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좋으신 분!” (언제나!) “언제나!” (하느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아멘! 매일매일 축복입니다. 아멘! 저는 작년 기념일의 경험, 즉 하느님의 현존을 경험했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2025년 6월 순례 동안이었는데, 작년이 바로 나주 성모님 눈물 흘리신 40주년이었습니다. 특히 바로 이곳, 거룩한 곳인 나주 성모님동산에서 거행된 거룩한 미사 중에, 제 마음 가장 깊은 곳을 어루만지시는 하느님과의 성스러운 만남이 있었습니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고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과 현존이 다시금 마음속에 새겨졌습니다.
주님의 축복과 인도하심, 그리고 새로운 희망에 감사드립니다. 그날의 경험은 가장 위대한 사랑과 희생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습니다. 또한 겸손과 자비, 그리고 용서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미사 중에 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믿음 안에 모인 하나의 공동체 안에 있었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서로 하나로 묶여 있었습니다. 비록 불완전한 저일지라도,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결코 저를 버리지 않으심을 느끼게 해 준 아름다운 경험이었습니다.
그것은 영감을 주었고, 제 마음을 평화와 감사, 그리고 영적인 기쁨으로 채워 주었습니다. 또한 성당 문을 나서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간직한 채, 말과 행동으로 다른 이들에게 그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도록 용기를 주었습니다. 참으로 그것은 선물이자, 하늘이 평화와 기쁨으로 제 마음을 어루만져 준 거룩한 순간이었고 하느님께서 제 여정에 동행하신다는 위로 가득한 확신이었습니다.
과거에 저는 자주 오해를 받곤 했습니다. 한번 깨진 신뢰가 곧바로 회복되지 않을 때도 있었고, 분노나 고통을 품은 채 삶의 여정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타인이 남긴 상처가 마음의 깊은 흉터가 되었기에, 용서라는 것이 제게는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용서가 단 한 번의 결심이 아니라, 점진적인 과정이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여정을 계속하며 용서는 제게 평화를 주고, 관계를 회복시키며, 정서적인 행복을 가져다줄 것임을 믿습니다. 앞으로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에 좋은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나주 성모님동산에서 성모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제게 다시금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제 사촌이었습니다. 질투 때문이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가 제게 더 이상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는 때가 왔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러 저는 그의 형제 덕분에 해외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저를 향한 그 사촌의 분노를 더욱 키웠고, 심지어 그의 아내와 자녀들, 다른 형제들까지 제게 화를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많은 해가 지난 후, 그는 급격히 기력이 약해지고 건강이 나빠지더니, 점차 쇠약해져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수년 동안 그는 저와의 대화를 거부했고, 친척들 사이에 저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우리 둘 사이의 갈등을 단번에 끝내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저는 모든 것을 하느님 손에 맡기기로 선택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슬프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우리 사이의 나쁜 관계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저를 대했던 방식 때문에 그에게 화가 나 있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도 저는 그를 용서할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를 위해 기도하고 싶었지만, 기도는 그의 가족들이 해줘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기도마저 아꼈던 것 같습니다.
사제 서품을 받기 전, 저는 동료 신부님께 이 모든 것을 고백했습니다. 제 분노는 다소 누그러졌고 마음의 평화도 찾았습니다. 하지만 고향에 돌아갈 때면 여전히 긴장감이 감돌았고, 저를 향한 그들의 분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제 서품을 받은 지 1년이 지났을 때, 한 동료 신부님의 초대로 나주 성모님 (눈물 흘리신) 4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용서의 은총을 체험했습니다. 거룩한 미사가 봉헌되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지난 기억들이 떠올랐고, 제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나주 성모님의 도우심을 통해, 용서의 은총을 받으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를 용서함으로써 제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마음의 회개’를 뜻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그는 제 기도 안에 있습니다. 나주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 그가 영원한 안식 속에서 평화를 누리기를 다시 한번 주님께 의탁하고자 합니다.
