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옆자리 할머니 환자까지 돌보며 몸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하느님께서 나를 죽음에서 살려주셨기에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너무 기뻐서 하느님께 끝없이 감사를 드렸다. 시어머님을 간호하며 다치신 곳에 뽀뽀도 해드리고 입김도 불어드리며 갖은 정성으로 보필해 드렸다.
특히 뽀뽀를 해드리거나 입김을 불어드릴 때는 무덤이 열리고 뼈가 붙고 살이 붙어 살아났던 예수님과의 기억이 떠오르며 간절한 기도가 우러나왔다. “예수님, 당신께서 함께해주셨기에 제 입김을 통해 무덤이 열리고 뼈가 붙고 살이 붙고 숨이 돌아오는 놀라운 사랑의 기적을 보여주셨지요.
매 순간 저와 함께해주시어 지금 제 시어머니의 손목에 불어넣는 이 입김을 예수님의 입김으로 바꿔주셔요. 그래서 시어머니의 다친 손목도, 건강도 빠르게 회복되어 주님 영광 드러내게 해주세요.” 나는 간절히 기도하며 자주 입김을 불어드리고 뽀뽀해드렸다. 시어머니는 손목뼈가 두 개나 부러지면서 인대와 신경, 실핏줄을 건드린 데다가 그 근방의 뼈가 다 바스러진 심각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놀랍도록 빨리 회복이 되어 의사와 간호사들도 너무 신기해하며 놀라워했다. 다리가 부러지셨던 옆자리 할머니께도 자주 입김을 불어드리고 뽀뽀해드렸다. 할머니 역시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쾌차하셔서 빨리 퇴원하셨다. 할머니는 다리가 금방 나아 기뻐하셨지만, 나와 헤어지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며 말씀하셨다.
“새댁! 새댁 덕분에 내가 빨리 나은 것이여. 다리가 빨리 나아서 좋기는 하다만 그간 정이 요로코롬 들어부렀는디 이제 보고 싶어서 우짠디야. 새댁은 참말로 복 받을껴. 그동안 참마로 고마웠네이.” 할머니는 그렇게 정정하게 아주 잘 걸어가셨다. 그 뒷모습을 보니 너무 기뻐 예수님께 감사드렸다.
그이는 형제간이 8남매나 되었지만, 도와주는 형제나 동서가 아무도 없어 입원 기간 내내 나 혼자 시어머니 간호를 해야 했다. 잠시라도 와보는 이가 없어 전혀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이제 막 시작한 미용실에도 타격이 컸지만, 미용실 출근한 셈 치고, 미용실이 순조롭게 잘 된 셈 치고 모든 것을 시어머니를 위해 봉헌했다.
시어머니는 놀랍게도 2주 만에 퇴원하시게 되었다. 퇴원 수속을 밟는데 80년도 그 당시 수술비만 150만 원이었고, 입원비 20만 원까지 합치니 총 170만 원이나 나왔다. 나는 깜짝 놀라 병원 원무과 직원에게 물었다. “아니, 무슨 병원비가 그렇게 많이 나왔어요?” 그러자 직원이 자세하게 대답해줬다.
“할머니는 뼈가 다 부러진 것만이 아니라 아예 바스러졌고, 신경과 인대도 다 파열되었어요. 그 근방의 뼈도 모두 조각조각 깨져서 정말 힘든 수술이었답니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어서 그 정도예요. 사실 이런 환자는 수술도 힘들고 낫기도 힘들기에 최소 한 달은 더 입원하셨어야 했어요.
아마 다른 경우라면 병원비가 훨씬 더 많이 나왔을 텐데, 너무 놀랍게 빨리 회복되셔서 돈 굳으신 거예요. 그 연세에 그 정도면 1년도 더 갈 수 있는데 말이죠. 그래도 빨리 회복되어 다행입니다.” 그 당시 나는 재정적으로 매우 힘든 상태였다. 미용실이 잘 되긴 했지만 전부 빚과 대출로 차린 것이고, 시어머니께 큰돈을 빚을 내어 드렸기에 원금과 이자를 내기에도 버거웠다.
