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387화. 죽음 대신 선택한 어머니, 유서를 찢고 다시 일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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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대신 선택한 어머니, 유서를 찢고 다시 일어서다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남편은 마음이 편안해 보였다. ‘상황은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대책도 없이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으니,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한없이 허탈하고 막막하기만 했다. 밤을 지새우며 생각하고 또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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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제 남은 내 한 생애는 나 하나만을 위해 희생해 오신 불쌍한 어머니를 모시고, 내가 쓰러지는 그 순간까지 살아보자. 이제까지는 어머니가 나를 위해 희생하셨지만, 이제는 내가 어머니를 위해,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 희생할 차례다.’ 나는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으며 지난밤에 썼던 유서는 찢어버리고 다른 내용의 글을 써두었다.
 
‘주형이 아빠! 미안해요.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봐요... 건강하고 좋은 인연 만나 행복하게 잘 살기만을 기도할게요...’ 마음속으로 그이에게 작별 인사를 고한 뒤,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눈치가 아주 빠르신 분이라 나는 최대한 태연한 척하며 기회를 봐서 말씀드리려 했다. 그러나 친정어머니께서는 나를 보자마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신 것 같았다.
 
“어떻게 왔느냐?” 하며 곧바로 채근하셨다. 나는 당황하지 않았지만, 굳은 결심으로 얼른 대답했다. “김 서방이 수원으로 출장을 가서 그동안 여기 좀 있으려고 왔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래?” 어머니는 내가 어려서부터 그렇게 매를 맞으면서도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내 말을 믿으시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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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눈치만 살피는 사이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속은 타들어 가고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큰딸이 “텔레비전 보고 싶어.”라고 졸라댔다. 당시 백여 가구가 사는 외가 동네에서 텔레비전이 있는 집은 딱 한 곳뿐이었다. 밤이 되자 어머니께서는 그 집에 함께 가자고 하셨다.
 
계속되는 갈등으로 고민하던 차에 마음이 답답했던 나는 얼떨결에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그 집은 예전에 내 남편을 사위로 삼으려 무척 애썼던 외재당숙의 집이었다. 동네에 처음으로 텔레비전이 들어왔을 때라 외재당숙모들과 마을 아주머니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외재당숙은 나를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책망하는 투로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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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서방 단속 좀 잘해라.” “왜 그러셔요?”라고 묻자 “남자들이 잘생기면 여자들이 따르는 법이다. 남자들이란 그럴 수가 있는데, 자칫 호주머니가 가벼워질 수 있어서 말해주는 거다. 지도소에서 소장하고 나하고 둘이 있는데, 어떤 여자가 김 서방한테 보낸 편지가 왔더라. 그래서 뜯어보니 토요일에 용다방에서 만나자는 내용이기에 소장하고 둘이 비밀리에 찢어서 태워버렸다.”
 
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 더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태연하게 대꾸했다. “예, 외재당숙. 저도 그 일은 잘 알고 있어요.” 그분들이 나를 위해주는 말 해주신 셈치고 봉헌했다. 하지만 그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생각해 주는 척 교묘하게 몰아가며 여러 말을 덧붙였다. 내 결혼생활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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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던 당숙모들과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거기에는 나에게 돈 많은 집으로 시집가라고 끈질기게 설득했던 분들도 함께 계셨다. 끝까지 남편을 선택했던 내게 화가 났던 어르신들은 어디 한 번 두고 보자며 내 선택의 결과를 지켜보던 터였다. 그래서 더 부끄러웠고 어디론가 숨어버리고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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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꼬부부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던 나의 소중한 꿈은...?’ 그때 내 소신을 자신했던 나 자신이 초라해 견딜 수 없었다. 고작 텔레비전 때문에 이곳을 따라나선 것이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눈물을 머금고 외재당숙에게 당당히 말했다.
 
“그 아가씨는 제 친구예요. 제가 김 서방에게 부탁했어요. 친구가 일하는 데 가서 좀 도와주라고요. 그날 저도 김 서방과 함께 만나기로 했었어요. 그런데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나요? 나쁜 눈으로 보면 모두가 나쁘게 보이는 법입니다. 검은 눈으로 보면 검게 보이고, 맑은 눈으로 보면 맑게 보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으려 애써 둘러댔지만, 자꾸만 차오르는 눈물 때문에 더는 그 자리에 있기가 힘들었다. 비참한 심경이 혹시라도 새어 나갈까 봐 나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외재당숙은 진흥회 회장으로서 내 남편을 사위 삼으려다 성사되지 않은 앙금이 남아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분이었다. 그 딸 역시 내 남편을 무척 좋아해 결혼하려고 얼마나 애썼던가.
 
나를 보자 예전에 품었던 그 미련이 다시금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지성인으로서, 진정으로 나를 생각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그런 방식으로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듯한 이 상황 때문에 내 마음은 또 한 번 깊은 아픔을 겪어야 했다. 가슴이 쓰라려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고통을 사랑받은 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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