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36번째 나주 순례입니다. 제가 이렇게 나주에 자주 오는 이유는 성체 성혈의 기적, 참젖, 향유를 보여주시는 은총과, 마마 쥴리아를 통해 일어나는 기적들, 그리고 찬미하며 예수님과 함께 걸으며 살아갈 수 있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성지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 받은 은총 중 다섯 가지 은총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나누고 싶은 은총입니다. 처음 나주에 왔던 시기가 1995년 6월 28일부터 7월 1일까지였습니다. 경당에 딱 들어서는 순간, 고귀한 향기가 제 온몸을 감쌌습니다. ‘이 향기가 어디에서 올까?’ 궁금해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이 넓은 공간을 향기로 가득 채우려면 큰 기계가 필요할 텐데, 그런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아 곧바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큰 체육관에서 열린 나주 성모님의 큰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참석자가 너무 많아 저희는 2층 좌석에 앉았기에 무대가 아주 작게 보였습니다. 기도회는 매우 성대하고 활기차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마마 쥴리아께서 한국어로 “멀리서 오셨고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여러분에게 하느님께서 큰 은총을 주십니다!” 외치듯 말씀하셨습니다. (일본어로 들림)
기도회가 새벽 무렵에 끝나 숙소에서 잠시 쉬고, 오후에는 성모님 동산에 갔습니다. 동산에는 수도꼭지가 달린 기적수 수도관이 하나만 있었습니다. 수도꼭지를 틀자 놀랍게도 향기가 나는 물이 나왔습니다. 나주에 올 때 나리타 공항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친 친구를 먼저 배려하여, 흐르는 기적수를 친구의 허벅지부터 대어 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공항에서 넘어졌을 때 너무 아파서 순례를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함께 오신 90세의 시무라 신부님께서 “순례를 포기하지 말고 나주에 가서 치유를 받도록 해!”라고 말씀하셨고, 정말로 치유를 받았습니다. 나주의 기적수를 다친 부위에 흘려 씻은 후, 조금 지나자 “이제는 아프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전혀 통증이 없었음) 그리고 정말 아무런 지장 없이 순례를 끝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귀국해서 병원에 갔는데, 골절로 진단았습니다. 의사에게 이야기해도 이해할 것 같지 않아서, 의사가 하는 대로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오후에는 성모님 동산에서 일본 순례단의 미사가 있었는데, 함께 오신 이케다 신부님께서 서 계시던 곳에 하늘에서 내려온 무지개 같은 빛이 신부님의 온몸을 감싸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여기 이케다 신부님께서 서 계셨고, 무지개 빛이 나타났습니다.
순례 마지막 날에는 나주 성당의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성체를 모실 때, 마마 쥴리아께서 시무라 신부님의 휠체어를 밀어 드렸습니다. 마마 쥴리아께서 성체를 모신 후 맨 뒤쪽 자리로 돌아오셨을 때, ‘쿵’ 하는 큰 소리가 났고, 주위에서 술렁이는 소리가 들리며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프랑스 신부님은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었고, 일반 신자들도 많은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저도 의자 위에 올라갔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옛날 카메라였기 때문에 보이는 대로 셔터를 눌렀습니다.
귀국한 후 사진을 현상해 보니, 놀랍게도 마마 쥴리아의 입 안에서 성체가 성혈과 살로 변화된 모습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그것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요. 기적의 순간을 만나게 된 것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 모두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감동하여 많은 분들에게 그 사진을 나누어 드렸습니다. 그 후 저는 나주에서 3번의 성체기적을 더 목격했습니다!
미사 후 마마 쥴리아와 악수하신 시무라 신부님의 손에서는 다음 날 나리타 공항에서 해산할 때까지도 향기가 났고, 모두가 신부님과 악수하며 나주에서의 은총을 되새겼습니다.
두 번째로 나누고 싶은 은총입니다.
2000년 12월 31일부터 2001년 1월 2일까지, 이케다 신부님과 저희 일행 13명은 연말연시를 맞아 2박 3일 일정으로 나주를 방문했습니다. 그룹의 리더는 심한 허리 급성 요통으로 인해 일본 자택에서부터 이곳 성모님 동산까지 휠체어를 타고 오셨습니다.
