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428화. 시어머니께 쌀을 사드리기 위하여



시어머니께 쌀을 사드리기 위하여

친정어머니께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낳은 아기이니 몸조리만 잘하면 병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러니 어쨌든지 몸조리를 잘하자.” 하시면서 극진히 간호해 주셨다. 그러다 쌀이 떨어지자 어머니는 “얼른 집에 가서 쌀을 가져오마. 늦어도 꼭 오늘 안에 돌아올 테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거라. 알았지?” 하셨다. “예. 어머니!”


어머니는 또 당부하셨다. “날이 추우니 혹시라도 밖에 나가지도 말고. 찬물은 손도 대지 말고 맘 편히 쉬고 있어. 금방 다녀오마.” 하셨다. 그런데 친정어머니가 떠나시자마자 바로 시어머님의 급한 목소리가 방안까지 울려 퍼졌다. “어미야! 어디 있냐?” 나도 급하게 문을 열고 나가 “예, 어머니, 오셨어요?”
 

밖으로 나가 인사를 드리는데 대뜸 “나 쌀 좀 사줘야겠다.” 하시는 것이 아닌가! “예?” 시어머니는 가까운 광주에 자녀들이 거의 다 있는데도 아기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쌀을 사달라고 광주에서 영암 군서까지 200리(80km) 길을 쫓아 오셨다.



나는 큰아이를 양수가 터진 지 일주일 만에 집에서 낳느라 고생했고, 셋째 아이는 9개월 만에 진통이 시작되어 2개월 반이 넘어서야 광주 산부인과에서 이대로 놔두면 큰일 나겠다고 하여 유도분만 하자고 했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사람은 시와 때가 있다.”고 집에 가서 낳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진통 시작한 지 3개월 7일 만에 친정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으로 달인 용약을 먹고 간신히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그런데 피를 너무 많이 흘려 거의 죽다 살아났지 않았던가! 세 아이 다 집에서 낳아 시댁에서 도움 한 번 받아본 적 없었다.

 

그중 두 아이는 죽도록 힘들게 낳았어도 친정어머니는 다섯째 시동생 뒷바라지까지 하시느라 농사일 때문에 내 산후조리도 제대로 해주지 못하시고 출산 1주일 되는 아침에 집에 가셨다. 그런 데다 나는 미역국 좋아하는 남편 챙기느라 미역국 한 번 제대로 먹지 못하고 아픈데도 잠시 쉴 새도 없이 일을 해야 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몸조리만 잘하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해서 이번에는 집에서라도 산후조리를 꼭 잘하리라고 벼르고 별렀다. 친정어머니는 나를 극진히 돌보아 주시며 밖에도 나가지 말라고 당부하고 가셨는데... 시어머니는 아기 낳은 지 겨우 17일 된 산후조리 중인 나에게 정미소에 가서 쌀 한 가마니를 사달라고 그 먼 길을 오신 것이다.


지금 같으면 전화 한 통화만 해도 바로 문 앞까지 쌀을 배달해주는데 그 당시 시골에서는 5일 장날이나 정미소에 직접 가서 쌀을 사야 할 때였다. 이번에도 아이가 21일이나 늦게 나와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더딘 상태였기에 힘들었다. 아이 낳은 지 17일 만에 시어머니는 오시자마자 아이는 보시지도 않고 쌀부터 사 오라고 하셨다.
 
시어머니께서 네 아이 낳을 동안 미역 한 번도 사주지 않으셨지만 “아가, 아기 낳느라고 고생했구나.” 하시면서 미역을 사 오신 셈 치고 봉헌했다. 친정어머니는 밖에도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러나 나는 시어머니께 순명하는 마음으로 할 수 없이 갓난아기를 방에 두고 나왔다. 집에는 돈이 하나도 없어 주인집에서 돈을 빌리고, 리어카도 빌렸다.


