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증언의식을 잃어가던 중 율리아님이 입김을 불자!

운영진
202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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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저는 결혼 생활 30년이 너무나 많이 힘들었거든요. 남편이 시누이 여섯에 종갓집 7대 외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집 식구들이 성품이 너무 강하고 급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그 속에서 제가 버텨낸다는 게 굉장히 힘이 들었어요. 시누들은 못마땅하면 나한테 개 같은 쌍년이라고 하고 하여튼 수도 없이 들었어요. 참 너무 살기 싫었어요. 남편은 시골에서 공부를 잘해서 서울에 유명한 대학을 나왔는데 그렇더라고요.
 
아이가 있어서 ‘내가 안 살면 이 아이들을 어떡하나?’ 생각하니까 참고 살아야 되는데, 남편 성격도 그렇고 시집 식구들 시누들도 그렇고 그 속에서 살라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내가 이 남편하고 떨어져 사나?’ 이렇게 생각을 한 결과 우연히 장사를 할 기회가 생겼어요. ‘그래, 아 됐다!’ 싶어서 아이 둘 데리고 나왔습니다. 날아갈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장사를 하면서 내 돈으로 아이들 키우니까 살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살았는데 장사가 좀 되더라고요. 장사가 되니까 돈에 또 욕심이 좀 나서 그걸 넓히고 또 확장을 하고 2개를 하고 이렇게 욕심을 부렸었어요. 아니 그런데 웬일입니까? 그게 너무나 잘못돼서 수억의 빚을 졌어요. 여자가 수억의 빚을 졌으니까 남편이 저를 제대로 바라보겠습니까? 시집 식구들이 밤낮으로 전화해서 욕하고 “네 같은 년 들어와서 집구석 조졌다.”고 그러지요. 남편은 맨날 술 먹고 들어와서 막 밥상 엎고 막 밥상 날아가고, 안 그러면 쫓겨나서 친정 가다가 또 붙잡혀오고 막 이런 생활을 했었어요.
 
그랬는데 남편이 현대중공업 간부직으로 있었어요. 28년 근무를 하고 인도네시아에 누구를 좀 도와달라 그래서 퇴직을 하고 인도네시아를 갔었는데 퇴직금으로 빚 갚는다고 빚 청산 다 했지. 그래 시어머니가 볼 때 얼마나 내가 미웠겠어요. 하여튼 저녁에 누웠을 때는 아침에 그대로 누워 잠들어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너무 많이 했어요.
 
그래서 남편 인도네시아를 보내놓고 이때다 싶어서 집을 팔아서 뒷정치를 또 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제가 막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인데, 그러던 와중에 우리 동네 자매님이 저를 나주로 인도했어요. 나주를 처음에 뭔지도 모르고 치맛자락을 붙들고 따라갔는데 저는 그때 결혼할 때 영세만 받고 신앙생활도 안 했어요.
 
우리 시어머니가 그렇게 열심히 성당에 갔는데, 나한테 하는 거는 너무 냉정해서 ‘아이고 성당 가면 뭐 하노? 그 시간에 걸레 빨아 방 한 번 닦지.’ 그러고 성당을 안 갔어요. 크리스마스에 1번 부활절에 1번 가고 1년에 ‘다 갔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랬는데 우에 나주를 가게 됐습니다. 뭐 성모님 피눈물 흘린대도 난 그런 게 뭔지 모르고 따라갔었는데 딱 경당 입구에 섰는데, 너무나 장미 향이 진하게 나서 우리 대부님 보고 “아, 대부님 이 집은 무슨 집인고? 꽃을 많이 키우는가 보다고 장미향이 많이 나네요?” “그렇지요.”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쫄쫄 따라갔어요. 이상하게 한번 갔다 오니까 또 가고 싶어요. 그리고 그다음 또 가고 또 가고 이랬는데, 아이 갔다 오면 그다음 날 또 가고 싶어요. 그다음 달이 아니고 그다음 날 또 가고 싶은 거예요. ‘그래 이상하다.’ 남편이 인도네시아에서 건강이 많이 악화돼서 왔더라고요. 그런데 어쩝니까? 그래도 남편인데. 내가 이제 검사하는 데를 내가 데리고 가서 검사를 했더니 ‘혹시 암인가?’ 싶어 내가 속으로 ‘네가 평소에 살면서 내한테 그렇게 못되게 했으께네 네가 뭐 암이나 걸렸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건강 검진 센터 가서 검사를 했는데, 다행히 병은 없고 기후와 음식이 안 맞아서 살이 십몇 kg 빠져서 딸이 공항에 나갔는데 아버지 얼굴을 몰라볼 정도로 건강이 많이 안 좋았어요.
 
