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442화. 엄살이라 치부된 고통, 시어머니의 차가운 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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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영성2026-09-29 09:39
"대가족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바쳐온 내 사랑의 대가가 고작 이것인가 싶어 가슴이 쓰라렸지만,
시어머니와 시동생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셈 치고 봉헌하니 그래도 견뎌낼 수 있었다."
아멘 감사합니다. 주변에서 따뜻한 시선과 말들은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냉대와 차가운 말뿐...
엄마의 고통을 누가 알아줄까만 ㅠㅠ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ㅠㅠ 그렇게 나를 다 내어놓고 대가족을
사랑으로 살렸을 뿐인데... 돌아오는 건 왜 일까요ㅠㅠ 그런 아픔에도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하셨기에
견딜 수 있었다는 것을 보고 저도 부족하고 아직 더 성장해야 하지만 엄마의 일화들과 엄마의 마음을
묵상하며 저도 5대 영성으로, 생활의 기도로 온전히 주님께 의탁하며 늘 기쁨과 사랑, 평화 누리도록
하겠습니다.
시어머니와 시동생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셈 치고 봉헌하니 그래도 견뎌낼 수 있었다."
아멘 감사합니다. 주변에서 따뜻한 시선과 말들은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냉대와 차가운 말뿐...
엄마의 고통을 누가 알아줄까만 ㅠㅠ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ㅠㅠ 그렇게 나를 다 내어놓고 대가족을
사랑으로 살렸을 뿐인데... 돌아오는 건 왜 일까요ㅠㅠ 그런 아픔에도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하셨기에
견딜 수 있었다는 것을 보고 저도 부족하고 아직 더 성장해야 하지만 엄마의 일화들과 엄마의 마음을
묵상하며 저도 5대 영성으로, 생활의 기도로 온전히 주님께 의탁하며 늘 기쁨과 사랑, 평화 누리도록
하겠습니다.
KOY10162026-09-23 02:35
아멘 순산도 아니고 고통중에 애기를 낳는데
어느 누구하나 병간호 해주는 사람 없이 혼자 모든것을 감당해야 하니 얼마나 힘들었을가
대학병원이라 특별한줄 알았는데 간호사들은 왜그리 인정머리가 없을가 맹장수술로 여기니
먹지도 못하고 아우본 애기 돌보며 갓 태러
어난 아기한테 분유도 주어야 하는데 시어머니나 시동생이나 남편이나 그집 식구들은 인정머리가 없으니 친정어머니는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가 그래도 모든것을 셈치고 굳건히 이겨내시는 율라아 엄마, 오죽하면 옆침대 환자가 한마디 할가 주님 따르는 길이 너무 험난하고 힘드는 것을 어렴풋이 느낌니다.
어느 누구하나 병간호 해주는 사람 없이 혼자 모든것을 감당해야 하니 얼마나 힘들었을가
대학병원이라 특별한줄 알았는데 간호사들은 왜그리 인정머리가 없을가 맹장수술로 여기니
먹지도 못하고 아우본 애기 돌보며 갓 태러
어난 아기한테 분유도 주어야 하는데 시어머니나 시동생이나 남편이나 그집 식구들은 인정머리가 없으니 친정어머니는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가 그래도 모든것을 셈치고 굳건히 이겨내시는 율라아 엄마, 오죽하면 옆침대 환자가 한마디 할가 주님 따르는 길이 너무 험난하고 힘드는 것을 어렴풋이 느낌니다.
엄살이라 치부된 고통, 시어머니의 차가운 말 한마디
나의 회복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더뎠다. 고통을 호소해도 의사와 간호사들은 무시로 일관하며 날이 갈수록 나를 더 심하게 대했다. “어우, 정말 징하네요. 엄살 좀 그만하세요! 아기도 아닌 어른이 뭐가 그렇게 겁이 많아요?”라며 면박을 주기 일쑤였다. 다른 간호사까지 들어와 합세했다.
