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께서 내가 모시던 성모님상에서 눈물을 흘리시며 발현하셨을 때 광주 로사 언니도 순례를 다녔다. 당시 나주 수강 아파트 302호에서는 살림을 하고, 301호에 우시는 성모님을 모시고 있을 때였다. 1987년 7월 28일 새벽 4시경 전화가 울렸는데 성남과 수원에서 순례자들이 대형버스 두 대로 온 것이었다.
순례자들은 성모님이 빨리 보고 싶어 급히 들어가느라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고 들어갔다. 나는 신발을 신발장에 하나하나 가지런히 넣으며 생활의 기도로 봉헌했다. ‘성모님이 보고 싶어 밤을 새워 온 순례자들 영혼의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잡아 주시고 영혼 육신 치유하여 주셔요.’ 하고 정리를 하다가 신발장 모서리에 튀어나온 날카로운 쇠붙이에 손을 크게 다쳤다.
5cm 정도의 길이로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이 파여서 ‘오늘 순례자들이 받을 은총이 크겠구나.’ 하며 사랑받은 셈 치고 기쁘게 봉헌했다. 상처에서는 피도 안 나오고 하얗더니 조금 후 많은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순례자들이 “아유 우리 때문에 어떡해, 빨리 병원으로 가서 꿰매야 되겠어요!”라고들 했다.
당시 나주에는 응급실도 없었고 광주까지는 갈 수가 없었다. 나는 가장 가까운 김옥석 외과로 달려가 잠긴 병원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준 이가 “이 시간에 무슨 일이오?” 했다. 그가 의사인 줄 알았던 나는 상처를 보여주며 “빨리 상처 좀 꿰매주실 수 있을까요?” 하자 그는 피 흘리는 내 손을 보더니 “우메. 어쩔까이!”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치실에서 바늘을 잡은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마취도 없이 서투른 솜씨로 듬성듬성 느슨하게 세 바늘을 꿰매니 너무나 아팠다. 나는 그 아픔을 오늘 오신 순례자들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봉헌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오상을 묵상하고자 두 바늘 더 꿰매달라 부탁했다. “예?” 눈이 휘둥그레져 나를 쳐다보던 그는 힘들게 두 바늘을 더 꿰매주었다.
그런데 새로 꿰맨 두 바늘은 팽팽하게 잡아당겨 꿰매서 먼저 꿰맨 피부와 차이가 나 들쭉날쭉했다. 그러자 그는 수술용 실을 늘려 피부를 다시 펴보려고 꿰맨 자리의 피부를 사정없이 잡아당기며 2시간을 실랑이했다. 제대로 되지도 않으면서 살만 더 찢어지고 너무 아팠다. 그러나 나는 눈을 감고 예수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고통을 묵상하며 봉헌했기에 시간이 그렇게 지난 줄도 몰랐다.
그가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고, 어째? 피가 한 되(1.8L)가 넘게 나왔네!” 하며 놀라는 소리에 눈을 뜨고 보니, 밑에 받쳐 둔 쇠로 된 용기에 피가 흘러넘쳐 바닥까지 흥건했다. ‘오 예수님, 제가 흘린 피 단 한 방울도 헛되지 않도록 오늘 온 순례자들에게 예수님의 성혈과 합하여 은총으로 흘러 들어가게 해주소서.’ 하고 봉헌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병원 잡일을 거들다 밤엔 병원을 지키는 잡부로서 그날 처음으로 상처를 꿰매본 사람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 사람에게 사랑받은 셈 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너무 어지러워 여러 번 넘어졌다. 간신히 302호로 들어간 나는 그대로 쓰러져 꼼짝도 못했다. 당시에는 봉사자나 도와주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나를 기다릴 순례자들 생각에 너무 안타까워 예수님께 청했다.
‘오, 사랑하는 나의 주님이시여! 주님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동참할 수 있는 이 은총이야말로 저의 감미로움이나이다. 그러나 제가 눕더라도 순례자들에게 주님과 성모님을 전하고 눕게 해주시어요. 먼 곳에서 밤새 달려온 당신의 자녀들이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일이 없게 해주시어요. 네? 저 지금 일어나기는커녕 도저히 꼼짝할 수 없으니 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보내주세요.’
조금만 내 피를 흘려도 너무나 아깝고 속상한데...ㅠㅠ
그렇게나 많은 피를 흘리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오로지 사랑으로 봉헌하시는 엄마!
엄마의 그 사랑 꼭 본받을래요.💘
너무나 부족하지만 작은 아픔이 올 때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봉헌하도록 새롭게 시작하겠습니다.
오, 사랑하는 나의 주님이시여! 주님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동참할 수 있는 이 은총이야말로 저의 감미로움이나이다.
아멘 아멘 아멘!
끊임없는 감사와 찬미! 엄마께서는 어떤 일을 당하시더라도
이렇게 감사하십니다. 저도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본받고 싶어요.
저라면 불평불만+원망의 마음을 품었을 것인데 엄마의 감사하는
마음을 닮아 더 아름답게 봉헌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멘!
