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자리가 터져 배 속에서 거즈가 나오다니 

하루하루가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배가 무엇인가로 가득 차 꽉 막힌 것 같은 데다, 움직이려고만 하면 배가 당기고 뒤틀린 듯 너무 아파 고꾸라지곤 하였다. 셋째를 낳을 때 3개월 넘도록 극심한 진통을 하면서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걸어 다녔던 나였다.

그런데 이제는 배가 당겨 도저히 서지도 못 해 엉거주춤 걷다가 기어 다녀야만 했다. 아이들이 엄마의 이런 고통스러운 모습을 볼까 봐 아무리 힘들어도 미소를 잃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나는 건강한 셈 치고 눈물로 안간힘을 다하여 아이들을 돌보고 해야 할 일을 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누워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집에 수도도 없던 그 시절, 기다시피 하여 물을 길어다 써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조금도 움직이기 힘든 몸이었지만, 남편이 물을 길어와 준 셈 치고 바께스를 가지고 걷다가 기었다가 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길어와야 했다.

연탄 아궁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아기 우유 한 번만 타려 해도 아궁이에 불을 때서 알맞게 물을 데워야 했다. 건강한 셈 치고, 사랑받은 셈 치며 했지만, 때로는 너무나 힘겨워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밤이 되면 다른 아이들은 잠이 들어도 큰딸은 이런 엄마가 걱정스러웠는지 내가 안 자면 자신도 잠을 자지 않았다.

작은 손으로 최선을 다해 시중을 들며 주물러주고, 내가 아프면 어쩔 줄 몰라 하며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큰딸은 어렸지만 그래도 엄마의 고통을 잘 알고 마음 아파하고 있었다. 수술한 뒤 3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수술할 때 열 바늘을 꿰맸는데 며칠 전부터 위에서 세 번째 꿰맨 자리가 염증이 생긴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런데 유별나게 아프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곳을 자세히 보았더니 피부가 아주 엷어져 3cm 정도가 곪아 곧 터질 것만 같았다. 소독약이나 핀셋 같은 것도 없어 나는 할 수 없이 화장지로 그곳을 잡고 살짝 잡아당겨 보았다. ‘꿰맨 자리가 염증이 생겼으려니….’하고 단순히 생각하고 고름을 짜내기 위하여 잡아당긴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무엇인가가 잡혀 피고름과 함께 계속 쭈우욱 딸려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 기막힌 상황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꿈에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어~흑..!” 호흡이 가빠졌다. 떨리는 손과 함께 전신이 후들거려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정체불명의 이물질이 계속해서 빠져나왔다.

“윽!” 이제까지의 모든 고통이 이 한곳에 온통 집중된 듯 형언할 수 없는 통증이 엄습했다. 나는 덜덜 떨면서도 잡아당기는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눈물이 금세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하느님을 찾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오! 하느님,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것이 다 나오면 어떻게 될까요?’ 무섭지만 배 속으로 다시 넣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남편에게 연락이라도 된다면 당장 병원에라도 가보련만, 연락할 길이 전혀 없었다.(지금은 핸드폰이 다 있지만, 그때는 삐삐도 없을 때였음)

나는 속으로 계속 하느님만을 애타게 부르며 잡아당겨 보았다. 그 광경을 바로 옆에서 보고 있던 큰딸은 너무 놀라 숨넘어갈 듯 소리쳤다. “엄마, 그만해! 엄마, 안돼! 창자가 나오나 봐! 창자 나와!” 큰딸은 엉엉 울었다. ‘정말 창자인가? 그렇다면 결국 나에게 죽음이 다가온 것인가?’

심장이 더욱 세차게 요동쳤다. 모든 감각이 곤두서며 온 신경이 집중되었다. 그 순간이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난다. 참으로 처참하고도 충격적이던 그 순간의 모든 장면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 그 물질을 잡아 빼는데 속은 또 어쩌면 그리도 아픈지,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으으읍...!” 그러나 울고 있는 딸아이가 더 걱정할까 봐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계속 잡아당기는 내 손은 완전히 피고름으로 물들고, 비릿한 피비린내가 방안에 진동했다. 애써 참아왔던 눈물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와 딸과 함께 울고 말았다. 조심스레 빼내기를 한참 만에 피와 고름으로 범벅된 그 물체가 다 나오게 되었다. 눈물로 흐려진 시야에 내 배 속에서 빼낸 피고름 덩이의 물체가 들어왔다.

