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집을 다 치우고 나서 내가 “할아버지, 왜 혼자 사세요? 자녀분은 없으세요?” 하고 물었더니 할아버지는 “예, 없어요.” 하셨다. “그러면 이렇게 혼자 사셔요?” “예.” “결혼은 안 하셨어요?” “결혼은 했었다오. 나는 원래 3남매요. 결혼한 형이 일찍 혼자되어 내가 형을 모시고 살았소.
그 후 누이동생도 시집갔다 쫓겨 와 동생도 함께 살게 되었다오. 그러다 나도 장가를 갔는데 아내가 시집온 지 한 달 만에 친정에 다녀온다고 갔다가 한 달 만에 죽어버렸다오.” “예? 왜요?” “마누라는 결혼하기 전부터 이미 불치병에 걸려 있었다오. 처가에선 딸을 처녀귀신으로 죽게 하지 않을 심산으로 아무 가진 것 없는 나에게 시집을 보낸 것이었소.”
이 얼마나 기구한 사연인가! 할아버지의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너무너무 안타까워 나도 모르게 이슬방울이 흘렀다. “그런데 왜 재혼 안 하셨어요?” “뭐 먹고살 것이라도 있어야 재혼을 하지요. 게다가 아픈 형님과 여동생까지 먹여 살려야 되었다오. 마땅한 재주도 없어라우.
그러니 대나무로 작살을 만들어서 개천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서 팔아 조금 번 돈으로 근근이 끼니나 때우며 살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개천에서 고기를 잡아가지고 오다가 넘어졌는데 돌부리에 오른쪽 눈을 다치게 되었다오. 돈이 없으니 치료 한 번도 받아 보지도 못한 채 그냥 그대로 놔뒀더니만, 오른쪽 눈이 안 보이더니 나중에는 남은 왼쪽 눈마저도 안 보이게 됩디다. 결국 그렇게 봉사가 되고 말았지요.”
“예? 그러면 지금 눈을 못 보신단 말씀이에요?” 우리는 그때까지만 해도 할아버지가 눈을 뜨고 계셨기에 맹인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단지 노인이시라 몸이 쇠약하셔서 물을 떠다 달라고 하시는가 보다 했었다. 우리가 너무나도 뜻밖이라는 듯이 놀라자 할아버지는 “나는 눈 뜬 당달봉사요.” 하는 것이 아닌가!
할아버지는 슬프게 말씀을 이었다. “그 뒤 형님도 돌아가시고 동생도 죽고 나 혼자 남아 그 당시 호남 비료 공장(현 LG화학 나주공장) 자리에서 살고 있었다오. 그런데 비료 공장을 짓기 위하여 그 집을 비워 주는 대신에, 내가 살도록 이 집 하나를 준 것이라오. 그런데 뒷집에서 자기 집을 지으면서 우리 하수구까지 다 막아버리는 바람에 이 지경이 되었다오.
세상에 질긴 것이 사람 목숨이라 앞 못 보는 내가 죽지도 못하고 이렇게 살고 있소. 그래서 참말로 내 소원은 빨리 죽는 것이라오.” 우리는 할아버지와 함께 울고 말았다. 할아버지가 너무나 안쓰러웠던 나는 봉 할아버지를 작은 예수님으로 생각하고 그다음 날부터 매일 그 집에 다니며 사랑을 실천했다.
사실 나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상황이었다. 바쁜 미용실 생활, 성령운동은 안 한다고 했어도 특별한 행사나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나를 불렀기에 참석해야 했다. 거기다 레지오 활동까지. 그러나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봉일동 할아버지 집에 매일같이 들르는 일만은 멈춘 날이 거의 없었다.
세상에 질긴 것이 사람 목숨이라 앞 못 보는 내가 죽지도 못하고 이렇게 살고 있소.
그래서 참말로 내 소원은 빨리 죽는 것이라오.” 우리는 할아버지와 함께 울고 말았다.
할아버지가 너무나 안쓰러웠던 나는 봉 할아버지를 작은 예수님으로 생각하고
그다음 날부터 매일 그 집에 다니며 사랑을 실천했다.
사실 나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상황이었다.
바쁜 미용실 생활, 성령운동은 안 한다고 했어도 특별한 행사나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나를 불렀기에 참석해야 했다. 거기다 레지오 활동까지. 그러나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봉일동 할아버지 집에 매일같이 들르는 일만은 멈춘 날이 거의 없었다.
🌹할아버지가 너무나 안쓰러웠던 나는 봉 할아버지를 작은 예수님으로 생각하고
그다음 날부터 매일 그 집에 다니며 사랑을 실천했다. 사실 나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상황이었다.