그런데 2주간이나 미용실을 비웠으니 수입은 또 어떠했겠는가! 게다가 애초에 시어머님의 막대한 빚을 내가 대신 갚느라 수중에 돈이 전혀 없었다. 시어머니는 아들인 남편에게는 전혀 말하지 않고 나에게만 돈을 재촉하셨다. 나는 병원비가 너무 많이 나와 고심했다. ‘다들 빚으로 생활하는 우리 집 형편보다 훨씬 나을 텐데 조금은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남편의 형제 중 대학생들을 제외한 모두에게 연락하여 어렵게 병원비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 그러나 시어머니께서 입원하실 때처럼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자신들의 친어머니인데 그 누구도 돕지 않는 것이 인간적으로는 조금 이해가 가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준 셈 치고 봉헌했다.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치료 기간이 훨씬 길어 더 큰 비용이 들어야 했지만, 예수님께서 부족한 내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어 시어머니를 빨리 치유해주셨기에 비용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감사드렸다. 결국 언제나 도와주셨던 큰이모님께 다시 부탁하여 어렵게 빚을 내어 병원비를 계산했다.
시어머니를 광주 집에 모셔다드리고 인사했다. “어머니, 병원에 계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무리하지 마시고 편히 계셔요. 저 또 올게요.” 하고 인사를 했어도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어미야 그동안 미용실에 출근도 못하고 내병수 발하느라고 수고했다.”라고 사랑으로 말씀해주신 셈치고 봉헌했다. 시어머니의 입원 기간 내내 남편의 일곱 남매 중 병간호는 고사하고 누구 하나 찾아오거나 병원비를 단 한 푼도 보탠 이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를 응당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여기며, 형제들이 함께 도와준 셈 치고 봉헌하니 섭섭하지 않았다. 도리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곁에 끝까지 남아 있던 사도 요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것이라 생각하니, 예수님께 해드린 셈 치고 시어머니를 위해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여 흐뭇하기까지 했다.
큰이모님과의 비하인드 스토리
훗날 나는 주님의 참으로 오묘하신 예비하심을 깨달은 일이 있었다. 1971년 결혼 직후부터 시어머니는 수시로 나를 찾아와 급하게 돈을 해달라고 하셨는데, 그때마다 광주 사시는 큰이모님께 부탁하면 그때마다 기꺼이 잘 도와주셨다. 한번은 이모님께 어떻게 매번 그런 큰돈을 잘 빌릴 수 있으셨느냐고 여쭈어보았다. 이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게 말이야. 그때 내가 돈 많은 사람들하고 친하긴 했다만, 그렇다고 가난했던 그 시절에 누가 그 큰돈을 늘 수중에 가지고 있었겠냐? 그런데 희한하게도 네가 돈을 부탁할 때마다 그들에게 돈이 있었던 거야. 한두 번도 아니고 그렇게 자주 부탁했었는데 매번 그랬어.” 이 또한 주님께서 주관하셨음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필요할 때 필요한 은총을 내려주시는 주님은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영원히 세세 영원히 받으소서! 아멘!’
"병원비도 단 한 푼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러나 응당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며
형제들이 함께 도와준 셈 치고 봉헌하니 섭섭하지 않았다. 도리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곁에 끝까지 남아 있던 사도 요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것이라고
생각하며, 예수님께 해드린 셈 치고 시어머니를 위해 사랑 실천할 수 있도록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흐뭇하기까지 했다."
아멘!
섭섭 마귀에게 밥을 많이 주었던 과거를 반성하며 새롭게 시작할게요.
제가 엄마의 이 마음으로 살 수 있도록 간절히 주님께 은총을 청합니다.
희한하게도 네가 돈을 부탁할 때마다 그들에게 돈이 있었던
거야. 한두 번도 아니고 그렇게 자주 부탁했었는데 매번 그랬어.
