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영상이랬더니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미움, 분노, 증오가 사라졌습니다.

운영진
202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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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많은 분들이 은총 증언하실 때 육적 치유에 대해서 많이 하시는데요. 오늘 저는 깨달음을 통해 받은 영적인 치유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들 매일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프로젝트에 잘 참여하고 계시죠? 엄마의 삶을 읽노라면 ‘어떻게 그런 삶을 사실 수 있었을까?’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특히 가족과 가산을 모두 잃고 무서운 외숙의 집에 얹혀살아야 했을 때 엄마께서 받으신 고통과 고난, 억울한 사연 등을 읽노라면 다 지난 일이고 제 일이 아닌 데에도 내 일처럼 마음이 아파옵니다.

‘외숙은 여동생의 딸 자기 친조카한테 어찌 그리 모질게 대했을까? 빠질 이도 아닌데 어떻게 조카의 생니를 펜치로 뽑을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같으면 아동 노동 착취, 아동 학대로 법적 처벌을 받을 일들을 어떻게 그렇게 어린아이한테 아무렇지도 않게 시킬 수 있었을까?’
 
‘지금이라면 이혼 사유가 천 개도 넘을 일인데, 어떻게 엄마는 끝까지 남편을 사랑하며 사셨을까?’ ‘돈만 밝히는 시어머니를 어찌 그리 공경하며 섬기실 수 있었을까?’ 등등 이러한 일들을 수없이 겪으면서도 엄마께서는 ‘우리 외숙은, 우리 남편은, 우리 시어머니는 나한테 왜 그러셨을까?’ 하며 단 한 번도 원망하신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하셨다고 하셨지요. 저는 셈 치고 봉헌해도 상처받은 마음에서 불쑥불쑥 미움과 원망이 피어오르는데, ‘엄마는 특별한 분이라서 이런 마음조차도 들지 않으시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엄마는 어떻게 이런 생각이 가능하신 걸까요? 저는 그 답을 아이들의 다툼을 중재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잘 지내다가도 한번씩 싸우는 아이들에게 왜 싸웠는지 경위를 물어보면 “쟤가 먼저 저를 놀렸어요.” “쟤가 먼저 그랬는데 왜 저만 혼나야 돼요?” “쟤도 그랬는데 쟤는 왜 안 혼나요?” 이렇게 억울함을 호소할 때가 많습니다.
 
“쟤가 잘못한 건 쟤랑 얘기하면서 혼낼 거야. 쟤 잘못을 얘기하지 말고, 넌 네가 잘못한 것만 생각해. 쟤 잘못한 건 쟤가 반성할 테니까.” 하고 상대방이 그랬기 때문에 나도 폭언이나 폭행을 했다는 걸 정당화하지 말고 자기의 잘못만 생각하도록 얘기해 줍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재하면서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께서 항상 최선을 다해서 상대를 도와주고 사랑을 베푸셨지만, 무시와 냉대, 배신과 같은 결과로 되돌려 받으시면서도 항상 셈 치고 아름답게 봉헌하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상대가 어떻든 어떻게 하든 나의 몫만 생각하신 엄마의 사고방식 때문이 아닐까?
 
보통 우리는 엄마와 같은 상황을 겪게 되면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내가 얼마나 외숙네 가족을 위해서 애를 쓰면서 살았는데, 어찌 가만히 있던 나를 잡아다 생니를 뽑아 평생을 고통 속에 살게 한단 말인가?’ ‘왜 우리 시어머니는 큰 며느리라는 이유만으로 자꾸 없는 돈도 만들어 달라고 하셔서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실까?’

‘내가 우리 애들도 못 먹이고 못 입히면서까지 뒷바라지해서 법관으로 출세시켰더니 그런 나의 은혜도 모르고 감히 원수로 갚아?’ ‘왜 우리 남편은 결혼 전에는 그렇게도 나를 사랑했으면서 자기 시어머니 편만 들고 가정에는 관심도 없어 나를 이다지도 고통스럽게 할까?’ 등등 정말 뼛속까지 스며들 정도로 깊은 상처를 받고 원망하는 마음이 절로 들며 상대가 좋게 나오지 않으면 같이 맞받아치고 똑같은 상처를 주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베풀고 싶은 마음도 사라집니다. 그래서 배우자가 가정에서의 자기 몫을 다하지 않으면 나도 해 주고 싶지 않습니다. 배우자의 부모가 나에게 서운하게 하면 굳이 나도 공경하고 봉양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지요. 친구나 가까운 사람이 배신을 하면 ‘내가 그동안 해준 게 얼만데?’ 하며 사랑과 우정을 끊습니다. 셈 치고의 영성을 실천할 기본 바탕을 준비하지 못하게 되지요.
 
그러나 엄마께서 이러한 어처구니없고 황당하며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단 한 번도 상대를 원망하지 않고 셈 치며 봉헌하실 수 있었던 것은 엄마는 상대의 언행에 따라 다르게 하는 반응하신 것이 아니라 나의 몫, 나의 역할에만 충실하셨기 때문이 아닐까요?
 