성모 어머니의 도우심으로 저는 타인을 용서할 수 있을 만큼 겸손해지는 법을 배웠습니다. 저 자신을 낮추고 주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차분해지는 법을 배웠고, 결정을 내릴 때 늘 하느님과 함께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저를 사랑하시기에 언제나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제 청을 들어주십니다. 고군분투할 때도 하느님께서 그곳에서 인도해 주고 계심을 압니다.
사제 직무를 되돌아보며, 이 거룩한 곳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수많은 방식으로 체험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기쁨과 시련의 순간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늘 신실하셨으며, 제 발걸음을 인도해 주시고 약해질 때 힘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현존은 감동을 받은 이들의 삶과 서로 나눈 격려, 타인에게 봉사했던 기회 속에서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나주) 순례에서 체험한 것입니다. 문화가 다른 여러 나라였지만, 우리는 한 마음, 한 신앙이었습니다.
때로는 길이 불확실할 때도 있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평화, 그리고 방향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기도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하느님 손길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이러한 체험들은 제 신앙을 깊어지게 했고, 사목은 인간의 노력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과 능력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매우 감사드리고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강복하시기를!
발릴로우 신부님 진정한 고백 용서의 은총 감동입니다.
때로는 몰이해 시기 질투로 모함으로 인하여 들어오는
공격은 평화를 깨뜨리는 원인이 되죠,
어떤 경우에서든 사람이면 일어난다고 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나주성모님 부르심에 은총으로
용서의 마음 기도해 주시는 마음,,, 그것이 진정한 용서
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기를 봉헌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평화, 그리고 방향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기도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하느님 손길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이러한 체험들은 제 신앙을 깊어지게 했고, 사목은 인간의 노력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과 능력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
았습니다. 매우 감사드리고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강복하시기를!
아멘!!!아멘!!!아멘!!!
용서의 은총 귀한 은총 나눔 감사드립니다
성모성심의 승리를 위하여 은총 나눔 만방에
공유 합니다 !!!
신부님께서 어두웠던 과거를 솔직하고 겸손하게 고백하시며 용서에 대해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주에서 육적인 치유를 받는 분들도 많지만 이렇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던 사람을 용서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주며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 평화를 찾는 은총도 많습니다.
내 안에 미움과 분노와 원망과 증오가 사라질 때, 즉 상처가 치유될 때 용서도 함께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용서할 수 있는 힘은 나의 의지나 능력이 아니라 오로지 겸손되이 청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베푸시는 주님과 성모님으로부터 옵니다.
거기에 율리아엄마의 대속고통이 더해져 어느 성지에서도 느낄 수 없는 참평화를 얻을 수 있으니 나주순례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은 좋으신 분!” (언제나!) “언제나!” (하느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아멘! 매일매일 축복입니다. 아멘! 저는 작년 기념일의 경험, 즉 하느님의 현존을 경험했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2025년 6월 순례 동안이었는데, 작년이 바로 나주 성모님 눈물 흘리신 40주년이었습니다. 특히 바로 이곳, 거룩한 곳인 나주 성모님동산에서 거행된 거룩한 미사 중에, 제 마음 가장 깊은 곳을 어루만지시는 하느님과의 성스러운 만남이 있었습니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고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과 현존이 다시금 마음속에 새겨졌습니다.
주님의 축복과 인도하심, 그리고 새로운 희망에 감사드립니다. 그날의 경험은 가장 위대한 사랑과 희생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습니다. 또한 겸손과 자비, 그리고 용서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미사 중에 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믿음 안에 모인 하나의 공동체 안에 있었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서로 하나로 묶여 있었습니다. 비록 불완전한 저일지라도,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결코 저를 버리지 않으심을 느끼게 해 준 아름다운 경험이었습니다.
