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616화. 종갓집 대종손이라는 굴레를 아들에게는 물려주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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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sgp9062023-12-18 14:12
그러나 시어머니와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 보고만 있었다.
‘좋게 말할 수도 있는데 저렇게 아이를 때리다니...’
얼굴이 빨갛게 부푼 토마스는 너무 놀라고 아파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가엽게도 소리 내어 울지도 못했다. 원래 너무너무 의젓해서 잘 울지도 않는 아이였다.
나는 진정되지 않고 쿵쾅대는 마음을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하면서 주님께 청했다.
‘예수님! 부디 아들의 귀 고막만은 나가지 않도록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시고
아이가 상처받지 않게 해주세요.’ 하고 봉헌했다. 당장 달려가 얼른 아이를 꼬옥 안고
귀를 만져주고 싶었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아이를 안아줬다가는 시어머니의 무서운 불호령이 내려질 것이 자명했기에,
찢어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애처로이 기도만 했다.
‘오 주님! 시동생의 폭행을 아이가 사랑으로 받아들이도록 승화시켜주소서.
우리 아들 장손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 아니잖아요. 제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고자
시동생을 통해 마귀가 벌인 일일 테니 모든 것 제가 있음으로 일어난 일이고 제 탓입니다.
아니, 대종손인 남편과 결혼한 제 탓입니다.
부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제 아들 토마스가 상처받지 않도록 주님, 성모님께서
저 대신 친히 아이를 안아주시고 뺨을 어루만져 고막을 지켜주시며 치유하여 주소서.
그리고 아이가 받았을 고통을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고통에 합하여 제가 대신 봉헌하오니,
부디 치유되어 상처받지 않게 해주소서.’ 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다.
내가 작은 외숙으로부터 귀뺨을 맞아 고막이 나가 엄청 고생했기에 그랬다.
주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신 덕에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안정을 찾은 듯 보였다.
나야 그이를 선택했지만, 원치 않아도 ‘대종손’으로 태어난 내 큰아들 토마스! 나는 아들이
앞으로도 주어진 십자가를 잘 질 수 있도록 그 후로도 계속해서 아이를 위해 기도했다.
‘좋게 말할 수도 있는데 저렇게 아이를 때리다니...’
얼굴이 빨갛게 부푼 토마스는 너무 놀라고 아파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가엽게도 소리 내어 울지도 못했다. 원래 너무너무 의젓해서 잘 울지도 않는 아이였다.
나는 진정되지 않고 쿵쾅대는 마음을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하면서 주님께 청했다.
‘예수님! 부디 아들의 귀 고막만은 나가지 않도록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시고
아이가 상처받지 않게 해주세요.’ 하고 봉헌했다. 당장 달려가 얼른 아이를 꼬옥 안고
귀를 만져주고 싶었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아이를 안아줬다가는 시어머니의 무서운 불호령이 내려질 것이 자명했기에,
찢어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애처로이 기도만 했다.
‘오 주님! 시동생의 폭행을 아이가 사랑으로 받아들이도록 승화시켜주소서.
우리 아들 장손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 아니잖아요. 제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고자
시동생을 통해 마귀가 벌인 일일 테니 모든 것 제가 있음으로 일어난 일이고 제 탓입니다.
아니, 대종손인 남편과 결혼한 제 탓입니다.
부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제 아들 토마스가 상처받지 않도록 주님, 성모님께서
저 대신 친히 아이를 안아주시고 뺨을 어루만져 고막을 지켜주시며 치유하여 주소서.
그리고 아이가 받았을 고통을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고통에 합하여 제가 대신 봉헌하오니,
부디 치유되어 상처받지 않게 해주소서.’ 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다.
내가 작은 외숙으로부터 귀뺨을 맞아 고막이 나가 엄청 고생했기에 그랬다.
주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신 덕에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안정을 찾은 듯 보였다.
나야 그이를 선택했지만, 원치 않아도 ‘대종손’으로 태어난 내 큰아들 토마스! 나는 아들이
앞으로도 주어진 십자가를 잘 질 수 있도록 그 후로도 계속해서 아이를 위해 기도했다.
dmsgp9062023-12-18 14:12
종갓집 대종손이라는 굴레를 아들에게는 물려주기 싫었다.
내가 그이를 남편감으로 선택했을 때, 남들은 남편이 종갓집의 대종손이기에 결혼하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걱정하며 싸늘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감수하고 그이를 선택했다. 그리고 결혼 후 장손 며느리라는 미명 하에 모든 짐을 혼자 다 짊어져야 했다.
