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부 서남순 데레사라고 합니다. 저는 1985년도에 신문을 보고 나주를 방문하게 됐습니다. 율리아 엄마가 정 미용실 할 때 왔었는데 전국에서 대형 버스를 타고 순례객들이 많이 왔어요. 그때 당시 저도 기도를 하러 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회개의 은총을 받고 “또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되겠다.”는 그런 말씀도 많이 하셨어요. 저는 그때 당시 목포에서 공무원이었거든요. 그래서 출장 명령서를 내놓고 자주 왔었어요.
올 때마다 많은 버스가 와서 막 미어터지고 그렇게 많이 왔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부산으로 이사를 가게 됐었거든요. 율리아 엄마를 통해서 많은 은총을 주셨는데 1995년, 그때부터 수많은 은총을 받았어요.
제가 엄마 모습들을 정말 많이 목격을 했었어요. 그리고 1995년 5월 달에 엄마의 대속 고통 비디오를 보면서 너무나도 많은 영적인 치유를 받았어요. 그때 당시 우리 장부가 큰 사업을 하고 있어서 빚을 많이 졌기 때문에 나는 뒤치다꺼리만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너무 힘들었고 이 억눌린 가슴을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엄마의 그 삶을 보고는 ‘아,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생각을 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고, 용기가 생기고. 저는 장부 빚 때문에 조금이라도 이자가 싼 것을 하기 위해서 이리 막고 저리 막느라고 수없이 많은 통장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주님, 성모님 덕분에 지금은 빚을 다 갚았고 율리아 엄마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으며 너무 감사했었습니다.
장부가 전에 자기가 감당을 못하니까 “이혼을 하자.” 그런 말을 먼저 꺼내요. 그런데 저는 나주 성모님 메시지에서 “가정이 병들고 있다.” 말씀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내 가정을 지켜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때 당시에 아이가 초등학교, 중학교 다녔어요.
그런데 IMF가 닥치고 주위 사람들이 이혼을 하고 가정이 병들고 깨지면서 자살하고 할머니들이 애들을 키우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나는 나주 성모님, 엄마를 통해서 메시지를 접했기 때문에 ‘내 가정을 꼭 지켜야 되겠다!’ 그 생각을 하면서 하니까 딸이 초등학교 다닐 때 “내 엄마가 되어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또 아들은 중학교 다녔는데 “엄마가 그 큰 버팀목이 되어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내 엄마가 되어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그러더라고요.
‘다 나주 성모님 덕분이다. 율리아 엄마의 고통에 비해서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면서 위로를 받고 ‘넘어지고 또 넘어지더라도 오뚝이처럼 일어나고 또다시 새롭게 시작하자.’ 그런 마음으로 하니까 내가 생각지도 않을 때 주님과 성모님께서 영적인 치유, 물질적인 치유를 다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감사해요. 누가 뭐라고 해도 나주는 진짜 참 진실이고 엄마를 통해서 모든 걸 다 주셨잖아요. 제가 여기 95년도부터 지금까지 정말 거의 빼먹지 않고 다녔었어요.
그리고 저는 차가 있기 때문에 성모님 동산에도 많이 다녔고 모든 것을 다 목격했고 엄마의 희생과 대속 고통을 통해서 많은 은총을 받았는데 이제 다른 곳 수녀님들이 오시면 제가 밤에 모시고 와요. 그러면 저 밑에부터 불을 환하게 비춰줘요. 그래서 그 수녀님도 신기하다고 막 그러셨거든요. 정말로 살아계신 주님과 성모님께서 현존하시고 성인 성녀들께서 다 현존하고 계시잖아요. 그리고 엄마의 희생, 보속 고통을 통해서 은총을 주셨잖아요.