”라고 하셨다. 이 또한 주님께서 주관하셨음이 아니고 또 무엇
이겠는가? 필요할 때에 필요한 은총을 내려주시는 주님은 찬미
감사와 영광 받으소서아멘!!!아멘!!!아멘!!! 감사합니다 !!!
나는 그들이 함께 합심해서 십시일반으로 도와준 셈치고 봉헌했다.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치료에 더 많은 기간이 걸려
더 큰 비용이 들어야 했지만, 예수님께서 내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어 시어머니를 빨리 치유해주셨기에 비용이 훨씬
줄어들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감사드렸다.아멘!!!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함께 합심해서 십시일반으로 도와준 셈치고 봉헌했다.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치료에 더 많은 기간이 걸려 더 큰 비용이 들어야 했지만, 예수님께서 내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어 시어머니를 빨리 치유해주셨기에 비용이 훨씬 줄어들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감사드렸다.
오른 손목뼈가 다 부서져 인대와 신경, 실핏줄까지 파열
시어머니와 옆자리 할머니 환자까지 돌보며 몸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하느님께서 나를 죽음에서 살려주셨기에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너무 기뻐서 하느님께 끝없이 감사를 드렸다. 시어머님을 간호하며 다치신 곳에 뽀뽀도 해드리고 입김도 불어드리며 갖은 정성으로 보필해 드렸다.
특히 뽀뽀를 해드리거나 입김을 불어드릴 때는 무덤이 열리고 뼈가 붙고 살이 붙어 살아났던 예수님과의 기억이 떠오르며 간절한 기도가 우러나왔다. “예수님, 당신께서 함께해주셨기에 제 입김을 통해 무덤이 열리고 뼈가 붙고 살이 붙고 숨이 돌아오는 놀라운 사랑의 기적을 보여주셨지요.
매 순간 저와 함께해주시어 지금 제 시어머니의 손목에 불어넣는 이 입김을 예수님의 입김으로 바꿔주셔요. 그래서 시어머니의 다친 손목도, 건강도 빠르게 회복되어 주님 영광 드러내게 해주세요.” 나는 간절히 기도하며 자주 입김을 불어드리고 뽀뽀해드렸다. 시어머니는 손목뼈가 두 개나 부러지면서 인대와 신경, 실핏줄을 건드린 데다가 그 근방의 뼈가 다 바스러진 심각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놀랍도록 빨리 회복이 되어 의사와 간호사들도 너무 신기해하며 놀라워했다. 다리가 부러지셨던 옆자리 할머니께도 자주 입김을 불어드리고 뽀뽀해드렸다. 할머니 역시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쾌차하셔서 빨리 퇴원하셨다. 할머니는 다리가 금방 나아 기뻐하셨지만, 나와 헤어지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며 말씀하셨다.
“새댁! 새댁 덕분에 내가 빨리 나은 것이여. 다리가 빨리 나아서 좋기는 하다만 그간 정이 요로코롬 들어부렀는디 이제 보고 싶어서 우짠디야. 새댁은 참말로 복 받을껴. 그동안 참마로 고마웠네이.” 할머니는 그렇게 정정하게 아주 잘 걸어가셨다. 그 뒷모습을 보니 너무 기뻐 예수님께 감사드렸다.
그이는 형제간이 8남매나 되었지만, 도와주는 형제나 동서가 아무도 없어 입원 기간 내내 나 혼자 시어머니 간호를 해야 했다. 잠시라도 와보는 이가 없어 전혀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이제 막 시작한 미용실에도 타격이 컸지만, 미용실 출근한 셈 치고, 미용실이 순조롭게 잘 된 셈 치고 모든 것을 시어머니를 위해 봉헌했다.
시어머니는 놀랍게도 2주 만에 퇴원하시게 되었다. 퇴원 수속을 밟는데 80년도 그 당시 수술비만 150만 원이었고, 입원비 20만 원까지 합치니 총 170만 원이나 나왔다. 나는 깜짝 놀라 병원 원무과 직원에게 물었다. “아니, 무슨 병원비가 그렇게 많이 나왔어요?” 그러자 직원이 자세하게 대답해줬다.
