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607화. 어렸을 때 나간 양동생이 갑자기 찾아와 돈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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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sgp9062023-12-07 09:50
본가 사람들이 “아이들 이렇게 결혼시키느라고 수고했다.”
또는 흥선이가 “어머니, 이렇게 결혼식을 거창하게 치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잘살게요.”
그리고 “누나, 수고하셨어요. 돈도 많이 드셨을 텐데,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은 셈치고 기쁘게 봉헌했었다.
또, 며느리 될 아가씨가 우리 어머니께 아주 좋은 선물 해준 셈치고,
그 대신 내가 더 잘 효도해드려서 꼭 기쁨을 드리리라 다짐했다.
그 후로는 양동생과 별로 왕래가 없었다. 그러나 서울에 오게 되거든 한번 오라고 했기에,
시동생 집에는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어서 큰맘 먹고 찾아가게 된 것이다.
또는 흥선이가 “어머니, 이렇게 결혼식을 거창하게 치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잘살게요.”
그리고 “누나, 수고하셨어요. 돈도 많이 드셨을 텐데,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은 셈치고 기쁘게 봉헌했었다.
또, 며느리 될 아가씨가 우리 어머니께 아주 좋은 선물 해준 셈치고,
그 대신 내가 더 잘 효도해드려서 꼭 기쁨을 드리리라 다짐했다.
그 후로는 양동생과 별로 왕래가 없었다. 그러나 서울에 오게 되거든 한번 오라고 했기에,
시동생 집에는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어서 큰맘 먹고 찾아가게 된 것이다.
dmsgp9062023-12-07 09:50
그 양동생은 얼른 돈을 받고서 “누나, 나 갈게.” 하더니 쏜살같이 사라졌다.
돈만 가지고 재빠르게 떠나가는 흥선이의 모습을 보며 아기를 뗀다는 일을 묵인한 것 같아
너무나 큰 죄책감이 밀려왔다. 나는 사랑스러운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바라보면서
틈날 때마다 아버지께 간절히 부르짖었다.
“아버지, 아버지의 양아들 흥선이가 임신을 시켰다는데 아이를 떼고 헤어진다고 해요.
배 속 아이를 떼는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고 어지간하면 헤어지지 않고 아가 낳고 잘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러니 아버지가 제발 도와주셔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흥선이가 다시 불쑥 나타났다.
“누나.” “흥선아! 어찌 되었니?” “누나, 나 결혼하려고.” “뭐? 여자는 어떤 여자니?” 했더니
“그때 그 여자야.”라고 했다. 그래서 “아기는?” 했더니 “아기는 안 지웠어. 누나가 준 돈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가서 방을 얻어 같이 살았어. 누나, 그때 준 돈 고마웠어.”
나는 흥선이가 아기를 지키고 가정을 꾸린다는 소식에 눈물이 차올랐다.
아기를 지킬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도와주심이 분명하다고 생각되어 너무너무 감사하고 기뻤다.
돈만 가지고 재빠르게 떠나가는 흥선이의 모습을 보며 아기를 뗀다는 일을 묵인한 것 같아
너무나 큰 죄책감이 밀려왔다. 나는 사랑스러운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바라보면서
틈날 때마다 아버지께 간절히 부르짖었다.
“아버지, 아버지의 양아들 흥선이가 임신을 시켰다는데 아이를 떼고 헤어진다고 해요.
배 속 아이를 떼는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고 어지간하면 헤어지지 않고 아가 낳고 잘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러니 아버지가 제발 도와주셔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흥선이가 다시 불쑥 나타났다.
“누나.” “흥선아! 어찌 되었니?” “누나, 나 결혼하려고.” “뭐? 여자는 어떤 여자니?” 했더니
“그때 그 여자야.”라고 했다. 그래서 “아기는?” 했더니 “아기는 안 지웠어. 누나가 준 돈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가서 방을 얻어 같이 살았어. 누나, 그때 준 돈 고마웠어.”
나는 흥선이가 아기를 지키고 가정을 꾸린다는 소식에 눈물이 차올랐다.
아기를 지킬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도와주심이 분명하다고 생각되어 너무너무 감사하고 기뻤다.
어렸을 때 나간 양동생이 갑자기 찾아와 돈을 달라고
양동생 흥선이네로 가는 길, 그도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 조금 긴장이 됐다. 어릴 적, 우리 집에 양자로 들어온 흥선이는 우리 집에서 중학생 때, “나중에 내가 커서 자가용 타고 누나랑 어머니랑 태우러 올게.” 하고 홀연히 떠나서는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둘째 아이 낳은 뒤 갑자기 찾아왔다.
