그리고 돌아갔는데 그다음 날 되니까 또 오고 싶은 거라, 엄마한테. 그러면서 미친 듯이 진짜 다녔습니다. 우리 일주일에 2번, 3번씩 오면 엄마하고 거의 살다시피 했습니다. 한 5년을. 그~래 좋은기라. 새벽에 왔다가 그다음 날 가고 그랬는데. 제가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율리아님 : 미음도 못 먹고 죽도 못 먹고 그렇게 있다가 나주에 오면 밥을 한 그릇씩 두 그릇씩 한 솥도 먹었어요.
이경희 마리아 자매님 : 제가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암 환자가 왜 죽는가? 못 먹어서 죽는다는 걸 제가 깨달았어요. 제가 마지막에 전부 돌덩이처럼 다 굳었어요. 소변도 한 방울도 안 나와요. 주사를 그렇게 맞아도. 물도 한 방울도 못 먹어요. 그리고 저는 뼈가 썩어 들어가기 때문에 2년 동안을 앉아서 살았습니다.
율리아님 : 골수암이 다 썩어들어 간대요.
이경희 마리아 자매님 : 뼈가 썩어 들어가니까 제 손으로 아이도 키울 수 없었고 내 남편은 송장 썩는 내 난다고 집 나가버리고 저는 밤마다 죽음과 고통과 싸웠습니다. 그런데 나주를 와보니까 여기 암 환자들이 많더라고. 여기 오니까 가라 소리도 안 하고 엄마가. 마음껏 밥 해 먹을 수도 있고 너무너무 좋더라고요, 여기가. 집에 가면 밤마다 죽음의 공포가 오는데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랬는데 나주를 오니까 너무 좋아 사흘들이 왔습니다. 이렇게 물도 못 먹던 제가. 나주에 왔는데 밥이 먹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밥도 안 싸가 와서 못 먹으니까 식당 방에 가니까 사람들이 막 밥을 먹는데 김치에다가. 자매님도 한번 먹어보라 하니까 “나는 물도 한 방울 못 먹는데요.” 이랬더만 “먹어보라.” 해서 그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그때부터 이제 나주만 오면 밥 먹고 진짜 똥도 나오고 소변도 나오고 막 여기 엄마한테만 오면 젖내가 젖내가- 그렇게 맛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하루 (있다) 가는 예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행사 3일 전에 옵니다. 3일 전에 와서 봉사도 하고 엄마하고 더 같이 있고 싶어서 그렇게 했는데 지금 이렇게 건강해졌습니다. 7년 전에 폐가 오그러들어서 심장 수술(한 게) 다시 터졌어요. 저한테 그냥 산다 소리 하지 말라 했어요. 안 그러면 수술 안 해 준댔어요.
그런데 엄마가 기도와 보속 고통으로 오그라진 심장이 중환자실에서 다 풀리고 기적수 먹고 다 풀렸어요. 지금도 엄마 없으면 못 삽니다. 어린애도 아니고 맨날 엄마한테 “엄마~ 엄마~!”하고 다닌다 아닙니까? 33년! 제가 혼자 살아 있습니다. 저 혼자. 이렇게 온다 아닙니까? 죽으나 사나.
안젤라 엄마(이 마리아 자매님 대모)는 사연이 많습니다. 그 사람 정신이 뻥 돌아버렸다 ‘말씀 증거 천막’에 잡혀가서. 나 보고 가자 하데. 한 번 갔다 왔지. 갔다 왔는데 아니더라고. 안젤라 엄마도 여기 계속 왔으면 살았을 건데 증거장막(신천지) 갔다가 와서 정신병까지 앓았다니까.
율리아님 : 광주교구 때문이에요. 광주교구에서 교령을 내니까. 그전에 그 안젤라 자매가 너무너무 열심히 다녔거든요. 그랬는데 광주교구에서 여기 못 오게 하니까. 한번 왔어요.어떡하면 좋냐고 그래서 여기 돈 안 받고 얼마든지 있으라고 밥도 주고 재워주고 다 하겠다고 그랬더니 아, 하루는 갑자기 없어졌어요. 그런데 집문서를 갖고 온 거예요.
이경희 마리아 자매님 : 국제시장에 제일 계란 노란자, 그것도 억수로 그때 비쌌습니다. 그때 한 18억 갔습니다. 34년 전에. 그거 엄마한테 가지고 왔는데 엄마가 받나. 안 받았지.
율리아님 : 저는 안 받아요. 아무것도. 그래서 안 받고 다시 돌려줬어요. 그래서 그냥 여기 있으라. 이건 안 받을 테니까 그랬는데 안 받으니까 미안하니까 가버렸어요. 그러니까 체면과 이목을 생각하지 말고 주님과 성모님께 우리는 달아들어야 돼요. 어린아이처럼 달아들어야 돼요. 그때 암 걸려서 오신 분들 그렇게 여기와서 치유받았는데 안 오고 많이 하늘 나라 갔어요.
이경희 마리아 자매님 : 억수로 많다 아이가 엄마. 저는 여기 와 살았습니다.
율리아님 : 그래서 이렇게 힘들면 여기 나주 쫓아와 버리면 또 괜찮아지고.
이경희 마리아 자매님 : 아멘!
율리아님 : 그래서 정말 우리 잘 살아야 돼요. 그때 12처 앞에 나중에 제가 봤거든요. 그런데 그걸 사진을 크게 찍으니까 나주 성모님집에 십자가 성혈 아시죠? 그거예요. 그랬는데 그때 대건 안드레아라고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갑자기 이거 딴 사람이 조작해서 했으면 어쩌냐고 그래서, 무슨 조작이냐고 그랬더니 성냥골로 딱 찍어놓은 것 같다고. 그래서 너무 마음 아파서 기도를 했어요. 그 뒤로 여기 봉사자들 몇 사람 데리고 나가버렸어요. 그랬는데 얼마 안 있다 죽었대요. 건강했던 사람인데, 젊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훼사훼언하고 그렇게 훼방하면 안 되죠.
그런데 그 안젤라 자매가 그런 식으로 해서 죽었잖아요. 그때 제가 광주교구 교구장님한테랑 이야기했어요. 이혼해서 18년이나 됐는데 나주에 와서 다시 그 남편 찾아다가 잘살고 있었는데 그 사람 또 이렇게 가서 병들었다고 누가 책임질 거냐고 그랬더니 “우리 책임 안 져요.” 그러더라고요.
그 자매는요. 기도만 했다면 다 해 주셨어요. 한번은 그 자매 딸이 신장에 돌이 들었대요. 그래서 메리놀 병원에서 수술하려고 남편은 딸 옆에 있고 이 자매가 여기 왔어요. 그래서 성모님 앞에서 “엄마, 우리 딸 돌 나가게 해 주세요.” 그랬는데 나한테 그걸 기도해 주라고 하더라고요. 기도했는데 그 자매가 기도도 안 하고 방에 들어가서 잤어요.
