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으로 잔뼈가 굵은 상일꾼도 못 할 일을 했다고요?

얼마나 지났을까? “어이 어이, 새댁! 얼른 나와 봐! 맑은 물이 나온당께! 빨리 나와 봐~!” 하는 기쁨에 겨운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겨우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가 우물 속을 들여다보니 그새 물이 엄청 많이 차올라 있었다. 나는 너무 좋아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봤더니 맑은 물이 두레박에 가득 담겨 나왔다.

‘아니, 온통 휘저어진 진흙탕 물이 몇 시간도 채 안 돼 맑은 물이 샘 솟듯이 나오다니!’ 당시 동네 어르신들한테 “이런 흙탕물이 가라앉으려면 최소 며칠이 걸린다.”고 들었었다. 그런데 서른세 번이나 진흙을 퍼내느라 그렇게 휘저어졌는데 3시간도 채 안 되어 이렇게나 수정처럼 맑은 물이 나오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가뭄으로 주인집 우물이 마르기 전에는, 원래 두레박을 묶었던 끈의 길이가 딱 맞았었다. 그런데 새로 우물물이 솟아오른 뒤에는 물을 퍼 올릴 때 끈을 두 번 정도 덜 잡아당겨 올려도 될 정도로 물이 훨씬 많이 차올라, 두레박 끈을 짧게 줄여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무엇보다도 아이처럼 좋아하시는 할머니를 보니, 형언할 수 없었던 고통조차도 다 사라지며 너무너무 기뻤다. 그때 이웃집 아저씨가 들어왔다. 그분은 퍼낸 진흙이 우물 옆에 수북이 쌓인 것을 보더니 깜짝 놀라 말했다. “우메, 이게 뭔 진흙이라요? 혹시 우물을 파기 시작했소?” 하자 할머니가 흥분되어 말씀하셨다.

“아니, 퍼내기 시작한 것이 아니여. 우리 새댁이 벌써 다 파부렀다네!” 하자 “아니, 뭣이라고라? 참말이랑가?” “응, 참말이여.” “아니, 우물을 파서 물이 나왔단 말이요?” “그래. 그랬당께.” “우메, 뭔 일이라요. 장정 상일꾼 둘이 해도 하루종일 걸려 할 힘들고 위험한 일을….” “그러게 말이야!”

아저씨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니, 저 호리호리한 새댁이 진짜 반나절도 안 되어 혼자 저 많은 흙을 퍼냈단 말이요?” 하고 재차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흥분된 어조로 “아이, 그랬당께~” “아니, 저렇게 몸이 약해 보이는 젊은 여자가 정말 힘이 장사네이!”

“그러게 말이야. 나도 겁나게 놀라부렀당께.” “우메, 시상에.” “나는, 새댁이 우물 속에서 진흙을 쬐끔 담아줬다는 양동이도 잡아당겨 본께 꼼짝도 않더라고.” “그라제이. 연세 드신 어르신이 어떻게 물을 먹은 진흙을 올릴 수가 있당가.”

“그런디, 내가 못한께 새댁이 양동이에 진흙을 가득 담아 우물에서 다시 나와 양동이를 잡아당겨 끌어냈어. 그러기를 서른세 번이나 했어.” “우메, 우메! 서른 세 번이라고라? 정말이요?” “믿기지 않으면 두레박으로 물을 떠보면 알 것 아닌가.” 아저씨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갸웃~ 하더니 두레박으로 물을 하나 가득 퍼 올렸다.

그리고는 “우메, 우메! 진짜 벌써 맑은 물이 나와부렀네이!” 하면서 두레박에다 입을 대고 물을 꿀꺽꿀꺽 마시더니 “아따, 전에보다 물맛도 더 좋아부네요. 그리고 물도 더 많이 차부렀소! 두레박 끈이 전보다 더 길게 남잖아요. 더 짧게 줄여야 되겄네이. 아니, 새댁은 대체 어디를 어떻게 파부렀길래 이 가뭄에 물이 이렇게 많이 나와부렀당가?” 했다.

할머니가 “참말로 그려. 두레박 끈도 더 줄여야겠어. 근데 나는 우물 속 흙이 그렇게 무거운지 몰랐네.” 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진지하게 “그럴 것이구만요. 우물 속 흙은 물을 가득 머금은 진흙이라 정말 무겁단 말이요. 아니, 그것뿐만 아니라 노동으로 잔뼈가 굵은 상일꾼이라 해도, 잡을 곳도 마땅찮은 그 깊은 우물 속을 수십 번 들락날락한다는 것은 참말로 장정들도 못 할 일이요.”

