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를 할 수 있고, 피해 보상도 받을 수 있다고 했으나 나는 어떤 처벌이나 보상도 원하지 않았다. 사실이 확인되었고, 청년을 용서했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다. 경찰들은 더욱 이해할 수 없어 했지만 결국 피해자인 나의 바람대로 청년을 아무런 처벌 없이 그냥 풀어주고 사건을 마무리시켰다.
나는 청년이 빠른 시일 내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기도하며 남편과 시누이의 부축을 받아 파출소에서 나왔다. 출혈은 더욱 심해졌고 배의 통증도 심했다. 시간이 너무 늦어 집으로 가는 막차도 끊겼고 병원이나 약국, 상점 모두 이미 문을 닫은 지 오래였다. 벽촌인 영암에는 밤늦게 찾아갈 수 있는 병원 응급실도 없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쉽게 사서 사용할 수 있는 패드도 없었다. 어찌할 방도가 없던 나는 화장실에 가서 속옷을 찢어 임시방편으로 하혈을 막았으나 피는 계속 새어 나왔다. 나는 내가 치르는 이 희생을 사랑받은 셈치고, 그 청년이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자양분이 되기를 기도하며 온전히 봉헌했다.
‘그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면 내가 당한 그 모든 고통들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 나는 그가 새롭게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쁜 희망의 빛을 느꼈다. 그 당시 세례는 받지 않았지만, 하느님의 깊고 깊은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를 잃은 것은 너무나 가슴이 아팠지만, 내 탓으로 받아들이며 사랑받은 셈 치고 그를 조건 없이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모든 이가 이해하지 못했지만,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나도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그 청년의 엄마 입장에 서 보았다. 이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식이 잘못되는 것을 바라겠는가. 하물며 그 청년의 어버이가 그렇게 가르쳤겠는가? 아이들 키우는 것만은 부모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당한 일들 때문에 그 청년이 구속되거나 또 내가 물질적으로 보상을 받는다고 하여 달라질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뜻하지 않게 희생을 치른 내 아이가 다시 내 곁에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나의 이 모든 고통을 그 청년을 위해 아낌없이 바쳤다. 새로운 탄생은 언제나 그만한 대가를 필요로 하기에...
조건 없이 베푼 나의 용서를 통해 그 청년이 사랑과 용서의 기쁨을 느끼고, 변화된 삶 안에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빛을 비춰주는 부활의 삶을 살길 바라며 봉헌하니 비록 내 육신은 고통스러웠지만, 마음은 뿌듯하고 진정으로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멘 감사합니다. 진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는 불가능할 것이 가능한
일로 되는 게 참으로 신기해요. 저도 엄마의 양육과 엄마의 말씀을 늘
묵상하며 제 자아대로 사는 것이 아닌 엄마의 그 뜻대로 살려고 하니
신기하게 주님께서 함께 은총을 주셔서 가능한 일을 몇 번 경험합니다.
이처럼 저도 제가 조금 불이익이 오더라도 그들의 새로운 시작과 새 출발을
위해 조금 더 희생하고 봉헌하며 주님 뜻대로 살아 5대 영성으로 무장하겠습니다.
내가 당한 일들 때문에 그 청년이 구속되거나 또 내가 물질적으로 보상을 받는다고 하여 달라질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뜻하지 않게 희생을 치른 내 아이가 다시 내 곁에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나의 이 모든 고통을 그 청년을 위해 아낌없이 바쳤다. 새로운 탄생은 언제나 그만한 대가를 필요로 하기에...
새로운 탄생은 언제나 그만한 대가를
필료로 하기에 ...
조건없이 베픈 나의 용서흘 통해 그청년
이 사랑과 기쁨을 느끼고, 변화된 삶안에서
또다른 누군가에게 그빛을 빛춰주는 부활의
삶을 살길 바라며 봉헌하니 비롯 내육신은
고통스러워지만, 마음은 뿌듯하고 진정으로
기쁨을 느낄수있었다 ~❤️💚💙
아멘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폭행 당해서 아이가 유산 되는 순간인데도 용서할 수 있다니 천사가 아니면 이럴순 없다.
물론 그청년이 잘못했다고 했지만. 먼저 상대편을 생각하시는 율리아 엄마! 청년의 앞길과 그 부모님까지 생각하시다니 고개가 절로 숙여잔다. 율리아 엄마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만약 나라면 어떻게 했을가 나는 이미 세례 받은 사람인데 ...
'나는 내가 치르는 이 희생을 사랑받은 셈치고, 그 청년이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자양분이 되기를 기도하며 온전히 봉헌했다.'
태아는 유산이 되고
고소를 할 수 있고, 피해 보상도 받을 수 있다고 했으나 나는 어떤 처벌이나 보상도 원하지 않았다. 사실이 확인되었고, 청년을 용서했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다. 경찰들은 더욱 이해할 수 없어 했지만 결국 피해자인 나의 바람대로 청년을 아무런 처벌 없이 그냥 풀어주고 사건을 마무리시켰다.
나는 청년이 빠른 시일 내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기도하며 남편과 시누이의 부축을 받아 파출소에서 나왔다. 출혈은 더욱 심해졌고 배의 통증도 심했다. 시간이 너무 늦어 집으로 가는 막차도 끊겼고 병원이나 약국, 상점 모두 이미 문을 닫은 지 오래였다. 벽촌인 영암에는 밤늦게 찾아갈 수 있는 병원 응급실도 없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쉽게 사서 사용할 수 있는 패드도 없었다. 어찌할 방도가 없던 나는 화장실에 가서 속옷을 찢어 임시방편으로 하혈을 막았으나 피는 계속 새어 나왔다. 나는 내가 치르는 이 희생을 사랑받은 셈치고, 그 청년이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자양분이 되기를 기도하며 온전히 봉헌했다.
‘그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면 내가 당한 그 모든 고통들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 나는 그가 새롭게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쁜 희망의 빛을 느꼈다. 그 당시 세례는 받지 않았지만, 하느님의 깊고 깊은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를 잃은 것은 너무나 가슴이 아팠지만, 내 탓으로 받아들이며 사랑받은 셈 치고 그를 조건 없이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모든 이가 이해하지 못했지만,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나도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그 청년의 엄마 입장에 서 보았다. 이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식이 잘못되는 것을 바라겠는가. 하물며 그 청년의 어버이가 그렇게 가르쳤겠는가? 아이들 키우는 것만은 부모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당한 일들 때문에 그 청년이 구속되거나 또 내가 물질적으로 보상을 받는다고 하여 달라질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뜻하지 않게 희생을 치른 내 아이가 다시 내 곁에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나의 이 모든 고통을 그 청년을 위해 아낌없이 바쳤다. 새로운 탄생은 언제나 그만한 대가를 필요로 하기에...
조건 없이 베푼 나의 용서를 통해 그 청년이 사랑과 용서의 기쁨을 느끼고, 변화된 삶 안에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빛을 비춰주는 부활의 삶을 살길 바라며 봉헌하니 비록 내 육신은 고통스러웠지만, 마음은 뿌듯하고 진정으로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