그래서 항상 감사하면서 다녔는데 3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2002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때 미사가 끝나고 곧바로 성모님 동산에 왔었어요. 그랬는데 갈바리아 십자가에서 계속 진액이 한 방울 한 방울씩 이렇게 내려오실 때 장미향기가 엄청 진동했어요. 그때 말레이시아 수 신부님과 외국에서 오신 신부님들과 일행들이 많이 오셨어요. 부활 예수님상으로 급히 막 가시더라고요. 가셔서 미사를 집전하시고, 저희는 십자가의 길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부활 예수님상에도 장미향기가 엄청 진동했었어요.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하고 내려와서 성혈 조배실에 경배를 하려고 왔는데 웬일입니까? 성혈이 막 응고되어서 돌에 있고 또 가시도 있고 그 안에 큰 돌이 있어요. 거기에 선홍색으로 아주 많이 흥건하게 내리셨어요. 우리는 너무 놀라 오열을 하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봉사자가 지나가길래 말씀드렸더니 조금 후에 엄마가 오셨어요. 오셔서 기도를 하면서 묵상을 하는 중에 탈혼 상태에 들어가셨는데 “누가 찢어진 내 가슴을 기워줄 것이냐?” 큰소리로 외치시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그때 정말로 오열을 하면서 눈물 콧물 다 짜면서 울었어요. 그중에 한 자매가 굉장히 (가정에서) 불목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성모님 동산을 와보고는 정말 회개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을 했고 겸손한 자로서 불목했던 것을 내 탓으로 돌리면서 봉헌해야 되겠다고 했었어요.
또 다른 수녀원 수녀님들한테 제가 전화했어요. 지금 나주 성모님 동산에 성혈이 내리셨는데 얼른 오라 하니까 두 분 수녀님들이 “오빠가 콘도를 예약해 줘서 휴가를 가야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감히 그게 문제가 아니니까 얼른 해약을 하고 오라고 그랬어요. 여기는 은총의 장소잖아요. 오려고 하니까 발을 딱 삐어서 못 가게 하더래요. 그래도 오라고 막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 수녀님이 봉고차로 관구장 수녀님하고 두 분이 오셨어요.
또 오는 도중에 봉고차가 계속 고장이 나더래요. 그래도 오셨어요. 그래서 같이 기도를 하고 있는데 성모님 계신 데서 장미향기가 아주 강하게 진동했고 또 성혈 조배실에서는 피비린내가 엄청 강하게 났어요. 관구장 수녀님이 하시는 말씀이 “성직자, 수도자들을 부르고 계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순명한다는 미명 아래 숨어서 못 오니 정말 너무너무 안타깝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율리아 엄마께서 함께하시는 곳은 항상 사랑과 은총의 신비 그 자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저는 전국 피정 있을 때마다 따라다녔었거든요. 은총이 너무나도 많았어요. 그리고 엄마의 몸에서 기름이 되어서 장미향기가 가득하고 성혈이 자주 엄마께 내려오심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엄마 머리 뒤쪽에서 황금향유가 꿀 꿀 꿀 쏟아진 거 목격했고요. 엄마 옷에 젖이 흠~뻑 젖어 있는데 우리들한테 다 스며드는 그런 모습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참젖도 흠뻑 주셨는데 엄마가 기도하실 때 물(기적수)이 막 살아서 움직여요. 아까 율신액 보셨죠? 오색찬란하게 막 움직이시고 색을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답게 주시는데! 너무 아름다워. 막 살아서 움직여요.
그리고 제 옷에 젖도 주시고, 향유도 주시고, 성혈도 주시고 엄마를 따라다니니까 엄마를 통해서 이렇게 다 은총을 주시는 거예요. 저는 너무 부족하고, 죄인이지만 엄마의 희생 보속과 그 고통을 보시고 다 주시더라고요. 작은 거 하나라도 흘려보내지 않으시는 엄마는 죽음을 넘나드는 대속 고통 속에서도 언제나 희망 있는 고통이라고, 늘상 그러시잖아요.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으시고 활짝 웃으시고 그러니까 엄마의 모습을 보면 누가 아프시다고 하겠어요. 그 모습을 봤을 때 너무 안타깝고 죄스럽고 ‘저 때문에 정말 엄마가 대속 고통을 받고 계시구나.’ 생각하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고 너무 안타깝고 엄마는 아무 죄도 없잖아요.
