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지 사흘 만에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시신이 되어 굳어 있던 몸이 서서히 풀리며 조금씩 움직임이 가능해졌다. 퇴원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집 아주머니가 죽을 쑤어주셨다는데, 전혀 기억조차 나질 않았다. 딸이 여전히 입원 중일 거라 생각하셨던 어머니는 닷새가 지나서야 집에 오셨다.
홀로 눈물로 딸을 키워낸 어머니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재가하지 않고 굳건히 딸을 길러내고자 온갖 시련 속에서 스스로 강해져야만 했던 나의 어머니! 아비 없는 자식 소리를 듣지 않게 하시려고 나를 엄하게 키우셨다.
삶의 무게가 버거울 때면 어린 나에게 매질을 하며 그 한을 쏟아내기도 하셨다. 그러고 나면 나를 안고 얼마나 통곡하며 우셨던가. 이모님들은 “그렇게 계속 맞지 말고 얼른 도망이라도 가거라.” 하셨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가 나를 때리시므로 스트레스가 풀릴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기에 결코 도망간 적이 없었다.
매가 부러지면 손으로도 때리기도 하시고, 종아리가 터져 피가 나거나 분이 풀리셔야만 끝이 났다. 그래도 어린 날의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렸다. 어머니가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신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강인해야만 했던 어머니는 비록 나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를 해주거나 따듯하게 품어주시진 못하셨지만 늘 나를 위해서 한 생을 바치며 내 곁에 계셨다.
어린 시절, 샘가로 나를 데려가 “너랑 나랑 아버지 따라 죽자!”며 내 다리를 잡고 거꾸로 집어넣으셨던 날, 물이 차올라 숨을 못 쉬며 살려달라고 빌던 나를 끌어안고 또 얼마나 우셨던가. 숱한 죽을 고비를 함께 넘겨온 우리 모녀였다. 어머니는 단 하나뿐인 딸을 잘 키워보시고자 그 어떤 희생도 마다치 않으셨다. 어린 딸을 혼자 두고 장사를 나갔다 오실 때면 딸이 불쌍해서 늘 우셨다.
그렇게 장사를 나가 집을 비운 사이 그네에서 떨어져 죽어있던 딸의 모습을 마주하셨던 어머니는 얼마나 통곡하셨던가! 죽의 고비를 숱하게도 넘어왔던 우리 모녀! 대가 끊긴 가문을 위해 그리고 딸을 위해 한평생을 아낌없이 바쳐 오신 어머니는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다. 정말 그랬다. 딸을 출가시킨 후에도 사돈댁 뒷바라지까지 하시느라 고생하고 계시지 않은가!!!
나의 존재는 어머니가 살아가실 단 하나의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그런 딸이 죽었다 살아나 초주검이 된 모습을 다시 마주하셔야만 했던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나는 아무리 못 먹고, 아프고, 고되고, 쉬지 못하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것이 없었다. 늘 최선을 다하여 남편과 시댁을 위하여 내 한 몸 아끼지 않고 일해 왔었다.
하지만 강제 낙태 수술 이후 내 삶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마음은 너무도 간절한데, 몸이 전혀 따라주질 않았다. 죽은 것도 아니요, 살아있는 것도 아닌 고통스러운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을 부르짖으며 도와주시라고 청하는 것밖에 없었다. 수술한 지 13일째, 그동안 계속 먹지도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이날따라 배가 더욱 찢어질 듯 아파오며 아이를 낳을 때 같은 진통이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부축을 받아 겨우 요강에 앉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탈진한 상태로 힘들게 진통을 하는데 힘이 써지더니 무엇인가 뭉클하게 나왔다. 놀란 나는 어머니께 “요강을 화장실에 버리지 말고 하수구에 부어 봐주세요.” 했다.
요강을 비우자 두 주먹만 한 크기의 핏덩어리가 보였다. “아니, 이것이 무엇이냐?” 어머니와 함께 살펴보았다. “어머니, 물로 좀 씻어봐 주실래요?” 하자 어머니는 “핏덩어리잖아.” 하셨다. “그래도 좀 이상해요. 피를 좀 씻어봐 주세요.” 그것을 씻어 내던 어머니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오매, 어쩔 거나!”하고 기겁을 하셨다. “어머니, 왜요?” “애기 태 같아야!”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정말 아이의 태였다. 아연실색한 순간, 지난 끔찍한 기억의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돈을 벌기 위해 산 채로 아이를 죽였던 그 의사. 끝까지 아이를 지키고자 몸부림하며 마취가 되지 않은 채 강제로 수술을 받던 나는 그 순간의 모든 장면을 절대 잊을 수가 없었다.
