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429화. 사랑받은 셈치면서 리어카를 끌고, 흘러내린 피를 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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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은 셈치면서 리어카를 끌고, 흘러내린 피를 붓다 

세 번째 찾아온 정미소에도 쌀이 없으니, 온몸에 힘이 다 빠지고 눈앞이 캄캄해져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를 어쩌면 좋아.’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대로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일어설 힘조차 없어 앉은 채 속으로 ‘아버지 하느님, 어쩌면 좋아요. 이제 이 고을에 정미소가 더는 없어요. 도와주셔요.’하고 간절히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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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신히 입을 떼어 사장님께 물었다. “사장님, 쌀을 조금이라도 살 수 있을까요?” “지금은 없는데요. 내일 오시면 찧어서 드릴게요.” 사장님의 거절에 나는 매서운 시어머니가 떠올라 또다시 “오늘 쌀을 꼭 사야 해서 지금 정미소 세 군데째 온 거예요.” “예?”
 
“오늘 쌀을 사서 광주에 보내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되는 일이 있거든요. 그러니 사장님 댁에서 드시던 쌀이라도 있으면 제게 주시고, 여기서 새로 찧어 드시면 안 될까요?” 이미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면 진즉 사 놓지 그랬어요?” 사장님이 핀잔 섞인 말투로 묻자 나는 “오늘 갑자기 그럴 일이 생겨서 그래요.”라고 답했다.
 
그때 방에서 듣고 있던 부인이 나와 거들었다. “여보, 젊은 새댁이 너무 안 쓰럽구만. 용산이 댁에서 가져갈 쌀 한 가마니가 창고에 있는데 그것이라도 줍시다.” “아, 그 쌀 오늘 가져가기로 했잖아.” “아이, 여보! 새댁 몸도 좋지 않은 것 같고 사정이 딱하니 그 쌀 한 가마니 새댁 주고 오늘 다시 방아 찧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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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의 간곡한 권유에 사장님도 마음을 돌렸다. “그래, 그렇게 하지. 그럼 새댁, 쌀을 리어카에 실어 줄 테니 싣고 가시오.” 그제야 나는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집이 어디요?” “구림이에요.” “아이고, 몸도 안 좋은 것 같은데 멀리서도 왔네. 조심해서 잘 가지고 가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건네며 또다시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당시 시골에서는 정미소에서 쌀을 사면, 직접 리어카에 싣고 오거나 지게로 져 날라야 했다. 그렇게 겨우 구한 80kg 쌀 한 가마니를 싣고 돌아오는 길, 결국 출혈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전화 한 통이면 버스 정류장으로 나오시라 말씀드릴 수 있겠지만, 그때는 방법이 없어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집까지 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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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사이로 피가 계속 흘러내리고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시어머니께 한시라도 빨리 쌀을 가져다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죽을힘을 다해 리어카를 끌고 겨우 집에 도착했는데 아이는 배가 고파 울고 있었다. 17일 된 갓난아이가 친할머니 덕분에 8시간을 젖도 못 먹고 울고 있었으니 그 소리에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시어머니는 아이가 울고 있어도 전혀 관심도 없으셨다. 그러나 나는 아이를 보러 들어갈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가 빨리 가야한다고 재촉하시니 쌀 한 가마니를 실은 리어카를 끌고 다시 시어머니를 버스 타는 곳까지 모셔다드려야 했다. 출혈은 계속 되었다. 나는 시어머니께서 보시지 않도록 조심하며 신발에 고인 피를 몰래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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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힘든 과정 중에도 시어머니는 리어카에 손끝 하나 대지 않으셨지만, 나는 어머니께서 밀어주신 셈 치고 봉헌하며 정류장으로 향했다. 광주행 버스에 무거운 쌀 가마니를 직접 실어 올리느라 온 힘을 다 썼더니, 몸은 오한이 들 정도로 추운데도 진땀은 뻘뻘 흘러내렸다. 버스 안에는 승객들도 많았고 시어머니도 계셨으나, 힘들게 쌀을 싣는 나를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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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땀방울 한 방울도 헛되지 않도록, 집에서 배가 고파 울고 있을 아이에게 영양분으로 흡수되기를 바라며 봉헌했다. 시어머니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 이제는 정말 지쳐서 집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온몸이 녹아내리듯 아파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출혈이 너무 심해 신발 속이 피로 가득 차 질컥거렸지만, 몸을 숙여 신발을 벗어 피를 쏟아낼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대로 멈춰 설 수도,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처지였다. 죽음을 불사하고 한 발 한 발 어렵게 내디뎠다. 신발에 피가 가득 차 질컥거릴 때마다 리어카를 멈추고 발을 들어 피를 털어내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끝없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고통 속에서 문득 동생 순덕이를 낳은 지 한 달밖에 안 된 몸으로 광주에서 나주 봉황면까지 33km를 걸어 피난 가셨던 친정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머니께서도 자궁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신발에 고이면, 가다가 신발을 벗어 피를 뿌리고 다시 걷기를 반복하며 그 먼 길을 가시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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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온갖 고생을 다 하시면서도 지금까지 나와 내 시댁을 뒷바라지하느라 말 한마디 없이 헌신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니 눈물이 북받쳐 올랐다. 나는 하느님께 간절히 청했다.
 
“아버지 하느님! 지금 흐르는 이 피가 하나도 헛되이 낭비되지 않고 지금 집에서 배가 고파 젖도 못 먹고 울고 있을 우리 아기에게 흘러가 배고픔을 면하게 해주셔요. 그리고 고생하시는 우리 어머니에게 가장 필요한 신약으로 흘러 들어가게 해주세요.” 하느님만을 부르며 걷고 또 걷던 나는, 결국 차디찬 길바닥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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