우리들 때문에 대속 고통을 받고 계신다는 것이 항상 마음이 아파서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희생을 바쳐야 되겠다.’ 그런 마음으로 나주에 자주 왔었습니다.
초심을 잃어버리지 않고 생활의 기도로써 찢긴 성모 성심을 기워드리는 사랑의 재봉사가 되며 율리아 엄마의 삶을 본받아서 기도와 희생과 봉헌된 삶을 살도록 매일 매 순간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어 5대 영성 실천하는 삶 살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6월 30일 날 38주년을 맞이하여 준비하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매일 다녔습니다. 그때 갈바리아 예수님 발가락 두 개에서 (흘러나온) 진액이, 향기가 계속 났고 또 요한 사도 양쪽 옷깃에서 진액이 나오셨어요.
그리고 작년에 제가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과 갈바리아 예수님을 집에다 모셨어요. 그때 예수님 모시고 기도를 하는데 우리 가정과 멀리 있는 자녀들과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다 지켜주심을 느꼈습니다. 집에 3일간 저 혼자 있는데 계속 타는 냄새가 나는 거예요. ‘이게 무슨 냄새지? 이게 무슨 냄새지?’ 막 이랬거든요. 저희 집은 좀 오래된 집이에요. 주택 2층 집인데 아래층에서 계속 무슨 타는 냄새가 나요.
그래서 다 살펴보니 그 벽 있는 데서 새카맣게 탔더라고요. 전기선이 탔나 봐요. 그랬는데 3일 동안 그것을 내가 못 발견하니까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께서 지켜주셨어요.
또 아들이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데 작년에 굉장히 폭우가 쏟아져서 많은 피해가 있었고 사람들이 막 죽고 그런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저녁 8시에 저하고 통화를 했어요.
그랬는데 (1시간 정도 후) 경기도에 사는 딸이 오빠한테 전화하니까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막 그러더래요. 그리고 그 말 하고 나서 전화가 딱 끊긴 거예요. 그래서 “엄마! 전화가 절대 안 되는데 웬일인가 모르겠다. 너무 위급한 것 같다.”고 그러면서 119에 긴급 전화를 했거든요. 119에서 긴급 전화로 해 주더라고요. 그런데 또 연결이 안 돼요. 그래서 딸이 어떻게 해서 잡았대요. 그런데 동시에 다른 데서도 그 시간에 119에 전화를 했는데 119 구급차가 아들 집으로 온 거예요.
물이 하나 차서 도어 키가 안 열려서 밖으로 못 나왔거든요. 진짜 죽을 위험에 있었는데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께서 지켜주신 거예요. 거기 주위에 원룸 사람들이 엄청 많은데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아요. 아들은 물이 다 차버렸으니까 공기청정기를 딛고 올라서 나왔다고 그러더래요.
그래서 목숨을 구했는데 아들 목숨만 구한 게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구한 거예요. 그래서 칭찬도 받고 그랬대요. 아들이 영어도 하고 중국어도 하니까 통역을 해줬나 봐요. 거기에 외국 사람들이 많이 살거든요. 그러니까 동사무소에서, 소방서에서 너무 감사하다고 그랬대요. 성모님께서 그 아이들을 다 키워주셨어요.
다 장학생으로 다니고 성모님께서 율리아 엄마를 통해서 다 길러주시고 보호해 주셨어요. 아이들이 착하게 자란 것도 다 성모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율리아 엄마가 “항상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많이 이야기를 하셨어요. 엄마는 누구든지 막 주고 싶어 하시잖아요.
또 엄마는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미안하다.” “고맙다.” 그런 말씀을 참 많이 쓰셔요. 그래서 “엄마 아니에요. 저는 나주 성모님을 알고 엄마를 알았다는 것이 정말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랬습니다. 이상입니다. 주님, 성모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리고 엄마께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1985년도에 신문을 보고 처음 오셨으니 정말 오래되셨네요~!