그런데 오기 전에 ‘10만 원을 봉헌해야지.’ 하고 왔대요. 그랬는데 세상에, 너무 아깝더래요. 그래서 3만 원만 봉헌하고 기도도 안 하고 잤대요. 그랬더니 “너는 왜 그렇게 인색하느냐?” 그 소리가 들리더래요. 그래서 ‘아이고, 안 되겠다.’ 10만 원을 딱 봉헌하니까 “너의 딸의 돌이 나갔다.” 그러시더래요.
그래서 남편한테 전화해서 수술하지 말라고! 아침에 수술하기로 했는데 남편이 수술 안 한다고 사진만 한 번 찍어주라고 하니까 할 수 없이 사진 찍으니까, 돌이 싹 나가버렸더래요. 거기는 엄청 많은 은총을 받았고 또 병도 치유됐어요. 그런데 꾸준히 다니는 것이 그렇게 중요해요.
그분이 계속 자기가 은총 받으니까 차(대형버스) 한 대씩 그렇게 데리고 왔는데 한번은 바빠서 다른 사람한테 시켰대요. 그런데 그날 오려고 보니까 딱 6명이 왔더래요. 딱 6명이 와서 자기 남편한테 나까지 6명밖에 안 된다고 못 가겠다고 그러니까 남편이 뭔 소리냐고 “36만 원 내가 줄게!” 갔다 오라고. 그랬는데 한 사람도 남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고 45명이 딱 타고 여기를 왔어요. 그래서 나한테 그 36만 원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거는 이미 하느님한테 냈다. 남편한테 갖다줘라. 그래서 다시 보냈어요. 그렇게 은총을 많이 받았어요.
우리가 하느님의 도성! 여기 와서 정말 마음의 문만 활짝 연다면 주님과 성모님께서 모든 것을 다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대림 준비를 해야 되잖아요. 이제부터라도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나쁜 친구들 다 내보냅시다. 예수님, 성모님께 다 맡겨 드리세요. 그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대림절을 맞이해서 우리 함께 예수님을 만나도록 합시다.
5대 영성 잘 실천해서 우리 함께 마지막 날 천국 갑시다. 그리고 대림절을 잘 준비해서 예수님 잘 만나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제가 좌골 신경통이 없었는데요. 어제부터 엄청 아파서 앉아있기도 힘들 정도로 많이 아팠는데 여러분의 치유를 위해서 고통받았으니까 좌골 신경통 앓으신 분들 오늘 다 치유받으십시오. 그리고 지난번에 분명히 많은 심장 환자들 치유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여기 나오기 전에 제가 성사를 봤는데 방에 향유를 주셨어요. 제가 이 한복을 입고 나왔는데 그때 가슴이 많이 아팠거든요. 여러분들 치유받으세요. 그런데 옷을 벗으니까 이렇게 가슴 여기 빨갛게 생겨서 “성혈 주셨는가?” 누가 그랬어요. 그런데 성혈은 아니고. 제 가슴에서 이렇게 뿜어져 나온 것 같아요.
제가 아까 목욕하면서 혼자 못하고 우리 자매님 도움 받아서 했는데 오늘은 너무 힘들어서 머리도 못 잘랐어요. 제가 손가락 아프니까 머리를 못 하는데 드라이로 제가 하면서 여러분들의 정말 펴지지 않고 악습으로 굳어진 그런 마음도 아름답게 펴주시라고 기도하면서 희생으로 바쳤습니다. 오늘은 제가 도저히 일어날 수도 없었어요. 자, 이런 모든 것들도 여러분 위해서 다 봉헌했으니까 여러분, 다 치유받으십시오.
은총 증언하신 분들 엄마께 감사한다고 그랬는데요. 이 모든 감사는 제가 받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 성모님께 다 돌려드립니다.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거든요. 잠시 잠깐 도구로만 사용됐을 뿐이기 때문에 저에게 감사하지 마시고 오로지 주님 성모님께 감사드립시오. 여러분께서 혹시 성모님께 감사드린다 해도 성모님도 하나도 안 가지시고 예수님께 다 드리십니다. 저는 부족한 죄인일 뿐이고 모든 것은 잠시 잠깐 저를 도구로 사용하셨으니까 오로지 주님께서 영광 드립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도성! 여기 와서 정말 마음의 문만 활짝 연다면
주님과 성모님께서 모든 것을 다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아멘♡♡♡♡♡♡♡
하느님의 거룩한 도성 나주 성지~♡
회개와 은총의 장소인 지상 천국~♡
정통 카톨릭을 따라가는 곳 나주~♡
무엇을 더 말해야 하겠습니까?
귀가 있는 사람은 듣고 눈이 있는 사람은 볼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주님과 성모님을 영접한다면
우리 모두 구원받아 천국을 누리게 될 테니까요...
티 없으신 성모 성심의 승리가 반드시 이루어져
저희의 두 눈으로 기필코 보게 될 것입니다.
아멘!!!
제가 손가락 아프니까 머리를 못 하는데 드라이로
제가 하면서 여러분들의 정말 펴지지 않고 악습으로
굳어진 그런 마음도 아름답게 펴주시라고 기도하면서
희생으로 바쳤습니다. 오늘은 제가 도저히 일어날 수도
없었어요. 자, 이런 모든 것들도 여러분 위해서 다 봉헌
했으니까 여러분, 다 치유받으십시오.아멘!!!아멘!!!아멘!!!
감사합니다 !!!
자, 여러분, 주님과 성모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내가 우리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지. 예수님께서 보내주셨나? 하느님께서 보내주셨나?’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래서 우리는 그 운명으로 태어났으니까 운명으로 받아들이면 돼요. 내가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안 되는 거는 ‘그래, 나한테 하느님께서 시련을 허락하시는구나!’ 시련을 허락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이에요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반갑습니다.
2023년 첫 토요일은 오늘이 마지막이네요. 이제 대림절 맞이했죠? 예수님을 기다리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5대 영성 실천!) 예,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다 비우고 우리가 5대 영성을 실천해야 되겠죠? 5대 영성을 실천하면 저희들 마음이 다 비워지겠죠? 그리고 우리가 회개하도록 합시다. 다른 때도 회개해야 되지만 대림절에 더욱더 예수님을 우리 마음 안에 모실 수 있도록 회개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려면 어떻게 해야 오시겠어요? 내 마음 안에 나쁜 친구가 많이 있으면 못 들어오셔요. 그래서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나쁜 친구를 다 내보내자고요. 제일 나쁜 친구가 뭐예요? (교만, 시기 질투, 자아 등) 잘 아십니다, 말씀은 안 하셔도 다 알고 계시죠?
우리 마음 안에 교만이 있으면 안 됩니다. 교만은 온 세상을 무너뜨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교만이 있으면 안 되죠. 그런데 사람은 나약하기 때문에 한번씩 교만해질 수 있어요. 그런데 그 교만을 없애려고 노력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죠?