기적수 샤워실에서는 이미 추위 때문에 수도가 얼어붙어 수도꼭지를 틀어도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야에 기적수가 담겨 있었지만 그 표면에는 얇은 얼음이 얼어 있었습니다. 저는 몸을 떨며 앉아서 기적수를 끼얹고 있었는데, 리더가 “일어서서 기적수를 끼얹는 편이 온몸에 골고루 닿아 더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일어서서 기적수를 끼얹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 리더는 휠체어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건강을 회복하여 귀국하셨습니다. 아멘!!
세 번째로 나누고 싶은 은총입니다.
2001년 6월 5일부터 6월 8일까지 나주에 머물렀습니다. 당시 광주교구의 공지에 순명하고 계셨던 마마 쥴리아께서는 순례자들을 만나지 않으시고 은둔 생활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전처럼 뵐 수 없었습니다. 주변이 어스름해진 저녁, 경당을 나갔더니 좁고 가파른 언덕길에서 마마 쥴리아를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기뻤습니다. 우리의 간절한 소원을 주님께서 들어주시어 마마 쥴리아를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좁고 어두컴컴한 언덕길에서 마마 쥴리아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미소 지으시며 안아 주셨습니다. 아라이라는 분은 마마 쥴리아의 배를 만져 보았습니다. 나중에 그분은 “배 속에 머리가 많이 있었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낙태 보속 고통을 봉헌하고 계셨던 마마 쥴리아께서 그 많은 영혼들의 고통을 대신 받고 계신다는 것을 주님께서 보여 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없었던 아라이 씨에게 마마 쥴리아께서 “지팡이를 놓고 걸어 보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 걸을 수 있어요!”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언덕길을 올라갔다 왔습니다. 마마 쥴리아께서 “지팡이를 놓고 돌아가세요.”라고 말씀하셨고, 지팡이 없이 귀국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집에서 식탁을 지팡이 없이 한 바퀴 도는 것조차 겨우 할 정도였고, 실내에서도 지팡이를 사용했습니다. 귀국한 후에는 몇 년간 갈 수 없었던 주일 미사에 조카와 함께 걸어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네 번째로 나누고 싶은 은총입니다.
저희 부부가 별거하고 있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작은 말다툼을 한 다음 날 아침, 남편은 집을 나갔습니다. 남편이 누나의 집에 있다는 것은 곧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전화를 걸어 “잘 지내?”라고 물으니 남편은 “C형 간염에 걸렸어.”라고 말했습니다.
C형 간염이 어떤 병인지 몰라서 책을 세 권 사 읽었습니다. 어려운 병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불가능이 없으심을 믿었기에, 남편에게 나주에 관해 편지도 쓰고, 전화로도 이야기했으며 나주의 기적수도 보내어 마시게 했습니다.
제가 “나주에 가지 않을래요?”라고 전화로 권하자 남편은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마마 쥴리아께 포옹을 받을 때, 저희가 별거 중이라는 것과 남편이 C형 간염을 앓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남편은 이미 포옹을 마친 상태였지만, 마마 쥴리아께서는 남편을 다시 불러 저와 남편을 두 팔로 함께 안아 주시며 기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바로 그때 이미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 증거로, 남편은 정기검사를 받고 있었는데 나주에서 귀국한 지 10일째 되는 날이 검사일이었습니다.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습니다. 그전까지는 병을 억제하기 위한 주사를 일주일에 두 번 맞고 있었지만, 순례 후에는 음성이 되어 한 달에 한 번만 맞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이 병은 낫지 않는 병이니 6개월 후에 다시 검사해 봅시다.” 했지만, 또 음성으로 나왔기 때문에 2006년 5월부터는 병을 억제하는 주사도 더 이상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2006년 11월 24일, 완치의 은혜에 감사드리기 위해 남편과 단둘이 향유 기념일에 나주를 찾았습니다. 11월 24일은 기도가 필요한 큰아들과 둘째 아들의 생일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날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순례를 오기 전, 허리 통증으로 겨우 병원에 다니고 있던 친구가 “내 몫까지 기도해 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친구는 나중에 “마치 한 겹 한 겹 껍질이 벗겨지듯 통증이 사라졌고, 4일 만에 완전히 나았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받은 은총을 나누고자 합니다.
