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524화. 가족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생을 마감하고자

wlsgodqn
2023-09-01
조회수 976

 



가족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생을 마감하고자


나는 청산가리를 먹으면 100% 죽기 때문에 자살미수 소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 고향에 나와 처지가 비슷한 언니가 있었다. 6·25 때 어머니가 남편을 잃고 자기만을 바라보며 외롭게 사시는 것이 안타까워, 어머니가 재혼해서 잘 사시라고 청산가리를 먹고 죽었기 때문이다.



옛날에 시골에서는 꿩을 잡기 위하여 콩에다 청산가리를 넣어 산에 놔뒀다. 꿩이 콩인 줄 알고 먹으면 꿩은 그 즉시 죽는다. 사람들은 그 꿩을 요리해 먹었다. 그런데 그 엄마도 가난한 살림에 딸에게 고기를 해먹일 수가 없자 ‘꿩이라도 잡아서 먹일까?’ 하고 꿩 약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나갔다가 들어오지 않아 기다렸다. 딸을 기다리다가 꿩 약이 없어진 것을 보고 ‘딸이 꿩 약을 놓으러 갔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딸은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횃불을 들고 딸을 찾아 나섰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눈물과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며 기다리다가 아침이 되어 어떤 쪽지를 발견했다. ‘어머니, 재혼해서 행복하게 사세요.’라고 써 있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란 어머니는 울며불며 딸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도 아끼고 사랑하던 딸은 대나무밭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 엄마의 서러움은 그 어느 누구도 달랠 길이 없었지만, 세월이 흐르자 딸의 소원대로 재혼하게 되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지난 일들이 생각나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니, ‘나는 정말 불효녀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몸서리쳐졌다.

 

‘그래, 내가 죽으면 당분간은 내 가족들이 슬퍼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 불쌍한 내 아이들은? 아니야, 더 좋은 엄마를 만나 더 잘 살 수도 있어. 이 모든 생각들을 떨쳐버리자!



내가 없음으로써 가족들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야. 내가 무엇을 못하겠는가!’ 나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비틀거리며 주섬주섬 돈을 챙겨 0.5g만 먹어도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청산가리’를 사러나섰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제하면서 철물점으로 갔다.

 

“꿩 약 좀 주시겠어요?” “뭐 하시게요?” “꿩 잡으려고요.” “아줌마가요?” 나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요, 남편이 사 오라고 했어요.” “아줌마, 경찰서장 싸인 받아오세요, 그러면 줄게요.” “그냥 주셔요, 남편이 얼른 사 오라고 했어요.” 나는 계속 사정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원해도 철물점 주인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주머니, 경찰서장 사인만 받아오면 얼마든지 드린다니까요?” 하며 청산가리를 절대 내어주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내가 자살하려고 온 사람임을 직감하였다고 한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굳은 몸을 간신히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딸을 기다리시던 친정어머니가 내가 갑자기 보이지 않아 기다리셨다가 걱정스레 말씀하셨다. “아야, 너 그 몸으로 어디를 갔다 오냐? 깜짝 놀라서 찾아다녔다이.” 하셨다.



나 때문에 걱정하고 계신 어머니를 보니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 했다. ‘나 키우시느라 평생토록 고생하고 계신 나의 어머니!’ 가슴이 찢기는 듯 저려왔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어머니 죄송해요. 너무 갑갑해서 이 앞에 좀 나갔다 왔어요.”하고 얼버무렸다.

 

어머니를 생각하니 잠시 흔들리려 했다. 그러나 이것이 가족을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믿었기에, 약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다잡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생각하니 이제 어디서 어떻게 청산가리를 구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왜냐면 청산가리가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죽으려다 자칫 잘못해 자살 미수가 된다면 더 큰 일이기에 그랬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가족에게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화장을 한 후 다시 한번 큰맘 먹고 이번에는 이웃에 사는 외사촌 동생 길영이를 찾아갔다.

 

철물점에 갈 때처럼 부스스한 모습으로 그냥 가면 혹시 자살 의심이라도 할까 봐서 화장을 하고 간 것이다. 화장이라야 화장품도 없으니 머리를 곱게 빗고 겨우 입술만 살짝 바른 것이 다였다. 피부결은 그래도 나쁘지 않았으니, 그렇게만 해도 화장한 것처럼 보여, 미소까지 지으면 아주 생기있고 건강하게 보였다.


 

우리 집에서 길영이네 집까지는 보통 사람이라면 전혀 힘들지 않게 금방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그러나 죽으려 청산가리를 구하러 가는 고뇌의 길, 극심한 고통에 신음하는 말기암 환자인 나에게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아주 큰 곤욕이 아닐 수 없었다.

 

자살이 죄라고는 알지도 못했으니, 나는 애타게 하느님을 부르짖었다. “하느님! 이것만이 가족을 위한 길이오니 부디 죽을 것같이 힘겨운 이 한 걸음걸음마다, 하느님께서 불쌍한 제 가족들에게 제가 없어도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힘으로 흘러 들어가게 해주세요.”

 

 

나는 끊임없이 기도하며 간신히 길영이 집에 도착했다. 내가 사라지는 것만이 가족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니 초인적인 힘이 발휘되어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길영이가 집에 있어 나는 어렵게 입을 뗐다. “길영아, 요즘 누가 꿩을 잡아다 준다고 하는데 꿩 약 좀 구할 수 있을까?”

 

 

“누나, 싸이나 말이지?” “응.” “집에는 없고 필요하면 사야 되는데?” “그러면 돈을 줄게 꿩약 좀 사다 줄래? 부탁할게.” “그래 누나, 누나 부탁이라면 내가 하늘의 별도 따다 줘야지.” 했다. 다음 날 길영이는 별다른 의심 없이 싸이나를 사와 내게 주었다.

 

작은외갓댁에 살던 어린 시절, 길영이가 갓난쟁이일 때부터 그렇게 예뻐서, 나는 늘 업어주고 기저귀도 내가 다 갈아줬다. 그런 나를 보고 어른들이 길영이가 그렇게 예쁘면 길영이 똥을 먹어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망설임 없이 맛있는 사탕을 먹은 셈 치고 그 애 똥도 마다하지 않고 먹어봤던, 그토록 사랑하는 아이였다.


 

이렇게 마지막 가는 길에 길영이의 도움을 받다니 착잡했다. 부디 나의 죽음에 길영이가 너무 많이 놀라지 않길 바라며 하느님께 기도했다. “하느님, 청산가리를 구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죽더라도 길영이가 싸이나를 사다 준 자신을 자책하지 않게 해주시고 부디 그 애의 앞길을 밝혀 주소서.”

 

생각보다 쉽게 청산가리가 내 수중에 들어왔다. 작은 병에 담겨 있는 하얀 가루를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얼마 안 되는 가루로, 그토록 파란만장했던 한 생을 마감하고 쉽게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니…. ‘이제 죽음이 바로 내 눈앞에 와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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