여러분, 제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오늘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맨날 제가 힘들었다고 하니까 말하기도 참 미안한데 제가 고통을 많이 받을수록 여러분께서 많이 치유가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제가 고통받은 것을 말씀드립니다. 오늘 자궁 아프신 분들도 많이 치유될 것 같아요.
여자들 자궁이 깨끗하신 분들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목욕을 하는데요. 자궁이 너무너무 송곳으로 쑤시는 것같이 아픈 거예요. ‘아, 오늘 자궁 치유 많이 되겠다. 또 음란죄 많이 빠져나가겠다.’ 음란죄 무섭죠? 음란죄, 오늘 다 물리칩시다.
제가 여러분을 위해서 고통을 받을 때, 그때 고통만 딱 받고 고통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질병으로도 옵니다. 어느 날, 어떤 할머니가 아들네 집에 무엇을 해다 주려고 밤중에 ‘밤에 차가 없을 거다.’ 하고 횡단보도를 걸어가는데 그냥 봉고차가 그 할머니를 받아버린 거예요. 그런데 보니까 안 죽은 거예요. 그래서 다시 가서 쳐버렸어요.
그리고 그 할머니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갔죠. 이제 남광주 병원에 그 할머니가 입원해서 봉사해 준 분 어머니여서 제가 갔어요. 갔는데 (뼈가) 다 부러져 버려 심장도 폐도 다 뚫려서 침대에 못 올리고 바닥에 눕혀놨어요. 바닥에 눕힌 건 처음 봤어요. 그랬는데 그전에 제가 그 할머니에게 분도 패를 하나 줬어요. 신자 아니에요. 그랬는데 그분이 지갑에다 넣고 다녔대요.
그분에게 기적수를 먹였어요. 그런데 3일 만에 딸이 엄마한테 갔는데 벌써 나아서 병실에 병자 방문 갔대요. 그리고 또 한 분, 그때는 경당에서 기도회 할 때예요. 만남을 하는데 지금은 막 일찍 가려고 그냥 막 하시잖아요. 4시 좀만 넘어도 그냥 막 투정하시고. 그런데 그전에는 제가 만남 다 하고 10시 본당 미사 갔어요.
그때 어떤 자매님이 너무 서럽게 우니까 제가 “어떤 일 있으세요?” 그랬더니 “아이고!” 동생이 병원에서 허리를 못 나아서 다리를 여기다 묶어놨대요. 그랬는데 이제 여기 이야기 듣고 그 동생이 그걸 풀고 기도회를 와버린 거예요. 그래서 뒤에 앉아있었는데 그 동생이 나아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이 언니가 이제 죽을 줄만 알았던 동생이 그렇게 치유돼 너무너무 감사해서 운다고 그래요.
그 두 분 고통을 제가 받았거든요. 그러고 나서 제 허리가 전방전위증, 신경공 협착증이 와버렸어요. 그런데 저는 고통을 받으면서 “행복한 고통”이라고 “희망 있는 고통”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그때 그렇게 그분들 기도해 주면서 제가 허리 고통을 받았는데 그 뒤로 지금까지 허리가 안 아파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결혼하자마자 저는 신혼여행 안 가고 광주가 시댁인데 광주로 갔어요. 그랬는데 거기 시댁 식구들도 많고 시어머니 친척들이 엄청 많아요. 그런데 사돈네 팔촌까지 다 절을 시켜 절을 한나절을 했어요. 그랬는데 제가 약혼하고 미용실을 하면서 율리오 씨와 같이 살았어요. 왜냐하면 의형 맺은 형님 집에서 율리오 씨가 있었는데 거기 형수님이 여자들이 율리오 씨를 너무 따르니까 도저히 안 되겠다고 결혼을 하래요.
그래서 “저는 결혼 지금 할 수가 없어요.” 그랬더니 그러면 약혼했으니까 나주에서 미용실이라도 하면서 밥을 해 주래요. 그래서 제가 “나는 결혼해서 살 거지. 난 절대 그럴 수 없다.” 했더니 좀 화를 내시더라고요. “그러면 알아서 하소! 여자들한테 남자 뺏기든지 말든지 나는 모르겠네!” 저녁 12시가 넘어도 아가씨들이 찾아와서 안 간대요.
율리오 씨한테도 “아이, 약혼자가 있다고 하세요.” 그러니까 약혼자가 있다고 해도 그렇게 여자들이 온대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미용실을 하면서 같이 살았어요. 그런데 첫날부터 집에는 안 들어왔지만 어떻게 임신이 됐어요. 그랬는데 임신 8개월에 결혼을 했거든요?
그런데 세상에 배 이렇게 불러서 반듯한 마당도 아니고 울뚝불뚝한 마당에다 (멍석) 펴놓고 한나절 내 절을 했으니 저는 아기가 어떻게 될까 봐서 ‘아가야, 미안해. 아가야, 미안해. 제발 잘 견디어 (주렴.)’ 하면서 그냥 배에 손 얹은 것처럼 하면서 속으로 교감을 했어요. 계속 절을 하고 나니까 완전히 제 몸 다 붓고 다리도 퉁퉁 부었는데 시댁에서 계속 일을 시켰어요. 그래서 그 뒤치다꺼리를 다 했어요.
그런데 세상에 이틀 간을 잔치를 했거든요. 밖에서 하루 식당에서 크게 잔치했어요. 그리고 또 집에서 잔치를 또 했어요. 그런데 잔치하고 남은 해삼이 큰 다라이로 거의 반이 남아서 다 물러져 가요. 해삼 많이 해보신 분만 아실 거예요. 많이 있으면 막 이렇게 물러져 가요. 해삼이 옛날에 얼마나 비싸요. 그런데 해삼이 그렇게 있어요. 그런데 그거 버리니까 얼마나 아까워요. 그런데 먹으라고 안 하니까 못 먹죠. 우리 친정이 아니니까.
그런데 사흘 동안 결혼 뒤처리를 다 하고 미용실로 내려오기 전에 시어머니께서 빚을 갚아달라고 그래요. “무슨 빚이요?” 그랬더니 결혼했으니까 결혼 빚을 갚으래요. 너무나 황당하잖아요. 그래서 “아니, 어떤 결혼 빚이요?” 느그들 결혼했으니까 결혼 빚 갚으라고 그래서 “우리 어머니도 빚내서 하셨는데요.” 그랬더니 “느그 빚은 내가 알 바 없고!” 너희들 결혼했으니까 우리가 진 빚 7만 원 갚으라는 거예요.
70년도에 결혼 했는데요. 아니, 7만 원이 어디 있어요? 미용실을 팔지 않으면 돈을 갚을 수가 없잖아요.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프로젝트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그렇게 많은 일을 했어도 월급도 못 받고 그렇게 우리 어머니도 결혼시키면서 빚을 얻어서 하셨거든요. 그때 당시로는 우리 시골에서 우리 어머니가 제일 잘해주셨어요. 부잣집보다 더 해 줬어요.
