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은 남들에게 인심이 좋아 거절하지 못해서 빚보증을 많이 서주셨다. 시아버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보증들은 결국 갚지 못한 빚이 되어 고스란히 시부모님께 넘어왔다. 시어머님은 그 많은 빚을 갚으실 의지도 없을 뿐만 아니라 능력도 없었다. 결국 그 모든 짐은 내 몫이 되었다.
나는 유산 후 몸조리조차 못 한 채 하혈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병원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사사로 머리를 하고 골동품 자개를 쉼 없이 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내가 사사로 머리하면서도 여기저기 빚을 내러 다니는 것을 보다 못한 큰이모님께서 빚을 내어 시어머님께 돈을 빌려 드리면서 간곡히 말씀하셨다.
“사돈, 이 돈은 겨울에 꼭 갚아야 할 돈이니 밭에 채소라도 심어서 보탬이 되도록 하세요. 겨울에 꼭 갚아야 되는 돈입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바로 “아이고, 그래야지요.” 하고는 돈을 받으셨다. 시어머님은 집 앞에 500평짜리 논과 200평짜리 밭을 갖고 계셨다. 빌린 돈으로 채소 농사를 지어 아주 좋은 수확을 보셨다.
하지만 겨울이 되어도 시어머님은 돈을 갚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으셨다. 약속한 날짜가 다가와 초조해진 이모님이 몇 번이나 찾아가 사정했지만, 시어머님은 그때마다 아주 공손하게 “사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하셨다. 그런데 말만 하실 뿐 끝내 외면하셨다. 결국 독촉은 고스란히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 본전과 불어난 이자까지 모두 내 무거운 어깨 위에 얹어졌다.
큰이모님은 “김실아, 빌린 사람에게 사정하여 앞으로 이자를 더 쳐주기로 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 돈은 내가 보증 서준 것도 아니고, 내가 빌려 드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닌데, 결국 그 이자도 본전도 내가 또 다 갚아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서주신 빚보증까지 다 떠넘기시니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다.
그 빚에 더하여 시어머님이 수많은 곳을 여행 다니시면서 쓴 사소한 빚까지도 모두 다 내가 떠안아야 했다. 갚아야 할 돈은 늘어만 가는데 남편은 그때까지도 월급으로 노름 빚을 갚아 나갔다. 나는 유산 후 몸조리도 못 하고 계속해서 무리해온 터라 몇 달간 계속된 하혈로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건강했던 내 몸은 서서히 병들어갔다. 다섯째 시동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20만원짜리 곗돈을 붓고 있었기에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홀로 감당해야 하는 생활고의 무게만으로도 너무나 벅차고 무거운데, 시어머님은 씀씀이가 크셔서 수시로 내게 돈을 요구하셨다.
그러나 시어머님이 생활비에 보태라고 돈을 손에 꼬옥 쥐여주신 셈치고 봉헌하니, 이 모진 세월도 견딜 힘이 생겼다. 그러던 중 광주역 부지로 시댁의 땅 절반이 수용되면서 좋은 위치의 땅을 보상받게 되었다. 시어머님은 그 땅이 팔리면 이모님 돈과 우리가 대신 갚은 돈을 제일 먼저 해결해주겠노라 약속하셨다.
나는 그 약속을 철석같이 믿으며 땅이 팔리기만을 학수고대했다. 조금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밥 대신 물로 배를 채우면서도, 밥을 배불리 먹은 셈치고 봉헌했다. 이 고생 끝에 반드시 광명의 빛이 올 것이라 믿으며, 나는 다시 그 힘든 몸으로 미용을 하고 골동품 자개를 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내가 사사로 머리하면서도 여기저기 빚을 내러 다니는 것을
보다 못한 큰이모님께서 빚을 내어 시어머님께 돈을 빌려 드리면서 간곡히 말씀하셨다.
“사돈, 이 돈은 겨울에 꼭 갚아야 할 돈이니 밭에 채소라도 심어서 보탬이 되도록 하세요.
겨울에 꼭 갚아야 되는 돈입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바로 “아이고, 그래야지요.” 하고는 돈을 받으셨다.
시어머님은 집 앞에 500평짜리 논과 200평짜리 밭을 갖고 계셨는데 빌린 돈으로
채소 농사를 지어 아주 좋은 수확을 보셨다. 그런데 시어머님은 겨울이 되어도 돈 갚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으셨다.
갚아야 할 돈을 갚지 못해 초조해진 이모님은 돈을 갚아야 된다고 시어머님께 몇 번이나 찾아와 말씀드렸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그때마다 아주 공손하게 “사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하셨지만 끝내 갚지 않으셨다.