15분이면 끝난다던 수술을 한 시간 반 넘게 끌며 제대로 마무리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계속 갸웃거리며 봉합해 버렸다. 그렇게 급하게 끝내느라 이런 사태에 이르고 만 것이다. 그러니 아이의 태가 나오지 않은 채 내 몸속에서 13일 동안이나 부폐 되어 가고 있었다. ‘오, 13일간이나 자궁 속에 아이의 태가 방치되고 있었다니...’ 인간 상식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첫 수술 때 태를 못 꺼내 배 속에서 썩어가고 있어 환자가 그토록 시커먼 피를 펑펑 쏟으며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도 재수술할 때에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 했다니... 아이를 낳고 태가 하루만 안 나와도 위험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13일간이나 자궁 안에 있었단 말인가?
돈의 노예가 된 의사가 생살을 찢고 갈아내며 허겁지겁 수술을 끝낸 참혹한 결과였다. 가슴이 찢어질 듯 저려왔다. 불쌍한 내 아기... 나는 이런 천인공노할 끔찍한 일이 결코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이와 산모의 소중한 생명을 위협하는 그들의 만행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에 태를 가지고 수술한 광주 산부인과에 가서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나는 꼼짝도 할 수 없는 몸 상태였지만 마음을 굳게 먹었다. 광주 산부인과에 가기 전에 이것이 아기의 태라는 것을 확실히 확인을 받고자 나주 산부인과에 먼저 들려야 했다.
그래서 어머니께 태를 더 깨끗하게 씻어달라고 하여 가누기도 힘든 몸을 부축받아 어렵게 나주 산부인과에 갔다. 산부인과 원장님은 그것을 보자마자 놀라면서 “예끼~ 여보시오! 무슨 아이의 태를 다 가지고 다녀요?”라며 언짢아 소리를 높였다.
“죄송합니다. 아기의 태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왔어요.” “아기 태가 맞아요. 근데 도대체 이런 태를 어디서 났소?” 놀라는 의사에게 확인을 받고 진료실을 나오는 나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멘 어찌 이런 일이....
아이 태가 13일 동안 뱃속에 있었으니 엄마의 고통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거다. 어찌 이런 인간이 의사라니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고통
가운데서도 따 다른 피해를 막기위해 태를 가지고 산부인과에 가서 확인한 엄마, 용기에 고개가 숙여진다. 두번 다시 이세상에 이런 의사가 없기흘 바랄뿐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고통 받으시는 주님과
성모님 그리고 율리아 엄마ㅠㅠㅠ
온 세상이 완전한 암흑일진대 저희의 구원을
위하여 모든것 다 내어 주셨나이다.
어찌 그 크신 은혜를 모른다 할 수 있을까요?
나약하온 저희가 자주 죄를 지어 그 사랑의
품에서 떨어질지언정 불가분리한 사랑으로
저희를 감싸 안아 품어주시고 보호해 주시옵
소서. 그래서 주님과 성모님 엄마 사랑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내 몸 안에서 썩어간 태와 핏덩어리의 통곡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지 사흘 만에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시신이 되어 굳어 있던 몸이 서서히 풀리며 조금씩 움직임이 가능해졌다. 퇴원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집 아주머니가 죽을 쑤어주셨다는데, 전혀 기억조차 나질 않았다. 딸이 여전히 입원 중일 거라 생각하셨던 어머니는 닷새가 지나서야 집에 오셨다.
홀로 눈물로 딸을 키워낸 어머니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재가하지 않고 굳건히 딸을 길러내고자 온갖 시련 속에서 스스로 강해져야만 했던 나의 어머니! 아비 없는 자식 소리를 듣지 않게 하시려고 나를 엄하게 키우셨다.
삶의 무게가 버거울 때면 어린 나에게 매질을 하며 그 한을 쏟아내기도 하셨다. 그러고 나면 나를 안고 얼마나 통곡하며 우셨던가. 이모님들은 “그렇게 계속 맞지 말고 얼른 도망이라도 가거라.” 하셨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가 나를 때리시므로 스트레스가 풀릴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기에 결코 도망간 적이 없었다.
매가 부러지면 손으로도 때리기도 하시고, 종아리가 터져 피가 나거나 분이 풀리셔야만 끝이 났다. 그래도 어린 날의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렸다. 어머니가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신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강인해야만 했던 어머니는 비록 나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를 해주거나 따듯하게 품어주시진 못하셨지만 늘 나를 위해서 한 생을 바치며 내 곁에 계셨다.
어린 시절, 샘가로 나를 데려가 “너랑 나랑 아버지 따라 죽자!”며 내 다리를 잡고 거꾸로 집어넣으셨던 날, 물이 차올라 숨을 못 쉬며 살려달라고 빌던 나를 끌어안고 또 얼마나 우셨던가. 숱한 죽을 고비를 함께 넘겨온 우리 모녀였다. 어머니는 단 하나뿐인 딸을 잘 키워보시고자 그 어떤 희생도 마다치 않으셨다. 어린 딸을 혼자 두고 장사를 나갔다 오실 때면 딸이 불쌍해서 늘 우셨다.
