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학부모 참관 수업이 열렸다.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딸아이의 생애 첫 참관 수업을 빠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건강한 셈치며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학교로 향했다. 그런데 수업이 시작되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선생님이 묻는 말에 우리 딸 혼자 척척 대답을 다 했다.
그리고 자신 있게 손을 들고 나가 칠판의 빈 곳에 글씨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써 내려가는 것이었다. 시어머니께 계속 돈을 보태드리느라 형편이 어려워 딸아이는 유치원도 보내지 못했다. 게다가 엄마인 내가 늘 앓아누워 있다가 보니 친정어머니 손에서 자란 시간이 더 많았다. 집에 있을 때조차 내가 계속 임신과 유산을 반복하며 아픈 상태였다.
그래서 공부를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못하고 그저 짬짬이 글씨 몇 자 가르쳐준 것이 전부였다. 그런 아이가 일곱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학교 수업을 완벽히 소화해 내다니, 참으로 대견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당시에는 일곱 살 입학이 무척 까다로웠다. 3월 이전 출생자만 조기 입학이 허용되었고, 3월 이후 생일인 아이들은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는 딸아이를 일부러 일곱 살에 입학시켰다. 과거 작은외갓집에서 나에게 집안일을 시키느라 정작 나는 아홉 살이 되어서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 그로 인해 겪었던 서러움과 힘겨움을 내 자식에게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어린 나이에 보낸 것이 걱정되어 나는 선생님을 찾아가 세심하게 상담을 나누기도 했다.
“혹시라도 아이가 진도를 잘 따라가지 못하거나 힘들어하면 1년 뒤에 다시 입학시키겠습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말씀하셨다. “아이고, 어머님! 따님 유형이는 지금 반에서 1등이에요. 제가 오랜 세월 교직에 있었지만, 이렇게 아이를 깊이 아끼고 세심하게 배려해 주시는 학부형은 제 생전 처음 봅니다.”
선생님은 오히려 나를 칭찬하시며 무척이나 기뻐하고 놀라워하셨다. 참관 수업 내내 거침없이 자기 몫을 해내는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하느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렸다. 비록 엄마로서 부족함이 많았으나, 주님께서 이 아이를 지혜롭고 꿋꿋하게 키워주셨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곱 살 큰딸의 입학, 그리고 참관 수업의 감동
큰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학부모 참관 수업이 열렸다.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딸아이의 생애 첫 참관 수업을 빠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건강한 셈치며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학교로 향했다. 그런데 수업이 시작되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선생님이 묻는 말에 우리 딸 혼자 척척 대답을 다 했다.
그리고 자신 있게 손을 들고 나가 칠판의 빈 곳에 글씨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써 내려가는 것이었다. 시어머니께 계속 돈을 보태드리느라 형편이 어려워 딸아이는 유치원도 보내지 못했다. 게다가 엄마인 내가 늘 앓아누워 있다가 보니 친정어머니 손에서 자란 시간이 더 많았다. 집에 있을 때조차 내가 계속 임신과 유산을 반복하며 아픈 상태였다.
그래서 공부를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못하고 그저 짬짬이 글씨 몇 자 가르쳐준 것이 전부였다. 그런 아이가 일곱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학교 수업을 완벽히 소화해 내다니, 참으로 대견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당시에는 일곱 살 입학이 무척 까다로웠다. 3월 이전 출생자만 조기 입학이 허용되었고, 3월 이후 생일인 아이들은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는 딸아이를 일부러 일곱 살에 입학시켰다. 과거 작은외갓집에서 나에게 집안일을 시키느라 정작 나는 아홉 살이 되어서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 그로 인해 겪었던 서러움과 힘겨움을 내 자식에게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어린 나이에 보낸 것이 걱정되어 나는 선생님을 찾아가 세심하게 상담을 나누기도 했다.
“혹시라도 아이가 진도를 잘 따라가지 못하거나 힘들어하면 1년 뒤에 다시 입학시키겠습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말씀하셨다. “아이고, 어머님! 따님 유형이는 지금 반에서 1등이에요. 제가 오랜 세월 교직에 있었지만, 이렇게 아이를 깊이 아끼고 세심하게 배려해 주시는 학부형은 제 생전 처음 봅니다.”
선생님은 오히려 나를 칭찬하시며 무척이나 기뻐하고 놀라워하셨다. 참관 수업 내내 거침없이 자기 몫을 해내는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하느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렸다. 비록 엄마로서 부족함이 많았으나, 주님께서 이 아이를 지혜롭고 꿋꿋하게 키워주셨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