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510화. 7년의 눈물로 틔운 꽃, 시동생의 사법고시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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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의 눈물로 틔운 꽃, 시동생의 사법고시 합격


다섯째 시동생을 법관으로 가르치는 길은 고독하고도 험난했다. 아무도 힘이 되어주는 이 없었다. 오로지 친정어머니만이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다. 만약 이번에도 합격하지 못한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시동생을 대학원까지 보내며 시어머니께서 가져가신 돈이 대체 얼마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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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께서 쉽게 수시로 요구하신 금액은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그 돈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말기암인 내가 돈을 벌 수도 없었기에, 이미 막대한 빚을 지고 계신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번쩍 눈이 떠질 지경이었다. ‘시한부 판정을 받아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내가 이 엄청난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앞이 캄캄하고 막막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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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에 가득 찬 암세포가 숨통을 조여오는 육체적 고통보다도, 늙으신 어머니께 점점 불어나는 빚더미를 안겨드려야 한다는 사실이 내 생애 가장 혹독하고 처절한 아픔이었다. 나의 목숨은 이미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데, 이 고통 중에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겠는가!
 
내 가슴이 더욱 찢어지는 것은 바로 나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아픈 딸과 어린 손주 넷을 돌보시면서도 시동생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골을 오가며 농사를 지으셔야 하는 어머니께서 어찌해야 하나?’ 우리 형편은 지독히도 어려웠지만, 시동생에게 들어가는 돈은 멈출 수 없었기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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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파 수시로 쓰러지는 딸을 두고 가족의 생계와 시동생의 뒷바라지, 그리고 빚을 갚기 위해 농사지으러 떠나시던 어머니의 무거운 발걸음.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어렵게 발길을 떼시던 어머니를 보내며, 나 또한 남몰래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던가! 게다가 작은외숙이 친정집을 불태운 뒤로는 머무를 곳조차 마땅치 않았다.
 
외갓 마을 이집 저집 신세를 지시면서까지 억척스럽게 농사를 지어 우리를 돕고 계셨다. 편히 모시지는 못할망정 못난 딸의 시동생 뒷바라지까지 짊어지게 해드렸으니, 죄송한 마음에 내 가슴은 갈가리 찢기는 듯 너무너무 아파왔다. 그런 고생 속에서도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싫은 내색 없이 묵묵히 도움을 주시며 곁을 지켜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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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이 괴로운 시련 속에서 나를 일으켜 세워주실 분은 오로지 하느님 한 분뿐이라고 굳게 믿었다. 고뇌가 깊어질수록 나는 더욱 열렬히 매달렸다.
 
“하느님, 다섯째 시동생이 이번에 합격하지 못하면 정말 큰일입니다. 저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더 이상 돈을 구할 방법도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짊어진 저 막대한 빚을 제가 갚아드릴 길이 없습니다. 부디 제가 먹지도 못하며 견뎌내는 이 모든 고통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오니, 시동생이 이번 고시에 꼭 합격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고 주관해 주소서. 아멘!”
 
딸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슬픔을 겪으셔야 할 어머니께 딸이 남긴 빚까지 떠넘길 수는 없었기에, 나는 부단히 간청하고 또 간청했다. 인류를 위해 온몸을 내어놓으신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고, 전쟁터에서 동료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병사의 희생정신을 떠올리며 흐려져 가는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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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봉헌하리라 다듬으며 새로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집으로 광주 시어머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새댁, 전화 받게. 광주 시어머니가 찾으시네.” 그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혹시 또 돈을 마련해서 광주로 올라오라는 말씀은 아닐까?’ 두려움에 떨며 겨우 수화기를 들었다.
 
“...여어~ 여보세요...”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예상 밖이었다. “어미냐? 다섯째가 합격했단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너무나 기쁜 나머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고 말았다. 크나큰 안도감과 함께 지난 7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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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말기 암 환자의 몸으로 시동생을 법관으로 만들기 위해 잠시도 쉬지 못하고, 푼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던 고단한 나날들... 그러나 이제는 한시름 놓았다는 생각에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의 끈이 한순간에 풀려버렸다. 나는 전화기를 붙든 채 아이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이제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니 공부하느라 애쓴 시동생이 앞길을 열어 좋고, 매달 돈 걱정에 시달리던 우리의 짐을 덜어서 좋고, 무엇보다 친정어머니가 더 이상 고생스럽게 농사를 짓지 않으셔도 되니 정말 꿈만 같았다. 사실 내가 시동생의 학비와 생활비를 전적으로 부담하면서도, 시어머니께서는 수시로 당신이 돈을 보냈다며 남편 월급의 10배 또는 20배나 되는 큰돈을 따로 요구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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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시한부 인생이 되어 죽어가는 고통 속에서 그 돈을 마련하느라 얼마나 눈물지으며 난감해했던가.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며 무거운 마음의 짐에 눌려 신음하던 나였지만, 시동생의 합격으로 모든 부담에서 해방되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 덕분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하느님을 향한 감사의 찬미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오, 하느님! 비천한 저에게 이토록 크신 자비와 사랑의 기적을 베풀어 주시나이까! 오직 감사를 드릴 뿐이옵니다. 오로지 하느님 홀로 영광 받으시고 흠숭 받으시옵소서. 우리 가족 모두의 가슴 속에 감사가 마르지 않으리이다! 영원히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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