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860화. 세 곳의 병원과 두 곳의 종합병원까지 입원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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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곳의 병원과 두 곳의 종합병원까지 입원했건만...

주님께서 한동안 나에게 세상 사람들의 영혼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주셨고, 그로 인해 주님의 성심이 얼마나 고통스러우신지를 보여주셨다. 주님의 가슴이 열리고 심장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면서 처절하게 피를 흘리시는 모습, 성심에서 피를 덩어리째 흘리시는 모습 그리고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도 남김없이 쏟아 주시는 등 여러 모습을 보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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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때부터 내가 고통을 받음으로 단 한 영혼이라도 회개할 수 있고, 주님께 위로가 되어 그 찢긴 성심을 기워드리는 사랑의 재봉사가 될 수만 있다면 그 어떠한 고통도 마다하지 않겠노라며 주님께 고통을 달라고 청했다. 주님께서는 나의 청을 들어주시어 82년도 사순절부터 고통을 받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고통은 더욱더 가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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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날이 늘어가는 세상의 죄악으로 인해 지금도 가혹한 십자가에 짓눌리고 계실 예수님을 생각하면, 고통을 봉헌할 수 있음에 감사하기만 했다. 주님의 사랑받은 셈치고 봉헌했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미용실에 찾아오는 손님을 거의 받지 못할 정도로 고통이 수반되었기에 나는 자주 자리에 눕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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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지켜보던 가족들이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하루는 병원에 가자고 하였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고통이기에 나는 병원에 갈 일이 전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애덕을 거스르지 않기 위하여 가족들이 하자는 대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가족들의 손에 이끌려 광주 백운동 한방병원에서 일주일간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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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가족들은 나를 다시 개인병원 내과에 입원시켰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후 준종합병원인 남광 병원에 입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가족들이 너무나 걱정하기에 순명하는 마음으로 또다시 더 큰 병원인 광주 기독병원에서 두 달간 입원하였으나 그 어떤 치료를 받아도 차도가 없이 고통이 더욱더 심해질 뿐이었다. 나날이 악화하는 나의 상태에 가족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가족들은 내게 전남대학교병원에 입원하자고 했다. 상태가 점점 위중해졌기에 나는 오히려 병원에 입, 퇴원하는 것이 더 힘들고 고통이 가중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치료받아서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토록 걱정하는 어머니와 장부, 네 자녀들을 위한 애덕 실천으로 주님과 성모님께 순명하는 셈치고 5번째로 전대병원에 입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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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병원에서도 너무 심각한 상태였기에 산소호흡기를 입에 씌웠는데도 가슴이 차오르고 숨쉬기가 힘들었다. 소변 한 방울이 나오려고 하면 온 방을 기어 다녀야 했고, 아랫도리가 다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소변조차도 볼 수가 없으니 결국 소변줄(카테터)을 꽂은 채 지냈다.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나를 보면서 혀를 쯧쯧 차면서 “신장까지 완전히 망가져서...”라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물도 잘 못 마시고 전혀 먹은 것이 없어도 계속 토하고, 링거로 연명하고 있었는데도 계속해서 심한 설사까지 하고 나중에는 피곱(피가 섞인 고름)까지 계속 나왔다. 배가 너무 아파 몇 시간 동안 대변을 보기 위해 문고리를 잡고 안간힘을 쓰는데 항문이 떨어져 나가는 듯했다. 그러고도 피곱 딱 한 방울이 나오는 것이 다였으나 나는 그런 고통들을 생활의 기도로 기쁘게 봉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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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예수님, 저는 지금 비록 피곱 한 방울이 나왔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수많은 죄악을 다 내보내 주소서.” 하고 나의 고통을 온전히 봉헌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의 상황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너무너무 고통스러웠다. 아이 넷을 낳았어도 소리 한번 질러 본 적이 없고 말기암에 걸려서도 96세 되신 시외할머니를 업어드리며 모시던 나였는데 이 당시의 고통은 얼마나 심한지 이렇게 아픈 적은 처음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나의 고통이 주님과 성모님의 찢긴 성심에 위로가 되올 수만 있다면 죽음조차 두려울 것이 없었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희망이 있는 고통이니 감사하기만 했다. 그런 상황에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도 사람들이 오지 않는 새벽과 저녁이면 어김없이 촛불 두 개를 켜 놓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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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을 다 동원해서 나를 치료해 보려고 무진 애를 써 보았지만 나날이 심해져만 갔다. 도저히 안 되었기에 나중에는 대학병원에서도 포기하고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퇴원하십시오.” 하여 우리 가족들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나를 퇴원시켰다. 나는 ‘아, 이제 임종 준비를 해야 되겠구나.’ 하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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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생을 어머니의 가슴에 무덤이 되지 않고자 얼마나 필사적으로 노력해왔던가! 그러나 처음 임종을 준비할 때와는 나의 마음이 전혀 달랐다. 이제는 주님께서 나의 삶의 주관자가 되어주셨으니, 주님께서 주신 목숨 주님께서 거둬가신다면 어찌 기꺼이 바치지 않으리오! 미약한 이 한목숨 한 떨기 이름 없는 들꽃으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주 대전에 바쳐지리라.
 
나의 모든 것은 주님 안에서만 이루어질 뿐이니, 죽음마저 나의 주님께 영광이 되올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 아쉬운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이생을 마친다고 하여도 나의 주님께서 어머니와 가족들을 돌봐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모든 것을 기쁘게 주님께 봉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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