2009년의 일입니다. 성모님의 눈물과 피눈물 기념일에 참석하기 위해 친구와 둘이 나주에 가기로 하고 이미 항공권도 구입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남편이 물만 마셔도 메스꺼움을 느끼는 고열이 났고, 침대에 누우면 죽을 것 같아서 밤에는 좌식 의자에 기대어 지냈습니다.
이틀 연속 구급차로 병원에 갔지만 원인을 알 수 없어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고, 세 번째에는 MRI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MRI 검사 결과 원인이 밝혀져 곧바로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검사 결과, 담낭에 있던 담석이 곪아 터지면서 고름이 넘쳐 간으로 들어갔고, 간 효소 수치가 정상인은 약 30 정도인데 100만 되어도 의사들이 놀랄 정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구급차로 병원에 왔을 때는 그 수치가 무려 1만(GPD)이었습니다. 의사도 “치명적인 상태였는데도 살아 계신 것이 놀랍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이 그렇게 위독한 상태여서 나주에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입원하고 나니 안심이 되었고, 아들도 “병원에서 연락이 오면 제가 맡을 테니 어머니는 나주에 다녀오셔도 됩니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친구와 함께 나주에 오게 되었습니다.
나주에서의 마지막 날, 마마 쥴리아께 포옹을 받을 때 남편의 상황을 말씀드렸습니다. 마마 쥴리아께서는 놀라시며 “어머, 어떡해요.”라고 하시며 남편을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남편은 물만 마셔도 메스꺼움을 느꼈지만, ‘나주 기적수’만은 마실 수 있었습니다. 제가 나주에서 귀국한 후 남편은 미음을 먹기 시작했고, 날이 갈수록 일반 식사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건강을 회복하여 13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미사의 은총과 마마 쥴리아의 기도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은총을 베풀어 주신 나주에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립니다. 또한 언제나 기도로 함께해 주시고, 저희를 위해 사랑과 희생을 바쳐 주시는 마마 쥴리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과 성모님을 찬미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번이 36번째 나주 순례입니다. 제가 이렇게 나주에 자주 오는 이유는 성체 성혈의 기적, 참젖, 향유를 보여주시는 은총과, 마마 쥴리아를 통해 일어나는 기적들, 그리고 찬미하며 예수님과 함께 걸으며 살아갈 수 있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성지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 받은 은총 중 다섯 가지 은총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나누고 싶은 은총입니다. 처음 나주에 왔던 시기가 1995년 6월 28일부터 7월 1일까지였습니다. 경당에 딱 들어서는 순간, 고귀한 향기가 제 온몸을 감쌌습니다. ‘이 향기가 어디에서 올까?’ 궁금해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이 넓은 공간을 향기로 가득 채우려면 큰 기계가 필요할 텐데, 그런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아 곧바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큰 체육관에서 열린 나주 성모님의 큰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참석자가 너무 많아 저희는 2층 좌석에 앉았기에 무대가 아주 작게 보였습니다. 기도회는 매우 성대하고 활기차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마마 쥴리아께서 한국어로 “멀리서 오셨고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여러분에게 하느님께서 큰 은총을 주십니다!” 외치듯 말씀하셨습니다. (일본어로 들림)
기도회가 새벽 무렵에 끝나 숙소에서 잠시 쉬고, 오후에는 성모님 동산에 갔습니다. 동산에는 수도꼭지가 달린 기적수 수도관이 하나만 있었습니다. 수도꼭지를 틀자 놀랍게도 향기가 나는 물이 나왔습니다. 나주에 올 때 나리타 공항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친 친구를 먼저 배려하여, 흐르는 기적수를 친구의 허벅지부터 대어 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공항에서 넘어졌을 때 너무 아파서 순례를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함께 오신 90세의 시무라 신부님께서 “순례를 포기하지 말고 나주에 가서 치유를 받도록 해!”라고 말씀하셨고, 정말로 치유를 받았습니다. 나주의 기적수를 다친 부위에 흘려 씻은 후, 조금 지나자 “이제는 아프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전혀 통증이 없었음) 그리고 정말 아무런 지장 없이 순례를 끝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귀국해서 병원에 갔는데, 골절로 진단았습니다. 의사에게 이야기해도 이해할 것 같지 않아서, 의사가 하는 대로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오후에는 성모님 동산에서 일본 순례단의 미사가 있었는데, 함께 오신 이케다 신부님께서 서 계시던 곳에 하늘에서 내려온 무지개 같은 빛이 신부님의 온몸을 감싸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여기 이케다 신부님께서 서 계셨고, 무지개 빛이 나타났습니다.