그동안 엄청난 수많은 은총 체험을 나눠 주셔서 무지 감사드립니다~!
"제 옷에 젖도 주시고, 향유도 주시고, 성혈도 주시고 엄마를 따라다니니까
엄마를 통해서 이렇게 다 은총을 주시는 거예요.
저는 너무 부족하고, 죄인이지만 엄마의 희생 보속과 그 고통을 보시고 다 주시더라고요." 아멘~~!
정말 누가 뭐라해도 나주가 참 진실임을 확실히 느끼고 확신을 가지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엄마 머리 뒤쪽에서 향유가 꿀 꿀 꿀 흘러져 쏟아져 내리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환호하며 놀라셨을까요?^^
구구절절 짧은 시간에 많은 은총 체험을 나눠 주셔서 나주가 얼마나 은총이 충만한 곳인지 느끼게 됩니다!!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와~ 정말 놀라운 은총이에요~
나주 순례자 분들의 자녀들을 알아서
키워주시는 사실은 정말 신기하고 너무나
감사한 일인것 같아요. 오래 순례하신 분들의
증언은 뿌리깊은 나무같은 느낌이 들어요. 저도
한결같이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 나주 성모님께
내어놓고 모든걸 맡기며 엄마 따라 5대 영성
실천하며 주님의 구원사업에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멘!
소중한 은총나눠주심에 무지무지 감사합니다~
은총 무한대로 받으세요💖
''제 옷에 젖도 주시고, 향유도 주시고, 성혈도 주시고 엄마를 따라다니니까 엄마를 통해서 이렇게 다 은총을 주시는 거예요.'' 아멘 🙏
나주 순례다니시며 각각지 은총들을 너무 많이 받으셨네요~~^~^.축하드려요 🥳🥳🥳
앞으로도 더 많은 은총받으시며 5대영성 꽃피웁시다~^~❤️❤️❤️
믿을 곳 이라곤 나주성모님동산 뿐 ! 내 딴엔 바르게 산다고 ,양심이 있다고 주장하고 살았지요 . 그러나 지금 돌아가는 세상 꼬락서니 .. 쩝 ~쩌업 ~! 참 가관 ,볼만합니다 ㅠㅠㅠ 聖, 俗을 막론하고 배운자가 더 더 더 더 ... 차라리 바보 ,등신, 쪼다이, 을빵한넘 이라고 놀릴을 당할 망정 나주의 5대영성으로 살아가겠씸다 . 아멘아멘아멘...!!!
"율리아 엄마의 고통에 비해서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면서 위로를
받고 ‘넘어지고 또 넘어지더라도 오뚝이처럼
일어나고 또다시 새롭게 시작하자.’ 그런 마음으로
하니까 내가 생각지도 않을 때 주님과 성모님께서
영적인 치유, 물질적인 치유를 다 주시더라고요."
아멘!!! 감사합니다~~~~~
+ + + + + + +
‘다 나주 성모님 덕분이다. 율리아 엄마의 고통에 비해서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면서 위로를 받고 ‘넘어지고 또 넘어지더라도 오뚝이처럼 일어나고 또다시 새롭게 시작하자.’
그런 마음으로 하니까 내가 생각지도 않을 때 주님과 성모님께서
영적인 치유, 물질적인 치유를 다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감사해요.
+ + + + + + +
아멘~! 아멘~!! 아멘~!!!
엄마의 삶을 생각하시며 주님과 성모님께 모든 것 의탁하신 은총 감동입니다.~*^^*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과 사랑 가득 받으시고 가족 모두 영육간에 건강하세요.