그렇게 장사를 나가 집을 비운 사이 그네에서 떨어져 죽어있던 딸의 모습을 마주하셨던 어머니는 얼마나 통곡하셨던가! 죽의 고비를 숱하게도 넘어왔던 우리 모녀! 대가 끊긴 가문을 위해 그리고 딸을 위해 한평생을 아낌없이 바쳐 오신 어머니는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다. 정말 그랬다. 딸을 출가시킨 후에도 사돈댁 뒷바라지까지 하시느라 고생하고 계시지 않은가!!!
나의 존재는 어머니가 살아가실 단 하나의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그런 딸이 죽었다 살아나 초주검이 된 모습을 다시 마주하셔야만 했던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나는 아무리 못 먹고, 아프고, 고되고, 쉬지 못하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것이 없었다. 늘 최선을 다하여 남편과 시댁을 위하여 내 한 몸 아끼지 않고 일해 왔었다.
하지만 강제 낙태 수술 이후 내 삶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마음은 너무도 간절한데, 몸이 전혀 따라주질 않았다. 죽은 것도 아니요, 살아있는 것도 아닌 고통스러운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을 부르짖으며 도와주시라고 청하는 것밖에 없었다. 수술한 지 13일째, 그동안 계속 먹지도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이날따라 배가 더욱 찢어질 듯 아파오며 아이를 낳을 때 같은 진통이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부축을 받아 겨우 요강에 앉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탈진한 상태로 힘들게 진통을 하는데 힘이 써지더니 무엇인가 뭉클하게 나왔다. 놀란 나는 어머니께 “요강을 화장실에 버리지 말고 하수구에 부어 봐주세요.” 했다.
요강을 비우자 두 주먹만 한 크기의 핏덩어리가 보였다. “아니, 이것이 무엇이냐?” 어머니와 함께 살펴보았다. “어머니, 물로 좀 씻어봐 주실래요?” 하자 어머니는 “핏덩어리잖아.” 하셨다. “그래도 좀 이상해요. 피를 좀 씻어봐 주세요.” 그것을 씻어 내던 어머니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오매, 어쩔 거나!”하고 기겁을 하셨다. “어머니, 왜요?” “애기 태 같아야!”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정말 아이의 태였다. 아연실색한 순간, 지난 끔찍한 기억의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돈을 벌기 위해 산 채로 아이를 죽였던 그 의사. 끝까지 아이를 지키고자 몸부림하며 마취가 되지 않은 채 강제로 수술을 받던 나는 그 순간의 모든 장면을 절대 잊을 수가 없었다.
15분이면 끝난다던 수술을 한 시간 반 넘게 끌며 제대로 마무리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계속 갸웃거리며 봉합해 버렸다. 그렇게 급하게 끝내느라 이런 사태에 이르고 만 것이다. 그러니 아이의 태가 나오지 않은 채 내 몸속에서 13일 동안이나 부폐 되어 가고 있었다. ‘오, 13일간이나 자궁 속에 아이의 태가 방치되고 있었다니...’ 인간 상식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첫 수술 때 태를 못 꺼내 배 속에서 썩어가고 있어 환자가 그토록 시커먼 피를 펑펑 쏟으며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도 재수술할 때에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 했다니... 아이를 낳고 태가 하루만 안 나와도 위험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13일간이나 자궁 안에 있었단 말인가?
돈의 노예가 된 의사가 생살을 찢고 갈아내며 허겁지겁 수술을 끝낸 참혹한 결과였다. 가슴이 찢어질 듯 저려왔다. 불쌍한 내 아기... 나는 이런 천인공노할 끔찍한 일이 결코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이와 산모의 소중한 생명을 위협하는 그들의 만행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에 태를 가지고 수술한 광주 산부인과에 가서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나는 꼼짝도 할 수 없는 몸 상태였지만 마음을 굳게 먹었다. 광주 산부인과에 가기 전에 이것이 아기의 태라는 것을 확실히 확인을 받고자 나주 산부인과에 먼저 들려야 했다.
그래서 어머니께 태를 더 깨끗하게 씻어달라고 하여 가누기도 힘든 몸을 부축받아 어렵게 나주 산부인과에 갔다. 산부인과 원장님은 그것을 보자마자 놀라면서 “예끼~ 여보시오! 무슨 아이의 태를 다 가지고 다녀요?”라며 언짢아 소리를 높였다.
“죄송합니다. 아기의 태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왔어요.” “아기 태가 맞아요. 근데 도대체 이런 태를 어디서 났소?” 놀라는 의사에게 확인을 받고 진료실을 나오는 나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