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515화. 외사촌 동생의 죽음과 어머니의 심장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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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사촌 동생의 죽음과 어머니의 심장병

어느 날, 날벼락 같은 슬픈 소식이 날아들었다. 작은외숙 밑에서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동갑내기 사촌 남동생 점영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그토록 착하던 동생이었기에 충격은 더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던 내게 점영이의 사망 소식은 너무나 커다란 슬픔으로 다가왔다. 갑작스럽고 가슴 아픈 비보에 나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통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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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영아! 점영아! 그토록 착했던 네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니….” 나의 삶은 늘 끝없는 시련과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나는 그늘진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으려 흐르는 눈물을 밝은 미소 뒤로 감추며 살아왔다. 내가 모진 세월을 견뎌왔기에 고통받는 이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릴 수 있었다.
 
그랬기에 점영이는 내게 더욱 특별한 동생이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한집에 살며 작은외숙에게 늘 같이 매를 맞고 자랐다. 특히 둘 다 뺨을 너무 많이 맞아 귀가 잘 들리지 않았고, 그럴 때면 항상 함께 명태 찜질을 하며 아픔을 달래곤 했다. 그렇게 동병상련의 고통을 나누었던 동생이었기에, 말기 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내게 그의 죽음은 더욱 사무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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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영아!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그리 잘못했기에 너와 나는 이런 가혹한 운명에 처해야만 했단 말이냐?’ 작은외숙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큰아들인 점영이는 조금만 잘못해도 심한 욕설과 함께 귀뺨을 때리셨다. 반면 작은아들은 어떤 잘못을 해도 야단 한번 치지 않고 애지중지하며 편애하셨다.
 
보통은 대를 이을 장남을 아끼기 마련인데, 작은외숙은 오히려 장남인 점영이를 미워하셨다. 아버지의 차별 속에서 점영이는 늘 소외감을 느끼며 슬픔 속에 살았고, 나는 그런 동생이 늘 가엽고 안타까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점영아,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할지라도 모든 것을 사랑받은 셈 치고 굳세게 살아보자” 하며 동생을 위로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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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9살 무렵, 점영이가 우물에 두레박을 빠뜨렸을 때도 나는 그가 야단 맞지 않도록 두레박을 얼른 건져 내었었다. 친정어머니 또한 그런 점영이를 친아들처럼 극진히 아끼며 챙겨주셨고, 점영이 역시 우리 어머니를 무척 잘 따랐다. 그렇듯 각별했던 동생의 죽음이었기에 어머니께서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출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신 어머니는 심장병 증세까지 보일 정도로 쇠약해지셨다. 어머니는 넋이 나간 듯 중얼거리며 “내가 죽으면 네가 나를 염해준다더니, 어찌 내가 너를 염하게 하느냐, 이놈아!” 하고 목놓아 우셨다. 마르지 않는 어머니의 눈물을 보며 나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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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의 죽음에도 저토록 무너지시는데, 만약 내가 죽으면 어머니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뿐인 친딸인 나도 말기 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인 것을 알게 되신다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비록 사형선고를 받은 몸일지라도 어떻게든 병을 고쳐 살아남아야겠다는 절실한 의지가 솟구쳤다. 어머니를 통해 전해 들은 동생의 죽음 뒤에는 기막힌 사연이 있었다.
 
동생은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 옆구리에 총알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입었다. 파편을 제거하지 못한 채 제대했지만, 병원에서 수술만 받으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남묘호랑개교’를 믿던 부모님은 종교적인 이유로 병원 치료를 막아 세웠다. 결국 점영이는 몸속에 파편을 품은 채 고통 속에서 고된 농사일을 감내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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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외숙의 큰아들인 오빠가 이 상황을 안타깝게 여겨, 월남전 상해 후유증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서류를 완벽히 준비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로 서류조차 제출하지 못한 채 모든 권리를 포기해야 했다. 당시 큰오빠의 분노도 대단했다. 서류만 냈더라면 상이군인으로서 평생 치료비와 경제적 보상을 받으며 편히 지낼 수 있었을 텐데, 부모의 그릇된 신앙으로 아들의 생명과 권리를 앗아가 버린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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