그랬는데 결혼 빚을 갚으라고 하니까 돈이 있어야죠. 그래서 미용실을 내놨죠. 그런데 미용실을 제가 12만 원에 인수를 했었어요. 그랬는데 모든 것이 다 허술하니까 저희들이 가서 전부 인테리어도 다 하고 다 다시 꾸미고 모든 집기들도 다 들여 놔서 상당히 좋아졌어요. 그리고 처음에 손님도 없었는데 손님이 엄청 많아졌어요. 제가 워낙 꼼꼼하게 잘하니까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랬는데 갑자기 그렇게 결혼 빚을 갚으라고 하시니까 어떡해요. 나주로 내려와서 15만 원에 미용실을 내놨는데 세상에 사흘 만에 나주로 또 오셨어요. 결혼 빚을 빨리 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바로 급매로 12만 원에 내놨어요, 너무 잘해놨기 때문에 20만 원 받을 수 있다 했는데 급매로 12만 원에 내놨어요. 급매로 내놨는데도 얼른 안 나가요.
그런데 3일 만에 또 오셔서 빨리 돈 달라고 하셔서 “어머니 지금 미용실을 내놨어요.”그랬는데 또 오셔서 급급매로 10만 원에 내놨더니 바로 그 미용실이 팔렸어요. 그래서 시어머니께 7만 원을 드렸더니 시어머니가 “왜 이것만 주냐? 얼마에 팔았냐?” 그래서 10만 원 팔았다고 “더 받을 수 있었지만 어머니가 급하게 달라고 하시니까 급급매로 10만 원을 받아서 7만 원 어머니 드리고, 3만 원으로 우리 전셋집을 얻어야 돼요.” 그랬더니 그냥 돈을 확 채서 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오, 그래. 아가 너무 수고했다. 고맙다.” 하고 그렇게 저를 쓰다듬어주신 셈 치고,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을 했어요. 그런데 그것이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이었다니까요. 그런데 그 뒤로 이제 집을 얻으려니까 어떻게 3만 원으로 전세를 어떻게 얻겠어요? 그렇게 혼자 돌아다니다가 나주 시내에 3만 원짜리 전세가 없어요. 그래서 1.7평짜리 단칸방, 그리고 부엌 하나 있는 문간채를 얻었어요. ‘그래도 그거라도 어디냐? 얻을 수 있었으니까.’ 하고 살았어요.
옛날부터 제가 부부끼리 싸운 거 많이 보고 부부끼리 싸우면 애들 때리는 것을 많이 봤어요. 그래서 ‘나는 절대 저렇게 안 해야지.’ 그러면서 월산동 이모님 댁에서 살 때 뒷집 아줌마가 그렇게 막 아저씨하고 싸우고 물건이 날아가고 막 양판이 날아가고 그랬는데 아기를 때리더라고요. 다 보여요. 그래서 아기를 위해서, 그 사람들을 위해서도 생활의 기도를 했어요.
그 부부가 좀 잘 살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아, 나는 절대로 저렇게 안 살아야지.’ 그랬습니다. 제가 결혼 빚 갚고 미용실을 팔았으니 미용실을 그만두고 혼자 이사 했어요. 그리고 우리 어머니한테 말할 수도 없잖아요. 또 우리 어머니는 빚을 내서 결혼을 시키셨기 때문에 또 남의 밭도 매시고 뭐 일을 이것저것 하셨어요.
“우리 시어머니가 빚 갚아주라고 해서 미용실 팔았어요.” 할 수 없잖아요. 우리 어머니가 다 차려주셨는데. 여러분, 우리가 남편 흉보고 시어머니 흉보면 나한테 침 뱉기에요. 나쁘게 말할 필요 없어요. 어떤 사람에게 “우리 시어머니 이래. 우리 남편은 이래.” 그러면 그 사람이 도와줍니까? 여러분, 도와줍니까? (아니요!) 안 도와주죠? (네!) 그러니까 그런 말, 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왜 미용실 그만두냐?” 그러면 “아, 우리 남편이 배불러 가니까 몸 무겁다고 당신 고생한다고 미용실 그만하라고 해서 그만둔다.”고 남편을 이렇게 좋게 해 줘야죠.
그래서 저는 그 무거운 몸을 가지고 혼자 이사 다 하고 그다음 날 급급매로 판 서울 미용실을 갔어요. 왜냐하면 이제 걱정되는 거예요. ‘내가 없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돼서 가봤더니 손님이 없어요. 내가 가니까 “어머, 웬일이세요?” 그래서 “아니, 내가 혹시 가르쳐줄 거 있으면 가르쳐 주려고 왔어요. 그래도 되겠어요?” “아! 그러면 너무 좋죠. 여기는 아주 잘한다고 소문이 나고 유명했잖아요.”
그래서 있는데 나한테 그 단골손님이 지나가다 들어와 어머, 왔냐고! “아까 보니까 없어서 그냥 갔는데 왔다.”고 그러면서 “나 파마도 하고 싶은데.” 그래서 제가 거기서 파마도 다 말아주고 이제 그걸 가르쳤어요. 처음으로 제가 했던 미용실 그렇게 돈을 잘 벌었는데 이제 다른 사람 줬잖아요. 그렇더라도 그렇게 제가 공들여서 세운 미용실이고 살림을 했기 때문에 우리가 가서 부엌도 다 만들었거든요. 그전에 살림집이 아니었기 때문에 부엌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도 다 만들었어요.
옛날 분들 여기 계시잖아요. 옛날 파마하면 머릿속이 막 헐고 곰발(부스럼) 나고 그래서 파마 못 한 사람들도 있고 그랬어요. 우리 이모님 시누이가 아무리 잘한 데서 파마 해도 막 곰발 나서 파마 안 한다고 하니까 우리 이모님이 우리 홍선이한테 한 번만 해보라고. “아니, 그래도 소용없다.”고 “나는 했다 하면 아무리 좋은 약으로 해도, 비싼 머리를 해도 곰발 난다.” “그러면 한 번만 해보고 곰발 나면 내가 돈 줄게.” 할 정도로 그렇게 하라 했는데 나한테 해서 곰발이 하나 안 났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그 뒤로부터 계속 파마하셨어요.
이제 저는 곰발 안 나게 파마하는 방법을 터득을 했어요. 저는 창작을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 주님을 알고 보니까 주님께서 모든 것을 해 주신 거예요. 여기 미용사들 계실 거예요. 파마를 말면 이렇게 이렇게 머릿속을 막 잡아당겨서 말면 안 되고 이렇게 딱 잡아서 끝으로 끝까지 다 잘 들어가게 해서 이렇게 머릿속은 안 아프게 잡아당기면서 방법을 제가 터득해서 그렇게 하니까 곰발이 안 생겨요.