그러자 할머니는 놀라서 “우메, 그런당가?” “그러믄요. 그 일은 기술도 기술이지만 혼자하려면 상일꾼도 하기 힘든 위험천만한 일이란 말이요. 아짐은 새댁 덕분에 돈 벌어부렀소이.” 하자 할머니도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하였다. 그러자 아저씨는 할머니한테 속삭이듯 조용히 말했다.

우리 집 우물도 바짝 말라버렸는디, 저렇게 일 잘하는 새댁이 우리 우물도 좀 파 줄 수 있을까 모르겠소? 돈은 드릴게요.” 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에끼, 이 사람아! 우리 우물은 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냈지만, 그 어려운 일을 또 시켜서야 되겠는가?” 했다. 아저씨는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좀 그러지요이.” 하고 말끝을 흐렸다. 나는 남자 장정조차도 하기 어려운 일을 사랑의 맘으로 할머니를 위해 해낼 수 있었음에 너무너무 흐뭇했다.

그해 가뭄이 몹시도 심했기에 먹을 물조차 귀해 동네서 야단들이었다. 우물을 파고 나서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죽음을 불사하고 최선을 다해 사랑으로 해냈으니, 많은 물이 나오지 않을지라도 많은 물이 나온 셈 치자. 그리고 물이 많이 필요한 우리 집 빨래는 나가서 해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판 우물은 빨래까지 해도 물이 남을 정도로 늘 풍족했다. 그리고 너무 신기하게도 새로 솟은 우물물은 기존 물보다도 맛이 아주 좋았다. 안집 할머니도 “어이, 물맛이 더 좋아졌어. 달달해!” 하셨다. 물을 길으러 온 동네 사람들도 모두 하나같이 “이 집 물은 어찌 이렇게 달다냐?”라고들 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도 서로 그 우물물을 길어갔다. 그래도 물은 부족하지 않았고 모두가 풍족하게 쓸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확실한 하느님의 개입이셨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반나절 동안 온통 휘저어진 그 거무죽죽하고 진한 진흙탕 물이 어찌 단 몇 시간 만에 맑은 물로 정화되어 그 많은 물이 샘솟듯 나올 수 있었겠는가!

그렇기에 하느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예비하신 사랑임을 알려주시고자, 예수님의 생애인 33번 만에 내가 더 이상 그 일을 못 하도록 쓰러지게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성치 않은 몸에 임신까지 한 상태였지 않은가! 그런 내가 8m 깊이의 우물을 왕복 33번이나 오르내릴 수 있었겠는가! 하느님께서 해 주셨음이 분명했다.

나를 온전히 다 내어놓고 그 위험천만한 일을 했는데도 배 속의 아이도 무사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로도 아주 건강했다. 그리고 매운 김치를 먹고 온 얼굴과 눈과 코에 빨간 고춧물이 다 묻었던 한 살배기 셋째 아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 이같이 목숨을 불사한 사랑 실천은 사랑의 기적이 일어날 정도로 위대하다.

작은 영혼이 8m의 우물을 33번 수직으로 오르내린 높이는 총 528m로, 보통 20층 아파트의 높이가 약 60m가량인 것을 생각해보면 20층 아파트를 약 4번(480m) 이상 맨몸으로 오르내린 셈이다.

작은영혼은 70세가 넘은 지금도 다리가 180도 이상으로 벌어질 정도로 몸의 유연성이 좋은데 젊었을 때는 유연성이 더 좋았을 것이다. 또한 150근(90kg)을 지게에 가뿐하게 질 정도로 하체 힘이 좋았고, 힘센 장정들과 팔씨름을 해 다 이길 수 있을 정도로 힘도 셌다. 그래서 잡을 데가 마땅치 않은 그 깊고 높은 우물을 오르내릴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우물을 오르내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어렵고 힘든 약자들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일화는 주님과 성모님을 닮은 작은 영혼의 굳센 의지와 ‘말보다는 수족의 동작을 중히 여기는 실천’을 통해 폭발적으로 드러난 사랑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작은영혼이 마지막 33번째로 우물에서 나와 기진하여 쓰러진 모습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며 하신 마지막 말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연상하며 이 일화를 잘 묵상해본다면 더 큰 영적 성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일화를 통하여 죄 많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십자가를 지고 갈바리아를 오르신 예수님과, 그 극심한 고통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예수님을 따라가신 성모님을 묵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작은영혼의 이러한 이타적인 삶을 자주 묵상하면서 깨어서 생활의 기도를 끊임없이 실천한다면 영적으로 많이 성장하게 될 것이고, 가정이 성화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