“할머니는 뼈가 다 부러진 것만이 아니라 아예 바스러졌고, 신경과 인대도 다 파열되었어요. 그 근방의 뼈도 모두 조각조각 깨져서 정말 힘든 수술이었답니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어서 그 정도예요. 사실 이런 환자는 수술도 힘들고 낫기도 힘들기에 최소 한 달은 더 입원하셨어야 했어요.
아마 다른 경우라면 병원비가 훨씬 더 많이 나왔을 텐데, 너무 놀랍게 빨리 회복되셔서 돈 굳으신 거예요. 그 연세에 그 정도면 1년도 더 갈 수 있는데 말이죠. 그래도 빨리 회복되어 다행입니다.” 그 당시 나는 재정적으로 매우 힘든 상태였다. 미용실이 잘 되긴 했지만 전부 빚과 대출로 차린 것이고, 시어머니께 큰돈을 빚을 내어 드렸기에 원금과 이자를 내기에도 버거웠다.
그런데 2주간이나 미용실을 비웠으니 수입은 또 어떠했겠는가! 게다가 애초에 시어머님의 막대한 빚을 내가 대신 갚느라 수중에 돈이 전혀 없었다. 시어머니는 아들인 남편에게는 전혀 말하지 않고 나에게만 돈을 재촉하셨다. 나는 병원비가 너무 많이 나와 고심했다. ‘다들 빚으로 생활하는 우리 집 형편보다 훨씬 나을 텐데 조금은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남편의 형제 중 대학생들을 제외한 모두에게 연락하여 어렵게 병원비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 그러나 시어머니께서 입원하실 때처럼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자신들의 친어머니인데 그 누구도 돕지 않는 것이 인간적으로는 조금 이해가 가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준 셈 치고 봉헌했다.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치료 기간이 훨씬 길어 더 큰 비용이 들어야 했지만, 예수님께서 부족한 내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어 시어머니를 빨리 치유해주셨기에 비용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감사드렸다. 결국 언제나 도와주셨던 큰이모님께 다시 부탁하여 어렵게 빚을 내어 병원비를 계산했다.
시어머니를 광주 집에 모셔다드리고 인사했다. “어머니, 병원에 계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무리하지 마시고 편히 계셔요. 저 또 올게요.” 하고 인사를 했어도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어미야 그동안 미용실에 출근도 못하고 내병수 발하느라고 수고했다.”라고 사랑으로 말씀해주신 셈치고 봉헌했다. 시어머니의 입원 기간 내내 남편의 일곱 남매 중 병간호는 고사하고 누구 하나 찾아오거나 병원비를 단 한 푼도 보탠 이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를 응당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여기며, 형제들이 함께 도와준 셈 치고 봉헌하니 섭섭하지 않았다. 도리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곁에 끝까지 남아 있던 사도 요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것이라 생각하니, 예수님께 해드린 셈 치고 시어머니를 위해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여 흐뭇하기까지 했다.
큰이모님과의 비하인드 스토리
훗날 나는 주님의 참으로 오묘하신 예비하심을 깨달은 일이 있었다. 1971년 결혼 직후부터 시어머니는 수시로 나를 찾아와 급하게 돈을 해달라고 하셨는데, 그때마다 광주 사시는 큰이모님께 부탁하면 그때마다 기꺼이 잘 도와주셨다. 한번은 이모님께 어떻게 매번 그런 큰돈을 잘 빌릴 수 있으셨느냐고 여쭈어보았다. 이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게 말이야. 그때 내가 돈 많은 사람들하고 친하긴 했다만, 그렇다고 가난했던 그 시절에 누가 그 큰돈을 늘 수중에 가지고 있었겠냐? 그런데 희한하게도 네가 돈을 부탁할 때마다 그들에게 돈이 있었던 거야. 한두 번도 아니고 그렇게 자주 부탁했었는데 매번 그랬어.” 이 또한 주님께서 주관하셨음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필요할 때 필요한 은총을 내려주시는 주님은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영원히 세세 영원히 받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