바쁜 미용실 생활, 성령운동은 안 한다고 했어도 특별한 행사나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나를 불렀기에 참석해야 했다. 거기다 레지오 활동까지.
그러나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봉일동 할아버지 집에 매일같이 들르는 일만은 멈춘 날이 거의 없었다.
예수님! 엄마께서는 사랑의 힘을 발휘하여 이웃에게 사랑 실천을 하시는데
저에게는 이런 항구함이 많이 부족합니다. 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게 있는데요.ㅠㅠ
제가 전심을 다해 이웃을 예수님과 성모님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성하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나의 이웃을 예수님과 성모님으로 생각하고 이웃을
섬기는 자세로 임한다면 엄마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닮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일이든지 주저하지 않고 항구하게 해내시는 엄마의 열정을💖닮도록 이끌어주세요.
또다시 새롭게 시작할게요. 엄마의 삶을 배울 수 있음에 감사드려요. 너무 행복합니다. 사랑해용🥰
기구하기 짝이 없는 사연의 할아버지는 눈뜬 당달봉사였다
온 집을 다 치우고 나서 내가 “할아버지, 왜 혼자 사세요? 자녀분은 없으세요?” 하고 물었더니 할아버지는 “예, 없어요.” 하셨다. “그러면 이렇게 혼자 사셔요?” “예.” “결혼은 안 하셨어요?” “결혼은 했었다오. 나는 원래 3남매요. 결혼한 형이 일찍 혼자되어 내가 형을 모시고 살았소.
그 후 누이동생도 시집갔다 쫓겨 와 동생도 함께 살게 되었다오. 그러다 나도 장가를 갔는데 아내가 시집온 지 한 달 만에 친정에 다녀온다고 갔다가 한 달 만에 죽어버렸다오.” “예? 왜요?” “마누라는 결혼하기 전부터 이미 불치병에 걸려 있었다오. 처가에선 딸을 처녀귀신으로 죽게 하지 않을 심산으로 아무 가진 것 없는 나에게 시집을 보낸 것이었소.”
이 얼마나 기구한 사연인가! 할아버지의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너무너무 안타까워 나도 모르게 이슬방울이 흘렀다. “그런데 왜 재혼 안 하셨어요?” “뭐 먹고살 것이라도 있어야 재혼을 하지요. 게다가 아픈 형님과 여동생까지 먹여 살려야 되었다오. 마땅한 재주도 없어라우.
그러니 대나무로 작살을 만들어서 개천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서 팔아 조금 번 돈으로 근근이 끼니나 때우며 살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개천에서 고기를 잡아가지고 오다가 넘어졌는데 돌부리에 오른쪽 눈을 다치게 되었다오. 돈이 없으니 치료 한 번도 받아 보지도 못한 채 그냥 그대로 놔뒀더니만, 오른쪽 눈이 안 보이더니 나중에는 남은 왼쪽 눈마저도 안 보이게 됩디다. 결국 그렇게 봉사가 되고 말았지요.”
“예? 그러면 지금 눈을 못 보신단 말씀이에요?” 우리는 그때까지만 해도 할아버지가 눈을 뜨고 계셨기에 맹인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단지 노인이시라 몸이 쇠약하셔서 물을 떠다 달라고 하시는가 보다 했었다. 우리가 너무나도 뜻밖이라는 듯이 놀라자 할아버지는 “나는 눈 뜬 당달봉사요.” 하는 것이 아닌가!
할아버지는 슬프게 말씀을 이었다. “그 뒤 형님도 돌아가시고 동생도 죽고 나 혼자 남아 그 당시 호남 비료 공장(현 LG화학 나주공장) 자리에서 살고 있었다오. 그런데 비료 공장을 짓기 위하여 그 집을 비워 주는 대신에, 내가 살도록 이 집 하나를 준 것이라오. 그런데 뒷집에서 자기 집을 지으면서 우리 하수구까지 다 막아버리는 바람에 이 지경이 되었다오.
세상에 질긴 것이 사람 목숨이라 앞 못 보는 내가 죽지도 못하고 이렇게 살고 있소. 그래서 참말로 내 소원은 빨리 죽는 것이라오.” 우리는 할아버지와 함께 울고 말았다. 할아버지가 너무나 안쓰러웠던 나는 봉 할아버지를 작은 예수님으로 생각하고 그다음 날부터 매일 그 집에 다니며 사랑을 실천했다.
사실 나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상황이었다. 바쁜 미용실 생활, 성령운동은 안 한다고 했어도 특별한 행사나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나를 불렀기에 참석해야 했다. 거기다 레지오 활동까지. 그러나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봉일동 할아버지 집에 매일같이 들르는 일만은 멈춘 날이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