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상태에서 시외할머니까지 모시다

아침에 옷 갈아입으려고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어제 시어머니께서 오셔서 시외할머니에 대해 하신 말씀을 전해 주면서 시외할머니를 우리 집으로 모셔오시라고 했다고 하니 남편도 기뻐했다. 남편이 나가고 나서 시어머니는 아침 일찍 시외할머니를 모시고 오셨다. 그리고 모시고 온 시외할머니가 방에 들어오시기도 전에 “그럼 나 간다.” 하고는 바로 가셨다.

시어머니는 자신의 친어머니이신데 방에도 들어오시기 전에 그렇게 가버리시니 조금 의아했다. ‘손 한 번이라도 다정스럽게 잡아주시지.’ 하면서 손잡아 주신 셈 치고 내가 그 대신 더 사랑해 드리기로 맘먹었다. 예전에 광주 시댁에서 사는 동안 할머니를 모시면서 그토록 기쁘게 할머니와 사랑을 나누었었다.

그래서 우리집 마당에 계신 시외할머니를 보니 꿈인가 생시인가 할 정도로 반가웠다. 몇 년 만에 뵌 할머니가 나와 함께 살 때보다 훨씬 많이 연로해지시고 마르셔서 마음이 아팠다. “할머니, 어서 오셔요. 그동안 보고 싶었어요.” 할머니도 너무 반가워 나를 보시자마자 손을 꼭 잡고 우시며 “우메, 시상에 아가! 네가 나를 오라고 했냐?” 하셨다.

“예, 할머니.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이제라도 할머니, 우리랑 같이 살아요.” “시상에 내 피붙이들도 모두 다 싫어해서 나는 죽지도 못해서 갈 곳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목숨을 연명했는디, 네가 나를 받아주는구나. 아가 너무 고맙다.” “할머니, 할머니한테 제가 너무너무 잘해드리고 싶은데 저 몸이 조금 안 좋아요. 혹시 제가 느리고 맘에 안 드셔도 이해해 주셔야 해요.”

“아이고, 그러믄, 그러고 말고, 너는 옛날부터 내가 많이 봐왔잖냐. 너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나 선녀임에 분명해.” “할머니, 그 말씀은 이제 그만하셔요. 저는 너무 부족할 뿐이어요. 할머니, 오시느라고 고생하셨으니 이제 좀 쉬셔요.” 우리가 사는 집에는 안방 외에 작은방이 하나 더 있었다.

아이들이 커가고 있었지만, 우리 친정어머니를 포함하여 일곱 가족 모두가 한방을 썼다. 내가 몸이 아파 갈퀴나무도 하지 못하니 나무를 사다 불을 때야 했는데, 조금이라도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시외할머니가 오셨으니 비어 있던 작은 방을 치우고 할머니께서 혼자 편히 쓰시도록 했다.

그리고 방에 불을 따뜻하게 때 드렸다. 나는 아무리 돈이 없어 힘들어도, 할머니를 위해서 불을 때 드린 것이다. 그 어떤 것이든 할머니를 위해서 해드리는 것을 한 번도 아깝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는 추운 방에서만 지내시다가 갑자기 따뜻한 방에 지내시게 되니 처음에는 숨을 헐떡이셨다.

“허억, 허억, 허억!” 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셨다. 나는 혹시라도 할머니께 문제라도 생길까 봐 걱정되어, 할머니 곁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하느님, 차가웠던 이 방이 따뜻해지듯이, 냉대만 받아오신 할머니의 마음을 따뜻한 사랑으로 덥혀주셔요. 그리고 그 며느리의 마음도 따뜻하게 변화시켜주셔요.” 늘 이렇게 기도드리며 정성껏 할머니를 보살폈다.

얼마쯤 지나니 적응하시며 점차 괜찮아져 잘 주무셨다. 그리고 처음 오셨을 때는 그전에 제대로 잡수신 게 없어 허기가 져서 그랬는지 밥도 두 그릇씩 잡수시고, 빵도 해드리면 아이들이 먹기도 전에 혼자 허겁지겁 많은 양을 거의 다 잡수셨다. 그래서 하느님께 온전히 소화 잘 시켜주시고 안전하게 지켜주시라고 기도하며 봉헌드렸다.

“하느님, 그동안 할머니가 음식을 거의 못 드시다가 저토록 허겁지겁 잡수시면 체하실 수도 있으니, 소화가 잘되도록 음식을 부드럽게 넘길 수 있게 변화시켜주셔요. 그리고 그동안 며느리로부터 상처받고 잡숫지 못해 허기졌던 것과 텅 빈 마음까지 다 채워주셔서 영혼 육신 모두 건강하게 해주셔요.” 하고 기도하고 드렸다.

오셔서 바로 밥 두 그릇을 잡수셨어도 하느님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아주 소화가 잘되어 나는 너무 기뻐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우리 집에 오신 후 얼마 동안 밥도 두 그릇씩 잡수시고도 빵도 하면 혼자 다 잡수시던 할머니는 차츰 우리 집에 적응이 되어, 밥도 한 그릇씩 잡수시고 빵도 하면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드셨다.

