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이 글이 주님께 영광이 되고 성모님께는 위로가 되게 해 주시오며
읽는 저희 모두에게 은총으로 흘러들어가 5대 영성으로 무장되게 해 주시어
이웃에게 나주 성모님의 사랑을 실천하여 나주 성지가 하루빨리 장애 없음으로 승인되어
자유로운 순례가 허용되게 해 주소서 아멘.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인천지부 이정자 소화데레사입니다.
1996년 10월 19일, 나주 성모님께서 피눈물을 흘리신 기념일에
처음 순례를 왔을 때 받은 은총을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경당 문턱에 발을 탁 들여놓는 순간,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터진 입으로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
그 우렁찬 목소리가 성모님 쪽에서 들려오는 순간,
그동안 제가 잘못했던 일들이 마치 영화 필름처럼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사실 순례를 오기 전까지 저는 성모님의 피눈물 사진을 보면서도
‘거짓말일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제가 잘못된 말들을 했던 것이 마치 암처럼 퍼져 나가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절대로 남의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었고,
어디를 가든 자신 있게 나주 성모님의 진실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너무나 전하고 싶은 마음에 성모님 티를 입고 본당에도 자주 갔지만,
이상하게도 나주에 대해 물어보거나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주를 반대하던 신부님께서 저희 본당에 부임하셨습니다.
레지오 간부들이 신부님께 제가 나주에 다닌다고 말씀드리자,
신부님께서 저를 가리키며,
“그 자매가 어떻게 사느냐?” 하고 물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저희 집에서 기도 모임도 하고 있고,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며 살고 있다고 대답하자 신부님께서는
“그럼 놔둬라.” 라고 하셨답니다.
또 하루는 순례차를 타고 나주에 오던 중 제 눈에 신비로운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쪽에서 저쪽까지 이어진 아스팔트처럼 끈끈한 길이 점점 옥토로 변해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까지 하나둘씩 성모님을 외면하고 돌아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제 마음은 너무나 아팠습니다. 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깊이 통회하였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까지 외면하는 모습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성모님을 생각하니,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성모님을 위로해 드리러 오겠습니다.” 하고 다짐했습니다.
그때의 다짐을 지금까지 지키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순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나주에 올 수 있도록 불러주시고 이끌어주신 나주 성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순례의 길을 걸어올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신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리며
피눈물 40주년에 많은 분들 오셔서 성모님께 위로 드리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주님 이 글이 주님께 영광이 되고 성모님께는 위로가 되게 해 주시오며
읽는 저희 모두에게 은총으로 흘러들어가 5대 영성으로 무장되게 해 주시어
이웃에게 나주 성모님의 사랑을 실천하여 나주 성지가 하루빨리 장애 없음으로 승인되어
자유로운 순례가 허용되게 해 주소서 아멘.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인천지부 이정자 소화데레사입니다.
1996년 10월 19일, 나주 성모님께서 피눈물을 흘리신 기념일에
처음 순례를 왔을 때 받은 은총을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경당 문턱에 발을 탁 들여놓는 순간,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터진 입으로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
그 우렁찬 목소리가 성모님 쪽에서 들려오는 순간,
그동안 제가 잘못했던 일들이 마치 영화 필름처럼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사실 순례를 오기 전까지 저는 성모님의 피눈물 사진을 보면서도
‘거짓말일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제가 잘못된 말들을 했던 것이 마치 암처럼 퍼져 나가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절대로 남의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었고,
어디를 가든 자신 있게 나주 성모님의 진실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너무나 전하고 싶은 마음에 성모님 티를 입고 본당에도 자주 갔지만,
이상하게도 나주에 대해 물어보거나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주를 반대하던 신부님께서 저희 본당에 부임하셨습니다.
레지오 간부들이 신부님께 제가 나주에 다닌다고 말씀드리자,
신부님께서 저를 가리키며,
“그 자매가 어떻게 사느냐?” 하고 물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저희 집에서 기도 모임도 하고 있고,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며 살고 있다고 대답하자 신부님께서는
“그럼 놔둬라.” 라고 하셨답니다.
또 하루는 순례차를 타고 나주에 오던 중 제 눈에 신비로운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쪽에서 저쪽까지 이어진 아스팔트처럼 끈끈한 길이 점점 옥토로 변해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까지 하나둘씩 성모님을 외면하고 돌아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제 마음은 너무나 아팠습니다. 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깊이 통회하였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까지 외면하는 모습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성모님을 생각하니,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성모님을 위로해 드리러 오겠습니다.” 하고 다짐했습니다.
그때의 다짐을 지금까지 지키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순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나주에 올 수 있도록 불러주시고 이끌어주신 나주 성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순례의 길을 걸어올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신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리며
피눈물 40주년에 많은 분들 오셔서 성모님께 위로 드리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