순례 마지막 날에는 나주 성당의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성체를 모실 때, 마마 쥴리아께서 시무라 신부님의 휠체어를 밀어 드렸습니다. 마마 쥴리아께서 성체를 모신 후 맨 뒤쪽 자리로 돌아오셨을 때, ‘쿵’ 하는 큰 소리가 났고, 주위에서 술렁이는 소리가 들리며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프랑스 신부님은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었고, 일반 신자들도 많은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저도 의자 위에 올라갔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옛날 카메라였기 때문에 보이는 대로 셔터를 눌렀습니다.
귀국한 후 사진을 현상해 보니, 놀랍게도 마마 쥴리아의 입 안에서 성체가 성혈과 살로 변화된 모습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그것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요. 기적의 순간을 만나게 된 것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 모두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감동하여 많은 분들에게 그 사진을 나누어 드렸습니다. 그 후 저는 나주에서 3번의 성체기적을 더 목격했습니다!
미사 후 마마 쥴리아와 악수하신 시무라 신부님의 손에서는 다음 날 나리타 공항에서 해산할 때까지도 향기가 났고, 모두가 신부님과 악수하며 나주에서의 은총을 되새겼습니다.
두 번째로 나누고 싶은 은총입니다.
2000년 12월 31일부터 2001년 1월 2일까지, 이케다 신부님과 저희 일행 13명은 연말연시를 맞아 2박 3일 일정으로 나주를 방문했습니다. 그룹의 리더는 심한 허리 급성 요통으로 인해 일본 자택에서부터 이곳 성모님 동산까지 휠체어를 타고 오셨습니다.
기적수 샤워실에서는 이미 추위 때문에 수도가 얼어붙어 수도꼭지를 틀어도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야에 기적수가 담겨 있었지만 그 표면에는 얇은 얼음이 얼어 있었습니다. 저는 몸을 떨며 앉아서 기적수를 끼얹고 있었는데, 리더가 “일어서서 기적수를 끼얹는 편이 온몸에 골고루 닿아 더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일어서서 기적수를 끼얹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 리더는 휠체어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건강을 회복하여 귀국하셨습니다. 아멘!!
세 번째로 나누고 싶은 은총입니다.
2001년 6월 5일부터 6월 8일까지 나주에 머물렀습니다. 당시 광주교구의 공지에 순명하고 계셨던 마마 쥴리아께서는 순례자들을 만나지 않으시고 은둔 생활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전처럼 뵐 수 없었습니다. 주변이 어스름해진 저녁, 경당을 나갔더니 좁고 가파른 언덕길에서 마마 쥴리아를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기뻤습니다. 우리의 간절한 소원을 주님께서 들어주시어 마마 쥴리아를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좁고 어두컴컴한 언덕길에서 마마 쥴리아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미소 지으시며 안아 주셨습니다. 아라이라는 분은 마마 쥴리아의 배를 만져 보았습니다. 나중에 그분은 “배 속에 머리가 많이 있었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낙태 보속 고통을 봉헌하고 계셨던 마마 쥴리아께서 그 많은 영혼들의 고통을 대신 받고 계신다는 것을 주님께서 보여 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없었던 아라이 씨에게 마마 쥴리아께서 “지팡이를 놓고 걸어 보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 걸을 수 있어요!”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언덕길을 올라갔다 왔습니다. 마마 쥴리아께서 “지팡이를 놓고 돌아가세요.”라고 말씀하셨고, 지팡이 없이 귀국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집에서 식탁을 지팡이 없이 한 바퀴 도는 것조차 겨우 할 정도였고, 실내에서도 지팡이를 사용했습니다. 귀국한 후에는 몇 년간 갈 수 없었던 주일 미사에 조카와 함께 걸어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네 번째로 나누고 싶은 은총입니다.
