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604화. 미용 세미나에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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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용 세미나에 가서

1983년, 서울에서 있는 3박 4일의 미용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다. 숙식은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했는데, 타인들 빚 갚아주느라 이래저래 돈을 많이 썼기에 돈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아껴 써야 또 시어머니가 오셔서 돈 달라고 하시면 드릴 수 있기에 숙식 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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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생각 끝에 판사가 된 서울 시동생 집에 혹시 머물러도 되느냐고 남편에게 물어봐달라고 하였다. 고맙게도 그러라고 했다고 하여 우리 미용실 미용사를 모델로 데리고 함께 갔다. 어쨌든 간에 내가 고생해서 가르쳐 판사가 된 시동생의 집에서 신세 지게 되니 감개무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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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 시동생을 판사 만들기 위해, 수많은 우여곡절과 말기암까지 걸릴 정도로 고생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나를 단련시키기 위한 하느님의 사랑이었기에 이렇게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에 무척 감사했다. 목숨을 내어놓으면서까지 가르친 시동생이었지만, 처음부터 조금이라도 도움받을 생각으로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집에 가면서도 다른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저 머물 곳을 선뜻 제공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새벽부터 일찍 서울로 올라가 힘들게 빡빡한 첫날 일정을 마친 우리는 시동생 집에 저녁 식사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도착하게 되었다. 도착하여 초인종을 누르니 시동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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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별다른 말 없이 “형수님, 이쪽 방 쓰시면 돼요.”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후로 그를 볼 수 없었다. 그동안 그렇게도 내가 사랑하는 살붙이처럼 많이 사랑했기에 밥 한 끼 먹었는지 묻지도 않고 물 한 잔도 주지 않는 무심한 시동생의 모습에 미용사 보기에 민망하고 당혹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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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힘들게 버티며 판사를 만들기까지 굶기를 밥 먹듯이 하며, 시동생 가르치기 위해 임신한 상태에서 우량아인 세 살 된 큰아들을 업고 골동품 자개 일을 하다가 산부인과에서 4개월 된 아이를 강제 낙태 당해 그 시간부터 계속 피를 펑펑 쏟고, 7일 만에 대학병원에서 재수술하고, 8일 만에 죽었다가 하느님이 살려 주시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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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13일 만에 태가 나오는 등등 끝내는 말기암으로 죽어가면서도 시어머니가 요구하시는 많은 돈을 마련하느라 우리 어머니와 아이들까지 그 희생에 동참해오지 않았던가! 그 힘든 시간들을 시댁에 전혀 내색하거나 말한 적이 없기에 시동생이 우리 사정을 낱낱이 다 알 수는 없었다 하더라도, 고시 합격 후 인사치레라도 “형수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는 말 한마디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는 고마우나 표현을 잘 못해서 그러는가 보다.’ 하며 그저 시동생 부부의 사랑을 받은 셈 치고 봉헌했었기에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다. 그리고 진수성찬에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줘서 미용사와 함께 맛있게 먹고 배부른 셈치고 봉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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