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나주 성지는 제 인생을 바꾸는 그리고 엄마께서 중언부언 외치시는 나주의 5대 영성,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실천만 한다면 진짜 인생 로또를 맞습니다. 저만 맞는 게 아니고 제가 순례를 인도한 저희 형제나 자매들, 지인들도 정말 로또를 맞았습니다.
저는 나주를 처음 순례한 게 1991년 10월이었습니다. 냉담 중이었을 때 나주 성모님 눈물 흘리시는 책자를 보고 ‘아, 하느님이 살아계실까?’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 날 나주 성모님 피눈물 흘리는 게 가짜라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못 하실 것이 없는데 성모님 피눈물은 절대 가짜가 아니니까 내가 직접 가보고 확인하고 전해야지 신빙성이 있겠다.’ 싶어서 나주를 순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교구에 성령 봉사를 열심히 했지만 가정에 평화가 없고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그 어떤 변화도 체험하지 못하고 그냥 제 자신만 기뻤습니다. 집도 보살피지도 않고 열심히 봉사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의 집에 작은 잡초 뜯지 말고, 내 집에 자라는 큰 잡초를 제거해야 된다.”는 엄마 말씀이 가슴에 너무 깊이 박혔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일까?’ 깊이 생각하던 중 남편만 너무 원망하고 가르치려 하던 제 자신을 발견하고, 성당에서 늘 미사 때 “제 탓이오, 제 탓이오.” 가슴을 두드렸지만, 속으로는 ‘네 탓이오, 네 탓이오.’ 했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내 탓이오의 영성으로 한번 살아보자.’ 하고 남편을 원망하지 않고 생활의 기도를 바치면서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준 남편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엄마께서 항상 내가 변화돼야 상대방이 변화된다는 그 말씀처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제 탓이다. 항상 생각하고 제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니까 남편이 변화되고 지금 열심히 열심히 나주에 순례하고 있습니다. 엄마께서 가르쳐주신 5대 영성을 실천하니까 가정이 변화되고 자녀가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느 날 어떤 자매에게 “나주에 한번 가볼래?” 말했습니다. 그 자매가 저 따라서 열심히 열심히 나주에 순례하고 나주 홍보할 때 직장 생활하면서 밥도 굶고 같이 동행해 주었습니다. 그 자매 남편 역시 너무나 많이 변화되어서 지금 하루에 묵주기도 20단 바치고 둘이 너무나 예쁘게 지금 순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낙태한 죄인이었고 ‘이 보속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던 중에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율리아 엄마 낙태 보속 고통을 얘기하고 교육시켰습니다. 낙태는 생명을 죽이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저희 아이들이 본의 아니게 임신을 하게 되고 낙태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께서 가르치신 ‘낙태는 살인이다.’ 생각하며 어려움 속에서도 낙태하지 않고 아이들 다 낳아서 손자 손녀들이 너무나 잘 크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요.
그리고 이번 명절 때 며느리가 저희 집에 왔을 때 친정에서 빨리 오라고 하는데 안 가는 거예요. ‘쟤들이 왜 저래 안 가고 저라노?’ 속으로는 좀 갔으면 했지만 “친정에 온 것처럼 편하게 쉬어라. 시댁은 쉬는 곳이다. 일하는 곳이 아니다.” 정말 쉬게 해 주고 사랑으로 해 주니까 친정에도 안 가려고 하고 저녁까지 먹더라고.
그다음 날 아들이 처갓집에 갔다가 또 우리 집에 온 거예요. 엄마 떡국 먹고 싶다고. 속으로 너무 힘들어 죽겠는데 ‘그래 오냐, 내가 사랑 실천해야지. 5대 영성 실천해야지. 아멘!’ 하고 떡국을 맛있게 끓여주니까 아들이 아이들이 많이 북적거리고 해도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서로 소중하게 여기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엄마, 역시 나주 다니는 집은 다릅니다.” 며느리는 소파에 가만히 앉아 떡국 먹고 가고. 제가 종이 되니까 평화가 오고 편하더라고요.
