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아이가 물에 떠내려가 잡으려다가

넷째 아이는 생각보다 순산했기에 몸이 가벼워져 기뻐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추운 겨울에 시어머님께 쌀을 사드리기 위하여 아이 낳은 지 17일 만에 8~9시간 정도를 리어카 끌고 다니다가, 겨우 회복되는가 싶던 건강이 다시 악화되고 말았다. 그때 너무 많은 출혈까지 하여 집에 오던 중 길에서 쓰러졌고, 간신히 깨어나 집에 도착해서 또 쓰러졌다.

그 뒤, 아무리 몸조리를 하고 치료를 해도 그 여독이 전혀 풀리지 않았고 하혈도 그치지 않았다. 다시 허약해진 몸에 계속해서 하혈까지 하니 온 힘이 다 빠졌고, 다리와 발은 터질 듯이 퉁퉁 부었다. 또 발바닥과 손바닥은 얼마나 뜨겁고 아픈지 가만히 디딜 수가 없어 계속 발을 동동 굴러야만 했다.

밤낮으로 계속되는 고통에 몇 년을 잠도 자지 못하고 밤새 다리를 두드리고 주무르며 울어야 했던 그 시간들! 그러나 남편에겐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전혀 아픈 티도 내지 않았다. 나는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홀로 몸부림할지라도, 남편이 “여보, 많이 힘들지?” 하고 다리를 주물러 준 셈 치며 언제나 미소와 사랑으로만 그이를 대했다.

이렇게 건강이 회복되지 않아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건강한 셈 치고,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하며 내게 주어진 모든 일을 다 해냈다. 그런 상황에서도 시어머님은 돈을 달라고 자주 오셨다. 우리는 시댁에 돈 대드리느라 돈이 없어 연탄아궁이 있는 집도 얻지 못하고, 5만 원짜리 전세를 살았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10만 원 또는 20만 원을 다섯째 시동생에게 보냈다며 돈을 달라고 자주 오시니, 너무너무 답답해 가슴이 터지는 듯했다. 아이 낳고 완전히 무리했기에 그 뒤로도 제대로 조리도 못 해서 산후풍까지 왔는데 그런 몸으로 홀로 네 아이를 돌보아야 하니 파마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몸이 아픈 데다 남편은 거의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으니 돈을 마련해 드릴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눈앞이 캄캄했다. 그렇지만 내가 그 시동생을 법관 만든다고 학비와 생활비를 대주겠다고 서울로 보냈으니 어쩌겠는가! 그래서 과도하게 요구하시는 돈을 눈물을 머금고 어떻게 해서든 다 채워드리다 보니 아이들까지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형편이 되었다.

친정어머니께서는 시동생 합격할 때까지 돕기 위해서 아무리 고되어도 농사일을 그만둘 수도 없으셨으니…! 그러기에 친정어머니의 도움도 받을 수도 없었다.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나는 아무리 몸이 아파도 누워있을 수도 없었다. 그때 우리 집에는 수도가 없었기에, 개천에 나가서 빨래를 해야 했다.

갓난아이를 집에 두고 가는데, 이제 막 걸어 다니기 시작한 호기심 많은 셋째 아이를 갓난아이 곁에 놔둘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데리고 개천에 나갔다. 힘겹게 개천가에 도착하니, 그곳에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서 빨래하고 있었다. 그 당시엔 일회용 기저귀나 생리대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있었다 해도, 시골 사람들은 값비싼 일회용 기저귀나 생리대를 쓸 수가 없었다.