“아줌마, 겨우 맹장 수술 하나 한 것 가지고 왜 지금까지 일어나지도 못해요? 웬 엄살이 이렇게 심해요?” 하고 윽박질렀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는 나를 이리저리 밀치고 때리며 던지는 그들의 말은 약해진 내 몸과 마음에 더 깊은 비수가 되어 꽂히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간호사들이 내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준 셈 치고 봉헌했다.
나는 네 명의 아이를 낳을 때도 신음 소리 한번 내지 않았고, 고통 잘 참기로 소문났던 나였다. 그런 내가 죽을 지경이 되어가는 것은 분명 몸 안의 무언가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러나 육체적 고통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말이었다.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어머니께서 병실을 찾으셨다.
어머니의 싸늘한 표정에 불안함이 엄습해, 가눌 수 없는 몸을 겨우 일으켜 앉았다. 어머니는 오시자마자 냉랭한 목소리로 “우리가 너한테 오느라고 택시비만 얼마나 들어가는지 아느냐?”라고 하셨다. 택시비가 300원 하던 시절, 시댁에서 자주 오신 것도 아니었기에 그 말씀은 더욱 당혹스러웠다. 처음 내가 수술할 수 있도록 사인해 주기 위해 둘째 시동생이 다녀갔다.
그리고 병문안은 시동생들이 단 한 번 다녀간 게 전부였다. 그마저도 내가 고통으로 몸부림칠 때 병실 구석에서 술을 먹고 간 것이 다였다. 하지만 나는 이마저도 내 탓으로 받아들이고 시어머니께 “어머니, 죄송해요. 제가 건강하지 못해 고생시켜 드려 마음 상하셨다면 용서해 주세요.”하고 얼른 용서를 청했다. 그러나 옆의 자궁암 환자 보기가 민망했다.
나는 이내 시어머니가 “고생 많았다. 몸조리 잘해라.” 하고 다정하게 말씀해 주신 셈 치고 봉헌했다. 시어머니가 가시고 나자, 옆에 있던 자궁암 환자가 오히려 열을 내며 말했다. “아니, 무슨 저런 시어머니가 다 있대요? 오지도 않더구만, 아픈 사람한테 택시비 타령이라니요!” 나는 애써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우리 시어머니 정말 좋으신 분인데 오늘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으셨나 봐요.” 그녀는 나를 안쓰럽다는 듯 보며 “아이고, 얼굴도 예쁜 사람이 마음도 참 착하네.” 하며 혀를 내둘렀다. 나는 여전히 물만 먹어도 토하며 탈진해가고 있었다. 대변은 구경도 못 했고, 구역질할 때마다 장기가 다 빠져나올 듯 괴로웠다.
안쓰럽게 지켜보던 옆 환자가 소화에 좋은 서숙(좁쌀) 미음을 먹어보라고 권했다. 마침 손아래 동서가 왔다. 평소 누구에게도 부탁해 보지 않았던 내가 어머니와 아이들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어렵게 말을 꺼냈다. “동서, 서숙 미음이 좋다는데 좀 해다 줄 수 있을까?” 했더니 동서는 “시어머니께 말씀드릴게요.” 하며 금방 떠났다.
하지만 그 뒤로 동서는 오지 않았고, 서숙 미음도 구경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섭섭해하지 않고 동서가 사랑으로 정성껏 쑤어준 서숙 미음을 맛있게 먹은 셈 치고 봉헌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결혼 직후부터 열다섯 대식구가 사는 시댁에 들어가 내 모든 것을 다 살라 헌신하며 살았었다.
시어머니 돈 대드리느라 내 패물을 팔아가면서도 시동생들이 원하는 것은 다 해주었고, 나는 굶어도 그들이 배불리 먹는 모습만 봐도 기뻤다. 나를 누나라 부르며 따르던 시동생들과의 우애도 한바탕 꿈처럼 아련해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단둘이 외롭게 살았기에, 형제 많은 집에서 더는 외롭지 않게 살고 싶어 선택한 결혼이었다.
그 대가족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바쳐온 내 사랑의 대가가 고작 이것인가 싶어 가슴이 쓰라렸지만, 시어머니와 시동생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셈 치고 봉헌하니 그래도 견뎌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