그리고 뭐가 생각나냐 하면 오래전에 저희 남편도 직장이 없었고 65살에 무슨 직장이 있겠어요? 쫓겨날 판인데. 저도 직장이 없었고 정말 30만 원이 우리 한 달 생활비였어요. 그런데 꿀룸에 청년 가두 홍보하는 소식이 들렸어요. 그래, 가보자고 30만 원 입금되는 동시에 서울로 향했습니다. 뛰어다니면서 가두 홍보하는데 막 기쁨이 말을 다 할 수 없이 가슴에 차서 미치겠는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우리 남편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여보! 내가 취직했다.” 이러는 거예요. 속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 금방 취직이 되는가?’ 이러고 안 믿었는데 오전 10시까지 주무신 분이 새벽 5시에 일어나고 진짜 일하러 가는 거예요. 71살까지 열심히 다녔습니다.
(나주를 전하려면) 첫 번째, 포기하지 않아야 됩니다. 1년이고 2년이고 저는 끝까지 갑니다. 왜냐하면 내가 나주에서 은혜를 받았고 엄마께서 “곁눈질하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으면 내가 여러분 책임지고 천국 데려간다.”고 그랬잖아요. 성부 하느님의 고굉지신인 엄마의 희생 공로를 통해 우리는 천국을 보장받고 구원받은 초월자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해야 됩니다! 저도 “안 되는데요.” 이랬는데 “할 수 있다!” 했습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증언 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우리 엄마를 생각해서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한번 해봅시다! 엄마 못 주무시잖아요. 그래서 저도 밤이고 낮이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면 엄마가 위로받고 또 생명이 연장되겠지요. 열심히 한번 뛰어봅시다. 이 모든 영광을 주님과 성모님께 돌려드리며 주님께서 저에게 힘을 주시리라 믿고 감사드리며 엄마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부 하느님의 고굉지신인 엄마의 희생 공로를 통해
우리는 천국을 보장받고 구원받은 초월자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해야 됩니다! 저도 “안 되는데요.” 이랬는데
“할 수 있다!” 했습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한번 해봅시다!
아멘^♡^
대애박~~~
성령의 전율이 어마 어마 합니다~!
우리 각자 각자에게 필요한 은총 내려주시길
간절히 청하시며 참독한 고통들을 봉헌하여 주신
율리아 엄마~♡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진복자들입니다. 아멘!!!
마리아 자매님 은총 증언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용기백배 불끈 힘이 났어요. 얼마나 감사한지요~
용왕매진~~~화이팅!!! 아멘♡♡♡♡♡♡♡
아멘 🙏
(나주를 전하려면) 첫 번째, 포기하지 않아야 됩니다. 1년이고 2년이고 저는 끝까지 갑니다. 왜냐하면 내가 나주에서 은혜를 받았고 엄마께서 “곁눈질하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으면 내가 여러분 책임지고 천국 데려간다.”고 그랬잖아요. 성부 하느님의 고굉지신인 엄마의 희생 공로를 통해 우리는 천국을 보장받고 구원받은 초월자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해야 됩니다! 저도 “안 되는데요.” 이랬는데 “할 수 있다!” 했습니다.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진돗개 근성이 참 와 닿았어요.
언제나 밝고 다정하신 모습 안에 나주 성모님을 향한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주님의 일꾼으로 꾸준히 나아가심에 큰 감동입니다.
저도 끈기있게 "할 수 있다!"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반갑습니다. 나주 성지는 제 인생을 바꾸는 그리고 엄마께서 중언부언 외치시는 나주의 5대 영성,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실천만 한다면 진짜 인생 로또를 맞습니다. 저만 맞는 게 아니고 제가 순례를 인도한 저희 형제나 자매들, 지인들도 정말 로또를 맞았습니다.
