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집 이사를 결정한 후 날벼락 같은 소식
공기 좋고 물 좋은 이곳, 군서에서 임종을 맞이하고 싶었던 시한부인 나에게는 나주 발령이 정말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아이들이 넷이나 되는 우리가 도시인 나주로 이사 가려면, 셋방을 내어주는 곳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독채를 얻어야 하는데 그럴 돈도 없었다.
나는 고심 끝에 남편과 상의하여, 출퇴근하기에는 조금 힘들겠지만, 공기 좋은 나주 봉황면 친정집으로 가기로 했다. 암이 온몸에 다 퍼져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였기에 어머니랑 나랑 피땀 흘려 순황토로 지은 우리 집에서 요양하면서 생을 마무리하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간 어머니는 다섯째 시동생이 사법고시에 합격할 때까지 농사를 지으시느라 친정집에서 우리 집까지 왔다 갔다 하셨다. 그런데 우리가 친정집에서 산다면 먼 거리를 힘들게 왔다 갔다 하지 않으셔도 되니, 이 방법이 일석다조라 생각했다. 조금 멀기는 했지만, 큰아이들도 초등학교를 나의 모교에서 다니고 배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친정집은 어머니와 나에게 특별한 의미였다. 아무것도 없는 길가 산 밑에 터를 잡아 산을 판판하게 깎아 터를 닦고, 100% 황토 흙으로 ㄱ자 담을 쳤다. 그리고 그 외 흙을 발라야 하는 곳에 쓸, 황토에 섞을 짚부터 시작해 집을 다 짓기까지, 어머니와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손수 지은 우리의 처음이자 유일한 보금자리였다.
내가 자라고 살았던 곳에서 어머니와 아이들과 함께 내 생의 마지막을 맞이한다면 그보다 더 안심되는 일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나는 이렇게 시골 친정집으로 이사할 준비를 했다. 어머니께서는 친정집에서 함께 살게 됨에 기뻐하시며 우리가 집을 정리하려고 먼저 친정집으로 가셨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어머니께서도 농사일하시면서 아픈 딸을 떠나지 않고 도와줄 수 있다는 것에 가장 큰 안심이 되셨으리라. 나는 이삿짐들을 챙기는데 어머니가 바로 다음 날 오셨다. 나는 시골집이 빨리 정리가 되어야 이사를 갈 수 있으니 너무나 기뻤다.
“어머니! 벌써 다 정리하셨어요? 빨리 끝내고 오셨네?” 그런데 어머니는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시며 “아야, 어떡하면 좋으냐. 집이 없어져 버렸어야.”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전혀 이해가 안 돼 “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셔요? 집이 없어지다니요. 어떻게 집이 없어질 수 있어요?”
어머니께서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시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주셨다. 친정집에 도착하신 어머니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 앞에 아연실색하시고 말았다. 얼마 전 집을 나설 때까지도 멀쩡했던 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재가 되었던 것이다. 도대체 이것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우리의 소중한 집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집 대신 새카만 잿더미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시던 어머니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이곳이 정말 우리 집이 맞는가?’ 하시며 주변을 확인하셨다. 우리 집이 틀림없음을 확인하신 어머니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하시고야 말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인가? 어머니는 넋을 놓고 한참을 우시다가,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나, 너무 놀라 말을 잘 듣지 않는 몸을 덜덜 떨면서 앞집 심평 아짐에게 가셨다. 어머니가 울먹이시며 “어이,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랑가? 멀쩡한 우리 집이 어찌 이렇게 되어부렀당가?”
그러자 심평 아짐이 “그러게 말이예요. 형님, 참말로 어떻게 하면 좋아요?” 하며 속이 상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심평 아재(어머니 제종동생)가 몹시 안타까워하며 한숨을 푹푹 쉬더니 자신이 봤던 것을 전부 이야기해 주셨다. “아이고, 말도 마시오. 아이고, 민석이(작은외숙) 형님이 밤에 와서 슬레이트를 팔고 불을 질러 버렸어요!”
집이 비어있는 틈을 타 작은외숙이 밤에 와서 우리 집 지붕에 얹은 슬레이트를 몰래 뜯어서 팔아버렸다는 것이다. 어느 날, 심평 아재가 밤에 잠이 들려고 하는데 우리 집 쪽에서 웬 기괴한 소리가 크게 나서 깜짝 놀라 ‘집에 사람이 없는데 무슨 소리가 나는 거지?’하고 얼른 나와서 보셨다.
그런데 그 소리는 바로 우리 집 슬레이트를 뜯고 있는 소리였던 것이다. 심평 아재가 놀라 소리 지르면서 “거기 누구요?” 하고 쫓아갔다. 가서 보니 작은외숙이 슬레이트를 팔기 위해 업자를 데리고 와서 우리 지붕의 슬레이트를 뜯고 있었다고 한다. 심평 아재가 “아니, 형님! 이 밤중에 왜 누님 집 슬레이트를 뜯는 거요?”
그러자 외숙은 대뜸 “누구한테도 내가 했다고 말하지 마소이.” 했다 한다. “아니, 누님이 오시면 어쩔라고 그러시오?” 했더니 외숙이 “윤실이(어머니)는 김실이(나) 집에서 살면 돼.” “누님이 그러신다고 하셨소?” “인제 그렇게 되것제이.” 하셔서 ‘그래서 그런가?’ 하시고 별다른 의심 없이 집에 오셔서 주무셨다 한다.
