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93화. 방직 공장에 보내려던 외숙 몰래 어머니와 서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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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분리한사랑2025-05-06 01:33
그날 밤은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에 차서 너무 좋아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
배울 수 있는 것도 큰 은총이었네요.
그동안 배우기를 게을리하고
배울 수 있었음에
평생 단 한번도 감사하지 못했는데
엄마께서는 너무 좋아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니...
나는 얼마나 감사했던가.
얼마나 배우기를 싫어했던가.
얼마나 다른이를 위해 배운것을 사용하려 했던가.
깊이 반성하며 제 삶에서
단 한번도 생각지도 못한 면을
새롭게 되돌아보는 순간입니다.
엄마의 삶은 전 인류를 위한 예비된 삶이시며
엄마의 매 순간의 삶이 우리들을 비추는 거울이며 등대입니다.
배울 수 있는 것도 큰 은총이었네요.
그동안 배우기를 게을리하고
배울 수 있었음에
평생 단 한번도 감사하지 못했는데
엄마께서는 너무 좋아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니...
나는 얼마나 감사했던가.
얼마나 배우기를 싫어했던가.
얼마나 다른이를 위해 배운것을 사용하려 했던가.
깊이 반성하며 제 삶에서
단 한번도 생각지도 못한 면을
새롭게 되돌아보는 순간입니다.
엄마의 삶은 전 인류를 위한 예비된 삶이시며
엄마의 매 순간의 삶이 우리들을 비추는 거울이며 등대입니다.
KOY10162025-05-05 22:59
방직 공장에 보내려던 외숙 몰래 어머니와 서울로
중학교 진학도 가로막히고, 공장도 그만둔 나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배우고 싶은 열망밖에 없었다. 나는 공장을 나온 바로 다음 날부터 외숙의 말씀대로 작은 외가댁에 가서 다 터져 피 흘리는 손으로 쉬는 날도 없이 계속 일을 했다. 하고 싶은 공부하는 셈치고 기쁘게 일해도 작은외숙은 내가 로케트 공장에서 나왔다고 분을 못 이기셔서 나만 보면 다그치며 화를 내셨다.
그러나 나는 외숙의 사랑을 받은 셈 치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부엌에서 일하다가 작은외숙이 외숙모와 하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광주에 있는 방직 공장에서 연락이 왔는데 곧 홍선이를 방직 공장에 보낼 거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로케트 공장에서 손이 피투성이가 되어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직 아물지도 않은 손을 보시고도 또다시 공장으로 보내려고 하시다니!
나는 눈물이 절로 흘러내렸으나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닦으며 일을 끝내고 밤에야 집으로 가면서 아버지께 도와주시라고 간절히 청했다. 집에 가서 난생처음으로 어머니께 청했다. “어머니... 저 방직공장에 가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는 그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말하지 않는 나를 잘 아시기에, 나의 애원을 듣고 안쓰러워 하시면서 눈물을 훔치셨다.
그러나 작은외숙이 너무 완강하신 데다 거역할 수가 없으니, 우리에겐 다른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딸의 고충을 알게 되신 어머니는 한참을 고민하시더니 “아가, 다른 방법이 없구나. 길선이 오빠가 사는 서울로 갈거나?”하고 물으셨다. 길선 오빠 외에는 연고도 없는 서울이지만 그래도 공장 생활보다는 나을 것 같아 “예, 어머니. 갈래요.”하고 대답했다.
“그래, 가자꾸나.” 어머니는 나의 의견을 존중하여 한 평생 살아오신 삶의 터전을 등지고 서울로 올라가는 큰 결정을 내리셨다. 그 당시 여자 홀몸으로 딸 하나를 데리고 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행을 결심하심이 어머니께 얼마나 큰 결정이셨을지를 생각하면 그 지극한 사랑에 지금도 눈물이 난다. 별다른 짐도 없는 어머니와 나는 울면서 외숙 몰래 급히 피신하다시피 서울행 밤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 밤, 외숙이 아실 리도 만무하거늘 가슴은 어찌나 콩닥콩닥 떨리기만 하던지... 난생 처음 타본 기차는 낯설기만 했지만 그래도 서울로 향하는 내 마음엔 새로운 희망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3대 독자에 나는 4대째의 무남독녀이니 가까운 친척도 없지만, 그중 길선이 오빠가 그나마 가까운 친척이었다.
서울로 올라오면 그 오빠가 미용 기술을 가르쳐 준다고 해서 희망을 가지고 올라간 것이다. 전화를 받고 우리를 마중 나온 길선이 오빠는 일단 다른 일을 하며 자리를 잡다가, 서서히 미용 기술을 배우자고 했다. 우리에게 머물며 일하도록 소개해준 곳은 국회의원 이○○의 집이었다. 그 집은 하숙도 치는 2층집이었다.
어머니는 주방을 맡고 나는 아이를 돌보기로 했다. 번잡한 서울 생활에서 내게 맡겨진 일은 원래부터 해온 쉬운 일이었지만, 나는 돌보는 아이를 내가 그토록 사랑한 사촌 동생 길영이인 셈치고, 또 먼저 저세상에 간 동생 순덕이인 셈치고 사랑을 다해 돌보았다. 한 달쯤 지나 국회의원 아저씨가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주머니, 홍선이를 계속 지켜보았는데 너무 착한 데다 영특하고 예뻐 너무 아까운 아이입니다. 제가 책임지고 대학까지 보내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배우고 싶은 열망으로 불타던 나에게 그 어떤 말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 외숙은 나를 공장에 보내려고 하셨는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국회의원 아저씨가 나를 대학까지 보내겠다고 해주시다니!
국회의원 아저씨는 따뜻한 목소리로 “올해는 늦었으니 내년부터 학교에 가도록 하자.”라고 하셨다. 국회의원 아저씨의 말씀을 아버지의 말씀인 셈치며, 그토록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도와주시고 계시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공부가 너무너무 하고 싶어 애가 탔던 나는 하루라도 빨리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집에서 하숙하던 대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누구에게도 부탁을 못하고 말도 잘 못하는 내성적인 나였지만, 영어를 너무나 배우고 싶었기에 큰마음 먹고 청한 것이었다. 그는 흔쾌히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나는 몹시도 기뻐 배움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다.
어머니가 용돈을 주셔도, 힘들게 버신 돈이기에 쓸 생각도 안 하고 모으기만 하던 내가 노트도 살 정도로 학업에 대한 열망에 불타올랐다. 공부할 만반의 준비를 해놓으며 새로운 출발을 꿈꾸었다. 그날 밤은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에 차서 너무 좋아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