그것은 영감을 주었고, 제 마음을 평화와 감사, 그리고 영적인 기쁨으로 채워 주었습니다. 또한 성당 문을 나서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간직한 채, 말과 행동으로 다른 이들에게 그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도록 용기를 주었습니다. 참으로 그것은 선물이자, 하늘이 평화와 기쁨으로 제 마음을 어루만져 준 거룩한 순간이었고 하느님께서 제 여정에 동행하신다는 위로 가득한 확신이었습니다.
과거에 저는 자주 오해를 받곤 했습니다. 한번 깨진 신뢰가 곧바로 회복되지 않을 때도 있었고, 분노나 고통을 품은 채 삶의 여정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타인이 남긴 상처가 마음의 깊은 흉터가 되었기에, 용서라는 것이 제게는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용서가 단 한 번의 결심이 아니라, 점진적인 과정이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여정을 계속하며 용서는 제게 평화를 주고, 관계를 회복시키며, 정서적인 행복을 가져다줄 것임을 믿습니다. 앞으로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에 좋은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나주 성모님동산에서 성모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제게 다시금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제 사촌이었습니다. 질투 때문이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가 제게 더 이상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는 때가 왔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러 저는 그의 형제 덕분에 해외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저를 향한 그 사촌의 분노를 더욱 키웠고, 심지어 그의 아내와 자녀들, 다른 형제들까지 제게 화를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많은 해가 지난 후, 그는 급격히 기력이 약해지고 건강이 나빠지더니, 점차 쇠약해져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수년 동안 그는 저와의 대화를 거부했고, 친척들 사이에 저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우리 둘 사이의 갈등을 단번에 끝내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저는 모든 것을 하느님 손에 맡기기로 선택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슬프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우리 사이의 나쁜 관계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저를 대했던 방식 때문에 그에게 화가 나 있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도 저는 그를 용서할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를 위해 기도하고 싶었지만, 기도는 그의 가족들이 해줘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기도마저 아꼈던 것 같습니다.
사제 서품을 받기 전, 저는 동료 신부님께 이 모든 것을 고백했습니다. 제 분노는 다소 누그러졌고 마음의 평화도 찾았습니다. 하지만 고향에 돌아갈 때면 여전히 긴장감이 감돌았고, 저를 향한 그들의 분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제 서품을 받은 지 1년이 지났을 때, 한 동료 신부님의 초대로 나주 성모님 (눈물 흘리신) 4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용서의 은총을 체험했습니다. 거룩한 미사가 봉헌되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지난 기억들이 떠올랐고, 제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나주 성모님의 도우심을 통해, 용서의 은총을 받으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를 용서함으로써 제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마음의 회개’를 뜻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그는 제 기도 안에 있습니다. 나주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 그가 영원한 안식 속에서 평화를 누리기를 다시 한번 주님께 의탁하고자 합니다.
성모 어머니의 도우심으로 저는 타인을 용서할 수 있을 만큼 겸손해지는 법을 배웠습니다. 저 자신을 낮추고 주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차분해지는 법을 배웠고, 결정을 내릴 때 늘 하느님과 함께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저를 사랑하시기에 언제나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제 청을 들어주십니다. 고군분투할 때도 하느님께서 그곳에서 인도해 주고 계심을 압니다.
사제 직무를 되돌아보며, 이 거룩한 곳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수많은 방식으로 체험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기쁨과 시련의 순간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늘 신실하셨으며, 제 발걸음을 인도해 주시고 약해질 때 힘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현존은 감동을 받은 이들의 삶과 서로 나눈 격려, 타인에게 봉사했던 기회 속에서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나주) 순례에서 체험한 것입니다. 문화가 다른 여러 나라였지만, 우리는 한 마음, 한 신앙이었습니다.
때로는 길이 불확실할 때도 있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평화, 그리고 방향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기도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하느님 손길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이러한 체험들은 제 신앙을 깊어지게 했고, 사목은 인간의 노력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과 능력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매우 감사드리고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강복하시기를!
2026년 6월 30일
발릴로우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