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날벼락과 같이 슬픈 소식이 날아왔다. 작은외숙 밑에서 어릴 때부터 나와 함께 자라왔던 작은외숙의 큰아들인, 그렇게도 착하던 내 동갑내기 남동생 점영이가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었다.
죽음을 앞두고 있던 내게, 점영이의 사망 소식은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너무 갑작스럽고 마음 아픈 소식에 나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슬피 울었다. ‘점영아! 점영아! 너무나 착했던 네가 그렇게 하루아침에 이 세상을 떠나 버리다니….’
나의 삶은 늘 끝없는 시련과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나는 그런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기 위해 흐르는 눈물을 항상 밝은 미소 뒤에 감추며 살아왔다. 내가 너무나 힘들게 살아왔기에 나는 고통받는 이들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랬기에 점영이는 나에게 더 특별한 동생이었다. 그 동생과 나는 어려서부터 한집에서 작은외숙에게 늘 매를 맞고 살아왔다. 특히 우리 둘은 귀뺨을 많이 맞아 귀가 잘 안 들려 늘 같이 명태 찜질을 했다. 그렇게 동병상련의 아픔을 공유했기에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말기 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내게 더더욱 사무치게 다가왔다.
‘점영아!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그리도 잘못했기에 너와 나는 왜 이러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단 말이냐?’
작은외숙은 아들이 둘 있었는데 큰아들은 조금만 잘못해도 얼마나 욕을 하시며 귀뺨을 때리곤 하셨다. 그런데 작은아들은 어떤 잘못을 해도, 무슨 짓을 해도 야단 한 번 안 치고 엄청 예뻐하며 편애하셨다.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대를 물려줄 장남을 좋아하는데 작은외숙은 오히려 큰아들을 미워하셨다. 그래서 큰아들인 점영이는 그러한 아버지 밑에서 늘 소외감을 느끼며 슬픔 속에 살아왔다. 나는 그런 점영이가 늘 가엽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점영아, 이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힘들게 할지라도 우리 모든 것을 사랑받은 셈 치고 굳세게 살아가 보자.” 하며 다독여주고 위로해주곤 하였다. 친정어머니는 그런 점영이를 친아들처럼 극진히 사랑하시며 잘 챙겨주셨고, 점영이도 우리 어머니를 무척 잘 따랐다.
그래서 점영이의 죽음으로 어머니께서 받은 충격이 너무 심하여 출상이 끝나고 집으로 오셨을 때 심장병까지 유발될 정도였다.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중얼거리며 “내가 죽으면 네가 나를 염한다더니, 내가 너를 염하게 하느냐, 이놈아!” 하시면서 계속 통곡하셨다.
마르지 않는 어머니의 눈물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던가! 하나밖에 없는 친딸인 나도 지금 말기 암 시한부로 얼마나 더 살지도 모르는데... ‘친정 조카가 죽었어도 저 정도이신데, 하나밖에 없는 친딸이 암으로 죽으면 과연 어머니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비록 말기 암 사형선고를 받았을지언정 어떻게 해서든 낫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집에 돌아오신 어머니께 동생이 죽은 이유를 듣게 됐는데 사연이 기가 막혔다. 동생은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 총을 맞아 총알 파편이 옆구리 쪽에 박히게 되었다.
그런데 빼내지 못한 채 제대를 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총알 파편만 제거하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텐데, 부모님이 ‘남묘호랑개교’를 믿어, 병원에도 못 가게 막았다. 그래서 점영이는 그 후유증으로 몸이 많이 아파도 치료 한 번 못 하고 고된 농사일까지 해야 했다.
큰외숙의 큰아들인 오빠가 이를 안타깝게 여겨, 월남전 때 입은 상해 후유증을 보상받을 수 있도록 서류를 다 작성해주었다. 그러나 남묘호랑개교를 믿는 부모님이 막는 바람에 서류조차 제출하지 못하고 포기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때 큰오빠의 노여움도 대단했다. 그 서류만 제출했다면 동생은 상이군인으로 평생 일을 하지 않고도 먹고 지낼 수 있는 경제적 보상과 치료를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연히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남묘호랑개교 때문에 부모가 포기하도록 했던 것이다.
