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대미문의 징표를 보여주신 이유

 

어느 날 밤, 나주 성모님 집에서는 장 신부와 협력자 몇몇이 모여 은총 증언록을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8시에 광주교구에서 은총 증언록을 만들지 못하도록 연락이 왔다. ‘어떻게 밤 사이에?’ 모두 놀랐다. 율리아 자매는 성모님께서 이 증언록을 원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광주교구의 명에 순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삼위일체대축일인 1995년 6월 11일, 성모님께서 율리아 자매에게

 

“나를 통하여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은총에 대하여 빨리 책으로 엮어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기적을 요구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내가 계획을 세웠는데 너희의 생각으로 포기하려 하다니… 원수들의 생각을 따르지 말고 어서 이 엄마의 말에 순직하게 순명하여라. (1995. 6. 11.)”


라고 확실하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성모님은


 “사랑하는 세상의 모든 자녀들아! 나는 위대한 역할에 불림 받은 내가 택한 작은 영혼의 사랑에 찬 탄원과 희생 보속 고통을 통하여,지난 20여 년 동안 그렇게도 수많은 징표와 세상 어디에서도 보여주지 않았던 전대미문의 기적들을, 교황과 주교와 사제들, 수도자를 비롯한 세상 모든 자녀를 위하여 보여주고, 중언부언해가면서까지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을 알려주었다. (2005. 12. 31.)”


라는 말씀으로 나주에서 주시는 전대미문의 기적은 작은 영혼 때문임을 확실히 알려주셨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매우 중요시한다. 그래서 성모님의 발현을 조사할 때 기적과 그 기적에 따른 열매(회개, 용서, 생활개선, 치유, 사랑실천 등등)를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

 

율리아 자매는 성모님의 원의에 따라, 더 많은 사람이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은총증언들을 책으로 엮어 성모님 눈물 12주년인 1997년 6월 30일을 기해 세상에 내놓았다. 그런데 이 증언록을 출판하기 위해 컴퓨터도 없이 손으로 1997년 3월 19일 ~ 6월 30일까지 100일이 넘도록 한 번도 바닥에 눕지도, 자지도 않고 계속 일했다.

 

게다가 어느 성당이든 메시지를 전달해 달라는 요청이 오면 기쁘게 달려갔고, 사제나 수도자, 그리고 먼 외국에서 순례자들이 오면 다 만나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며 그들의 치유를 위해 고통을 받아주면서 사탄과 마귀들의 공격이도 아름답게 봉헌하였다. 사탄은 이 은총증언 책이 얼마나 많은 영혼들에게 은총으로 흘러 들어가 하느님께 돌아올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귀들은 책이 나올 때까지 율리아 자매를 끝없이 공격받았는데 심지어는 독 묻은 날카로운 손톱으로 눈을 후벼 파서 눈을 뜰 수 없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율리아 자매는 너무 아파서 눈도 못 뜨는 그 고통을 ‘마귀들의 꼬임에 넘어가 아무것도 안 보여 길 잃고 헤매는 영혼들이 영적으로 눈을 떠 하느님께 돌아오도록’ 생활의 기도를 계속 바치면서 은총증언 책을 만들었다.

 

수많은 은총의 열매가 맺어지고 있는 나주에는 지금도 율리아 자매의 ‘온 세상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사랑과 희생’으로 전대미문의 수많은 징표들이 계속 내리고 있다. 하지만 광주교구는 인준은커녕 하느님의 여러 가지 경고도 무시한 채 조사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오히려 악성 유언비어를 강변식비(强辯飾非)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유다와 카인의 몫을 겸비하고 있는 것이니 어찌 하느님이 노하지 않겠는가?


 

* 강변식비(强辯飾非) : ‘억지로 말을 교묘하게 하여 거짓을 꾸미다.’라는 뜻

2. 위대한 역할에 불림 받은 율리아 자매의 삶

 

‘천상의 예언녀’인 성모님은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이 세상이 멸망에 처하게 될 것을 아셨다. 그래서 당신을 도와 세상 구원을 위해 일할 ‘작은 영혼’을 예수님께 청했다. 예수님은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알같이 많은 사람 중에 고르고 골라 율리아 자매를 모태에서부터 준비하여 직접 양육하셨다.

 

예수님은 율리아 자매에게 재물이나 권력, 명예나 안락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고통과 빈곤, 시기 질투와 중상모략, 멸시와 구타, 능욕 등으로 끝없이 단련시켰다. 율리아 자매는 수많은 고통들을 ‘사랑 받은 셈 치고’ 극복해 나가며 주님과 성모님께서 바라시는 삶에서 벗어남 없이 성장하였다.

 

거지들을 보면 자신이 먹을 음식을 먹여주고 본인은 3~4일을 굶을 정도로 항상 사랑과 자선을 베풀면서도 어머니나 남편한테도 얘기를 하지 않았다. 율리아 자매는 하느님을 모르던 어린 시절부터 ‘오른손의 선행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복음 말씀을 그대로 실천했다.

 

율리아 자매는 셋째 아이를 가졌을 때 돈의 노예가 된 산부인과 의사에 의해 강제 낙태를 당하여 7일 만에 재수술을 했으나 8일 만에 죽었는데 예수님께서 “왜 네가 여기 왔느냐, 네가 해야 될 일들이 많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으니 어서 돌아가거라.” 하시는 말씀을 듣고 살아났으나 13일 만에 태가 나와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하지만 시동생들 대학공부와 시댁 뒷바라지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면서도 생활비를 줄이려고 본인은 밥도 잘 먹지 못하다 병이 점점 깊어졌다. 그러나 돈이 없어 동네 병원만 다니다 병을 키워 말기암이 되었다.