어머니는 내게 모든 것을 알려주시면서 펑펑 눈물을 쏟으셨다. 그런데 이어지는 어머니의 말씀은 점입가경이어서, 나는 마치 생살을 한 점 한 점 도려내는 듯한 아픔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친정집 이사를 결정한 후 날벼락 같은 소식
공기 좋고 물 좋은 이곳, 군서에서 임종을 맞이하고 싶었던 시한부인 나에게는 나주 발령이 정말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아이들이 넷이나 되는 우리가 도시인 나주로 이사 가려면, 셋방을 내어주는 곳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독채를 얻어야 하는데 그럴 돈도 없었다.
나는 고심 끝에 남편과 상의하여, 출퇴근하기에는 조금 힘들겠지만, 공기 좋은 나주 봉황면 친정집으로 가기로 했다. 암이 온몸에 다 퍼져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였기에 어머니랑 나랑 피땀 흘려 순황토로 지은 우리 집에서 요양하면서 생을 마무리하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간 어머니는 다섯째 시동생이 사법고시에 합격할 때까지 농사를 지으시느라 친정집에서 우리 집까지 왔다 갔다 하셨다. 그런데 우리가 친정집에서 산다면 먼 거리를 힘들게 왔다 갔다 하지 않으셔도 되니, 이 방법이 일석다조라 생각했다. 조금 멀기는 했지만, 큰아이들도 초등학교를 나의 모교에서 다니고 배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친정집은 어머니와 나에게 특별한 의미였다. 아무것도 없는 길가 산 밑에 터를 잡아 산을 판판하게 깎아 터를 닦고, 100% 황토 흙으로 ㄱ자 담을 쳤다. 그리고 그 외 흙을 발라야 하는 곳에 쓸, 황토에 섞을 짚부터 시작해 집을 다 짓기까지, 어머니와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손수 지은 우리의 처음이자 유일한 보금자리였다.
내가 자라고 살았던 곳에서 어머니와 아이들과 함께 내 생의 마지막을 맞이한다면 그보다 더 안심되는 일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나는 이렇게 시골 친정집으로 이사할 준비를 했다. 어머니께서는 친정집에서 함께 살게 됨에 기뻐하시며 우리가 집을 정리하려고 먼저 친정집으로 가셨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어머니께서도 농사일하시면서 아픈 딸을 떠나지 않고 도와줄 수 있다는 것에 가장 큰 안심이 되셨으리라. 나는 이삿짐들을 챙기는데 어머니가 바로 다음 날 오셨다. 나는 시골집이 빨리 정리가 되어야 이사를 갈 수 있으니 너무나 기뻤다.
“어머니! 벌써 다 정리하셨어요? 빨리 끝내고 오셨네?” 그런데 어머니는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시며 “아야, 어떡하면 좋으냐. 집이 없어져 버렸어야.”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전혀 이해가 안 돼 “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셔요? 집이 없어지다니요. 어떻게 집이 없어질 수 있어요?”
어머니께서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시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주셨다. 친정집에 도착하신 어머니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 앞에 아연실색하시고 말았다. 얼마 전 집을 나설 때까지도 멀쩡했던 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재가 되었던 것이다. 도대체 이것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우리의 소중한 집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집 대신 새카만 잿더미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시던 어머니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이곳이 정말 우리 집이 맞는가?’ 하시며 주변을 확인하셨다. 우리 집이 틀림없음을 확인하신 어머니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하시고야 말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인가? 어머니는 넋을 놓고 한참을 우시다가,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나, 너무 놀라 말을 잘 듣지 않는 몸을 덜덜 떨면서 앞집 심평 아짐에게 가셨다. 어머니가 울먹이시며 “어이,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랑가? 멀쩡한 우리 집이 어찌 이렇게 되어부렀당가?”
그러자 심평 아짐이 “그러게 말이예요. 형님, 참말로 어떻게 하면 좋아요?” 하며 속이 상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심평 아재(어머니 제종동생)가 몹시 안타까워하며 한숨을 푹푹 쉬더니 자신이 봤던 것을 전부 이야기해 주셨다. “아이고, 말도 마시오. 아이고, 민석이(작은외숙) 형님이 밤에 와서 슬레이트를 팔고 불을 질러 버렸어요!”
집이 비어있는 틈을 타 작은외숙이 밤에 와서 우리 집 지붕에 얹은 슬레이트를 몰래 뜯어서 팔아버렸다는 것이다. 어느 날, 심평 아재가 밤에 잠이 들려고 하는데 우리 집 쪽에서 웬 기괴한 소리가 크게 나서 깜짝 놀라 ‘집에 사람이 없는데 무슨 소리가 나는 거지?’하고 얼른 나와서 보셨다.
그런데 그 소리는 바로 우리 집 슬레이트를 뜯고 있는 소리였던 것이다. 심평 아재가 놀라 소리 지르면서 “거기 누구요?” 하고 쫓아갔다. 가서 보니 작은외숙이 슬레이트를 팔기 위해 업자를 데리고 와서 우리 지붕의 슬레이트를 뜯고 있었다고 한다. 심평 아재가 “아니, 형님! 이 밤중에 왜 누님 집 슬레이트를 뜯는 거요?”
그러자 외숙은 대뜸 “누구한테도 내가 했다고 말하지 마소이.” 했다 한다. “아니, 누님이 오시면 어쩔라고 그러시오?” 했더니 외숙이 “윤실이(어머니)는 김실이(나) 집에서 살면 돼.” “누님이 그러신다고 하셨소?” “인제 그렇게 되것제이.” 하셔서 ‘그래서 그런가?’ 하시고 별다른 의심 없이 집에 오셔서 주무셨다 한다.
어머니는 내게 모든 것을 알려주시면서 펑펑 눈물을 쏟으셨다. 그런데 이어지는 어머니의 말씀은 점입가경이어서, 나는 마치 생살을 한 점 한 점 도려내는 듯한 아픔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