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524화. 가족을 위한 마지막 선택, 눈물로 구하려던 청산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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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위한 마지막 선택, 눈물로 구하려던 청산가리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청산가리를 입에 대는 순간, 단 0.5g만으로도 생명은 흔적 없이 스러지며 그 어떤 자살 미수의 소동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문득 고향에서 보았던, 나와 처지가 비슷했던 한 언니의 슬픈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언니의 어머니도 6.25때 전쟁터에서 남편을 잃고 오직 딸자식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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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언니는 외롭게 사시는 어머니가 안타까운 나머지, 차라리 자신이 사라져 어머니가 재혼하여 새 삶을 찾기를 바라며 청산가리를 삼켰다. 그 어머니는 눈물과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며 기다리다가 아침이 되어 어떤 쪽지를 발견했다. ‘어머니, 재혼해서 행복하게 사세요.’ 그 쪽지를 보고 너무 놀란 어머니는 울며불며 딸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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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밭에서 차디찬 시신으로 발견되었던 그 언니! 그때는 그 어머니의 서러움을 차마 다 헤아릴 길 없었으나, 세월이 흐르자 딸의 소원대로 재혼하게 되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지난 일들이 생각나며, 이제 죽음의 문턱에 선 나 자신을 되돌아보니 ‘나는 참으로 불효녀였구나’ 하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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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 죽으면 당분간 가족들은 슬퍼하겠지만 세월이 흐르면 잊혀지겠지? 불쌍한 내 아이들도 어쩌면 나보다 더 좋은 엄마를 만나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몰라. 내가 사라짐으로써 사랑하는 이들이 짐을 벗고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무엇인들 못 하겠는가?’ 나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돈을 챙겨 집을 나섰다.
 
0.1g의 하얀 가루 뒤에 숨은 영원한 안식을 찾아 철물점으로 향하는 발걸음마다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철물점에 들어가서 “꿩 약 좀 주시겠어요?” “아니, 꿩 약을 어디에 쓰시게요?” “꿩 잡으려고요.” “아줌마가요?” 나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요, 남편이 꿩을 잡는다고 사 오라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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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경찰서장 싸인 받아오세요, 그러면 줄게요.” “그냥 주셔요, 남편이 얼른 사 오라고 했어요.” 나는 계속 사정했다. 차마 내 죽음을 위한 약이라 말할 수 없어 거짓말을 보탰으나, 철물점 주인은 단호했다. 끝내 약을 내어주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주인은 이미 내 눈빛을 보고 내가 자살하려고 온 사람임을 직감하였다고 한다.
 
빈손으로 돌아온 나를 걱정스레 맞이하는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뵙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아야, 너 그 몸으로 어디를 갔다 오냐? 깜짝 놀라서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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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나 키우시느라 평생을 고생만 하신 내 어머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 저려왔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어머니, 죄송해요. 갑갑해서 산책을 다녀왔어요.” 하며 얼버무렸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죽으려던 마음이 흔들리고, 갈가리 찢겨진 듯했다. 그러나, 이것이 가족을 위한 최선의 길이라 믿었기에 약해지려는 마음을 사랑받은 셈치고 봉헌하면서 억지로 다잡았다.
 
다른 방법으로 죽으려다 혹여 실패하여 자살 미수가 된다면 가족에게 더 큰 짐이 될 터였다. 나는 마지막이라는 비장한 각오로 이번에는 외사촌 동생 길영이를 찾아가 청산가리를 구하기로 했다. 죽으러 가는 길임에도 혹여 의심을 살까 봐 머리를 곱게 빗고 입술을 살짝 발랐다. 그리고 화장품이 없었기에 생기있어 보이도록 볼터치 대신 립스틱으로 볼에 살짝 펴발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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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피부결이 좋았기에 그 상태에서 미소 짓고 있으니 겉보기에는 제법 생기 있고 건강해 보였다. 보통 사람에겐 지척인 거리였으나, 말기 암의 고통에 신음하는 나에게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지옥 같은 곤욕이었다. 자살이 죄인 줄도 몰랐던 나는 그 고통스러운 걸음마다 주님께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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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이것만이 가족을 위한 길이오니, 제가 내딛는 이 힘겨운 발걸음만큼 제가 없어도 불쌍한 내 가족들이 슬픔을 이겨낼 힘으로 흘러가게 해주소서.”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길영이네 집에 도착해 어렵게 입을 뗐다. 갓난아기 때부터 내 손으로 기저귀를 갈아주고, 그 애가 너무 예뻐 똥까지도 사탕인 셈 치고 먹어보았을 만큼 아끼던 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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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길영이에게 꿩 약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하는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누나 부탁이라면 하늘의 별도 따다 줘야지!” 천진하게 웃으며 다음 날 약을 구해다 준 길영이를 보며 나는 또 한 번 속으로 빌었다. ‘하느님, 제가 죽더라도 이 착한 아이가 자신을 자책하지 않게 해주시고, 그 앞길을 밝혀 주소서. 아멘!’
 
드디어 내 손에 들어온 작은 병 속의 하얀 가루. 이 보잘것없는 가루 한 줌으로 그토록 파란만장했던 내 생을 마감하게 된다니... 이제 죽음이 바로 눈앞에 와 있다는 실감이 나자 주체 할 수 없는 눈물이 강물처럼 흘러내렸다. 그것은 남겨질 자들에 대한 미안함이자, 끝내 다하지 못한 사랑에 대한 마지막 오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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