 

의사는 “우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집에 가서 맛있는 것이나 잡수세요.” 하고 사형선고를 내렸다. 당시 혈압은 50-40이었고, 항문과 발가락 사이까지 암 덩어리가 튀어나왔으며 온갖 합병증이 다 왔다. 하지만 모든 것을 내 운명이려니 받아들이고 임종을 준비하던 1980년 여름, 주님의 부르심으로 남편을 통해 나주성당을 찾게 되었을 때 “아주머니는 몸으로 은혜 받고 계십니다.”는 본당 신부의 말에 작은 영혼이 “아멘!”으로 응답하자 얼음장처럼 찼던 몸이 성령으로 뜨거워졌다.

 

3일 뒤 기도 중에 “성경은 살아있는 나의 말이니라.” 하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성경을 펼치자 누가복음 8장 40절~56절의 말씀 「예수의 옷에 손을 댄 여자와 살아난 야이로의 딸」에서 “여인아 너의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평안히 가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너의 딸이 살아날 것이다.” 라는 두 말씀을 자신에게 주신 말씀으로 “아멘”으로 응답하였다. 그 순간 항문 밖까지 퍼져 나온 암덩어리들이 슉슉슉 들어가면서 모든 병을 다 치유 받고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였다.

이때부터 주님께서 율리아 자매에게 나타나 친히 양육하시며 사람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주님의 성심이 찢기며 피 흘리시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주셨는데, 주님께서 가시관 고통을 받으시는 모습을 보고 “그 고통을 저도 함께 받게 해주세요.”라고 청했다. 그 순간 작은영혼의 머리에도 가시관이 씌워지며 가시들이 깊숙이 파고들었다. 엄청난 고통이 엄습했지만 작은영혼의 입에서는 “감사합니다!”는 말만 계속 나왔다.

 

1982년 사순 때 죄인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예수님께서 고통 받으시는 모습을 본 율리아 자매는 예수님께 “주여, 천하디천한 이 육신은 끊임없는 병고로 신음할지라도 주님께서 하시는 사업에 티끌만한 도움이라도 될 수 제가 받는 고통이 얼마나 행복한 고통이리까?” 하고 자신을 온전히 봉헌했다. 예수님은 매우 흐뭇해하셨고, 율리아 자매는 이때부터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고통에 동참하며 고통을 계속 봉헌함으로써 주님의 구원사업에 직접적으로 동참하게 되었다.

 

그러다 1984년 말부터 극심한 고통으로 자주 자리에 눕게 되었다. 걱정 된 가족들은 율리아 자매를 두곳의 개인 병원과 기독교병원에서 두 달 입원시켰으나 차도가 없자 마지막 전남대학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게 했지만,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었다. 대학병원 교수들도 포기하고 “이제는 퇴원하십시오.” 하였다.

 

집에 돌아온 자매는 1985년 3월 25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가족들을 불러 유언을 남기고 극심한 고통 중에 2번째 임종 준비를 하면서 목요 성시간을 마지막 바치고 임종을 맞이하고 싶었다. ‘단식을 할 때에는 얼굴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라.’ 라는 성경 말씀에 따라 곱게 화장을 하고 광주로 향하였다. 나주성당 성시간 기도회는 율리아 자매가 고통으로 몸져 눕자 없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바치는 공동기도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느덧 열렬한 기도 속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신이 몽롱해지며 모든 사물이 일시에 정지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아, 이제 주님께서 나를 데려가시려나 보다.’ 생각했는데 그때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귀염둥이! 지극히 사랑하는 내 작은 영혼아! 너는 나를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하여 이미 네 목숨까지도 내어놓았으니 그것은 바로 인류 구원을 위하여 나를 온전히 내어놓은 지극히 높은 내 사랑과 합일된 사랑이기에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말구유에서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내 삶을 순수한 사랑으로 깊이 묵상하면서 유다와 같은 배반을 탓하지 않고 세상 모든 자녀들이 나에게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내 귀여운 딸아! 자, 어서 일어나거라.

 

너는 이미 내 어머니와 나를 위한 증거자로 특별히 간택되었으니 너는 이제 구원된 초월자로서 많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네가 매 순간 받는 고통과 희생과 보속으로 바쳐진 아름다운 사랑의 봉헌은 하느님께 반역한 이 세상을 구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어 머지않은 장래에 온 세상에 나의 성심의 나라가 이룩되리니 하늘의 모든 천사와 성인 성녀들이 춤추며 기뻐하게 될 것이다.” (1985. 3. 25.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예수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율리아 자매의 온몸은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되어 새털처럼 가벼워져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목숨도 기꺼이 내어놓는 작은 영혼의 사랑에 탄복하셨다. 그리고 3개월 뒤 율리아 자매가 모신 성모님상이 눈물을 흘리며 현존을 드러내셨다.

 

이때까지 율리아 자매는 “예수 성심에 미친 여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지만 성모님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러나 묵주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을 정도로 묵주기도를 열심히 해왔다. 그러다 1985년 6월 30일, 율리아 자매가 성모님을 만나면서 예수성심과 성모성심의 복합적인 사랑이 세상에 드러났다. 이때부터 나주에 전대미문의 기적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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