그리고 사람들은 다 말아놓고 파마약을 이렇게 발라요. 그렇게 다 발라버리면 머릿속으로 약이 다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머리가 상할 수밖에 없어요. 머리가 아파요. 그런데 그렇게 안 하고 저는 일일이 뒤로 떠들어서 그걸 꼼꼼히 발라요. 그러면 머리에 안 가 두피가 하나도 안 상해요. 그렇게 하니까 약도 많이 안 들어요.
그런데 잘 못한 사람은 약을 적게 쓰면 머리가 완전히 파슬파슬한데 저는 주님께서 다 가르쳐준 거예요. 그런데 이제까지 제 미용 기술을 가르쳐주려고 했는데 제대로 배운 사람이 없어요. 못 배우더라고요. 제대로 가르쳐 줄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해서 제가 며칠간을 그렇게 해 주고 나 파마 좀 해 주라고 막 거기 와서 그러면 거기 오는 손님들 하나도 뺏기지 않고 거기서 할 수 있도록 나는 이제 안 한다고. 그렇게 하면서 그 사람들 그 미용실에서 하도록 했어요.
제가 암까지 걸려서 도저히 어떤 병원에서도 저를 낫게 할 수가 없었잖아요. 그래서 제가 마지막 죽으려고 죽음을 준비하고 유서 7통을 다 써놓고 나가려고 했을 때 율리오 씨가 들어와서 “여보, 여보! 오늘 성당을 좀 가자.”고 그래서 성당을 가게 된 거예요.
그전에 광주 한의원에 한번 갔는데요. 거기서도 도저히 안 된다고 해서 버스를 타고 나주로 내려오는데 어떤 아저씨가 제 옆에 앉아서 “아, 암이 걸리셨네요.” 전부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어디 가면 병을 나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그러니까 저는 이제 나아야 되잖아요. 도저히 어디서도 못 나으니까. 그래서 그 아저씨를 따라갔어요. 그때 여기 목도 암으로 다 막혀 물도 못 들어가요. 항문도 다 막혀서 대변을 못 본 지가 7개월 됐어요.
그랬는데 세상에, 그곳에서 밥을 먹으라는 거예요. 그래서 “아 저 밥 못 먹어요. 물도 못 먹어요.” 그랬더니 “잡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막 먹으래요. 김에다 밥을 싸줘요. 그래서 먹었는데 아니, 딱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 아니, 내가 밥이 들어가네!’ 그리고 계속 먹어봤는데요. 밥 한 그릇을 다 먹었어요, 김에다. 또 한 그릇을 줘요. 먹을 수 있으니까 또 먹었어요. 밥 두 그릇을 먹었어요. 제가 이제 살길 났잖아요.
7개월간은 물도 못 먹었는데 살 수 있게 됐잖아요. 정말 잘 들어보세요. 제가 집에 가서 율리오 씨한테 그 이야기를 하고 “이제 난 살 수 있게 됐다.”고 하니까 율리오 씨가 거기도 사이비라고 절대 가면 안 된대요. 그래서 “당신이 못 가게 해도 나는 우리 어머니, 우리 아이들 때문에 살아야 된다.” 그런데 율리오 씨가 안 된다는 거예요. “아, 그래도 난 간다.”고 짐을 챙겼어요. 율리오 씨는 제가 여지껏 못 먹은 줄도 잘 모르죠. 내가 먹은 척하고 그랬으니까. 다 숨겼으니까 끝까지 몰랐어요.
한번 어떤 할머니가 암 걸려서 말 안 해서 막 울었어요. 제가 “말하지. 말하지.” 그러니까 율리오 씨는 “당신도 말 안 했잖아.” 그러고 울고 그랬는데. 그러니까 이제 율리오 씨는 더 말 못 하고 TV를 딱 틀었어요. 그런데 세상에, 내가 갈려고 했던, 그 종교 교주가 잡혀가는 거예요. 그래서 마귀가 그렇게 할 수가 있어요. 보세요. 제가 7개월간 물도 못 먹은 사람이 밥을 두 그릇을 먹었잖아요. 그리고 나서 하나도 못 먹었어요. 그런데 거기가 길이 아니라는 것을 주님께서 보여주신 거예요. 마귀가 이렇게도 다 할 수 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 죽으려고 할 때, 율리오 씨가 “여보, 여보, 오늘 성당을 좀 가자.”고 그래서 유서 7통, 남편 다음 부인 될 사람한테까지 다 썼거든요. 남편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해 줘야 되고. 혼자 뭘 잘 못하니까. 그래서 그걸 이제 얼른 숨겨놓고 성당에 갔는데. 성당에 가서 아멘으로 제가 살아난 뒤로 예비자 때 성령 세미나를 받는데 저보고 무슨 은사를 받고 싶냐고 그래요.
그런데 제가 예비자 때, 성당만 다니니까 뭔가 너무 아쉬워요. 너무 (영적으로) 배고파서 그래서 “신부님, 더 배울 것 없어요?” 그랬더니 “뭘 더 배우고 싶으세요?” “뭔가 더 배우고 싶어요. (영적으로) 너무 목말라요.” 그랬더니 어느 날, “아주머니, 아주머니 뭐 배울 거 있어요!” 그래서 “뭡니까?” 그랬더니 세미나를 한 대요. 저는 세미나가 뭔지도 몰라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한다고 그래서 제가 갔는데 그 팀에서 무슨 은사를 원하냐고 그래서 “나는 치유의 은사를 원한다.”고. 왜 그러냐고 그래서 “우리 큰아들을 의학박사 만들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나같이 돈 없어서 병원도 못 가보고. 저 병원도 못 갔잖아요. 우리 시어머니 돈 대느라고. 저는 맹물로 많이 살았어요.
우리 아들 의학박사 만들어서 돈 벌려고가 아니라 나같이 돈 없어서 병원에 못 간 사람들 좀 나아 줄 수 있도록 그런 의학박사 만들라고 했다고 그러면서 이제 이렇게 좋은 은사가 있으니 의학박사 아니더라도 괜찮다고 그랬어요. 제가 받은 은총을 이야기했더니 거기서 엄청 좋아했어요.