글과 댓글의 글자 수만큼 죄인들이 회개하고, 나/주/인/준/성/모/성/심/승/리/하/소/서. 아멘~!!!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광주지부 서남순 데레사라고 합니다. 저는 1985년도에 신문을 보고 나주를 방문하게 됐습니다. 율리아 엄마가 정 미용실 할 때 왔었는데 전국에서 대형 버스를 타고 순례객들이 많이 왔어요. 그때 당시 저도 기도를 하러 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회개의 은총을 받고 “또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되겠다.”는 그런 말씀도 많이 하셨어요. 저는 그때 당시 목포에서 공무원이었거든요. 그래서 출장 명령서를 내놓고 자주 왔었어요.
올 때마다 많은 버스가 와서 막 미어터지고 그렇게 많이 왔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부산으로 이사를 가게 됐었거든요. 율리아 엄마를 통해서 많은 은총을 주셨는데 1995년, 그때부터 수많은 은총을 받았어요.
제가 엄마 모습들을 정말 많이 목격을 했었어요. 그리고 1995년 5월 달에 엄마의 대속 고통 비디오를 보면서 너무나도 많은 영적인 치유를 받았어요. 그때 당시 우리 장부가 큰 사업을 하고 있어서 빚을 많이 졌기 때문에 나는 뒤치다꺼리만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너무 힘들었고 이 억눌린 가슴을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엄마의 그 삶을 보고는 ‘아,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생각을 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고, 용기가 생기고. 저는 장부 빚 때문에 조금이라도 이자가 싼 것을 하기 위해서 이리 막고 저리 막느라고 수없이 많은 통장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주님, 성모님 덕분에 지금은 빚을 다 갚았고 율리아 엄마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으며 너무 감사했었습니다.
장부가 전에 자기가 감당을 못하니까 “이혼을 하자.” 그런 말을 먼저 꺼내요. 그런데 저는 나주 성모님 메시지에서 “가정이 병들고 있다.” 말씀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내 가정을 지켜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때 당시에 아이가 초등학교, 중학교 다녔어요.
그런데 IMF가 닥치고 주위 사람들이 이혼을 하고 가정이 병들고 깨지면서 자살하고 할머니들이 애들을 키우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나는 나주 성모님, 엄마를 통해서 메시지를 접했기 때문에 ‘내 가정을 꼭 지켜야 되겠다!’ 그 생각을 하면서 하니까 딸이 초등학교 다닐 때 “내 엄마가 되어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또 아들은 중학교 다녔는데 “엄마가 그 큰 버팀목이 되어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내 엄마가 되어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그러더라고요.
‘다 나주 성모님 덕분이다. 율리아 엄마의 고통에 비해서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면서 위로를 받고 ‘넘어지고 또 넘어지더라도 오뚝이처럼 일어나고 또다시 새롭게 시작하자.’ 그런 마음으로 하니까 내가 생각지도 않을 때 주님과 성모님께서 영적인 치유, 물질적인 치유를 다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감사해요. 누가 뭐라고 해도 나주는 진짜 참 진실이고 엄마를 통해서 모든 걸 다 주셨잖아요. 제가 여기 95년도부터 지금까지 정말 거의 빼먹지 않고 다녔었어요.
그리고 저는 차가 있기 때문에 성모님 동산에도 많이 다녔고 모든 것을 다 목격했고 엄마의 희생과 대속 고통을 통해서 많은 은총을 받았는데 이제 다른 곳 수녀님들이 오시면 제가 밤에 모시고 와요. 그러면 저 밑에부터 불을 환하게 비춰줘요. 그래서 그 수녀님도 신기하다고 막 그러셨거든요. 정말로 살아계신 주님과 성모님께서 현존하시고 성인 성녀들께서 다 현존하고 계시잖아요. 그리고 엄마의 희생, 보속 고통을 통해서 은총을 주셨잖아요.