그래서 내가 “됐다. 내가 책임질게. 내 살찌우는 거는 내가 책임질 테니까 마 이상 없으면 됐다.” 하고 왔어요. 인도네시아 가서 버는 족족 빚 갚느라고 빚 청산하고 셋방살이라도 그래 있으니까 마음이 막 날아갈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나주만 갔다 오면 아침에 눈을 뜨면 아무것도 없는데 ‘예수님, 오늘 왜 이리 행복합니까? 엄마야! 이상하게 행복하네?’ 그러고 또 눈 뜨면 ‘성모님, 오늘 억수로 행복하네예.’ 하게 되더라고요.
 
하여튼 내 입에 그런 소리가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이 이제 돌아와서 제가 누나같이 엄마같이 위로를 하고 진짜 돈도 없는 상태에서 남편이 1~2달만 안 벌어줘도 생활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3년을 벌이를 못 했어요. 그런 상태에서도 돈에 대해서 절대로 바가지 안 긁고 콩나물 1,000원어치 사 오면 조금 떼서 국 끓이고 조금 떼서 또 콩나물밥하고 조금 떼서 콩나물 무침하고 이렇게 해서 남편 음식을 잘해서 건강을 찾았어요. 그러면서 남편이 달라지는 거예요.
 
그때 남편이 한 40년 신앙생활을 안 했어요. 어릴 때는 유아 영세 받고 복사도 서고 했지만, 서울 가서 공부한다고 마 성당도 안 다니고 그니까 어머니 혼자만 한 성당에 50년을 다녔어요. 그런데 남편이 성당에서 성사를 보고 가더라고요. 솔직히 나는 나주 한 달에 한 번 갈 차비도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한 달에 한 번씩 갔다 오면 즐거워하고 성당을 열심히 가니까는 보내주더라고요.
 
그래 갔다 오고 이랬는데 남편이 마음이 싹 달라지면서 3년 동안 아무것도 없고 너무나 불편한 것만 많은데도 신경질을 안 내는 거예요. 우리 신랑이 얼마나 신경질적이냐면 자기가 조금만 저기 하면 막 날아갑니다. 그런 사람인데 너무나 불편한 상태에서 신경질을 안 내는 거예요, 신경질을. ‘아, 이상하다.’ 그런데 나도 마음이 변한 거예요. “여보, 조금만 참읍시다. 우리 성모님한테 기도 한번 해봅시다.” 하고.
 
그러던 와중에 남편이 한 3년 동안 이력서를 한 100군데를 여기저기 냈나 봐요. 그런데 나이가 58인데 누가 쓰겠습니까? 그런데 안 되면 나한테 미안해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때다 싶어서 제가 요리를 했습니다. 음식을 맛있게 해서 남편 건강을 찾게끔 내 나름대로 아이들 월급 받는 거 조금조금 얻어서 신랑한테 전혀 생활비 이만큼도 이야기 안 하면서 그거 갖고 생활을 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신랑이 아침에 탁 눈을 뜨더니 “여보, 우리 이 고통을 영광으로 받아들이자.” 내가 “무슨 소립니까?” “아멘!” 하면서 ‘이 아저씨가 참 미쳤나?’ 그러더니 아휴, 남편이 단 얼마라도 벌려고 노가다도 나가더라고요. 손가락이 관절이 와서 막 퉁퉁 붓고 그 곱게 큰 사람이 참말로 7대 외아들을 내가 이렇게 만들었나 싶은 게 너무 가슴이 아픈 거예요.
 
나는 아침에 출근할 때 “여보, 오늘 하루도 잘 주님 성모님께 봉헌하자.” 그러고 출근을 시키면 막 열심히 일하고 오는데 손가락이 마디가 막 관절이 막 생기는, 그 얼마나 마음 아픕니까?
 
그런데 남편 마음이 그렇게 변하고 어느 날 신문에 사람을 모집하는데, 해양조선이라고 현대조선에 다니다 퇴직을 했으니까 거기 이제 상무로 취직이 됐어요. 그런데 한 2~3개월 전부터 남편이 “기도를 우째 하는데? 함 해 보자.” 묵주를 쥐더라고요.
 
