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511화. 합격의 기쁨 뒤에 날아든 가혹한 요구, “아파트 어떡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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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격의 기쁨 뒤에 날아든 가혹한 요구, “아파트 어떡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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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생이 합격했다는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시어머님께서 나주로 내려오셨다. “애미야, 있냐?” 부르시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나는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고 “어머님, 어서오셔요. 정말 축하드려요!” 하며 기쁘게 인사드리고 안방으로 모셨다. 마침 남편도 집에 함께 있었다. 그런데 방에 들어 오시자마자 어머니께서는 대뜸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다섯째가 합격했으니, 이제 서울에 작은 아파트라도 하나 사줘야지?” “예? 어머님...” 그간의 고생에 대해 대단한 치사를 바란 것은 아니었으나,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너무 놀라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서울에 아파트를 사주라니... 시어머니는 대답 없는 나를 재촉하셨다. “왜 대답이 없냐? 너희들, 아파트 어떻게 할 거냐고?”

나는 너무 당황해 겨우 입을 뗐다. “어머님, 저희가 서울에 아파트까지 사줘야 한다는 말씀이셔요?” 평소 돈 문제는 늘 나에게만 몰래 말씀하시더니, 웬일인지 이번에는 아들 앞에서 처음으로 공론화하신 것이다. “그래야지야. 고시 합격하면 다들 아파트 사준다고 하더라. 그러니 장남인 너희가 당연히 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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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씀에 나는 정말 눈앞이 캄캄해졌다. 내가 죽어가면서도 제대로 된 밥 한 끼 먹어보지 못한 채 굶주림을 먹은 셈 치고 견디며 시댁과 시동생들을 뒷바라지해왔는데... 시집오자마자 시어머니의 빚 독촉에 잘되던 미용실을 급급매로까지 팔아 당신 아들 결혼할 때 진 빚을 갚게 하시더니, 우리가 어렵게 마련한 전세금까지 수시로 빼가시지 않았던가!
 
지금 우리가 사는 나주의 이 방 두 칸짜리 셋방도 돈이 없어 친정어머니께서 광주 큰이모님께 사정 해가며 어렵게 빌려다 주신 돈으로 겨우 얻은 것인데... 아파 죽어가면서도 시어머니 돈 해드리다가 병원비가 없어 병원도 가지 못하여 결국 암이 온몸에 퍼져 시한부 선고를 받은 지금, 다섯째 합격 소식을 듣고 ‘이제 되었다!’라며 얼마나 좋아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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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를 가장 무겁게 짓누르던 커다란 짐 하나를 덜어 그렇게도 좋아했는데,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이제 또 아파트를 사내라니. 그야말로 설상가상에 산 넘어 산이었다.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바닥만 보고 앉아 있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남편은 시어머니께서 그동안 내게서 얼마나 많은 돈을 가져가셨는지 다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모른다 한들, 다섯째 시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친정어머니를 포함한 우리 식구 모두가 얼마나 처절하게 희생해 왔는지는 알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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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도 꿔보지 못한 아파트 이야기를 듣고도 가만히 있는 남편을 보니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평소 어려운 내색 한번 않던 내가 처음으로 남편에게 간절한 눈짓을 보냈다. 그러나 남편은 내 눈을 보고도 또다시 방바닥만 뚫어지게 내려다볼 뿐이었다. 우리가 묵묵부답이자 시어머니는 목소리를 더 높여 재촉하셨다. “안 들리냐? 아파트 어떡할 거냐고, 응?”
 
할 수 없이 남편의 옆구리를 가만히 찔렀더니, 남편은 생전 처음으로 어머니께 조용히 말씀드렸다. “어머니, 동생은 이제 걱정 안 하셔도 스스로 잘해 나갈 거예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머니의 안색이 싸늘하게 변했다. “느그들, 고작 그것 하나 못 해준다고 그러냐? 징허다, 참말로!” 어머니는 역정을 내며 벌떡 일어나셨다.
 
놀란 내가 “어머니!” 하며 옷자락을 붙잡았지만, 어머니는 거칠게 손을 뿌리치셨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나는 그 반동에 땅바닥으로 철퍼덕 쓰러지고 말았다. 말기 암으로 굳어가는 온몸에 강한 충격이 전해지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가 쓰러져 몸을 가누지 못하는 데도 시어머니는 눈길 한번 주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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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다 필요 없어야!” 한마디를 내뱉고는 휭하니 집을 나가버리셨다. 시어머니께서 화를 내신 게 한두 번은 아니었지만, 무리한 청을 처음으로 들어드리지 못한 오늘, 분노하며 떠나시는 뒷모습을 보는 내 마음은 저미도록 아파왔다. 어머니가 가신 후에도 남편은 침묵을 지켰다. 그 무거운 정적이 유난히 더 가슴을 눌렀다.
 
‘죽을 둥 살 둥 최선을 다해 모든 청을 들어드렸는데... 어쩌다 내 처지가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심장이 멎을 듯 시리고 아프고 시려웠다. 아픈 가슴을 애써 쓸어내리며, 나는 병든 탓에 시동생 아파트조차 사주지 못해 어머니를 화나게 했다는 자책감에 빠졌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나는 시어머니께 사랑받은 셈 치고 이 가혹한 상황을 어머니의 변화를 위한 희생으로 봉헌했다.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한 슬픔은 이미 그 말을 들은 셈 치고 봉헌했다. 그간의 무수한 냉대 또한 이미 사랑받은 셈치고 봉헌해 오지 않았는가! 아마 내가 죽음을 목전에 둔 처지가 아니었다면 이토록 사무치게 서글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편마저 말없이 방을 나가버리고, 깊은 정적 속에 홀로 남겨진 나는 끝 모를 슬픔에 잠겨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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