‘그래, 자녀들 많은 시어머니는 얼마나 힘드실까! 오죽했으면 그 먼 길 오셔서 방금 아이 낳은 내게 쌀 한 가마니를 사 달라 하실까? 내 모든 것 다 드리고 싶은 시어머니를 위해 온 힘을 다해보자. 할 수 있다! 윤홍선!’ 하면서 마음을 다잡으며 시어머니의 사랑을 받은 셈 치고 길을 나섰다. 그날은 몹시도 추웠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픈 몸으로 그 추위에 먼 길을 걸어가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돈이 없어 택시를 탈 처지도 못 되었다. 리어카를 끌면서 장갑도 없이 얼음장같이 리어카의 찬 쇠 손잡이를 잡아야만 했다. 추운 늦겨울, 뼛속까지 시린 북풍을 맞으며 리어카를 혼자 끌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정미소에 갔다.

 
집에서 가깝다고 해도 시골인지라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험난한 시골길을 걷고 또 걸어 어렵게 정미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 정미소에는 쌀이 다 떨어지고 없었다. 내일이나 방아를 찧는다고 하여 내일 쌀 한 가마니 가지고 가겠다고 약속하고 정미소를 나와야 했다. (지금은 쌀이 흔하지만, 그때는 쌀이 귀해 정미소에서도 쌀이 없을 때가 있었음)

 
나는 혼자 걸어도 힘들 그 먼 길을 리어카까지 끌고 갔다가 다시 집에까지 너무 힘들게 돌아왔다. 시어머니가 밖에서 기다리시다 내가 빈손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쌀은 왜 안 가지고 오냐?” 하셨다.
 
 
나는 “어머니, 정미소에 갔는데 오늘은 쌀이 하나도 없고 내일 방아를 찧는대요. 그래서 한 가마니 부탁드리고 왔어요. 저희 집에서 주무시고 내일 가지고 올라가셔요.” 했다.
 
그랬더니 시어머니는 역정을 내시며 “아니, 광주 식구들 굶기면 되겄냐?!” 하셨다. “예?” “오늘 당장에 쌀을 가지고 가야 식구들 밥해줄 것 아니냐? 얼른 다른 데서라도 사 오너라!” 하시는 시어머니 앞에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지금이야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전화기도 없던 그 시절, 정미소에 연락해서 쌀이 있는지 알아볼 방법조차 없었다. 더구나 리어카 끌고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한 번 다녀온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힘들었다. 건강한 산모도 출산 후에는 찬바람을 조심해야 한다는데, 나는 허약한 몸으로 아기를 낳은 데다가 매서운 겨울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오랜 시간을 걸었으니….
 
그런데 어쩌겠는가? 당장 쌀을 사 오라고 하시는 시어머니께 더는 아무 말씀도 드릴 수 없었다. 나는 사랑받은 셈 치고 “예, 어머니. 얼른 다시 다녀올게요.” 하며 다시 집을 나섰다. 주저앉을 것만 같아 리어카를 잡은 손에 힘을 더 꽉 주었다. 아기의 울음소리를 뒤로한 채 또다시 물어물어 더 먼 곳에 있는 정미소를 찾아갔다.
 
그런데 거기도 쌀이 하나도 없었다. 시골이라 두 정미소 간의 거리도 상당히 멀었다. 그런데 겨우 찾아내어 힘들게 간 그곳에도 쌀이 없으니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또다시 정미소를 찾아다녀야 하다니... 막막함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다시 사랑받은 셈 치고 ‘할 수 있다. 윤홍선!’ 마음을 추스르며 길을 나섰다.

 

그렇게 리어카를 끌고 한 20리쯤이나 더 걸었을까? 이제는 조금도 걷기 힘들 정도로 온 다리가 퉁퉁 붓고 발바닥과 손바닥이 너무너무 뜨거웠다. 나는 아파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시어머니로부터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하면서 하느님께 청했다. “하느님, 지금 찾아가는 다른 동네 정미소에는 쌀이 꼭 있게 해주셔요.”



하고 기도하면서 그곳 위치를 물어물어 먼 길을 찾아갔다. 드디어 정미소가 눈앞에 보이는 순간 떨리는 마음으로 “하느님, 제발 쌀을 사서 시어머니께서 가져갈 수 있게 해주세요. 만약 이곳까지 없으면 저는 더 이상 다른 정미소에 갈 수가 없어요.” 하고
 
나는 가슴 졸이며 정미소에 들어갔는데 쌀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놀라 “사장님, 여기 쌀을 한 가마니 살 수 있나요?” “아니요, 지금은 없으니 내일이나 오세요.”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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