그래서 항상 감사하면서 다녔는데 3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2002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때 미사가 끝나고 곧바로 성모님 동산에 왔었어요. 그랬는데 갈바리아 십자가에서 계속 진액이 한 방울 한 방울씩 이렇게 내려오실 때 장미향기가 엄청 진동했어요. 그때 말레이시아 수 신부님과 외국에서 오신 신부님들과 일행들이 많이 오셨어요. 부활 예수님상으로 급히 막 가시더라고요. 가셔서 미사를 집전하시고, 저희는 십자가의 길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부활 예수님상에도 장미향기가 엄청 진동했었어요.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하고 내려와서 성혈 조배실에 경배를 하려고 왔는데 웬일입니까? 성혈이 막 응고되어서 돌에 있고 또 가시도 있고 그 안에 큰 돌이 있어요. 거기에 선홍색으로 아주 많이 흥건하게 내리셨어요. 우리는 너무 놀라 오열을 하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봉사자가 지나가길래 말씀드렸더니 조금 후에 엄마가 오셨어요. 오셔서 기도를 하면서 묵상을 하는 중에 탈혼 상태에 들어가셨는데 “누가 찢어진 내 가슴을 기워줄 것이냐?” 큰소리로 외치시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그때 정말로 오열을 하면서 눈물 콧물 다 짜면서 울었어요. 그중에 한 자매가 굉장히 (가정에서) 불목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성모님 동산을 와보고는 정말 회개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을 했고 겸손한 자로서 불목했던 것을 내 탓으로 돌리면서 봉헌해야 되겠다고 했었어요.
또 다른 수녀원 수녀님들한테 제가 전화했어요. 지금 나주 성모님 동산에 성혈이 내리셨는데 얼른 오라 하니까 두 분 수녀님들이 “오빠가 콘도를 예약해 줘서 휴가를 가야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감히 그게 문제가 아니니까 얼른 해약을 하고 오라고 그랬어요. 여기는 은총의 장소잖아요. 오려고 하니까 발을 딱 삐어서 못 가게 하더래요. 그래도 오라고 막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 수녀님이 봉고차로 관구장 수녀님하고 두 분이 오셨어요.
또 오는 도중에 봉고차가 계속 고장이 나더래요. 그래도 오셨어요. 그래서 같이 기도를 하고 있는데 성모님 계신 데서 장미향기가 아주 강하게 진동했고 또 성혈 조배실에서는 피비린내가 엄청 강하게 났어요. 관구장 수녀님이 하시는 말씀이 “성직자, 수도자들을 부르고 계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순명한다는 미명 아래 숨어서 못 오니 정말 너무너무 안타깝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율리아 엄마께서 함께하시는 곳은 항상 사랑과 은총의 신비 그 자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저는 전국 피정 있을 때마다 따라다녔었거든요. 은총이 너무나도 많았어요. 그리고 엄마의 몸에서 기름이 되어서 장미향기가 가득하고 성혈이 자주 엄마께 내려오심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엄마 머리 뒤쪽에서 황금향유가 꿀 꿀 꿀 쏟아진 거 목격했고요. 엄마 옷에 젖이 흠~뻑 젖어 있는데 우리들한테 다 스며드는 그런 모습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참젖도 흠뻑 주셨는데 엄마가 기도하실 때 물(기적수)이 막 살아서 움직여요. 아까 율신액 보셨죠? 오색찬란하게 막 움직이시고 색을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답게 주시는데! 너무 아름다워. 막 살아서 움직여요.
그리고 제 옷에 젖도 주시고, 향유도 주시고, 성혈도 주시고 엄마를 따라다니니까 엄마를 통해서 이렇게 다 은총을 주시는 거예요. 저는 너무 부족하고, 죄인이지만 엄마의 희생 보속과 그 고통을 보시고 다 주시더라고요. 작은 거 하나라도 흘려보내지 않으시는 엄마는 죽음을 넘나드는 대속 고통 속에서도 언제나 희망 있는 고통이라고, 늘상 그러시잖아요.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으시고 활짝 웃으시고 그러니까 엄마의 모습을 보면 누가 아프시다고 하겠어요. 그 모습을 봤을 때 너무 안타깝고 죄스럽고 ‘저 때문에 정말 엄마가 대속 고통을 받고 계시구나.’ 생각하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고 너무 안타깝고 엄마는 아무 죄도 없잖아요.