누구는 아이 똥 기저귀를, 또 누구는 무명으로 만든 생리대를 빨고 있었다. 흐르는 물은 깨끗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빨고 난 물로 우리 아이들의 빨래를 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개천에서 헹군 빨래를 그냥 널었는데, 나는 항상 다시 한번 펌프 샘이나 우물물로 깨끗이 한 번 더 헹궈서 널었다. 그래서 나는 힘들지만 더 깨끗한 곳인 개천 가장 위쪽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물이 밑으로 흘러 떨어지는 폭포 같은 곳이어서 위쪽은 물살이 세고, 폭포가 떨어지는 아래쪽은 폭포수의 거센 물살에 파여서 수심이 많이 깊었다. 하지만 조심만 하면 빨래하기에는 물도 깨끗하고 너무 좋았다. 셋째 아이는 폭포가 떨어지는 쪽이 아닌 더 위쪽의 내 곁에 있게 했다. 나는 너무 힘이 없어 주저앉아서 빨래를 했다.

그때 내 옆에 있던 셋째가 저도 빨랫감을 가지고 엄마 흉내를 내다가 빨랫감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아이가 그걸 잡으려고 손을 뻗는 순간, 나는 바로 “안돼!”하고 외쳤다. 하지만 이미 아이는 세찬 물살에 휩쓸려 폭포를 향해 순식간에 그대로 떠내려갔다. “아가!!!” 나는 너무 놀라 반사적으로 떠내려가는 아이를 잡으려고 팔을 뻗었으나 잡지 못하였다.

아이는 내 눈앞에서 폭포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사색이 된 나는 아이가 잘못될까 봐, 앞뒤 가릴 새도 없이 그대로 폭포 아래로 뛰어내렸다. 당시 나는 내 몸 하나도 운신하기 힘들 정도로 힘이 없었지만,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모성적 본능이 앞섰던 것이다.

‘오, 하느님! 제발 우리 아이를 지켜주셔요!’ 나는 속으로 하느님을 부르며 차가운 폭포 속 급물살에 휩쓸려 떨어져 내려간 아이를 재빠르게 붙들었다. 위에서 거세게 떨어지는 폭포수의 급물살이 일으키는 회오리에 빨려 들어가려는 아이를 미친 듯이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악착같이 아이를 붙잡고 놓치지 않으려 사력을 다해 몸부림쳤다.

물을 그토록 무서워하는 내가, 금세라도 나를 넘어뜨리려고 때려대는 세찬 물살을 견디며 사투를 벌였다. ‘하느님, 제게 힘을 주셔요, 저를 도와주셔요!’ 그토록 몸부림하며 허우적거린 끝에, 간신히 아이를 건져서 겨우겨우 뭍으로 올려놓고 나도 올라왔다. 아이는 너무 놀라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얼른 아이를 품에 안고 “아가, 엄마가 못 잡아줘서 미안해. 괜찮아, 이제 괜찮아.”하고 달래며 아이를 지켜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아이를 살렸다는 안도감과 함께, 전신에 힘이 다 빠져 더 이상 빨래를 할 수 없었다. 그대로 기절할 것 같았지만, 건강한 셈 치고 벌려 놓은 물젖은 무거운 빨랫감을 대강 정리하였다.

빨랫감을 머리에 이고 무겁게 늘어진 아이를 업고 기진한 내 몸을 겨우 이끌고 집으로 간신히 돌아왔다.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오한이 들어 온몸이 떨려왔다. 앞이 가물거리며 몇 번이고 쓰러질 뻔했으나, 등에 업고 있는 아이가 다칠까 봐 죽을힘을 다해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한 나는 춥고 떨리고 배가 너무 아파, 아이를 내려놓자마자 쓰러지고 말았다. 전에 해남에서 바다에 빠져 죽을 뻔한 일이 있었기에 그 이후 물을 너무 무서워했다. 그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에 어머니께서 함께 죽자고 물에 집어넣으신 적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은 나에게 죽음과도 같은 괴롭고 아픈 기억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어떻게 주춤하지도 않고 그 거센 폭포 속으로 거침없이 풍덩! 뛰어들 수 있었는지 나 자신도 신기할 뿐이었다. 무섭다는 생각도 나지 않았고, 오직 아이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모성애이며,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위험할 때 그보다 더한 지극한 모성적 사랑으로 그렇게 구해주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