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579화. 어떤 때 비참한 순간이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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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때 비참한 순간이라 하는가?

추석 이틀 전, 판사가 된 시동생이 고향인 광주에서 명절을 보내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나주 우리 집에 먼저 들러 배 한 상자를 선물로 주고 광주 시댁으로 갔다. 우리가 어차피 광주에 갈 것이니 그곳에서 선물을 줘도 될 것인데, 서울에서 광주 가는 것보다 더 먼 나주에 굳이 들러 우리를 먼저 신경 써준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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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동생이 판사가 되도록 뒷바라지를 다 해오며, 우리 아이들 먹이지 못하고, 친정어머니 모진 고생 다 하시고, 내가 7년간이나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었으나 그 어떤 것도 바란 적이 없었다. 오직 시동생이 잘되기만을 바라며 법조인으로서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들 편에서 좋은 일 하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동생으로부터 그동안 수고하셨다고, 또는 고맙다는 인사 한번 제대로 들어본 적 없었지만, 내가 하고 싶어 한 일이니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했기에 그저 기쁠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먼저 전혀 바라지 않은 뜻밖의 선물을 챙겨다 주니 얼마나 뿌듯하고 기뻤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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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동안 시아버님과 시어머니의 수많은 빚 갚고 시동생들 가르치느라 과일 한 상자를 사 먹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시누이 집에 갈 때마다 항상 과일이 상자째로 있어서 부럽기도 했다. 나는 어쩌다 한 번씩, 그것도 상품이 아닌 안 좋은 과일을 싸게 사서 일일이 도려내어 아이들에게 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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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면서도 싱싱하고 좋은 과일 많이 사 먹인 셈 치고, 항상 싱싱한 과일을 먹은 만큼 아이들 건강에 필요한 영양분으로 흡수해주시고 지켜주시라고 기도했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과일이 상자째 생기니, 우리 가족에게 신선하고 좋은 과일을 먹일 수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기뻤던지!
 
이 기쁜 선물을 남편과 아이들에게 먼저 자랑하고자 뜯지도 않고, 가족이 얼른 돌아오기를 바라며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쁜 마음으로 기다렸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남편이 퇴근하여 집안이 복작였다. “주형이 아빠, 얘들아, 다섯째 삼촌이 오늘 배를 한 상자 선물로 주셨단다.” 하고 한껏 부푼 마음으로 자랑하고 함께 먹으려고 상자를 열었는데, 배 한 개가 비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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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선물인데?’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려고 했으나 얼른, ‘아, 오다가 목말라서 한 개를 빼서 먹었나보구나. 참 잘했네.’ 생각했다. 그런데 배 하나를 꺼내 과도로 깎으려고 했더니 배가 물러 얼마나 말랑말랑한지 칼도 잘 들어가지 않고 깎을 수도 없었다. 너무 이상해서 맛을 봤더니 도저히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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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배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떻게 짐승에게도 먹이지 않을 이미 골아버린 이런 배를 우리더러 먹으라고 선물로 가져오다니?’ 만감이 교차했다. 나는 결코 보상받으려고 가르친 것이 아니라 정말 시동생들을 너무나 사랑해서 가르친 것이었다. 그렇기에 어떠한 선물 한 번 받지 않았어도 절대로 섭섭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받아본 선물이 다 골아버린 배라니... 순간 진실한 사랑의 마음으로 다섯째 시동생을 위해 희생했던 처절했던 지난 나날들이 스쳐 가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과 친정어머니까지 그 희생에 동원되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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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동생이 판사가 되기까지, 나 홀로 몇 번이나 죽어가면서도 뒷바라지하느라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나는 못 먹어도 먹은 셈 치고 못 입어도 입은 셈 쳤다. 아이들에게도 헌 털실 옷을 풀어 뜨개질해서 입히고, 돈이 없어 때론 아이들까지 굶길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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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소중해서 행여 코가 나오면 코가 헐기라도 할까 봐 코도 입으로 빨아내어 길렀던 내 소중한 아이들까지도 희생하게 해온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의 그 절절했던 아픈 마음…. 아이들은 언제나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엄마의 뜻에 기꺼이 따랐으나, 엄마로서의 미안하고 아픈 마음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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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나를 위해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고등학교 간 셈 치고, 그토록 하고 싶은 학업을 중단했다. 그런데 시부모님들은 큰아들인 우리 아이들 아빠만 고등학교에 보내고 둘째는 중학교, 그 외에는 초등학교만 보낸 것이 나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시동생들 공부시키느라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며 최선을 다했다.
 
다섯째 시동생 학비 대느라, 임신해서도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고 우량아 세 살배기 큰아들을 업고 쉬지 않고 일했다. 피가 비쳐 산부인과에 갔더니 멀쩡히 살아있는 아이가 죽었다며 강제 낙태 당하고, 일주일 만에 재수술하고, 그다음 날인 8일 만에 죽었다가 살아나기까지 했었다. 그러다 병까지 들어 죽어가며 정작 내 아이들은 돌보지 못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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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넷째 아이를 낳고서도 친정어머니와 함께 시댁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가! 그러다 몸이 너무나 약해진 상태에서 폭포로 된 개천에서 빨래하다가, 셋째 아이가 급류에 빠져 떠내려가 내가 뛰어들어 필사적으로 아이를 건졌다. 그러나 기진한 나는 바로 쓰러져 그때부터 사경을 헤매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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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전남대병원에 입원한 나는 급성 맹장염으로 전신 마취하여 수술해야 했기에 넷째는 엄마 젖을 먹을 중요한 시기에 젖도 못 먹였다. 수술 후에도 아이가 위험할 수 있다며 2~3개월 젖도 먹이면 안 된다고 해서 분유로 키우며 얼마나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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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하느님께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못 먹이고 채워주지 못한 모든 것들, 그 어떤 모자람도 없이 영혼 육신 가득 채워주시고, 건강 지켜주셔서 하느님께서 직접 길러주시라고 간절하게 간구할 따름이었다. 그뿐인가! 온갖 고통을 받으면서도 돈이 없어 병원에도 가보지 못한 채, 암이 전신으로 다 전이된 심각한 말기가 되어 결국 사형선고까지 받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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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병들어 죽어가면서도 시동생들 가르치고 시어머니 뒷바라지하며 돈 대드리기 위하여 단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었다. 먹지도, 쉬지도, 잠도 자지도 못한 채 노심초사 일하며 드디어 오늘날에 이르렀건만... 오직 시동생을 사법고시 합격시키기 위한 일념으로, 거센 풍파 앞에 꺼져가는 생명을 아슬아슬 연명하여 버티며 몇 번의 죽음의 경지를 지나오지 않았는가!
 
마침내 시동생이 판사가 되어 내 일보다도 더 기뻤다. 그런데 이렇게 업신여겨지고 무시당하는 것 같은 이런 사랑을 받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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