우리들 때문에 대속 고통을 받고 계신다는 것이 항상 마음이 아파서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희생을 바쳐야 되겠다.’ 그런 마음으로 나주에 자주 왔었습니다.
초심을 잃어버리지 않고 생활의 기도로써 찢긴 성모 성심을 기워드리는 사랑의 재봉사가 되며 율리아 엄마의 삶을 본받아서 기도와 희생과 봉헌된 삶을 살도록 매일 매 순간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어 5대 영성 실천하는 삶 살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6월 30일 날 38주년을 맞이하여 준비하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매일 다녔습니다. 그때 갈바리아 예수님 발가락 두 개에서 (흘러나온) 진액이, 향기가 계속 났고 또 요한 사도 양쪽 옷깃에서 진액이 나오셨어요.
그리고 작년에 제가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과 갈바리아 예수님을 집에다 모셨어요. 그때 예수님 모시고 기도를 하는데 우리 가정과 멀리 있는 자녀들과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다 지켜주심을 느꼈습니다. 집에 3일간 저 혼자 있는데 계속 타는 냄새가 나는 거예요. ‘이게 무슨 냄새지? 이게 무슨 냄새지?’ 막 이랬거든요. 저희 집은 좀 오래된 집이에요. 주택 2층 집인데 아래층에서 계속 무슨 타는 냄새가 나요.
그래서 다 살펴보니 그 벽 있는 데서 새카맣게 탔더라고요. 전기선이 탔나 봐요. 그랬는데 3일 동안 그것을 내가 못 발견하니까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께서 지켜주셨어요.
또 아들이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데 작년에 굉장히 폭우가 쏟아져서 많은 피해가 있었고 사람들이 막 죽고 그런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저녁 8시에 저하고 통화를 했어요.
그랬는데 (1시간 정도 후) 경기도에 사는 딸이 오빠한테 전화하니까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막 그러더래요. 그리고 그 말 하고 나서 전화가 딱 끊긴 거예요. 그래서 “엄마! 전화가 절대 안 되는데 웬일인가 모르겠다. 너무 위급한 것 같다.”고 그러면서 119에 긴급 전화를 했거든요. 119에서 긴급 전화로 해 주더라고요. 그런데 또 연결이 안 돼요. 그래서 딸이 어떻게 해서 잡았대요. 그런데 동시에 다른 데서도 그 시간에 119에 전화를 했는데 119 구급차가 아들 집으로 온 거예요.
물이 하나 차서 도어 키가 안 열려서 밖으로 못 나왔거든요. 진짜 죽을 위험에 있었는데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께서 지켜주신 거예요. 거기 주위에 원룸 사람들이 엄청 많은데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아요. 아들은 물이 다 차버렸으니까 공기청정기를 딛고 올라서 나왔다고 그러더래요.
그래서 목숨을 구했는데 아들 목숨만 구한 게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구한 거예요. 그래서 칭찬도 받고 그랬대요. 아들이 영어도 하고 중국어도 하니까 통역을 해줬나 봐요. 거기에 외국 사람들이 많이 살거든요. 그러니까 동사무소에서, 소방서에서 너무 감사하다고 그랬대요. 성모님께서 그 아이들을 다 키워주셨어요.
다 장학생으로 다니고 성모님께서 율리아 엄마를 통해서 다 길러주시고 보호해 주셨어요. 아이들이 착하게 자란 것도 다 성모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율리아 엄마가 “항상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많이 이야기를 하셨어요. 엄마는 누구든지 막 주고 싶어 하시잖아요.
또 엄마는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미안하다.” “고맙다.” 그런 말씀을 참 많이 쓰셔요. 그래서 “엄마 아니에요. 저는 나주 성모님을 알고 엄마를 알았다는 것이 정말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랬습니다. 이상입니다. 주님, 성모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리고 엄마께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2023년 8월 15일 서남순 데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