엄마께서는 엄마의 역할에만 집중하셨기에 외숙네 가족이 부당하게 일을 시켜도 응당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여기며 묵묵히 해내셨고, 시어머니께서 엄마를 함부로 대하고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셨어도 시어머니가 저렇게 나오니 나도 똑같이 하겠다가 아니라 며느리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셨으며, 남편이 가정에 소홀해도 좋은 아내의 역할을 끝까지 해내신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교회에서 많은 박해와 핍박을 받으시지만, 주님과 성모님께서 주신 역할, 엄마의 몫을 해내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엄마와 같은 사고방식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각자 자라온 환경과 유전자로 인해 형성된 우리의 사고 체계를 완전히 부수고 무너뜨려서 엄마처럼 5대 영성만 배출할 수 있는 틀로 새롭게 바꾸어야 합니다. 부서지고 무너질 때 인간적인 생각이나 자존심, 자기 연민 등이 들어 포기하고 싶더라도 과감히 버리는 용기와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저도 이것을 느낀 뒤로는 제 뇌와 심장에 부착된 낡은 틀을 빼고 엄마의 5대 영성 사고방식을 새롭게 장착하여 상대방이 하는 언행이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제가 해야 할 몫인 5대 영성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억울하거나 황당한 일을 당해도 내 탓을 하면서 원망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셈 치고의 영성을 실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삼각형의 틀을 끼우면 삼각김밥이 만들어지듯 엄마의 사고방식처럼 바꾸었더니 5대 영성의 삶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제가 하나 더 말씀드릴 것은 사람들은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예를 들면 학생들은 학교에서 수업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 교과서, 공책, 필기도구 등을 갖추고 시간에 늦지 않게 교실에 와 오늘 배울 교과서를 펴는 것에서 수업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것들도 잘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 저로서는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십수 년간 엄청 화를 내면서 혼내고 계속해서 잔소리를 해야 했습니다.
 
필기도구나 교과서조차 챙겨오지 않아 수업을 바로 진행하지 못할 때면 큰 소리로 혼내며 “군인이 전쟁터에 나가는데 총도 없이 그냥 오니?” 또 과업을 해야 할 때 제가 바라던 대로 정성스럽게 잘 못하면 혼을 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가만히 생각해 보니 크게 혼나야 할 사람은 아이들이 아니라 바로 저였습니다. 나주 순례를 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엄마의 말씀을 완전히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들 중에는 수업 시간에 맞춰 학교에 오는 것만으로도 자기 몫을 기꺼이 다한 아이들도 있을 수 있고, 또 어떤 아이는 손을 들며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면 한 번에 단박에 알아듣는 아이들이 있고, 두 번 세 번 얘기해야 비로소 이해하는 아이들도 있으며, 긴 시간 동안 인내심을 갖고 가르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역량은 모두 다 다릅니다. 여기 모인 분들의 나이가 다양하고 하는 일도 지역도 다 다르듯이 영적인 깨달음의 속도나 양도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저처럼 오랫동안 나주를 순례했어도 이제서야 엄마 말씀이 마음으로 이해되어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순례한 지 얼마 안 된 분임에도 제가 오랫동안에야 깨우친 것을 금세 느끼고 실천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들도 다 나와 같겠거니 생각하고, 나는 이렇게 저렇게 다 하는데 너는 왜 못하냐고 책망합니다. 이 쉬운 걸 왜 못하냐고 무시하고 타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깊이 성찰한다면 우리의 그러한 사고방식이 얼마나 내 위주인지, 얼마나 내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엄마께서는 우리 각자의 영성의 출발점과 배우는 속도와 양이 다 다르다는 것을 아주 잘 아시기에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셔도 깨닫지 못하고 같은 실수와 잘못을 할 때 “괜찮습니다. 오늘부터 새로 시작하면 됩니다. 마음으로 느끼면 할 수 있습니다.” 하시며 격려하시고 용기를 주십니다. 우리도 조금 느리게 배워도 천천히 깨달아도 그 사람의 속도라고 생각하고 그 차이를 받아들인다면 누구를 함부로 대하거나 업신여기거나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영성뿐 아니라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의 측면에서도 어떤 사람은 자기 몫만 할 수 있고 거뜬히 두 사람 이상의 역량을 발휘하는 능력자도 있으며, 오랫동안 알려줘도 자기 몫을 못 하는 사람도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저도 예전 같으면 크게 화낼 일에도
 
‘그것을 잘 해내지 못하는 당사자는 얼마나 답답하고 불편할까?’ 하는 생각 때문에 친절하게 알려주려고 노력합니다. 예전에는 약한 존재한테만 측은지심이 들었는데, 이제는 마음에 미움과 분노가 가득 찬 사람들을 보면서도 측은지심이 절로 듭니다.

그 이면의 상처가 보이기 때문이지요. 제대로 잘 해내지 못해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은 “애들이 다 그렇지 뭐!” 하면서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랬더니 저절로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너그러워지면서 미움과 분노와 증오가 사라지고 평화가 채워졌습니다.
 
화로 가득했던 제 마음은 이제는 일부러 애써 보아도 화가 잘 나지 않습니다.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했어도 보통 신혼 때에는 참 많이 싸웁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기에 나와 다른 상대의 기준과 성향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잘 못하는 것은 조금 더 잘하는 배우자가 하면 되고,
 
또 상대방이 못하는 것은 내가 함으로써 서로 간의 차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조금씩 맞추려 노력하다 보면 식성도, 생활 습관도 비슷해지고 심지어 외모까지 닮아가는 부부가 될 수 있습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작은 몸짓 하나라도 배우자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게 되죠.
 
이게 바로 진정한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뜻일 것입니다. 저는 갓 결혼해서 풋풋한 신혼부부도 보기 좋지만 이렇게 두 사람이 하나가 된 듯한 노부부의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지게 보입니다. 우리도 각자 다르지만, 그리스도의 한 지체로서 나의 몫을 다하려 최선을 다하고 항상 5대 영성을 실천하는 엄마의 사고방식을 닮아 엄마와 하나로 일치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의 역량과 영성의 수준을 다 이해하시고 받아주시는 주님과 성모님께서도 기뻐하시며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사랑의 기적을 행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될 때 빠른 시일 내에 나주의 자유로운 순례가 이루어져 성모님의 승리도 앞당겨질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2025년 2월 1일 김 글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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