“누나, 나 돈 좀 줘.” 했다. 어린 시절 이후 몇 년 만에 본 흥선이는 어느덧 청년이 되어있었다. 내 결혼식 때도 흥선이는 오지 않았다. 인사도 잊은 흥선이가 대뜸 돈 달란 소리부터 하는데도 나는 그 애가 너무너무 반가워서 “흥선아! 여긴 어떻게 알고 왔니! 너무 보고 싶었어. 어떻게 살았니?” 하고 물었다.
그런데 흥선이는 내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깜짝 놀랄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누나, 나 지금 사귀는 아가씨가 임신을 해버렸어. 애기를 떼야 하는데 돈이 하나도 없어.” 하는 것이 아닌가! “뭐? 어떤 아가씬데?” “이발소에 면도사야.” “면도사?” “응.” “근데, 그게 무슨 말이니. 어떻게 이미 생긴 아이를 떼니?”
“누나, 그게 문제가 아냐. 아무튼 그 여자하고 헤어져야 하니 얼른 돈 좀 줘.” 그런 일로 다급해 보이는 흥선이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이발소 면도사 아가씨라니! 다는 아니지만 그런 아가씨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당시의 나에겐 면도사 아가씨의 아기를 뗀다는 흥선이의 말은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날도 시어머니가 오셔서 돈을 다 가져가셨기에 내 수중에 돈이 단 한 푼도 없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재촉하는 흥선이의 성화에 여기저기서 돌아다니며 몇 집에서 돈을 구해다가 58.000원을 손에 쥐여주었다. 그 당시 공무원인 남편 월급이 만 원이 조금 넘을 때였으니, 매우 큰 돈이었다.
그 양동생은 얼른 돈을 받고서 “누나, 나 갈게.” 하더니 쏜살같이 사라졌다. 돈만 가지고 재빠르게 떠나가는 흥선이의 모습을 보며 아기를 뗀다는 일을 묵인한 것 같아 너무나 큰 죄책감이 밀려왔다. 나는 사랑스러운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바라보면서 틈날 때마다 아버지께 간절히 부르짖었다.
“아버지, 아버지의 양아들 흥선이가 임신을 시켰다는데 아이를 떼고 헤어진다고 해요. 배 속 아이를 떼는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고 어지간하면 헤어지지 않고 아가 낳고 잘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러니 아버지가 제발 도와주셔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흥선이가 다시 불쑥 나타났다.
“누나.” “흥선아! 어찌 되었니?” “누나, 나 결혼하려고.” “뭐? 여자는 어떤 여자니?” 했더니 “그때 그 여자야.”라고 했다. 그래서 “아기는?” 했더니 “아기는 안 지웠어. 누나가 준 돈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가서 방을 얻어 같이 살았어. 누나, 그때 준 돈 고마웠어.” 나는 흥선이가 아기를 지키고 가정을 꾸린다는 소식에 눈물이 차올랐다.
아기를 지킬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도와주심이 분명하다고 생각되어 너무너무 감사하고 기뻤다. “그래, 너무 잘했다. 이제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아라.” 어머니와 타협해서 고향 시골에서 흥선이의 결혼식을 올려줬다. 모든 폐물과 시집에서 해야 할 것은 우리가 다 해줬다.
흥선이 본가에서도 결혼식에 부모, 형제들이 다 참석했는데 축의금 하나도 내지 않았다. 그러면서 본가 가족들이 “뭐가 어떻느니, 뭐는 어떠하니...” 하면서 투덜대더라는 말들을 듣고 여러모로 씁쓸했다. 왜냐면 양아들을 많은 돈을 들여 결혼시켰는데도, 며느리 될 아가씨는 나름 그래도 잘 사는 집 아가씨였지만 시어머니인 우리 어머니께 작은 선물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가 사람들이 “아이들 이렇게 결혼시키느라고 수고했다.” 또는 흥선이가 “어머니, 이렇게 결혼식을 거창하게 치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잘살게요.” 그리고 “누나, 수고하셨어요. 돈도 많이 드셨을 텐데,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은 셈치고 기쁘게 봉헌했었다.
또, 며느리 될 아가씨가 우리 어머니께 아주 좋은 선물 해준 셈치고, 그 대신 내가 더 잘 효도해드려서 꼭 기쁨을 드리리라 다짐했다. 그 후로는 양동생과 별로 왕래가 없었다. 그러나 서울에 오게 되거든 한번 오라고 했기에, 시동생 집에는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어서 큰맘 먹고 찾아가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