저희 부부가 별거하고 있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작은 말다툼을 한 다음 날 아침, 남편은 집을 나갔습니다. 남편이 누나의 집에 있다는 것은 곧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전화를 걸어 “잘 지내?”라고 물으니 남편은 “C형 간염에 걸렸어.”라고 말했습니다.
C형 간염이 어떤 병인지 몰라서 책을 세 권 사 읽었습니다. 어려운 병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불가능이 없으심을 믿었기에, 남편에게 나주에 관해 편지도 쓰고, 전화로도 이야기했으며 나주의 기적수도 보내어 마시게 했습니다.
제가 “나주에 가지 않을래요?”라고 전화로 권하자 남편은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마마 쥴리아께 포옹을 받을 때, 저희가 별거 중이라는 것과 남편이 C형 간염을 앓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남편은 이미 포옹을 마친 상태였지만, 마마 쥴리아께서는 남편을 다시 불러 저와 남편을 두 팔로 함께 안아 주시며 기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바로 그때 이미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 증거로, 남편은 정기검사를 받고 있었는데 나주에서 귀국한 지 10일째 되는 날이 검사일이었습니다.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습니다. 그전까지는 병을 억제하기 위한 주사를 일주일에 두 번 맞고 있었지만, 순례 후에는 음성이 되어 한 달에 한 번만 맞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이 병은 낫지 않는 병이니 6개월 후에 다시 검사해 봅시다.” 했지만, 또 음성으로 나왔기 때문에 2006년 5월부터는 병을 억제하는 주사도 더 이상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2006년 11월 24일, 완치의 은혜에 감사드리기 위해 남편과 단둘이 향유 기념일에 나주를 찾았습니다. 11월 24일은 기도가 필요한 큰아들과 둘째 아들의 생일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날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순례를 오기 전, 허리 통증으로 겨우 병원에 다니고 있던 친구가 “내 몫까지 기도해 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친구는 나중에 “마치 한 겹 한 겹 껍질이 벗겨지듯 통증이 사라졌고, 4일 만에 완전히 나았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받은 은총을 나누고자 합니다.
2009년의 일입니다. 성모님의 눈물과 피눈물 기념일에 참석하기 위해 친구와 둘이 나주에 가기로 하고 이미 항공권도 구입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남편이 물만 마셔도 메스꺼움을 느끼는 고열이 났고, 침대에 누우면 죽을 것 같아서 밤에는 좌식 의자에 기대어 지냈습니다.
이틀 연속 구급차로 병원에 갔지만 원인을 알 수 없어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고, 세 번째에는 MRI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MRI 검사 결과 원인이 밝혀져 곧바로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검사 결과, 담낭에 있던 담석이 곪아 터지면서 고름이 넘쳐 간으로 들어갔고, 간 효소 수치가 정상인은 약 30 정도인데 100만 되어도 의사들이 놀랄 정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구급차로 병원에 왔을 때는 그 수치가 무려 1만(GPD)이었습니다. 의사도 “치명적인 상태였는데도 살아 계신 것이 놀랍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이 그렇게 위독한 상태여서 나주에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입원하고 나니 안심이 되었고, 아들도 “병원에서 연락이 오면 제가 맡을 테니 어머니는 나주에 다녀오셔도 됩니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친구와 함께 나주에 오게 되었습니다.
나주에서의 마지막 날, 마마 쥴리아께 포옹을 받을 때 남편의 상황을 말씀드렸습니다. 마마 쥴리아께서는 놀라시며 “어머, 어떡해요.”라고 하시며 남편을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남편은 물만 마셔도 메스꺼움을 느꼈지만, ‘나주 기적수’만은 마실 수 있었습니다. 제가 나주에서 귀국한 후 남편은 미음을 먹기 시작했고, 날이 갈수록 일반 식사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건강을 회복하여 13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미사의 은총과 마마 쥴리아의 기도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은총을 베풀어 주신 나주에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립니다. 또한 언제나 기도로 함께해 주시고, 저희를 위해 사랑과 희생을 바쳐 주시는 마마 쥴리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6년 6월 30일
가와모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