종이 위에 덩그러니 놓인 그것을 보니 어머니가 닭을 잡으실 때 보았던 닭 창자의 모습보다도 훨씬 굵은, 아니 동네에서 잡던 돼지 창자와 거의 흡사하게 보였다. 전신에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터져 나오는 눈물, 떨리는 가슴을 쉬이 진정시킬 수 없었다. 터진 수술 자리에서는 피고름이 줄줄 흘러내렸다.

‘오, 이것을 어찌해야 할까?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집에는 처치할 수 있는 도구가 아무것도 없어 그저 휴지로 닦고 또 닦아낼 수밖에 없었다. 나는 혹시라도 자고 있는 아이들이 깰까 봐, 또한 큰딸이 엄마 모습을 보고 더 겁을 먹을까 봐 두 손으로 입을 꼭 막은 채 입술을 깨물며 처절히 눈물을 삼켰다.

깊은 밤, 어느 곳 하나 의지할 데 없어 어린 딸과 주저앉아 함께 울고 있는 초라한 내 모습, 이 비참한 심경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럴 때 어머니라도 계셨으면?’ 하다가 ‘아니야, 어머니께서 이걸 보셨으면 얼마나 놀라고 마음 아프셨을까? 차라리 안 보신 것이 더 낫겠다.’

꼬불꼬불하게 꼬아진 그것은 피고름으로 뒤덮여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이것이 대체 무엇일까?’ 정말 창자가 다 나온 것일까 봐 두려워 더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눈 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참혹한 이 광경에 두려워 떨며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나는 절규했다. 연이어 일어난 지난날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죽음’ 뇌리에는 이 한 단어밖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죽으면 이제 내 어머니와 이 어린 것들은 어떻게 될까?’ 눈앞이 캄캄해졌다. 홀어머니와 단둘이 외롭게 살아왔기에, 나는 시부모님 모두 계시고 형제간 많은 곳으로 시집왔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만은 나처럼 외롭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도 많이 낳았는데, 나의 이런 생각이 너무나 어리석게만 느껴져 하느님을 부르며 한없이 울었다. 형제간이 많아도 엄마를 잃으면 아이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함께 해야 할 남편, 의지할 수 있는 내 남편은 항상 곁에 없었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병원도 못 가보고 방치되어 죽어가도, 내 곁에는 어린 자녀들뿐이었다.

처참히 죽어가는 아내의 상황을 함께 마주하며 걱정하고 헤쳐나가며 돌봐주지는 못 할지라도, 곁에서 걱정해주고 손잡아 주어야 할 가장 가까운 사람은 늘 내 옆에 없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이런 위급한 상황에도 남편이 늘 옆에서 함께 해주며 상처를 감싸주고 치료해 준 셈 치고 봉헌했다.

정신마저 혼미해져 갔다. 배 속에서는 꾸륵꾸륵 소리가 크게 나며 견디기가 힘들었다. 터져 나온 수술 자리가 시리고 너무너무 아팠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시리고 아픈 것은 나의 마음이었다. 남편의 빈자리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도 커다랗게 다가와 가슴 사무치게 아팠다.

‘내가 이대로 죽는다면 나 하나만을 보고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내며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는 어찌할 것인가? 그리고 아직 어린 내 아이들은 어찌 될까?’ 병원에 데려가 줄 사람도 없어 피고름이 줄줄 흘러내리는 배를 움켜잡고 어찌할 바를 몰라 어린 딸을 붙들고 얼마나 울었던가!

한 번 터져버린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이런저런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겹고 무서웠던 나는 단 한 순간도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혹여 이대로 잠이 든다면 그대로 눈을 뜨지도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의식을 잃고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주형이 아빠, 부디 오늘만큼은 제발 일찍 돌아와 줘요, 네?’

나는 방문을 바라보면서 그 문이 열리길 간절히 기다렸다. 그러나 굳게 닫힌 문은 동이 터오는 새벽까지도 열릴 줄을 몰랐다. 남편을 기다리는 그 시간은 왜 그리도 더디 가던지! 시간은 이대로 멈춰서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아픈 배를 움켜쥐고 피가 나오는 수술 자리를 휴지로 막았다.

휴지가 금세 피로 물들면 다시 갈며, 희미해져 가는 의식을 처절히 붙들고 애타게 하느님께 부르짖었다. ‘오, 하느님! 아직 어린 내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저만을 바라보고 20대에 과부 되어 수절해오신 우리 어머니를 위해서도 제발 이 한목숨 살려주세요!’ 하며 남편이 옆에서 상처를 싸매주고, 보살펴주고, 사랑으로 돌봐준 셈 치고 봉헌했다.

그런데도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퉁퉁 부어 눈조차 제대로 뜨기 어려웠지만 나는 한시도 눈을 감지 않았다. 그렇게 영원 같은 시간을 지나 어느덧 동이 트며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