이제 신문에 그렇게 나오고 면접하러 가는 날 내가 “여보, 이거 율리아 자매님 뽀뽀한 나주 스카풀란데 이거 들고 가고...” 손에 묵주를 쥐여주면서 “여보, 차에 가면서 그냥 가지 말고 성모님이 또 이쁘다고 또 봐주시는지 또 아나?” 그래, 가면서 묵주기도 하고 가라고 손에 이제 들려줬어요. 그래 받아 가더라고요. 혹시나 묵주기도 안 하는가 싶어서 확인하니까 “내 묵주기도하고 간다.” 이러더라고요. 그런데 저녁이 돼도 연락이 없어요. 핸드폰 하니까 핸드폰도 안 받아요. ‘아, 이 아저씨가 뭐 진주 사천에 바다에 빠져 죽었나?’ 싶어서 간이 툭 떨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있으니까 회사라면서 전화가 왔는데 기병수씨 내일 아침에 출근하시라고 부사장이 직접 저한테 전화를 주시는 거예요. “아, 예 감사합니다.” 그랬는데 계속 핸드폰을 하니깐 꺼놨다가 이제 금방 켰다고. 그래서 “어디예요?” 그러니까 오는데 어디 한 군데서 부사장 자리로 준다고 그래서 그 면접을 봤는데 거기도 됐대요. “아니, 여보. 여기도 됐어요? 이 양손에 떡을 쥐고 이제 골라야 된다 빨리 와보세요.” 그래 왔더라고요.
 
그래서 아유~ 얼마나 좋습니까? 내가 그 남편을 껴안고 내가 잘못했다고 저도 무뚝뚝해서 남한테 “잘못했다” 소리 좀 잘 안 하거든요. 그날엔 남편 앞에 꿇어앉아서 얼마나 잘못했다고 빌고 제가 나주 다니고 이후로는 버릇이 뭐 생겼냐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아멘 아멘.” 들어가면서 하고 나와서 또 하고, 하루에 한 100번도 하였습니다. “예수님, 저 이쁘지요?” 이러면서 예수님하고 놀고 아침에 눈 뜨면 고상 앞에 또 큰절을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너무 행복하고 눈만 뜨면 하여튼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이화봉 율리안나 :
제가 참고로 말씀 좀 드릴게요. 자매님이 나주 성모님을 알고 나서부터 이렇게 은총을 많이 받으셨고요. 지난번에 나주 순례를 갔습니다. 그런데 차를 타고 가면서 우리가 떡도 먹고 김밥도 먹잖아요. 그래서 자매님이 다 토하고 얼굴이 하얗게 변했어요. 그래서 이제 버스에서 내리는데 어지러워서 걷지를 못하겠다고 그래서 부축을 하고 바닥에 누워있는데 점점점점 더 초롱초롱해져야 되는데 점점점점 사람이 의식이 잃어간다고 의식이 없다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옆에서는 “빨리 119 불러서 응급실을 가라.” 저 보고 얘기했어요. “이거 큰일 날일이다.” 그랬는데,
 
제가 ‘119 응급실보다 일단 율리아 자매님에게 빨리 뛰어가야겠다.’ 싶은 생각에 왜냐하면 루뗑 갈 때 제가 따라갔거든요. 그래서 그때 일어난 일을 봤기 때문에 (자막-루땡 갔었을 때 이보다 더 위급한 상황에서 율리아님이 기도하시니까 그대로 치유받는 것을 목격) ‘응급실보다 빨리 가서 이야기해야 되겠다.’ 싶었더니, 베드로 회장님이 엄마 기도 뽀뽀 물을 가져왔어요. 그런데 그걸 넘기지는 못할 정도로 도저히 안 돼서 “엄마, 의식이 없어요.” 그랬더니 이제 급히 오셨어요. 그래서 입에다가 막 숨을 불어넣으면서 기도하시고 그래 얼마나 있었나? 입술이 (자막-생기가) 돌아오면서 일어났습니다.
 
이용선 율리안나 : 그러고 집에를 왔는데 3일 동안 숨을 쉬면 코에서 장미 향이 자꾸 술술 나는 거예요. 그래 푹푹 나오니까 ‘어, 이상하다?’ 또 이래 있으면 한 3일간 장미향이 코에서 났어요. 그리고 제가 지금은 매일 미사를 죽기 아니면 살기로 갑니다. 너무 행복하고 며칠 전에 딸이 전화가 왔는데, 아빠하고 통화를 했는가 봐요.
 
“엄마, 아빠하고 통화했는데요. 아빠 전화 목소리가 하느님 목소리 같다.” 이러더라고요. “야~ 하느님 목소리가 어떻게 나는데? 네가 하느님 목소리 아나? 그래 너그 아빠가 그렇게 변했다.” 이러니까 그렇게 아빠가 부드럽고 처음 들어본 목소리라고. 그래서 내 신랑한테 전화했어요. “아유 당신 딸이 당신 그래 이야기하는데 아니 뭐 뭐라고 그랬어?” 그러니까 “아이, 그럼 내가 변해야지.”
 
그러면서 이제 남편이 아침 5시에 눈뜨면 기도로서 시작을 해서 저녁에 10시에 나는 부산에서 기도를 하고 신랑은 10시에 거기서 시간을 맞춰서 기도를 합니다. 요즘 너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 2008년 4월 26일 부산 피정 이용선 율리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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