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를 낳고 과다 출혈로 죽었다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죽음에서 살아났다. 하느님께서 친히 입김을 15번 불어 넣어주시지 않았다면, 죽을 운명이었던 내가 어찌 살아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간 먹지도 못한 나는 몸의 피가 거의 다 빠져나가자 쇼크로 호흡곤란 증상이 일어나며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이제 아이들이 셋이나 되고,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면 죽었다 살아난 것이 너무나 아찔했기에, 어떻게든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도 수혈은커녕 링거조차 맞아보지 못했다. 시어머니가 요구하신 돈을 해드리고 나면 링거주사 한 대 맞을 여건도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에 영암 병원에서 여러 간호사가 혈관을 찾지 못했고 심지어 의사까지 나섰어도 내 혈관을 잡지 못해 결국 주사를 맞지 못했다. 그런데 의무병 출신이었던 남편이 집에 와서 혈관을 단 한 번에 잡아 혈관주사를 놔주었다.
당시는 주사약을 사다가 집에서 맞을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혈관주사도 잘 놓던 남편은 직장에 충실하느라 아내가 아파도 단 한 번도 주사를 놔 줄 수가 없을 정도로 바빴다. 그이는 아내가 죽었다 살아난 것도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남편이 “여보, 아기 낳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 그 많은 피를 다 쏟고 얼마나 힘들었어? 얼른 영양제 놔줄 게 힘내.” 하고 위로해 주면서 영양제 놔준 셈 치고 봉헌했다. 그래서 아무 것도 서운해하지 않고, 꿋꿋이 고통을 이겨나갔다. 과다 출혈 쇼크로 죽었다가 하느님이 입김을 불어주시어 살아났지만, 피를 그렇게 많이 쏟은 나의 건강은 나날이 악화되었다.
그런 고통 중에도 건강 회복하라고 어머니가 미역국을 끓여주시면, 나는 첫째와 둘째 낳았을 때 그이에게 미역국을 다 주었던 것처럼, 어머니 눈치 봐가며 그이에게 주고는 내가 먹은 셈 치고 봉헌했다. 나는 미역국 좋아하는 남편 챙겨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때는 미역도 아주 귀한 데다가 우리는 돈도 없어 미역도 사기가 힘들었다.
그런 미역국을 그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나는 더 배불렀다. 비록 남편이 무심해 아픈 아내에게 신경 써주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남편에게 사랑을 듬뿍 받은 셈 치고 봉헌하며 살아왔기에 내 모든 걸 내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나의 건강은 내 마음과 달리 갈수록 악화되었다.
아이 낳은 지 6개월이 지났는데도 우리가 사는 방에서 벽이 몇 겹인 한참 먼 주인집 안방에서 선풍기를 켜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멎는 것 같아 가슴을 쥐어뜯기도 했다. 그래서 숨을 쉬기도 힘들어 매일같이 헉헉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힘겹게 아이를 낳다 보니 아이를 낳으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조그만 희망마저 사라지는 것 같아 더욱더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오직 하느님과 내 아버지를 부르며 ‘이제 아이들이 셋이나 되고 불쌍한 제 어머니를 놔두고 제가 잘못되면 안 돼요. 부디 건강하게 해주셔요.’ 하면서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시어머니와 남편과 친정어머니께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하면서 마음을 굳게 다지고 더욱 잘살아 보기 위해 최선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잘 모를 때였지만 이 모든 고통을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셈 치고 봉헌하며, 내 가족과 나 자신도 하느님께 봉헌했다.
그 많은 피를 쏟고도 링거 한 번 맞지 못했으나
셋째를 낳고 과다 출혈로 죽었다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죽음에서 살아났다. 하느님께서 친히 입김을 15번 불어 넣어주시지 않았다면, 죽을 운명이었던 내가 어찌 살아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간 먹지도 못한 나는 몸의 피가 거의 다 빠져나가자 쇼크로 호흡곤란 증상이 일어나며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이제 아이들이 셋이나 되고,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면 죽었다 살아난 것이 너무나 아찔했기에, 어떻게든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도 수혈은커녕 링거조차 맞아보지 못했다. 시어머니가 요구하신 돈을 해드리고 나면 링거주사 한 대 맞을 여건도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에 영암 병원에서 여러 간호사가 혈관을 찾지 못했고 심지어 의사까지 나섰어도 내 혈관을 잡지 못해 결국 주사를 맞지 못했다. 그런데 의무병 출신이었던 남편이 집에 와서 혈관을 단 한 번에 잡아 혈관주사를 놔주었다.
당시는 주사약을 사다가 집에서 맞을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혈관주사도 잘 놓던 남편은 직장에 충실하느라 아내가 아파도 단 한 번도 주사를 놔 줄 수가 없을 정도로 바빴다. 그이는 아내가 죽었다 살아난 것도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남편이 “여보, 아기 낳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 그 많은 피를 다 쏟고 얼마나 힘들었어? 얼른 영양제 놔줄 게 힘내.” 하고 위로해 주면서 영양제 놔준 셈 치고 봉헌했다. 그래서 아무 것도 서운해하지 않고, 꿋꿋이 고통을 이겨나갔다. 과다 출혈 쇼크로 죽었다가 하느님이 입김을 불어주시어 살아났지만, 피를 그렇게 많이 쏟은 나의 건강은 나날이 악화되었다.
그런 고통 중에도 건강 회복하라고 어머니가 미역국을 끓여주시면, 나는 첫째와 둘째 낳았을 때 그이에게 미역국을 다 주었던 것처럼, 어머니 눈치 봐가며 그이에게 주고는 내가 먹은 셈 치고 봉헌했다. 나는 미역국 좋아하는 남편 챙겨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때는 미역도 아주 귀한 데다가 우리는 돈도 없어 미역도 사기가 힘들었다.
그런 미역국을 그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나는 더 배불렀다. 비록 남편이 무심해 아픈 아내에게 신경 써주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남편에게 사랑을 듬뿍 받은 셈 치고 봉헌하며 살아왔기에 내 모든 걸 내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나의 건강은 내 마음과 달리 갈수록 악화되었다.
아이 낳은 지 6개월이 지났는데도 우리가 사는 방에서 벽이 몇 겹인 한참 먼 주인집 안방에서 선풍기를 켜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멎는 것 같아 가슴을 쥐어뜯기도 했다. 그래서 숨을 쉬기도 힘들어 매일같이 헉헉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힘겹게 아이를 낳다 보니 아이를 낳으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조그만 희망마저 사라지는 것 같아 더욱더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오직 하느님과 내 아버지를 부르며 ‘이제 아이들이 셋이나 되고 불쌍한 제 어머니를 놔두고 제가 잘못되면 안 돼요. 부디 건강하게 해주셔요.’ 하면서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시어머니와 남편과 친정어머니께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하면서 마음을 굳게 다지고 더욱 잘살아 보기 위해 최선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잘 모를 때였지만 이 모든 고통을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셈 치고 봉헌하며, 내 가족과 나 자신도 하느님께 봉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