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389화. 사이비 종교의 유혹과 가혹했던 뉴스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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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종교의 유혹과 가혹했던 뉴스 한 장면

그동안 나는 임신기간에도, 또한 출산 후에도, 그리고 자연 유산된 후 5개월 동안 하혈하면서도, 병원 한 번 가지 못했다. 어렵게 다시 가진 아이를 지키고자 갔던 산부인과에서, 오히려 강제 낙태를 당했다. 그 후 죽었다 살아났을 때조차 바로 퇴원시켜 제대로 된 치료 한 번 받지 못했다.
 
오랜 세월 거의 먹지 못한 탓에 나의 몸은 살아있는 것이 기적일 정도로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임신하고도 칼슘 섭취는커녕 식사도 제대로 못했으니, 첫째를 낳은 뒤부터 지금까지 치아가 계속 아팠다. 하지만, 치과는 가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가 그토록 아프고 시려도 시어머니께 돈을 해드려야 했기에 진통제 한 알 사 먹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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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통을 아프지 않은 셈치고 봉헌하면서, 사카린이 치아에 좋다는 말을 듣고 듣지도 않지만 그것만 사용해 왔었다. 하지만 이제는 도저히 더는 견디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치과에 갈 돈은 없었기에 혹시라도 적은 비용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이 있는지 간절히 수소문해 보았다. 영산포에 사사로 치료하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듣고 어머니의 부축을 받아 그곳을 찾아갔다.
 
그곳은 제대로 된 장비 하나 갖춰지지 않은 허름한 곳이었고, 돈 없는 시골 할머니들이 모여 있었다. 힘겹게 내 차례를 기다리는데, 의사의 부인이라는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녀는 내가 몹시 아프면서도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는 중환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은밀한 비밀이라며 조용히 속삭였다.
 
우리 아이도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데, 아주 좋은 곳이 있으니 함께 가보자고 했다. 무심결에 그 딸아이를 보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나 예쁘고 귀여워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런데 조금 뒤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아이가 제대로 서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마음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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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어쩜 좋아. 저렇게 예쁜 아이가 저런 모습이라니….’ 내가 아픈 것보다 그 아이가 불쌍해 견딜 수 없이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아이에 대한 연민으로 마음이 움직인 나는 무엇에 이끌리듯 물었다. “그곳이 어디예요?” 그녀는 “지리산에 있는데, 그곳에 가면 모든 병이 다 나을 수 있어. 돈은 하나도 들지 않으니 빈손으로 가도 돼.”라고 답했다.
 
그녀는 아무도 몰라야 하니 절대로 비밀을 지켜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병이 다 나을 수 있다니, 드디어 내게도 희망이 찾아오는 것일까?’ 나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오신 어머니 가슴에 딸의 무덤을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잘 살아보려 얼마나 노력해 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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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병원은 못 가도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침값을 받지 않는 영산포 병원과 용하다는 한의원을 다니며 침을 맞아 보았지만 도무지 차도가 없었다. 백약이 무효하던 내게 이제 살길이 생겼다는 생각에 나는 그녀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무엇보다 돈이 들지 않는다니, 형편이 어려운 내게 그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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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희망에 한껏 들뜬 나는 급히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 말을 들은 남편은 너무 놀라 나를 붙들고 만류했다. “여보, 정신 차려. 그런 곳은 사이비 종교야, 절대로 가면 안 돼!” 하지만 병고로 신음하던 나는 그 제안에 모든 희망을 걸었기에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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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당신이 나를 버린대도 나는 가야 해요. 나를 위해 한 평생을 바쳐 오신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나는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던 나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병이 낫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곳에 가면 모든 병이 나을 수 있다는데 무엇인들 못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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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음 날 일찍 떠나기로 작정하고 짐을 꾸려 놓은 뒤, 희망에 부풀어 누워 있었다. 아내의 병을 직접 고쳐줄 수도 없는 남편은 뜻을 굽히지 않는 나를 말리지 못해 그저 애만 태울 뿐이었다. 연거푸 한숨을 내쉬며 측은하게 나를 바라보는 남편이 안쓰러워, 아이들 때문에 얻어온 고물 텔레비전을 켜주며 말했다.
 
“당신, 텔레비전이라도 좀 보세요.” 그런데 TV를 켜자마자 남편이 다급하게 외쳤다. “여보, 여보! 저것 좀 봐!” 남편의 목소리에 화면을 보는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마지막 모든 희망을 걸고 내일이면 만날 수 있다고 손꼽아 기다리던 곳, 우리가 가려고 하던 지리산 그곳이 뉴스에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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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의 교주라는 사람이 두 손에 수갑을 찬 채 잡혀가는 모습이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눈앞이 캄캄해지며 실낱같던 희망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이제 더는 갈 곳 없는 내 앞날이 너무나 막막해 그만 넋을 잃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가 살 길은 정녕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것은 사실 나를 사이비 종교로부터 지켜내신 하느님의 손길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던 당시의 내게 그 상황은 너무나 가혹하기만 했다. 눈물을 삼키며 셈치고 봉헌해 보아도, 허탈하고 쓰린 가슴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오, 아버지 하느님, 내 아버지시여! 제가 살길을 열어주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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