그 뒤로 주님께서 또 부르셔서 여러 가지 보여주시고. 저에게는 예수님께서 예수 성심의 그 모습을 많이 보여주셨고. 자비의 예수님도 여러 번 보여주셨고. 그렇게 예수님 성심에 미친 여자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그래, 나는 예수 성심에 미친 여자 맞다.” 정말 성모님은 잘 몰라도 “예수 성심에 미친 여자는 맞다.”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애들 다 키우고 나서 율리오 씨하고 차 하나 사서 개조해서 (가난한) 외지에 돈 안 받고 성령 봉사자로 다니고 싶었습니다. 제가 예비자 때부터 성령 봉사자였어요. 그래서 초청받아서 다니는데 돈이 없으면 초청을 못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봉고차라도 사서 개조해서 둘이 거기서 잠자고, 밥 해 먹고, 낮에는 외지 돌아다니면서 돈 안 받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생각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부부끼리 그렇게 사는 게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한번은 연탄 장사가 있었는데. 이렇게 남자는 (리어카) 끌고, 뒤에서 여자는 밀고 가요. 너무 부럽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같이 밀어줬어요, 언덕 올라갈 때. 그 둘이 얼마나 사이가 좋은지, 그거는 잘 모르겠지만. 둘이 그렇게 하는 것이 저는 너무 좋았어요. 그때도 연탄의 원리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나도 저렇게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서 많은 사람들을 사랑으로 불태워주는 사람이 돼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또 겨울이었는데 율리오 씨하고 어디 두붓집을 갔어요. 그런데 율리오 씨가 “콩물 좀 먹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예~ 얼마든지요.” 그러면서 “몇 그릇 줄까요?” “두 그릇만 주세요.” 그런데 아저씨가 “여보, 좀 많이 줘.” 그래요. 안 그래도 나도 아가씨가 너무나 예쁘고 선하고 좋아서 나도 많이 주려고 했더니 양푼에다 하나씩 주라고. 그래서 둘이 하나씩 가지고 와서 남자는 율리오 씨한테 주고, 여자는 나한테 주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보면서 너무 부러운 거예요. ‘와~ 저렇게 부부끼리 함께 일하니까 얼마나 좋은가!’ 두 분을 보면서 너무나 사랑스럽게 보였어요. 정말 꽃같이 보였어요. ‘그런 식으로 나도 결혼해서 그렇게 알콩달콩 살아야지. 1등 부부가 돼야지. 잉꼬 부부가 돼야지.’ 그래서 제가 1등 부부가 되려고 1등 여관에서 약혼식도 했거든요.
그랬는데 제가 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가 몰라요. 신부님한테도 아무 이야기도 못 하겠어요. 나 지금 완전히 여기 머리가 하얘진 것이 아니라 까매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알아서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셨어요.
그런데 여러분, 어때요? 우리가 하고 싶은 일 다 마음대로 안 되죠? 저도 누구하고 살든지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율리오 씨가 나하고 같이 그렇게 살고 싶어서 안 산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옛날에 나를 그렇게 좋아했고, 뭐 돈방석에 앉힌다고 하고, 별별 사람 다 나타났어도 아직까지 제가 단 한 번도 지금까지도 ‘아, 그 사람 만났으면 어땠을까? 내가 더 잘 살았을까?’ 해본 적 없어요. 하느님 모를 때도 그런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저는 일편단심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물건을 사도 맨날 한 군데만 가요.
그런데 우리 율리오 씨가 나 아프다고 부엌에서 뭐 하나 해준 거, 기억이 안 나요. 기억이 안 나도 괜찮아. 해 준 셈 치면 되니까. 내가 몇 번 말했는데. 옛날 나 좋아했던 그 사람들 안 만난 것이 내 일생일대에 (천운이다!) 그 정도 생각했어요. 그래서 율리오 씨 안 만났으면 하느님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예비하셨기 때문에, 율리오 씨를 만나게 해주셨어요. 그래서 여러분들 혹시라도 ‘율리오 씨, 왜 그랬을까?’ 그러지 마세요. 율리오 씨 만나서 지금 제가 여러분 앞에 있는 것입니다.
율리오 씨랑 헤어지려고 했던 것은 시댁 식구들이 그렇게 계속하니까 ‘그래. 나 같은 것이 없어져 주는 것이 낫겠다.’ 그랬고. 또 의형이 “저런 아픈 마누라 내보내 버려! 내가 처녀장가 보내줄게.” 그랬는데 율리오 씨가 아무 말도 않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이제 헤어지려고 그랬어요. 그리고 상당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어떤 사람이 나았겠다, 약사가 나았겠다, 의사가 나았겠다, 판사가 나았겠다.’ 그때 당시에 집이 3채가 있는 그 사람 만났으면 어땠을까?’ 거기는 시댁 식구들도 없고 아주 딱 둘이만 아주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자고 했는데 ‘그렇게 하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자, 여러분, 주님과 성모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내가 우리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지. 예수님께서 보내주셨나? 하느님께서 보내주셨나?’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래서 우리는 그 운명으로 태어났으니까 운명으로 받아들이면 돼요. 내가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안 되는 거는 ‘그래, 나한테 하느님께서 시련을 허락하시는구나!’ 시련을 허락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 이제까지 많은 고생해 오셨을 것입니다.
저는 자율신경 실조증이 몇십 년 전에 왔는데 여러분들 위해서 제가 고통 받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자율신경 실조증 계신 분들도 다 치유받으세요. 진심으로 아멘 잘하면 치유받아요. 부신피질 호르몬이 15까지가 정상인데 제가 3.3 정도가 나왔대요. 그러니까 스테로이드 그걸 계속 맞았어요. 서울대병원까지 갔어요. 서울대병원에서 “아니, 나한테 무엇을 도움받으렵니까? 저도 그 약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왔어요. ‘아, 여기서 예수님께서 보지 말란 소리구나.’ 그래서 제가 ‘병원에서 볼 일은 아니다.’ 하고 나왔어요.
그래서 이제 주님께 맡기고 의탁하고 이제 응답을 구해서 제가 또 이렇게 기도하면서 정상이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스테로이드 계속 맞거나 하면 안 됩니다. 내가 뭐 의사도 아닌데 이렇게 계속 다른 이야기 하고 있네. 죄송합니다.
주님과 성모님께서 다 치유해 주실 수 있지만 아까 여러분 다 들으셨잖아요. 우리 이경희 마리아 자매님 왔는데 이경희 마리아 몇 년 됐지? (만 33년!) 만 33년~ 나와봐. 나면서 심장에 구멍이 뚫리고 또 여기 뭐. 네가 이야기해 봐.
이경희 마리아 자매님 : 저는 부산 사람입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탁구공만한 구멍이 나서 “소리도 못 내고 죽는다.” 했는데 그 병원이 메리놀 병원이었습니다. 그리고 3년 동안 치료해 나아서 왔는데 저는 결혼하면 안 되는 것도 모르고 지금 제 남편을 만나서 결혼하고 살면서 심장이 터져버렸습니다.
“심장에 구멍이 나서 이제 수술 안 하면 죽는다.” 했습니다. 그때 제가 27살 때였는데 “서른도 못 살고 죽는다.” 했는데 제가 심장 수술을 9시간 반. 전부 다 갈라서 했는데 그러고 저는 심장 수술하면 나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러고 난 뒤 계속 가슴뼈가 여기가 나중에 이제 보니까 골수암이라 하더라고요. 메리놀 병원에서 제가 대수술을 4번을 했습니다. 갈빗대 5대 잘라냈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쇠 박고 있습니다.