엄마의 소중한 일화 무지무지 감사합니다💝
‘오, 사랑하는 나의 주님이시여! 주님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동참할 수 있는 이 은총이야말로 저의 감미로움이나이다. 그러나 제가 눕더라도 순례자들에게 주님과 성모님을 전하고 눕게 해주시어요. 먼 곳에서 밤새 달려온 당신의 자녀들이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일이 없게 해주시어요. 네? 저 지금 일어나기는커녕 도저히 꼼짝할 수 없으니 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보내주세요.’
제가 눕더라도 순례자들에게 주님과 성모님을
전하고 눕게 해주시어요. 먼 곳에서 밤새 달려온
당신의 자녀들이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일이 없게
해주시어요. 네? 저 지금 일어나기는커녕 도저히
꼼짝할 수 없으니 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보내주세요아멘!!!아멘!!!아멘!!! 감사합니다 !!!
오상을 묵상하기 위해 다섯 바늘 꿰매며 받은 사랑
성모님께서 내가 모시던 성모님상에서 눈물을 흘리시며 발현하셨을 때 광주 로사 언니도 순례를 다녔다. 당시 나주 수강 아파트 302호에서는 살림을 하고, 301호에 우시는 성모님을 모시고 있을 때였다. 1987년 7월 28일 새벽 4시경 전화가 울렸는데 성남과 수원에서 순례자들이 대형버스 두 대로 온 것이었다.
순례자들은 성모님이 빨리 보고 싶어 급히 들어가느라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고 들어갔다. 나는 신발을 신발장에 하나하나 가지런히 넣으며 생활의 기도로 봉헌했다. ‘성모님이 보고 싶어 밤을 새워 온 순례자들 영혼의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잡아 주시고 영혼 육신 치유하여 주셔요.’ 하고 정리를 하다가 신발장 모서리에 튀어나온 날카로운 쇠붙이에 손을 크게 다쳤다.
5cm 정도의 길이로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이 파여서 ‘오늘 순례자들이 받을 은총이 크겠구나.’ 하며 사랑받은 셈 치고 기쁘게 봉헌했다. 상처에서는 피도 안 나오고 하얗더니 조금 후 많은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순례자들이 “아유 우리 때문에 어떡해, 빨리 병원으로 가서 꿰매야 되겠어요!”라고들 했다.
당시 나주에는 응급실도 없었고 광주까지는 갈 수가 없었다. 나는 가장 가까운 김옥석 외과로 달려가 잠긴 병원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준 이가 “이 시간에 무슨 일이오?” 했다. 그가 의사인 줄 알았던 나는 상처를 보여주며 “빨리 상처 좀 꿰매주실 수 있을까요?” 하자 그는 피 흘리는 내 손을 보더니 “우메. 어쩔까이!”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치실에서 바늘을 잡은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마취도 없이 서투른 솜씨로 듬성듬성 느슨하게 세 바늘을 꿰매니 너무나 아팠다. 나는 그 아픔을 오늘 오신 순례자들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봉헌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오상을 묵상하고자 두 바늘 더 꿰매달라 부탁했다. “예?” 눈이 휘둥그레져 나를 쳐다보던 그는 힘들게 두 바늘을 더 꿰매주었다.
그런데 새로 꿰맨 두 바늘은 팽팽하게 잡아당겨 꿰매서 먼저 꿰맨 피부와 차이가 나 들쭉날쭉했다. 그러자 그는 수술용 실을 늘려 피부를 다시 펴보려고 꿰맨 자리의 피부를 사정없이 잡아당기며 2시간을 실랑이했다. 제대로 되지도 않으면서 살만 더 찢어지고 너무 아팠다. 그러나 나는 눈을 감고 예수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고통을 묵상하며 봉헌했기에 시간이 그렇게 지난 줄도 몰랐다.
그가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고, 어째? 피가 한 되(1.8L)가 넘게 나왔네!” 하며 놀라는 소리에 눈을 뜨고 보니, 밑에 받쳐 둔 쇠로 된 용기에 피가 흘러넘쳐 바닥까지 흥건했다. ‘오 예수님, 제가 흘린 피 단 한 방울도 헛되지 않도록 오늘 온 순례자들에게 예수님의 성혈과 합하여 은총으로 흘러 들어가게 해주소서.’ 하고 봉헌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병원 잡일을 거들다 밤엔 병원을 지키는 잡부로서 그날 처음으로 상처를 꿰매본 사람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 사람에게 사랑받은 셈 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너무 어지러워 여러 번 넘어졌다. 간신히 302호로 들어간 나는 그대로 쓰러져 꼼짝도 못했다. 당시에는 봉사자나 도와주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나를 기다릴 순례자들 생각에 너무 안타까워 예수님께 청했다.
‘오, 사랑하는 나의 주님이시여! 주님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동참할 수 있는 이 은총이야말로 저의 감미로움이나이다. 그러나 제가 눕더라도 순례자들에게 주님과 성모님을 전하고 눕게 해주시어요. 먼 곳에서 밤새 달려온 당신의 자녀들이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일이 없게 해주시어요. 네? 저 지금 일어나기는커녕 도저히 꼼짝할 수 없으니 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