장손인 남편의 도움은 전무했어도 나는 ‘모든 것 남편이 도와준 셈 치고’ 봉헌하며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기쁘게 했다. 제사, 가족 행사, 시부모님 두 분의 빚보증에 따른 원리금 상환과 시어머니가 수시로 요구하시는 감당키 어려운 많은 돈도 해드려야 했다. 게다가 세 시동생들의 대학 교육 및 뒷바라지도 모자라 사촌 시누이의 빚까지 갚는 등등….
나는 이렇게 모든 것을 시댁 식구 사랑받은 셈치고 봉헌하며 장손 며느리로서 최선을 다했다. 말기 암으로 죽어가면서도 시댁을 위해서라면 내 한 몸 아끼지 않았고 단 한 번도 짜증 낸 적 없었다. 몸은 힘들지라도 그저 사랑 실천했다는 것으로, 또 사랑을 준 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나 내가 낳은 아들에게만큼은 종손이니 장손이니 그런 굴레를 씌워주고 싶지 않았다.
그 무게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그것만은 결코 물려주기 싫었던 것이다. 우리는 광주 시댁에서 제사를 지낼 때마다 종갓집인지라 시골에서 할머니와 시고모님들도 오시고 친척들도 많이 오셨다. 그런데 광주 시댁은 너무 좁아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제사는 모든 가족이 같이 지내고 제사가 끝나면 내 아이들은 큰 시누이 집에 가서 잠을 잤다.
어느 날, 제사가 끝나고 우리 아이들이 큰고모 집으로 가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한 삼촌이 “주형아, 이리 와봐.” 하여 어린 토마스가 “예, 삼촌.”하고 다가갔다. 그런데 그는 다짜고짜 아이 멱살을 잡고 사정없이 따귀를 내리치며 “야, 이 자식아! 너는 이 집 장손인데 어디를 가려고 해? 너는 이 집 대종손이고 장손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나는 생각하지도 못한 삼촌의 행동에 얼어버렸다. 너무 놀라 숨이 턱 막혀 버리는듯했다.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인 큰형님의 큰아들이고, 엄마인 내가 보고 있는 앞에서 그렇게 아이를 때리니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토록 물려주고 싶지 않던 굴레인 ‘장손’이라는 이유로 어린아이가 저렇게 삼촌에게 얻어맞아야 하다니! 엄마인 내 마음은 참담했다.
그러나 시어머니와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 보고만 있었다. ‘좋게 말할 수도 있는데 저렇게 아이를 때리다니...’ 얼굴이 빨갛게 부푼 토마스는 너무 놀라고 아파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가엽게도 소리 내어 울지도 못했다. 원래 너무너무 의젓해서 잘 울지도 않는 아이였다. 나는 진정되지 않고 쿵쾅대는 마음을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하면서 주님께 청했다.
‘예수님! 부디 아들의 귀 고막만은 나가지 않도록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시고 아이가 상처받지 않게 해주세요.’ 하고 봉헌했다. 당장 달려가 얼른 아이를 꼬옥 안고 귀를 만져주고 싶었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아이를 안아줬다가는 시어머니의 무서운 불호령이 내려질 것이 자명했기에, 찢어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애처로이 기도만 했다.
‘오 주님! 시동생의 폭행을 아이가 사랑으로 받아들이도록 승화시켜주소서. 우리 아들 장손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 아니잖아요. 제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고자 시동생을 통해 마귀가 벌인 일일 테니 모든 것 제가 있음으로 일어난 일이고 제 탓입니다. 아니, 대종손인 남편과 결혼한 제 탓입니다.
부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제 아들 토마스가 상처받지 않도록 주님, 성모님께서 저 대신 친히 아이를 안아주시고 뺨을 어루만져 고막을 지켜주시며 치유하여 주소서. 그리고 아이가 받았을 고통을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고통에 합하여 제가 대신 봉헌하오니, 부디 치유되어 상처받지 않게 해주소서.’ 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다.
내가 작은 외숙으로부터 귀뺨을 맞아 고막이 나가 엄청 고생했기에 그랬다. 주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신 덕에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안정을 찾은 듯 보였다. 나야 그이를 선택했지만, 원치 않아도 ‘대종손’으로 태어난 내 큰아들 토마스! 나는 아들이 앞으로도 주어진 십자가를 잘 질 수 있도록 그 후로도 계속해서 아이를 위해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