나주에 죽으러 왔습니다. 내 생애 마지막이라고. 그때 길어야 6개월이고 2~3개월도 못 살고 죽는다 메리놀에서 저 나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하느님 ‘하’자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 병실에 들렀던 뚱 마리아라는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그 뚱 마리아 자매님은 신장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 뚱 마리아 자매님 신장이 없는 상태에서 나주 와서 정말 기적과 같이 살아났습니다.
그 형님이 버스 차량을 하면서 제가 처음 이제 여길 왔는데 저는 이래 살 줄은 몰랐습니다. 저한테는 원수가 있었습니다. 그 원수가 제 남편이었습니다.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진짜로요. 제가 죽이고 싶었습니다, 정말. 목에 칼도 대봤습니다. 그 미움이 암까지 오는 줄 몰랐습니다. 그러니 나주에 와서 맨날 울었습니다. 처음에 왔다 갔는데 그다음 날에 나주가 또 오고 싶은 거예요.
그리고 처음 왔을 때에 엄마가 너무 고통받아서 못 나온다고 하더라고. 그때는 내 생애 마지막으로 제가 이 성모님집을 왔습니다. 같이 다니는 자매 하나가 눈물, 피눈물 비디오테이프를 부산에 있을 때 보여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 눈물 피눈물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저 피눈물은 내 죄 때문에 흘린다. 저 눈물은 내 죄 때문에 흘린다.’ 얼마나 우리 골방에서 회개했는지. 가다가 죽어도 좋으니까 저기 한 번 꼭 갔다가 내가 죽게 해달라고 제가 그렇게 부산에서 여길 왔는데 엄마가 못 나오신다 하시더라고.
저는 너무나 간절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또 올 수 있지만 저는 생애 마지막으로 왔던 곳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엄마가 이렇게 들것에 거의 실리다시피 하셔서 배가. 저는 저 뒤에 앉아 있었고 그래 이제 엄마 처음 대면을 했는데 봉사자들이 있어서 엄마 손도 못 대게 하더라고. 나는 내 생애 마지막인데. 나는 저분 꼭 손 한번 잡고 갈 기다. 나는 죽어도 저분을 한번 만지고 갈 거다.
그런데 진짜 거짓말 안 하고 저 뒤에 있었는데 메뚜기 뛰는 것처럼 툭 뛰어서 내가 엄마 손을 딱 잡았대. 그러니까 옆에 막 저보고 뭐라 하는 거라. 큰일 난다고. 내가 “어머니~” 했어요. 엄마가 손 딱 잡더니 “놔둬라.” 하면서 제 손을 못 떼게 하는데 엄마가 손을 잡았는데 제 오른쪽 어깨가 온몸에서 딱 끊어질 정도로 영이 내리더라고요.
그리고 돌아갔는데 그다음 날 되니까 또 오고 싶은 거라, 엄마한테. 그러면서 미친 듯이 진짜 다녔습니다. 우리 일주일에 2번, 3번씩 오면 엄마하고 거의 살다시피 했습니다. 한 5년을. 그~래 좋은기라. 새벽에 왔다가 그다음 날 가고 그랬는데. 제가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율리아님 : 미음도 못 먹고 죽도 못 먹고 그렇게 있다가 나주에 오면 밥을 한 그릇씩 두 그릇씩 한 솥도 먹었어요.
이경희 마리아 자매님 : 제가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암 환자가 왜 죽는가? 못 먹어서 죽는다는 걸 제가 깨달았어요. 제가 마지막에 전부 돌덩이처럼 다 굳었어요. 소변도 한 방울도 안 나와요. 주사를 그렇게 맞아도. 물도 한 방울도 못 먹어요. 그리고 저는 뼈가 썩어 들어가기 때문에 2년 동안을 앉아서 살았습니다.
율리아님 : 골수암이 다 썩어들어 간대요.
이경희 마리아 자매님 : 뼈가 썩어 들어가니까 제 손으로 아이도 키울 수 없었고 내 남편은 송장 썩는 내 난다고 집 나가버리고 저는 밤마다 죽음과 고통과 싸웠습니다. 그런데 나주를 와보니까 여기 암 환자들이 많더라고. 여기 오니까 가라 소리도 안 하고 엄마가. 마음껏 밥 해 먹을 수도 있고 너무너무 좋더라고요, 여기가. 집에 가면 밤마다 죽음의 공포가 오는데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랬는데 나주를 오니까 너무 좋아 사흘들이 왔습니다. 이렇게 물도 못 먹던 제가. 나주에 왔는데 밥이 먹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밥도 안 싸가 와서 못 먹으니까 식당 방에 가니까 사람들이 막 밥을 먹는데 김치에다가. 자매님도 한번 먹어보라 하니까 “나는 물도 한 방울 못 먹는데요.” 이랬더만 “먹어보라.” 해서 그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그때부터 이제 나주만 오면 밥 먹고 진짜 똥도 나오고 소변도 나오고 막 여기 엄마한테만 오면 젖내가 젖내가- 그렇게 맛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하루 (있다) 가는 예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행사 3일 전에 옵니다. 3일 전에 와서 봉사도 하고 엄마하고 더 같이 있고 싶어서 그렇게 했는데 지금 이렇게 건강해졌습니다. 7년 전에 폐가 오그러들어서 심장 수술(한 게) 다시 터졌어요. 저한테 그냥 산다 소리 하지 말라 했어요. 안 그러면 수술 안 해 준댔어요.
그런데 엄마가 기도와 보속 고통으로 오그라진 심장이 중환자실에서 다 풀리고 기적수 먹고 다 풀렸어요. 지금도 엄마 없으면 못 삽니다. 어린애도 아니고 맨날 엄마한테 “엄마~ 엄마~!”하고 다닌다 아닙니까? 33년! 제가 혼자 살아 있습니다. 저 혼자. 이렇게 온다 아닙니까? 죽으나 사나.
안젤라 엄마(이 마리아 자매님 대모)는 사연이 많습니다. 그 사람 정신이 뻥 돌아버렸다 ‘말씀 증거 천막’에 잡혀가서. 나 보고 가자 하데. 한 번 갔다 왔지. 갔다 왔는데 아니더라고. 안젤라 엄마도 여기 계속 왔으면 살았을 건데 증거장막(신천지) 갔다가 와서 정신병까지 앓았다니까.
율리아님 : 광주교구 때문이에요. 광주교구에서 교령을 내니까. 그전에 그 안젤라 자매가 너무너무 열심히 다녔거든요. 그랬는데 광주교구에서 여기 못 오게 하니까. 한번 왔어요.어떡하면 좋냐고 그래서 여기 돈 안 받고 얼마든지 있으라고 밥도 주고 재워주고 다 하겠다고 그랬더니 아, 하루는 갑자기 없어졌어요. 그런데 집문서를 갖고 온 거예요.
이경희 마리아 자매님 : 국제시장에 제일 계란 노란자, 그것도 억수로 그때 비쌌습니다. 그때 한 18억 갔습니다. 34년 전에. 그거 엄마한테 가지고 왔는데 엄마가 받나. 안 받았지.