저는 나주를 처음 순례한 게 1991년 10월이었습니다. 냉담 중이었을 때 나주 성모님 눈물 흘리시는 책자를 보고 ‘아, 하느님이 살아계실까?’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 날 나주 성모님 피눈물 흘리는 게 가짜라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못 하실 것이 없는데 성모님 피눈물은 절대 가짜가 아니니까 내가 직접 가보고 확인하고 전해야지 신빙성이 있겠다.’ 싶어서 나주를 순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교구에 성령 봉사를 열심히 했지만 가정에 평화가 없고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그 어떤 변화도 체험하지 못하고 그냥 제 자신만 기뻤습니다. 집도 보살피지도 않고 열심히 봉사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의 집에 작은 잡초 뜯지 말고, 내 집에 자라는 큰 잡초를 제거해야 된다.”는 엄마 말씀이 가슴에 너무 깊이 박혔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일까?’ 깊이 생각하던 중 남편만 너무 원망하고 가르치려 하던 제 자신을 발견하고, 성당에서 늘 미사 때 “제 탓이오, 제 탓이오.” 가슴을 두드렸지만, 속으로는 ‘네 탓이오, 네 탓이오.’ 했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내 탓이오의 영성으로 한번 살아보자.’ 하고 남편을 원망하지 않고 생활의 기도를 바치면서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준 남편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엄마께서 항상 내가 변화돼야 상대방이 변화된다는 그 말씀처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제 탓이다. 항상 생각하고 제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니까 남편이 변화되고 지금 열심히 열심히 나주에 순례하고 있습니다. 엄마께서 가르쳐주신 5대 영성을 실천하니까 가정이 변화되고 자녀가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느 날 어떤 자매에게 “나주에 한번 가볼래?” 말했습니다. 그 자매가 저 따라서 열심히 열심히 나주에 순례하고 나주 홍보할 때 직장 생활하면서 밥도 굶고 같이 동행해 주었습니다. 그 자매 남편 역시 너무나 많이 변화되어서 지금 하루에 묵주기도 20단 바치고 둘이 너무나 예쁘게 지금 순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낙태한 죄인이었고 ‘이 보속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던 중에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율리아 엄마 낙태 보속 고통을 얘기하고 교육시켰습니다. 낙태는 생명을 죽이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저희 아이들이 본의 아니게 임신을 하게 되고 낙태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께서 가르치신 ‘낙태는 살인이다.’ 생각하며 어려움 속에서도 낙태하지 않고 아이들 다 낳아서 손자 손녀들이 너무나 잘 크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요.
그리고 이번 명절 때 며느리가 저희 집에 왔을 때 친정에서 빨리 오라고 하는데 안 가는 거예요. ‘쟤들이 왜 저래 안 가고 저라노?’ 속으로는 좀 갔으면 했지만 “친정에 온 것처럼 편하게 쉬어라. 시댁은 쉬는 곳이다. 일하는 곳이 아니다.” 정말 쉬게 해 주고 사랑으로 해 주니까 친정에도 안 가려고 하고 저녁까지 먹더라고.
그다음 날 아들이 처갓집에 갔다가 또 우리 집에 온 거예요. 엄마 떡국 먹고 싶다고. 속으로 너무 힘들어 죽겠는데 ‘그래 오냐, 내가 사랑 실천해야지. 5대 영성 실천해야지. 아멘!’ 하고 떡국을 맛있게 끓여주니까 아들이 아이들이 많이 북적거리고 해도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서로 소중하게 여기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엄마, 역시 나주 다니는 집은 다릅니다.” 며느리는 소파에 가만히 앉아 떡국 먹고 가고. 제가 종이 되니까 평화가 오고 편하더라고요.
그리고 뭐가 생각나냐 하면 오래전에 저희 남편도 직장이 없었고 65살에 무슨 직장이 있겠어요? 쫓겨날 판인데. 저도 직장이 없었고 정말 30만 원이 우리 한 달 생활비였어요. 그런데 꿀룸에 청년 가두 홍보하는 소식이 들렸어요. 그래, 가보자고 30만 원 입금되는 동시에 서울로 향했습니다. 뛰어다니면서 가두 홍보하는데 막 기쁨이 말을 다 할 수 없이 가슴에 차서 미치겠는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우리 남편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여보! 내가 취직했다.” 이러는 거예요. 속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 금방 취직이 되는가?’ 이러고 안 믿었는데 오전 10시까지 주무신 분이 새벽 5시에 일어나고 진짜 일하러 가는 거예요. 71살까지 열심히 다녔습니다.
(나주를 전하려면) 첫 번째, 포기하지 않아야 됩니다. 1년이고 2년이고 저는 끝까지 갑니다. 왜냐하면 내가 나주에서 은혜를 받았고 엄마께서 “곁눈질하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으면 내가 여러분 책임지고 천국 데려간다.”고 그랬잖아요. 성부 하느님의 고굉지신인 엄마의 희생 공로를 통해 우리는 천국을 보장받고 구원받은 초월자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해야 됩니다! 저도 “안 되는데요.” 이랬는데 “할 수 있다!” 했습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증언 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우리 엄마를 생각해서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한번 해봅시다! 엄마 못 주무시잖아요. 그래서 저도 밤이고 낮이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면 엄마가 위로받고 또 생명이 연장되겠지요. 열심히 한번 뛰어봅시다. 이 모든 영광을 주님과 성모님께 돌려드리며 주님께서 저에게 힘을 주시리라 믿고 감사드리며 엄마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5년 2월 1일 김 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