나는 먹은 셈 치고 물로 배를 채울망정 할머니가 음식도 잘 잡수시고 적응을 잘 해 가시니 나는 먹지 않아도 절로 배가 불러오는 듯 기쁨으로 가득 찼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말기 암이었던 나의 몸 상태로는 그런 일을 하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상태였다. 화장실도 재래식 화장실이기에 혼자 가시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그래서 화장실에 가실 때마다 화장실에 따라가 화장실 통에 빠지지 않도록 발을 디딜 수 있는 통 위의 판자 두 개 위에 잘 딛으시도록 잡아드리고, 옷 내려드리고 볼일 다 보시면 뒤도 닦아드리고 옷을 올려드리고 나면 그렇게 흐뭇했다. 그래서 몸이 아무리 아프고 고달플지라도, 내가 고통스러워 설사 죽는다고 해도, 사랑으로 대할 때 불가능이 없음을 체험하게 되었다.

내 사랑이 시외할머니의 병들은 영혼 육신을 회복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할머니의 쓰리고 아픈 상처에 새살이 돋아나게 하는 사랑의 신약이 되어드리고 싶었다. 나는 내 한 몸 가누기조차 힘이 들었지만, 할머니를 업어드리고 산책을 다녔다.

산책을 다닐 때는 “하느님, 제가 지금 할머니를 업고 걷고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이 발걸음 한 발 한 발 걷는 수만큼 할머니가 받은 상처 치유해주시고, 남은 한 생애 건강하게 해 주소서. 아멘!” 하고 기도했다. 나는 할머니를 업어 드릴 때마다 운동하는 모든 효과가 할머니께 흘러 들어가 걷기도 힘드신 할머니가 하루빨리 튼튼해지도록 해주시라고 하느님께 간절히 청했다.

그리고 할머니를 시원하게 주물러 드리면서는 “하느님, 상처로 얼룩진 할머니 영혼 육신의 굳어지고 뭉친 곳 모두 시원하게 풀어주시고 막힌 것 뚫어주셔서 건강하게 해주셔요.”하고 기도드렸다. 그리고 없는 형편이어도 할머니를 위해 최선을 다해 맛있는 것도 많이 해드렸다.

할머니를 위해 요리를 할 때마다 항상 “하느님, 이 음식을 사랑의 신약으로 변화시켜주시어 쇠약해진 할머니와 우리 모든 가족들 영혼 육신 건강하게 해주셔요.” 하면서 남편의 건강을 위해 연구하며 요리했던 것처럼 할머니의 건강 회복을 위해서도 그렇게 했다. 또 혹시라도 좋은 음식이 생기면 나는 먹은 셈 치고 모두 할머니께 드리니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사랑으로 보살펴 드리자, 우리 집에 오실 때는 완전히 쇠약하셔서 삐쩍 마르신 데다 꼬부라지셨던 할머니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금방 회복이 되셨다. 굽었던 등도 펴지고, 보기 좋게 살도 오르시고, 기운이 너무나 좋아지셔서 동네 이웃들이 깜짝 놀라 다들 말했다.

“100세도 훨씬 넘도록 거뜬히 사시겠다.”라며 한마디씩 할 정도였다. 95세에 우리 집에 오셔서 96세 되시는 동안 할머니는 점점 정정하고 건강해지셨다. 할머니가 적적하지 않도록 우리 아이들도 틈나는 대로 가서 재롱도 부리고 고사리손으로 안마도 해드리니, 할머니가 나에게 “진짜 이곳이 천국이구나.” 하시며 우리 아이들을 무척이나 예뻐하셨다.

나는 할머니를 너무너무 사랑했다. 가까운 사람 하나 없던 나에게 할머니는 친구처럼, 언니처럼, 엄마처럼 너무나 소중했다. “할머니, 무지무지 사랑해요. 저랑 여기서 오래오래 함께 살아요.”하고 말씀드리며, 할머니가 너무 예뻐 늘 뽀뽀하며 매일 업어드리고 사랑을 베풀었다.

그 아픈 사람이 어찌 업을 수 있었겠는가만은 할머니를 향한 지극한 내 사랑이 불가능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자주 눈물을 흘리시면서 “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야, 내 피붙이들도 죄 많은 나를 버렸건만, 너는 이렇게 극진한 사랑으로 나를 눈물 흘리게 하다니...” 하시며 내 손을 꼭 잡고 우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니에요, 할머니! 저는 부족할 뿐이어요. 잘 살아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뿐이어요.” 했더니 “아이고 안 그래도 이쁜 것이 이쁜 말만 한당께! 어찌 너 같은 것이 있어서 늘그막에 내가 이렇게 호강을 한다냐.” 하셨다. 할머니와 내가 지극한 사랑을 나누며 함께 부둥켜안고 울었더니, 아이들도 덩달아서 따라 울었다.

아무리 몸이 고달프고, 살림이 어려워 고생스러워도 진정한 사랑을 나누며 보내는 이 시간들은 나에게 지금까지 잊을 수 없도록 그리운, 크나큰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