영혼을 피폐케하여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이단들이
이 세상에 정말 얼마나 많은지...
자유의지를 허락하신 주님께서 얼마나 아파하실까요?
당신께서 창조하신 인간들이 주님을 찾지 않고 마귀의 소굴에 빠져
지옥을 향해 가고 있으니 처참한 그 광경을 보시며 하느님의 의노의
잔을 내리지 않을 수 없으실 듯 싶어요.
불림받은 우리들만이라도 깨어서 5대 영성으로 무장하고 실천하여
많은 영혼들을 마리아의 구원방주에 태워 함께 천국갈 수 있도록
성모 성심의 승리와 전파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도록 해요.
주님! 부족한 저희들을 도구삼아 사랑의 불을 놓아 주시고
사랑의 기적을 행하시어 주님 영광 드러나게 해 주시옵소서. 아멘!
친정 조카가 죽었어도 저 정도이신데, 딸이 죽으면
과연 어머니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비록 말기 암 사형선고를 받았을지언정
어떻게 해서든 내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아멘!!!아멘!!!아멘!!!
감사합니다 !!!
‘점영아, 점영아. 너무나 착한 동생이었던 네가 그렇게 쉽게
하루아침에 이 세상을 떠나 버리다니….’
누구보다 외삼촌 동생의 마음을 잘 알고 이해하는 율리아 엄마께서
가장 많이 가슴이 아프셨겠어요. 잘못된 믿음과 사상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절실하게 느끼면서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멘~!
큰 외숙의 큰 오빠의 말따라 서류를 작성하고 제출만 했어도 치료를 받으며
간간이 정부의 도움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어떻게 한 부모가 똑같이 낳은 자식을 그렇게 다르게 대할 수 있는지
잘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간간히 세상에 그런 일들이 있다는 것을 들어
왔기에 많이 안타깝습니다.. 부모로부터 고통받고있는 무죄한 아이들과
그렇게 성인이된 사람들을 모두 나주성모님께 이끌어 주시어 함께 지상
천국 누리며 천국을 향해 가길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도 무지무지 감사합니다💖💖💖
+ + + + + + +
‘친정 조카가 죽었어도 저 정도이신데, 딸이 죽으면 과연 어머니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비록 말기 암 사형선고를 받았을지언정 어떻게 해서든
내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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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아멘~!! 아멘~!!!
넘 안타깝네요ㅠ...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따르냐가 정말 중요함을 느낍니다.ㅠ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433화 감사합니다.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과 사랑 가득 받으세요.
글과 댓글의 글자 수만큼 죄인들이 회개하고, 나/주/인/준/성/모/성/심/승/리/하/소/서. 아멘~!!!
“내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wlsgodqn님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묵상 프로젝트 은총의 글 올려주심에 너무나도 감사드려요~
wlsgodqn님과 그 가정에 축복이 가득하시고 항상 영육간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9월 첫토 기도회에 꼭 뵈어요~
나주 순례 꾸준히 다니시고 앞으로도 모든 일 잘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거짓 공지문과 PD수첩과 TV 조선의 탐사보도 세븐거짓 방송등으로 마리아의 구원방주에서
내리는 일 없이 예수님과 성모님을 따라서 5대 영성으로 무장하여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어서 빨리 나주성모님 인준과 극심한 고통을 봉헌하시는 율리아 엄마의 빠른 회복과
불가능이 없으신 하느님께서는 율리아 엄마를 33세 로 만들어 주시어 세계 각처에서
메시지와 5대 영성 전파로 모든이가 마리아의 구원방주에 승선하도록 해주소서~
천국에서 계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나주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전구해 주소서~
주여 영광과 찬미를 영원히 받으소서~ 성모님 기쁨만 가득하소서~ 아멘! 알렐루야~ ♡♡♡
외사촌 동생이 죽자 친정어머니는 심장병이 와버리고
어느 날, 날벼락과 같이 슬픈 소식이 날아왔다. 작은외숙 밑에서 어릴 때부터 나와 함께 자라왔던 작은외숙의 큰아들인, 그렇게도 착하던 내 동갑내기 남동생 점영이가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었다.