시어머니에게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으니 이모님은 결국 내게 오셨다.“김실아, 빌린 사람에게 사정하여
앞으로 이자를 더 쳐주기로 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 돈은 내가 보증 서준 것도 아니고, 내가 빌려 드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닌데, 결국 그 이자도 본전도 내가 또 다 갚아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시아버님과 시어머님이
서주신 빚보증이 넘어온 것을 우리에게로 다 떠넘기셨다. 그 빚에 더하여 시어머님이 수많은 곳에서 사소하게 여행
다니시면서 빚진 돈까지도 모두 다 갚아야 했다. 갚아야 할 돈은 늘어만 가는데 남편 월급으로는 살림하기만도
부족했다. 나는 유산 후 몸조리도 못하고 계속해서 무리해온 터라 몇 달간 계속된 하혈로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지만 빚진 돈을 갚으려고 한 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병원에는 갈 수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나는 먹지 않고 물로 배를
채우면서 밥을 먹은 셈치고 봉헌하며 쉬지 않고 돈을 벌어야 했다.”
wlsgodqn님 은총의 글 올려주심에 너무나도 감사드려요~
wlsgodqn님과 그 가정에 축복이 가득하시고 항상 영육간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주여 영광과 찬미를 영원히 받으소서~ 성모님 기쁨만 가득하소서~ 아멘! 알렐루야~ ♡♡♡
시어머니의 모습은 인간적인 눈으로는 정말 용서하기 어렵습니다.
나쁜 시어머니의 모든 면모를 갖추고 있는듯한 모습에 안타깝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엄마 주변사람들을 보며 나에게 이런 일이 닥쳐도,
이런 사람들을 대해야 해도 손해보고 이용당했다면 억울해 하기 보다는
엄마처럼 아름답게 봉헌하고 주님께 의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의 일화에서 용서하기 어려운 인물을 만날 때마다 저의 편협한 마음도
들여다 보게 되고 내 안에 그런 모습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엄마처럼 더 단순하게 봉헌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엄마께서는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병원도 못가는데 시어머니 빚을 갚아드려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고 또 갚지도 않는 시어머니는
정말 대단한 분이시다~
그러나 그 모든것 셈치고 아름답게 봉헌하시지만
몸은 이미 먹지도 못하니 병원도 못가보고 ㅠㅠ
엄마의 아름다운 삶..깊이 새기며 노력하며
봉헌드립니다~~!!
시부님의 빚보증, 끝없이 되풀이되는 가난의 굴레
시어머님은 남들에게 인심이 좋아 거절하지 못해서 빚보증을 많이 서주셨다. 시아버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보증들은 결국 갚지 못한 빚이 되어 고스란히 시부모님께 넘어왔다. 시어머님은 그 많은 빚을 갚으실 의지도 없을 뿐만 아니라 능력도 없었다. 결국 그 모든 짐은 내 몫이 되었다.
나는 유산 후 몸조리조차 못 한 채 하혈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병원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사사로 머리를 하고 골동품 자개를 쉼 없이 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내가 사사로 머리하면서도 여기저기 빚을 내러 다니는 것을 보다 못한 큰이모님께서 빚을 내어 시어머님께 돈을 빌려 드리면서 간곡히 말씀하셨다.
“사돈, 이 돈은 겨울에 꼭 갚아야 할 돈이니 밭에 채소라도 심어서 보탬이 되도록 하세요. 겨울에 꼭 갚아야 되는 돈입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바로 “아이고, 그래야지요.” 하고는 돈을 받으셨다. 시어머님은 집 앞에 500평짜리 논과 200평짜리 밭을 갖고 계셨다. 빌린 돈으로 채소 농사를 지어 아주 좋은 수확을 보셨다.
하지만 겨울이 되어도 시어머님은 돈을 갚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으셨다. 약속한 날짜가 다가와 초조해진 이모님이 몇 번이나 찾아가 사정했지만, 시어머님은 그때마다 아주 공손하게 “사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하셨다. 그런데 말만 하실 뿐 끝내 외면하셨다. 결국 독촉은 고스란히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 본전과 불어난 이자까지 모두 내 무거운 어깨 위에 얹어졌다.
큰이모님은 “김실아, 빌린 사람에게 사정하여 앞으로 이자를 더 쳐주기로 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 돈은 내가 보증 서준 것도 아니고, 내가 빌려 드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닌데, 결국 그 이자도 본전도 내가 또 다 갚아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서주신 빚보증까지 다 떠넘기시니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다.
그 빚에 더하여 시어머님이 수많은 곳을 여행 다니시면서 쓴 사소한 빚까지도 모두 다 내가 떠안아야 했다. 갚아야 할 돈은 늘어만 가는데 남편은 그때까지도 월급으로 노름 빚을 갚아 나갔다. 나는 유산 후 몸조리도 못 하고 계속해서 무리해온 터라 몇 달간 계속된 하혈로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건강했던 내 몸은 서서히 병들어갔다. 다섯째 시동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20만원짜리 곗돈을 붓고 있었기에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홀로 감당해야 하는 생활고의 무게만으로도 너무나 벅차고 무거운데, 시어머님은 씀씀이가 크셔서 수시로 내게 돈을 요구하셨다.
그러나 시어머님이 생활비에 보태라고 돈을 손에 꼬옥 쥐여주신 셈치고 봉헌하니, 이 모진 세월도 견딜 힘이 생겼다. 그러던 중 광주역 부지로 시댁의 땅 절반이 수용되면서 좋은 위치의 땅을 보상받게 되었다. 시어머님은 그 땅이 팔리면 이모님 돈과 우리가 대신 갚은 돈을 제일 먼저 해결해주겠노라 약속하셨다.
나는 그 약속을 철석같이 믿으며 땅이 팔리기만을 학수고대했다. 조금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밥 대신 물로 배를 채우면서도, 밥을 배불리 먹은 셈치고 봉헌했다. 이 고생 끝에 반드시 광명의 빛이 올 것이라 믿으며, 나는 다시 그 힘든 몸으로 미용을 하고 골동품 자개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