율리아님 : 저는 안 받아요. 아무것도. 그래서 안 받고 다시 돌려줬어요. 그래서 그냥 여기 있으라. 이건 안 받을 테니까 그랬는데 안 받으니까 미안하니까 가버렸어요. 그러니까 체면과 이목을 생각하지 말고 주님과 성모님께 우리는 달아들어야 돼요. 어린아이처럼 달아들어야 돼요. 그때 암 걸려서 오신 분들 그렇게 여기와서 치유받았는데 안 오고 많이 하늘 나라 갔어요.
이경희 마리아 자매님 : 억수로 많다 아이가 엄마. 저는 여기 와 살았습니다.
율리아님 : 그래서 이렇게 힘들면 여기 나주 쫓아와 버리면 또 괜찮아지고.
이경희 마리아 자매님 : 아멘!
율리아님 : 그래서 정말 우리 잘 살아야 돼요. 그때 12처 앞에 나중에 제가 봤거든요. 그런데 그걸 사진을 크게 찍으니까 나주 성모님집에 십자가 성혈 아시죠? 그거예요. 그랬는데 그때 대건 안드레아라고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갑자기 이거 딴 사람이 조작해서 했으면 어쩌냐고 그래서, 무슨 조작이냐고 그랬더니 성냥골로 딱 찍어놓은 것 같다고. 그래서 너무 마음 아파서 기도를 했어요. 그 뒤로 여기 봉사자들 몇 사람 데리고 나가버렸어요. 그랬는데 얼마 안 있다 죽었대요. 건강했던 사람인데, 젊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훼사훼언하고 그렇게 훼방하면 안 되죠.
그런데 그 안젤라 자매가 그런 식으로 해서 죽었잖아요. 그때 제가 광주교구 교구장님한테랑 이야기했어요. 이혼해서 18년이나 됐는데 나주에 와서 다시 그 남편 찾아다가 잘살고 있었는데 그 사람 또 이렇게 가서 병들었다고 누가 책임질 거냐고 그랬더니 “우리 책임 안 져요.” 그러더라고요.
그 자매는요. 기도만 했다면 다 해 주셨어요. 한번은 그 자매 딸이 신장에 돌이 들었대요. 그래서 메리놀 병원에서 수술하려고 남편은 딸 옆에 있고 이 자매가 여기 왔어요. 그래서 성모님 앞에서 “엄마, 우리 딸 돌 나가게 해 주세요.” 그랬는데 나한테 그걸 기도해 주라고 하더라고요. 기도했는데 그 자매가 기도도 안 하고 방에 들어가서 잤어요.
그런데 오기 전에 ‘10만 원을 봉헌해야지.’ 하고 왔대요. 그랬는데 세상에, 너무 아깝더래요. 그래서 3만 원만 봉헌하고 기도도 안 하고 잤대요. 그랬더니 “너는 왜 그렇게 인색하느냐?” 그 소리가 들리더래요. 그래서 ‘아이고, 안 되겠다.’ 10만 원을 딱 봉헌하니까 “너의 딸의 돌이 나갔다.” 그러시더래요.
그래서 남편한테 전화해서 수술하지 말라고! 아침에 수술하기로 했는데 남편이 수술 안 한다고 사진만 한 번 찍어주라고 하니까 할 수 없이 사진 찍으니까, 돌이 싹 나가버렸더래요. 거기는 엄청 많은 은총을 받았고 또 병도 치유됐어요. 그런데 꾸준히 다니는 것이 그렇게 중요해요.
그분이 계속 자기가 은총 받으니까 차(대형버스) 한 대씩 그렇게 데리고 왔는데 한번은 바빠서 다른 사람한테 시켰대요. 그런데 그날 오려고 보니까 딱 6명이 왔더래요. 딱 6명이 와서 자기 남편한테 나까지 6명밖에 안 된다고 못 가겠다고 그러니까 남편이 뭔 소리냐고 “36만 원 내가 줄게!” 갔다 오라고. 그랬는데 한 사람도 남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고 45명이 딱 타고 여기를 왔어요. 그래서 나한테 그 36만 원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거는 이미 하느님한테 냈다. 남편한테 갖다줘라. 그래서 다시 보냈어요. 그렇게 은총을 많이 받았어요.
우리가 하느님의 도성! 여기 와서 정말 마음의 문만 활짝 연다면 주님과 성모님께서 모든 것을 다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대림 준비를 해야 되잖아요. 이제부터라도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나쁜 친구들 다 내보냅시다. 예수님, 성모님께 다 맡겨 드리세요. 그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대림절을 맞이해서 우리 함께 예수님을 만나도록 합시다.
5대 영성 잘 실천해서 우리 함께 마지막 날 천국 갑시다. 그리고 대림절을 잘 준비해서 예수님 잘 만나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제가 좌골 신경통이 없었는데요. 어제부터 엄청 아파서 앉아있기도 힘들 정도로 많이 아팠는데 여러분의 치유를 위해서 고통받았으니까 좌골 신경통 앓으신 분들 오늘 다 치유받으십시오. 그리고 지난번에 분명히 많은 심장 환자들 치유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여기 나오기 전에 제가 성사를 봤는데 방에 향유를 주셨어요. 제가 이 한복을 입고 나왔는데 그때 가슴이 많이 아팠거든요. 여러분들 치유받으세요. 그런데 옷을 벗으니까 이렇게 가슴 여기 빨갛게 생겨서 “성혈 주셨는가?” 누가 그랬어요. 그런데 성혈은 아니고. 제 가슴에서 이렇게 뿜어져 나온 것 같아요.
제가 아까 목욕하면서 혼자 못하고 우리 자매님 도움 받아서 했는데 오늘은 너무 힘들어서 머리도 못 잘랐어요. 제가 손가락 아프니까 머리를 못 하는데 드라이로 제가 하면서 여러분들의 정말 펴지지 않고 악습으로 굳어진 그런 마음도 아름답게 펴주시라고 기도하면서 희생으로 바쳤습니다. 오늘은 제가 도저히 일어날 수도 없었어요. 자, 이런 모든 것들도 여러분 위해서 다 봉헌했으니까 여러분, 다 치유받으십시오.
은총 증언하신 분들 엄마께 감사한다고 그랬는데요. 이 모든 감사는 제가 받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 성모님께 다 돌려드립니다.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거든요. 잠시 잠깐 도구로만 사용됐을 뿐이기 때문에 저에게 감사하지 마시고 오로지 주님 성모님께 감사드립시오. 여러분께서 혹시 성모님께 감사드린다 해도 성모님도 하나도 안 가지시고 예수님께 다 드리십니다. 저는 부족한 죄인일 뿐이고 모든 것은 잠시 잠깐 저를 도구로 사용하셨으니까 오로지 주님께서 영광 드립니다.
은총 많이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