죽음을 앞두고 있던 내게, 점영이의 사망 소식은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너무 갑작스럽고 마음 아픈 소식에 나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슬피 울었다. ‘점영아! 점영아! 너무나 착했던 네가 그렇게 하루아침에 이 세상을 떠나 버리다니….’
나의 삶은 늘 끝없는 시련과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나는 그런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기 위해 흐르는 눈물을 항상 밝은 미소 뒤에 감추며 살아왔다. 내가 너무나 힘들게 살아왔기에 나는 고통받는 이들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랬기에 점영이는 나에게 더 특별한 동생이었다. 그 동생과 나는 어려서부터 한집에서 작은외숙에게 늘 매를 맞고 살아왔다. 특히 우리 둘은 귀뺨을 많이 맞아 귀가 잘 안 들려 늘 같이 명태 찜질을 했다. 그렇게 동병상련의 아픔을 공유했기에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말기 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내게 더더욱 사무치게 다가왔다.
‘점영아!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그리도 잘못했기에 너와 나는 왜 이러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단 말이냐?’
작은외숙은 아들이 둘 있었는데 큰아들은 조금만 잘못해도 얼마나 욕을 하시며 귀뺨을 때리곤 하셨다. 그런데 작은아들은 어떤 잘못을 해도, 무슨 짓을 해도 야단 한 번 안 치고 엄청 예뻐하며 편애하셨다.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대를 물려줄 장남을 좋아하는데 작은외숙은 오히려 큰아들을 미워하셨다. 그래서 큰아들인 점영이는 그러한 아버지 밑에서 늘 소외감을 느끼며 슬픔 속에 살아왔다. 나는 그런 점영이가 늘 가엽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점영아, 이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힘들게 할지라도 우리 모든 것을 사랑받은 셈 치고 굳세게 살아가 보자.” 하며 다독여주고 위로해주곤 하였다. 친정어머니는 그런 점영이를 친아들처럼 극진히 사랑하시며 잘 챙겨주셨고, 점영이도 우리 어머니를 무척 잘 따랐다.
그래서 점영이의 죽음으로 어머니께서 받은 충격이 너무 심하여 출상이 끝나고 집으로 오셨을 때 심장병까지 유발될 정도였다.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중얼거리며 “내가 죽으면 네가 나를 염한다더니, 내가 너를 염하게 하느냐, 이놈아!” 하시면서 계속 통곡하셨다.
마르지 않는 어머니의 눈물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던가! 하나밖에 없는 친딸인 나도 지금 말기 암 시한부로 얼마나 더 살지도 모르는데... ‘친정 조카가 죽었어도 저 정도이신데, 하나밖에 없는 친딸이 암으로 죽으면 과연 어머니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비록 말기 암 사형선고를 받았을지언정 어떻게 해서든 낫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집에 돌아오신 어머니께 동생이 죽은 이유를 듣게 됐는데 사연이 기가 막혔다. 동생은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 총을 맞아 총알 파편이 옆구리 쪽에 박히게 되었다.
그런데 빼내지 못한 채 제대를 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총알 파편만 제거하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텐데, 부모님이 ‘남묘호랑개교’를 믿어, 병원에도 못 가게 막았다. 그래서 점영이는 그 후유증으로 몸이 많이 아파도 치료 한 번 못 하고 고된 농사일까지 해야 했다.
큰외숙의 큰아들인 오빠가 이를 안타깝게 여겨, 월남전 때 입은 상해 후유증을 보상받을 수 있도록 서류를 다 작성해주었다. 그러나 남묘호랑개교를 믿는 부모님이 막는 바람에 서류조차 제출하지 못하고 포기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때 큰오빠의 노여움도 대단했다. 그 서류만 제출했다면 동생은 상이군인으로 평생 일을 하지 않고도 먹고 지낼 수 있는 경제적 보상과 치료를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연히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남묘호랑개교 때문에 부모가 포기하도록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